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동구 효목2동 563번지 소재. 1977년 7월 복자 본당에서 분리 설정. 주보는 성모 성탄. 관할 구역은 효목2동 · 신천4동 전 지역과 서목1동 · 만촌1동 일부 지역. 〔교 세〕 1978년 1,330명, 1983년 3,205명, 1988년 5,146명, 1993년 5,676명, 1998년 2,372명, 2004년 4,192명. 〔역대 신부〕초대 정광영(鄭光永) 안토니오(1977. 7~1978. 9), 2대 이강언(李康彥) 바오로(1978. 9~1982. 1), 3대 박형진(朴馨鎮) 아우구스티노(1982. 1~1986. 1), 4대 이창배(李昌培) 안드레아(1986. 1~1991. 3), 5대 김상목(金相睦) 다미아노(1991. 3~1995. 6) , 6대 최현철(崔鉉哲) 파비아노(1995. 6~1998. 8), 7대 이상호(李相浩) 베드로(1998. 8~2001. 11), 8대 곽길우(郭吉祐) 베드로(2001. 11~현재).
〔전 사〕 효목동 지역에 거주하던 신자들은 지역 내에 성당이 없어서 신천3동에 위치한 복자 본당의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미사에 참례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효목동에서 가까운 2군 사령부 내에 성당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신자들은 군종 신부의 배려로 군인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특히 2군 사령부에서 신자 가족들을 위해 제공되는 군용 버스를 인근 신자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하면서 이곳으로 미사를 드리러 오는 신자들이 계속 증가하였다. 이렇게 효목동 인근 신자들이 어렵게 미사에 참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복자 본당 3대 주임 이창호(李昌鎬, 안드레아) 신부는 효목동 신자들에게 장소만 마련되면 토요 특전 미사를 집전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에 효목동의 신자 이성남(테오필로)이 자신의 집을 제공하여 그곳에서 매주 토요 특전 미사가 봉헌되면서 효목동 신자들의 공소 공동체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효목동 지역에는 4개의 쁘레시디움이 조직되는 등 신자들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그 결과 교세가 확장되면서 신자들은 점차 본당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교구에 본당 신설을 요청하였다. 이에 교구에서는 효목동의 현황과 전망, 인구 증가 추세 등 제반 사항들을 검토한 후 본당 설립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1977년 7월 효목동563번지(380평) 대지를 매입하고 7월 5일 효목동 본당을 설정, 초대 주임으로 정광영 신부를 임명하였다.
〔본당의 설정과 발전〕 정광영 신부는 우선 효목동306-6번지의 가옥을 임차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11월부터 성당 건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또한 성당건립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성전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아울러 효목동 구역 안에 거주하면서 냉담 중인 신자들을 본당으로 이끌기 위한 '신자 찾기 운동' 을 벌였다.
정광영 신부에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강언 신부는 부임 직후 성당 신축 공사를 마무리짓고 수녀원과 본당 담장 공사를 실시하여 본당의 외적 구성을 갖추었다. 또한 본당 신자들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전 신자 가정 방문을 실시하여 문제점들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신자들의 신앙 생활 쇄신을 위한 신자 재교육을 실시하기로 한 이 신부는 그리스도 공동체 수련회를 도입하여 본당 자체적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1979년 4월 22일에는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주교의 주례로 성당(지하 1층, 지상 2층)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이듬해 5월에는 성모상을 축성하였다. 이처럼 성당이 완공되고 본당 안팎의 문제들이 마무리되자 이 신부는 1981년부터 전교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본당 일에 참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평신도들이 강론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하였다.
3대 주임 박형진 신부는 본당명인 '효목' 의 의미를 살려 '하느님께는 효성을, 형제간에는 화목을' 을 사목 지표로 제시하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본당 공동체안에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신의 일환으로 1982년 2월 본당의 첫 번째 출판물인 '효목회지' 가 발간되었고, 10월에는 신용 협동 조합이 설립되었다. 박신부는 1983년 8월에 만촌 본당을 분리시켰으며, 재임기간 중 성소 후원회 · 여성 연합회 · 청년회 · 군종 후원회 등 다양한 단체들을 조직하였다. 한편 본당을 분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 계속 증가하여 본당 시설들이 부족하게 되자 성당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1984년 7월에 완공하였으며 같은 달 교구 내에서는 처음으로 정기 월보인 《효목》을 간행하였다.
4대 주임 이창배 신부는 1986년 7월 정식으로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회칙을 제정하여, 성무와 같은 사제의 고유 영역을 제외한 본당 일에 신자들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였다. 5대 주임 김상목 신부는 소공동체 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신자들에게 소공동체 운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본당의 소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자 1993년에는 대구대교구를 방문한 오스트리아와 홍콩의 성직자들 및 신자들이 효목동 본당을 방문하여 운영 형태를 참고하였다.
6대 주임 최현철 신부는 본당 내 사회 복지회의 활성화에 역점을 두어 전 신자의 사회 복지 회원화를 적극 권유하였고, 1997년 11월부터 제대와 감실, 14처상 등 성당 내부 및 벽면 도색 작업 등 외부 공사를 실시하여 본당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7대 주임 이상호 신부는 2000년 5월 성전 신축을 위한 바자회를 개최하였으며 기초 공동체 활성화를 위하여 반 조직을 세분화하였다. 이밖에도 신자 관리의 효율성을 위하여 전산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신자 배가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며 교세 확장에 주력하였다.
8대 주임 곽길우 신부는 신자들이 신앙의 기본이 되는 교리와 지식을 재정리하여 더욱 능동적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2002년부터 주일 미사 후 '3분 교리' 를 실시하고 있으며 7월에는 만촌1동 본당을 분리시켰다. 곽신부는 일반 신자들이 예비 신자 교리를 담당하도록 2005년 3월부터 3개월간 '예비 신자 교사 학교 를 열어 신자들을 교육시켜 신자 재교육의 효과까지 거두고 있으며, 11월에는 이들 수료생을 대상으로 2차 교사 학교를 열어 심화 교육을 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효목 본당 25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효목 성당, 2002. 〔洪延周〕
효목동 본당
孝睦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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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