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만주 간도성 훈춘현 훈춘시 소재. 1924년에 설립되었다가 1946년에 폐쇄되었다. 주보는 성녀 소화 데레사. 〔교 세〕 1924년 929명, 1936년 1,244명. 〔역대 신부〕 초대 퀴겔겐(K. Kiigelgen, 具傑根) 게르하르트(1924~1929), 2대 되르플러(E.Dörfler, 鄭默德) 에그베르토(1929~1946).
1906~1907년경 훈춘 지역 주민 10여 명이 원산 본당의 브레(L.E.A. Bret, 白類斯) 신부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훈춘 지역에 본격적으로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브레 신부의 전교 활동과 순회 전교 회장들의 노력으로 이 지역의 신자수는 꾸준히 증가하였고, 그 결과 1907년 12월에는 주민들 중 66가구가 영세를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1908년 브레 신부가 사망한 이후에는 당시 북간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와 삼원봉 본당(후에 '대립자 본당' 으로 개칭)의 라리보(A.J. Larribeau, 元亨根) 신부가 이 지역을 방문하며 성사를 베풀었다.
한편 1920년 8월 함경남북도 지역은 '원산 대목구로 설정되어 베네딕도회에 위임되었고, 이듬해 3월에는 북간도 지역과 그 북쪽의 의란(依蘭) 지역도 베네딕도회의 관할지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간도 지역에 파견되어 사목 활동을 전개하던 베네딕도회의 퀴겔겐 신부와 로트(L. Roth, 洪泰華) 신부는 1923년 훈춘현 육도포(六道泡)에 본당을 설립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에는 퀴겔겐 신부가 훈춘시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훈춘 본당은 설립 당시 16개의 공소가 있었고 신자수는 929명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대 주임으로 부임한 되르플러 신부는 1934년 2월에 학교, 사제관, 수녀원을 신축한 후 4월에 해성학교(海星學校)를 개설하였고, 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연길 수녀원 수녀들을 초빙하여 진료소와 여자 야학 등을 맡도록 하였다. 이러한 교육 의료 사업은 지역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1936년 해성학교에서는 175~180명, 야학교에서는 50~55명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았고, 진료소에서는 약 4,500여 명정도가 치료를 받았다. 교세 또한 확장되어 1936년에는 공소 22개소, 신자수 1,244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1930년대 후반에는 김충무(金忠務, 글레멘스) 신부가 용정 하시 본당에서 훈춘 본당으로 전임되어 되르플러신부와 함께 활동하였다. 그러나 1945년 8월에 되르플러 신부가 '나치의 스파이' 라는 죄목으로 소련군에게 체포되고, 1946년 5월에는 신부와 수녀들이 중국 공산당에 체포되어 더 이상 사목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훈춘 본당도 폐쇄되었다. (→ 연길교구)
※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대사전》 9권, pp. 1818~1819/ 《가톨릭研究》 3권 9호(1935. 9)《가톨릭 青年》 4권 10호(1936. 10)/ 향잡지》 875호(1938. 4. 12)/ 한국교회사연구소 역편, 《서울敎區 年報》 Ⅱ, 明洞天主敎會, 1987/ 一, 《함경도 선교사 서한집》 I,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5/ 《은혜의 60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 60년사 편찬위원회, 1995. 〔梁仁誠〕
훈춘 본당
琿春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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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