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 성 빅토르의 (1096 ~ 1141)

〔영〕Hugo a Sancto Vic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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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빅토르의 후고.

성 빅토르의 후고.

중세의 유명한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신비주의자. 프랑스식 이름은 생 빅토르의 위그(Hugues de Saint Victor)
〔생애와 활동〕 1096년 독일 동부 작센(Sachsen) 지방의 하르팅함(Haringham)에서 태어난 후고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 할버슈타트(Halberstadt) 교구의 하머슬레변(Hanmesilebeco)에 있는 아우구스티노회의 성 판크라시아(S. Pancratia)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말년에 저술한 《영혼의 보증》(De arra anima)은 이 수도원의 수사에게 봉정되었다. 이곳에서의 수련기가 끝나기 전, 당시의 혼란스런 사회 분위기에 대해 할버슈타트 교구의 주교였던 삼촌 라인하르트(Reinhard)의 충고를 듣고, 후고는 1115년 갓 설립된 파리의 생 빅토르 수도원으로 이적하였다. 이 수도원은 파리 노트르담 주교좌 성당학교의 교장이었던 샹포의 기욤(Guillaume de Champeaux, 1070~1121)이 1108년 은퇴하면서 설립한 공동체로, 1112년 기욤이 샬롱쉬르마른(Chinomesur-Mame)의 주교로 임명되어 수도원을 떠난 후 질뒤인(Gildin, +1133)이 원장이 되었으며, 1114년 교황 파스칼 2세(1099~1118) 때에 정식 인가를 받았다. 후고는 여기에서 질뒤인의 지도로 공부를 마친 후 1125년부터 신학과 중세 자유 삼학(문법, 변증법, 수사학)을 가르쳤다.
그의 재능은 저술 활동을 통해 드러났고, 탁월하고 새로운 교수법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생 빅토르 수도원에 모여 들었다. 그로 인해 후고는 신비주의 경향의 제2 세대 생 빅토르 학파의 창시자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1142)는 후고가 새로운 방법을 성서와 신학 분야에 적용시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많은 비판을 하였으나, 후고는 새로운 교육 방법에 긴장해 있던 당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지성인들 및 교회의 주요 인물들과 서신을 교환하면서 신학적 · 영적 토론을 하였다. 그리고 1133년 질뒤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수도원 간호사인 오스베르(Osbert)의 보고에 따르면, 후고는 생애 말년 병석에 있을 때 십자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여 성호를 긋고 예수의 발에서 흐르는 피를 마시듯 입맞춘 뒤 간호사에게 성령을 받도록 자신의 얼굴을 향해 십자가 모양으로 입김을 불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는 병자성사를 받고 "원하는 모든 것을 받았다" 라는 말을 남기고 1141년 2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철학, 신학 그리고 영성은 후대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프란치스코회 회원이었던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는 자신의 저서 《학문의 신학적 환원》(De reductione artium ad theologiam)에서 후고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고 "이것이 후고의 진정한 모든 것이다" (Hugo vero omnia haec)라는 찬사를 하였다.
〔사 상〕 후고는 신비주의 영성가일 뿐 아니라 철학자이자 사색적인 신학자로서 교회사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특히 그의 철학은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의 영향을 받았고, 신학 사상은 《명제 대전》(命題大典, Summa sententiarum), 《그리스도교 신앙의 성사들》(De sacramentis christiane fidei)에서 볼 수 있듯이 교부들과 아우구스티노(Augustius Hipponensis, 354~430)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또한 당시 신학자들, 예를 들어 캔터베리의 안셀모(Anselmus Cantuariensis, 1033~1109)나 기욤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철학 : 후고의 철학은 신플라톤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그는 만약 인간이 자기 자신과 하느님에 대해 알지 못하면 자연(본성)의 아름다움을 알(나타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그에게 있어서 철학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양자를 모두 다루는 학문이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존재를 이성으로 증명하는 것을 철학 연구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였고, 교부들이 다루었던 주제들을 조직화하고 그 사상을 체계화함으로써 스콜라 신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20세기 신학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저서 《3일간의 작업》(De operibus trium dierum), 《명제 대전》, 《성사론》(De sacramentis)에서 어떻게하면 인간이 이성을 사용해 자신을 분석함으로써 하느님 존재를 인식하는 단계에 도달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ardus de Clairvaux, 1090~1153)와는 달리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켰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신앙과 이성을 통해서이며, 이 두 길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즉 본성에 의해 주어진 이성의 길과 은총에 의한 계시의 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 두 길의 최종 목적은 인간을 내적 · 외적으로 하느님께 인도하는 데 있다. 신앙은 이성에 의해 고무되고 성숙되며 이성은 신앙에 의해 완성된다. 만약 이성으로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면 신앙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성의 완벽한 논리로 하느님을 찾는 것은, 이성으로 확실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 행위인 신앙과는 구별될 수 있다. 이성에 의한 깊은 인식으로 하느님을 경험할 수 있으나, 신앙으로 지복직관을 예고하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논리를 초월한다. 그러므로 이성은 논리를 초월하여 감지되는 신앙을 존경해야 한다.
후고는 은총이 본성을 완성시킨다고 믿었다. 은총이 본성을 해치지 않고 완성한다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의 원칙은 후고로부터 형성되어 이어진 것이다. 신앙과 이성은 내적 조명이나 전통적인 교회 가르침 안에 존재한다. 하느님의 존재나 삼위일체 역시 내적 · 외적인 이 두 길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인간 속에 있는 말은 외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나타나듯이 하느님의 내적 말씀, 즉 영원한 지혜는 외적인 말로 계시된다(De sacram. I, 3, 30). 결국 세속적 학문과 교회의 신학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자연 과학 역시 신학을 위해 유익하여(De sacram. I, prol. 5, 6) 높은 단계의 지식 즉 하느님을 인식하는 지식을 얻는 데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후고는 "모든 것을 배워라. 그러면 이 중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Didasc. VI, 3)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교육을 통한 인간 형성에도 적용된다. 후고는 당시의 인간 교육을 중세 삼학에 국한시키지 않고 실천과 기술적인 면을 중시하였으며, 7가지의 참신한 교육학적 기법을 소개함으로써 당시 학문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것은 철학, 신학, 영성의 입문서인 《학습론》(Didascalicon : 원명은 Eruditionis didascalicae libri VII)에서 볼 수 있다. 첫 번째 세 권은 학문 기법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두 번째 세 권은 신학 즉 성서 · 전례 · 교부들에 대해 다루고 있고, 나머지 한 권은 묵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의 신학은 당시 계시된 진리를 하나로 종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중세의 대신학서(somma teologica)라고 불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성사들》은 1136~1141년 사이에 편집되었는데, 역사성을 중시하면서 신앙의 신비를 비유적으로 해석하였다. 성서의 신학적 내용을 다루는 이 책은 구약과 신약성서를 고려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2개의 주제로 이루어진 첫 부분은 육화의 전조로 하느님, 창조, 원죄, 율법 등을 다루었으며, 18개의 주제로 되어 있는 둘째 부분에는 원죄에서의 복구, 구원을 중점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 교회, 성사, 덕, 종말론 등을 다루었다. 즉 그의 신학 경향은 아담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 안에 완성되는 구세사의 경륜을 따르고 있다. 후고는 세계를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육화와 성사)의 측면에서 보았다. 세속 학문은 창조 사업을 알기 위한 학문이고, 성서는 창조사업과 구원(복구) 사업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며, 여기서도 역시 이성과 신앙의 공동 작업(협력)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윤리학 : 후고는 선(善)이 신적인 율법을 따르는 것이며, 악(惡)은 이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선이나 악의 기반은 바로 인간의 자유 의지에 있다. 후고는 갈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갈망에 대한 척도가 부족한 데서 오는 마음(정신)의 무식, 욕정에 의한 타락은 악으로 보았다. 이 타락은 의지를 비열하고 파렴치하게 만들고, 창조 때의 아름다움과 완벽에서 인간을 괴리시킨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것을 결정할 때 책임을 짐으로써 악을 피할 수 있다. 후고는 일곱 개의 성사를 확립시키는 데 공헌하였으며, 당시 유일하게 고해성사의 사죄와 혼인성사의 은총에 대해 강조하였다.
인간학 : 그는 인간을 감각 세계의 최고 존재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서에서 인간이 마지막으로 창조된 사실로 알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창조되었고, 유한한 인간은 완벽에 도달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선이 있다. 하나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며 물질에서 얻을 수 있는 선이다. 즉 물질은 인간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기 위해 창조되었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으로,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다(De sacram. I, 2, 1). 세상 속의 인간은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영혼은 육신과 상반되는 것으로, 영혼이 인간 자체이며 영적 본질로서 인간에게 인격을 부여한다(De sacram. II, 1, 11). 이러한 후고의 인간학은 플라톤의 사상을 따르고 있다. 또한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받아 후고는 자신의 존재(현존)에 대한 자각(인식)의 필요성과 가치를 주장하였다. 후고에 의하면 하느님은 선을 창조하였지만 악은 창조하지 않았다. 단지 세상에 악을 허용하였을 뿐이다. 악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선도 세상에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선악의 상반성 속에 세상의 아름다움과 질서가 더 분명해지고 악이 있음으로써 선의 유익함을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 주석가이기도 한 후고는 교회 안에 전승된 방법을 보존하기 위해서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exegesis) 할 것을 강조하였다(《학습론》). 즉 성서 안에 나타나는 말과 대상들은 상징성을 가지는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성서는 마치 영적 공장과도 같다는 것이다.
영성 신학 : 그의 영성에 흐르는 공통된 사상은, 인간의 영혼은 명상을 통해 하느님께 향함으로써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지혜와 은총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혼의 보증》에서 후고는 자신의 영혼과의 대화를 다루면서 하느님에 대한 신비 경험을 묘사하였다. 순수 불꽃에 의해 정화된 영혼은 진리에 대한 직관 상태에 이르는데, 이때 희열에 찬 달콤한 감미로움에 휩싸여 감동하게 된다. 이 느낌은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자신 안에 들어와, 영혼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근심, 걱정, 결핍으로부터 벗어나 정신은 용약하게 되고, 인식은 선명해지며, 마음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 갈망하던 것들이 채워지게 되는데, 이것이 황홀경 상태이다. 명상과 격정 안에서 하느님과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의 신학은 거의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에 의해 정립된 것이다.
후고는 인간이 하느님에게 접근하는 신비 체험은 인지 (cogitatio), 묵상(meditatio), 명상(contemplatio) 등의 세 단계로 구분된다고 하였다. 인지 단계에서는 사고가 감 각이나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으로 나아가게 되고, 묵상 단계는 사고가 그 자신 안으로 들어가 분명하지 않 고 은폐되어 있는 것을 찾는 과정이다. 명상 단계는 음미 했던 모든 것이 분명해져 영혼이 자유롭게 되는 직관의 단계이다. 그래서 후고는 명상을 "온전한 이해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볼 수 있고 포착할 수 있는 정신의 깨어있음" 이라고 묘사하였다. 가장 높은 단계인 명상에서 진리는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고 사랑은 완전해지며 영혼은 단지 하나만을 찾게 된다. 결국 명상에 있어서 최상 단계는 자신으로부터 초월하여 하느님과 하나되는 데 있다(De vanitate mundi, 2). 이를 위해 후고는 완전한 기도인 사랑의 관상 또는 '사랑어린 인식' (scientia amorosa)에 이르는 기도의 다섯 단계(독서, 묵상, 기도, 사랑 안에서의 성장 및 관상)를 설명하였다. 그는 관상이 하나의 분명한 직관 안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지성의 침투라고 말함으로써 관상을 독서, 반성, 묵상과 구별하였다. 자연적 진리나 철학 자체도 어떤 유형의 관상을 제공할 수 있지만, 거룩한 신학을 형성하는 '상급의 지혜' (sapientia superior)에는 미치지 못한다.
〔평 가〕 그가 집필한 저서들은 당시 가르쳤던 모든 학문을 포괄할 만큼 방대하다. 저서의 필사본은 15세기까지 많이 전파되었으며, 중세에는 60권이나 되는 책들이 출판되었다. 현존하는 후고의 필사본은 2,150권에 이르는데, 그의 문체는 분명하면서도 우아하고 고상하다.
이 방대한 저술로 후고는 '제2의 아우구스티노' 로 불렸으며, 12세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신학자로 평가되었다(R.G. Villoslada). 또한 최근에도 '12세기의 가장 훌륭한 신학자' 라는 인정을 받고 있으며(K. Bihlmeyer), 스콜라 철학의 전성기에 최초로 교의 신학을 완전히 종합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M. Grabmann). 그는 아우구스티노의 저서를 깊이 있고 상세하게 연구함으로써 이전에 완성되지 않았던 아우구스티노의 종합적인 체계를 제시하였다. (→ 베르나르도)

※ 참고문헌  De Wulf, Histoire de la philosophie mediévale, Louvain, 1900/ J.P. Kleinz, The Theory ofKnowledge ofHuge ofSaint-Victor, Washington, 1944. G. Dumeige, Ⅲ, pp. 2567~2570/ J. Lanczkowski, 《WMY》, pp. 240~241/ H. Platelle, XII, pp. 775~777/ F. Vernet,《DTC》VII, pp. 240~308/ A. D'Amato, 《EC》 XII, pp. 713~714/ J. Pedersen, La richerche de la sagesse d'aprés Hugues de Saint-Victor, Classica et Medievalia 16, 1955, pp. 92~133/ R. Baron, Science et sagesse chez Hugues de Saint-Victor, Paris, 1957/ D. Van den Eynde, 《NCE》VII, 1966, pp. 194~195/ R. Baron ed., Hugues de Saint-Victor. Six Opuscules Spirituels, Cerf, 1969/ E. Liccaro, Studi sulla visione del mondo di Ugo di San Vittore, Del Bianco Editore, Trieste, 1969/ G.A. Zinn, Mandala Symbolism and the Use in the Mysticism of Hugh of Saint-Victor, History of Religions 12, 1973, pp. 317~341/ A. Piazzoni, Ⅱ De unione spiritus et corporis di San Vittore, Studi Medievali 21, 1980, pp. 861 ~888/ G. Evans, Hugh of Saint-Victor on History and Meaning of Thing, Studia Monastica 25, 1983, pp. 223~2341 V. Liccaro cura di, Disascalicon, Milano, 1987/ P. Sicard, Diagrammes medievauxet exegse visuelle. Le libellus de formatione arche de Hugues de Saint-Victor, Turnhout, 1994/ H. Feiss . D. Poirel . H.M. Rochais · P. Sicard, L'oeuvre de Hugues de Saint-Victor. De institutione novitiorum. De virtute orandi. De laude caritais. De arrha animae, Brepols, Turnhout, 1997/ F. De Capitani, Ugo di San Vittore e il problema delle Artes Mechanicae, Rivista di Filosofia Neo-scolasica, Anno XCI(genanaio-maro, 2000), pp. 425~460/ M. Fioroni cura di, Ugo di San Vittore, DE Arrha Animae-inizio del dono, Glossa, Milano, 2000/ P. Sicard · D. Poirel ed., Hugonis De Sancto Victore Opera, t. 1, Paris, Turnhout, 2001/ P. Sicard, Hugonis de Sancto Victore, De Archa Noe Libellus De Formatione Arche, Paris, Turnhout, 2001/ P. Sicard · D. Poirel ed., Hugonis De Sancto Victore Opera, t. 2, Paris, Turnhout, 2002/ D. Poirel cura et studio, Hugonis De Sancto Victore, De Tribus Diebus, Paris, Turnhout, 2002. [李再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