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춘천시 후평1동 705-3소재. 1980년 7월 1일 운교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착한 목자. 관할 구역은 춘천시 후평 1 · 2동, 후평3동 일부, 효자3동 일부, 교동 일부, 동면 만천리. 〔교 세〕 1981년 1,098명, 1985년 2,247명, 1990년 3,743명, 1995년 4,440명, 2000년 4,165명, 2005년 3,603명. 〔역대 신부〕 초대 나이한(J. Nyhan, 나) 요한(1980. 7~1984. 5), 2대 오영민(吳永敏) 바오로(1984. 5~1986. 2), 3대 오세철(吳世哲) 가브리엘(1986.2~1995.9), 4대 김학수(金鶴洙) 베드로(1995. 9~2000. 9), 5대 김정식(金晶植) 토마스(2000. 9~2004. 9), 6대 홍기선(洪基先) 히지노(2004. 9~현재).
후평동은 1970년대만 하더라도 춘천시의 한적한 외곽 지역이었으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는 등 점차 도시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에 춘천교구에서는 본당 설립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현 소재지에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성당(168평)이 준공되자 1980년 7월 1일 후평동 본당을 신설하였고, 7월 3일 교구장 스튜어트(T. Stewart, 朴)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고 초대 주임으로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나이한 신부를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정상 본당에 곧바로 부임하지 못하였고, 대신 7~8월에는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들이, 9~10월에는 스튜어트 주교가 미사를 집전하였다.
나이한 신부는 1980년 10월 부임하여 11월에 로사리오 모후 쁘레시디움을, 1981년 6월에 착한 의견의 어머니 쁘레시디움과 증거자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10월에 샛별 쁘레시디움을 창립시키는 등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적극 권장하였고, 같은 해 9월에는 수녀원(27평)을 준공하고 인보 성체 수녀회의 분원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1984년 4월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자들을 지원하고 신자들 상호 간의 협력을 도모할 목적으로 후평 가톨릭 신용 협동 조합을 창설하였다. 2대 주임 오영민 신부는 1984년 10월에 본당의 관할 구역을 5개 구역 24개 반으로 편제하고 교적을 일제히 정리하는 한편, 구역별로 날짜를 정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9월에는 신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성당 내부를 보수하였고, 11월에는 교육관을 신축하기 위해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3대 주임 오세철 신부는 그동안 추진해 온 교육관 건립과 함께 성당 증축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1986년 10월 공사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1987년 9월에는 춘천교구 평화의 모후 꼬미시움에서 주관하는 레지오 간부 연수회를 본당 교육관에서 개최하였고, 11월에는 5개의 레지오 쁘레시디움을 새로 설립하는 등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활성화시켰다. 이와 함께 남북한의 교류가 재개되기 시작하던 1989년 9월에는 매 미사 시간 중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봉헌하였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 문제' 에 대한 특별 강연을 개최하였다. 또 1991년 5월에는 성모의 밤 행사 중에 성모상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1992년 2월에는 본당 사무실을 신용 협동 조합이 있던 자리로 옮겼다가 1994년 8월에 신축 이전하였다. 그리고 이에 앞서 1993년 9월에는 성당 내외부 및 출입문을 보수하는 등 본당의 주위 환경을 단장하였고, 10월에는 14처를 신자들의 정성으로 봉헌하였다. 4대 주임 김학수 신부는 1995년 10월에 청년 연합회를 창립하여 젊은이들의 공동체가 보다 조직적으로 신심 활동을 전개하도록 하였고, 1996년 10월에는 사제관 및 교육관을 증축하였다. 이어 1997년 7월에는 '착한 목자상' 을 제정하고 복음 · 효행 · 생명 부문으로 나누어 신심 활동과 사회 생활에 모범이 된 신자들에게 시상하였고, 12월 25일에는 본당 마당에서 한국 고유의 예술성을 갖추어 제작한 성모자상의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또 1998년 5월에는 신자들이 조금씩 쌀을 모아 이웃과 함께 밥을 나누는 '사랑의 인보 운동' 을 전개하였으며, 9월에는 애막골 본당을 분리하여 427세대 1,176명을 이관하였다. 그리고 2000년 7월에는 대희년과 본당 설립 20주년 기념 행사를 거행하였으며, 8월에는 후평동 본당의 역사를 정리한 《후평동 본당 20주년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5대 주임 김정식 신부는 2001년 8월에 춘천교구의 본당 기구 개편에 따라 사목 평의회, 구역 협의회, 평신도 단체 협의회, 재무 평의회를 구성하였고, 2002년 11월에는 화재로 성당이 전소된 간성 본당을 돕기 위한 바자회를 개최하였으며, 2004년 9월에는 성당 제단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6대 주임 홍기선 신부 재임기인 2004년 11월에는 본당 소식지인 주간 <뒤뚜르>가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2005년 현재 후평동 본당은 모든 개인이나 단체가 성서를 읽고 성서의 가르침을 생활화하는 것을 사목 방침으로 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춘천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신문> 1980년 8월 10일자/ 《후평동 본당 20주년 자료집》, 천주교 후평동 성당, 2000년. 〔梁仁誠〕
후평동 본당
後坪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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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