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춘천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춘천시 효자2동 401소재. 1969년 11월 20일 죽림동 본당에서 분리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사도의 모후. 관할 구역은 춘천시 석사동 · 퇴계동 · 효자2동 · 동내면 · 신동면 · 동산면 전 지역과 효자1동 일부 지역. 공소는 굴지리 · 고은리 등 2개소. 〔교 세〕 1970년 2,250명, 1975년 2,979명, 1980년 2,904명, 1985년 2,320명, 1990년 2,379명, 1995년 3,654명, 2000년 4,245명, 2003년 3,109명. 〔역대신부〕 초대 해리스(D. Harris, 나) 데렉(1969. 11~1972. 12), 2대 맥마흔(A. McMahon, 안성도) 아르도(1972. 12~1974. 9), 3대 송성식(宋聖植) 토마스(1974. 9~1978. 5), 4대 오세철(吳世哲) 가브리엘(1978. 5~1984. 3), 5대 황영택(黃榮澤) 요한(1984. 3~1990. 2), 6대 양완모(梁完模) 야고보(1990. 2~1997. 8), 7대 임홍지(任弘志) 알로이시오(1997. 8~2003. 9), 8대 송병철(宋炳哲) 야고보(2003. 9~현재).
1960년대 말 죽림동 본당의 신자수는 3,800명에 달하였고, 그중 효자동 · 석사동 · 퇴계동 지역에 거주하는 신자들은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많은 불편을 겪고 있었다. 이에 춘천교구장 스튜어트(T. Stewart, 朴) 주교는 효자동 400번지에 위치한 5,000여 평의 교구청 부지 안에 새로운 성당을 건축할 계획을 세웠다. 1969년 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1월 20일에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과 스튜어트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이 거행되었고, 동시에 효자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해리스 신부가 부임하였다.
해리스 신부는 부임 후 청소년 사목에 관심을 기울여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성가대와 고등부 학생회를 결성하였고, 전교 회장을 두어 본격적인 교세 증가를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1970년 3월 12일에 학생 레지오 샛별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어 예비자가 늘어나고 학생회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9월 4일에는 본당 설립 초창기부터 활동한 성모회가 연령에 따라 안나회와 마리아회로 분리되었고, 11월 3일에는 빈천시오회가 설립되었으며 1972년에는 미혼 여성 신자들의 신심 단체인 데레사회가 조직되어 신자들의 활발한 활동을 장려하였다. 3대 주임 송성식 신부는 1975년 10월에 꾸르실리스타들의 모임인 울뜨레야를 결성하였고, 낡은 성당 내부 장식들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그리고 주일학교에 유아반을 신설하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성당 유치원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4대 주임 오세철 신부는 1980년대 초반 행복한 가정 운동을 적극 추진하라는 교구 방침에 따라 행복한 가정 만들기에 본당 신자들의 동참을 강조하였고, 부부 신자들을 위한 특별 강좌를 매월 1회씩 개설하여 변호사와 의사들에게 법률 상담과 의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외에 레지오 활동을 권장하여 구세주의 모후 쁘레시디움 ·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 · 순교자의 모후 쁘레시디움 · 영화로운 동정녀 쁘레시디움 · 성실하신 동정녀 쁘레시디움 등이 설립되었으며, 1980년 3월부터는 본당 주보를 자체 제작하여 매주 발행하였다. 그리고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관심과 교사들의 열성이 어우러져 주일학교 소식지인 <새싹>이 창간되었다. 5대 주임 황영택 신부는 재임 6년 동안 15회에 걸쳐 성지 순례를 실시하여 신자들의 신심을 고취시켰고,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는 중고등부 1일 피정과 방학 교리 등을 직접 지도하며 신앙을 일깨워 주었다. 본당 레지오를 활성화시켜 1984년 10월 31일에는 모든 성인들의 모후 꾸리아가 창단되었으며, 이어 12월 11일에는 행복한 가정회가 설립되었다. 그런 가운데 교구 사정으로 1978년에 중단되었던 꾸르실료 운동이 1987년 1월부터 재개되어, 1989년까지 49명의 본당 신자가 꾸르실료 교육에 참석하였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본당 관할 구역인 석사동 · 온의동 · 퇴계동 일대에 택지가 조성되고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면서 신자수가 증가하였다. 6대 주임 양완모 신부는 1990년 6월부터 비좁고 노후화된 성전 및 사제관의 보수 공사 기금을 모금하기 시작하였으며, 1994년부터 성전 보수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8월에 본당 사무실과 사제관을 교구 관리실 건물과 인근 한주 아파트로 임시 이전하였다. 1996년 3월 24일에 성전 보수 및 사제관과 수녀원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11월 8일에는 교육관 건립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 중 사제관은 같은해 12월에 먼저 완공되었지만 1997년 8월 5일에 모든 공사를 마친 후에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이처럼 성당 공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1991년 2월 28일에는 연령회가 발족되었고, 1994년 9월 18일에는 대건회가, 1995년 7월에는 하상 바오로회가 조직되었다. 7대 주임 임홍지 신부는 1997년 11월 30일 교육관 1층에 가톨릭 신협 효자지소를 설립하였고, 1999년 2월에는 청년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청년 빈천시오 협의회를 발족하였다. 그리고 본당의 신자수가 4,000명이 넘게 되자 1998년 9월에는 퇴계 본당을 분리하였고, 2002년 9월에는 스무숲 본당을 분리하였다. 8대 주임 송병철 신부는 2003년 11월 23일에 성서 필사 전시회를 열었고, 2004년 6월부터 한 달 동안 매주일 가두 선교를 하였다. 그리고 2002년 2월부터 본당에서 개설하였던 노인대학이 2004년 10월 5일 지역 노인대학으로 변경되면서, 죽림동 주교좌 본당 관할로 이관되었다. (→ 춘천교구)
※ 참고문헌 《사도들의 모후》, 천주교 춘천교구 효자성당, 1999. 〔白秉根〕
②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1가 216-20 소재. 1978년 4월 20일 전동 본당에서 분리 설정되었으며, 설정 당시 본당명은 파티마였으나 1984년 말에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주보는 파티마의 모후 성모 마리아. 관할 구역은 효자동 1가 1 · 2동, 삼천동 1가 1 · 2동 일부 지역. 〔교 세〕 1978년 639명, 1980년 947명, 1985년 2,154명, 1990년 3,377명, 1995년 4,289명, 2000년 3,985명, 2003년 3,976명.〔역대 신부〕 초대 문정현(文正鉉) 바르톨로메오(1978. 4~1980. 1), 2대 김영일(金永鎰) 아우구스티노(1980. 1~1984. 1) 3대 박중신(朴伸信) 시몬(1984. 1~1988. 1), 4대 유종환(偸鍾桓) 마태오(1988. 1~1992. 1), 5대 김치삼(金熾參) 스테파노(1992. 1~1996. 1) 6대 서정현(徐楨鉉) 시몬(1996. 1~1999. 1), 7대 김용태(金容泰) 베네딕도(1999. 1~2003. 1), 8대 김병운(金柄雲) 베네딕도(2003. 1~현재).
전동 본당 관할 구역인 효자동 · 삼천동 · 화산동 지역이 1970년대 중반부터 도시 계획에 따라 개발되기 시작하자, 교구와 전동 본당에서는 이 지역에 본당을 신설하기로 하고 1975년 8월 7일에 당시 과수원이었던 600평의 부지(현 성당 부지)를 매입하였다. 이어 전동 본당에서는 1977년 3월에 새 성전 건립위원회를 조직하여 신축 기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고, 6월 5일에는 성당 기공식을 가졌다. 공사는 전동 본당의 전 신자를 포함해 교구의 적극적인 배려와 협조로 이루어져, 1978년 4월 14일에 드디어 성당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이와 함께 교구에서는 4월 20일자로 본당을 설정하고 초대 주임으로 문정현 신부를 임명하였다.
문 신부는 본당 조직의 체계를 갖추기 위하여 1978년 5월에 사도회와 레지오 마리애, 교리 교사회 등을 발족하였고, 본당 사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본당 내에 서울 성가 소비녀회 분원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당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문 신부는 1978년 7월에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1979년 7월 26일에는 박정희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 발표와 관련하여 형집행정지 취소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교구에서는 8월 30일에 김영일 신부를 임시 주임으로 임명하였으며, 문 신부는 12월 8일에 긴급 조치 9호의 해제로 석방되었다. 그 사이 본당 신자들은 본당 정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1979년 3월에는 파티마 유치원을 개원하고 5월에는 파티마 신용 협동조합을 창립하였으며, 8월에 청년회를 발족한 뒤 자비의 모후 · 예언자의 모후 · 원죄 없는 모후 쁘레시디움 등을 창단하였다.
1980년 2대 주임으로 임명된 김영일 신부는 5월 11일에 로사리오 꾸리아를 창설하였고, 1981년 4월 19일에는 수녀원을 신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3대 주임 박중신 신부는 효자동 일대가 개발되어 신자수가 증가하자 이에 걸맞는 본당 시설을 갖추고자 교육관 건립을 추진하여 1985년 2월 21일에 교육관 신축위원회를 구성한 뒤 6월 2일에 기공식을, 12월 2일에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3월에는 신자들 간의 공동체적 유대와 신앙의 심화를 위해 <효자 월보>를 창간하였다. 4대 주임 유종환 신부는 1988년 1월에 우전 본당을 분리하여 390세대 998명의 신자를 이관시켰으며, 1989년 1월에는 효자 제3(현 용머리) 본당을 분리하여 418세대의 신자를 새 본당에 이관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1월 16일에는 화산동 본당이 신설됨에 따라 일부 구역과 신자들이 화산동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1992년부터는 본당 사무 전산화 작업을 시작하여 재정과 교적, 각종 대장들을 전산 처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5대 주임 김치삼 신부는 1994년 1월 29일 삼천동 본당을 분리하였으며, 이듬해 3월 25일에는 신학생 후원을 위한 예루살렘회를 창립하였다. 6대 주임 서정현 신부는 1997년 한 해 동안 교육관 벽 미장 공사와 성당 앞마당 콘크리트 작업 등을 실시하여 본당 환경 미화에 노력하였고, 1998년에는 '이웃 사랑 실천 운동' 을 전개하여 이웃 돕기 성금으로 1억여 원을 신립하였다. 7대 주임 김용태 신부는 레지오 단체를 비롯한 본당 내 여러 단체 활성화에 노력하여, 착한 의견의 어머니 꾸리아 · 여성 연합회 · 요한회 등을 발족하였다. 그리고 2002년 전 · 후반기 한 차례씩 선교와 쉬는 교우를 위한 21일간 고리 기도 및 40일 금식 기도 등을 실시하였다. 8대 주임 김병운 신부는 본당 환경 개선에 노력하여 본당 지붕 개량 공사와 본당 내부 수리 공사 등을 실시하였고, 2004년 12월에는 본당 내 어르신 성서 교실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2005년 사목 방향을 '각자 주어진 일거리를 찾아서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전하는 작은 이들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자'로 정한 뒤 전 신자와 함께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전주교구사》 I ·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白秉根]
효자동 본당
孝子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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