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 을 존중하는 대단히 넓은 범위의 사상적 · 정신적 태도 또는 세계관. 인본주의(人本主義), 인도주의(人道主義) , 인문주의(人文主義), 인간주의(人間主義)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 용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영어의 소리글로 사용한다.
〔개 념〕 휴머니즘의 어원은 라틴어 '후마니타스' (humanitas)이다. 이 말은 그리스 문화의 우수성에 탄복한 로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C. Scipio Africanus, 기원전 237/236~184/183)가 그리스인들의 문화 활동에 대한 인상을 '후마니타스' 라고 말한 것에서 연원하며, 정신적 · 도덕적인 측면에서 고도로 계발되고 명세(明細)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치체로(M.T. Cicero, 기원전 106~43)는 '후마니타스' 를 '교양' (敎養)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고, 야만적이라고 여긴 이민족을 '비인간적' (inhumanus)이라고 말하였다.
근대에 들어와서 '하느님에 대한 연구'에 대응되는 말로 '인간적인 것에 대한 연구 라는 말이 사용되고 인간 중심주의를 의미하는 휴머니즘이 등장하였다. 현대에 들어와서 비인간적이라는 말은 '인간성을 잃은' , '짐승과 같은' , 또는 '기계화된' 것을 가리키며, 이 말과 반대되는 '인간적' 또는 '인도적' 이라는 말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도와 주고 보호하며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래서 넓은 의미로 인도적인 행위를 휴머니즘이라고 하지만, 세부적으로 인간의 특성, 능력, 교육과 가치를 규명해 주는 사람다움과 관련된 일련의 개념과 연관된 무수한 정의가 존재한다. 역사적 관점에서는 고전적 휴머니즘, 르네상스 휴머니즘, 계몽주의 휴머니즘 등으로, 특정한 철학적 관점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 휴머니즘, 실존주의적 휴머니즘,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 등으로 구분해서 고찰되기도 한다.
〔연 원〕 고전적 휴머니즘은 대체로 르네상스를 정당화 시켜 주는 노력의 일환으로, 14~15세기에 이탈리아 도시 국가 상류 계층들의 지적 활동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고전 문예 부흥운동' 이라고 한다면, 휴머니즘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휴머니즘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페트라르카(F. Petrarca, 1304~1374)는 치체로가 그리스의 음악, 수학과 문학이라는 수단으로 로마인의 덕을 '인간화' 하려는 노력을 하였다고 여겼다. 특히 그리스의 문학은 박애와 관용과 지혜의 덕을 산출하기 때문에 형식과 내용에서 모델이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고전 정신을 미화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강한 영향을 받은 중세의 고전과는 내용면에서 차이가 나지만, 당시의 귀족과 교회의 장원 제도 문화를 지배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5세(1447~1455) 비오 2세(1458~1464), 식스토 4세(1471~1484), 레오 10세(1513~1521) 등의 시기에는 교황청에도 휴머니즘이 널리 퍼져, 교황 비오 2세는 스스로를 '휴머니스트' 라고 자처하였을 정도였다. 서방의 지성적 세계와 그리스 철학의 원전과의 만남은 휴머니즘을 더욱 자극하여, 고전 철학의 모든 분야가 부활하고 유럽의 대학에는 새로운 지성적 태도가 파급되었다.
〔르네상스의 휴머니즘〕 에라스무스(D. Erasmus, 1466/1469?~1536)의 시대에 이르자 휴머니즘은 유럽 문화계를 석권하여 단순히 새로운 사회 계층의 문화 생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운동으로 퍼졌으며, 인문학 연구(studia humanitas)에서 언어 및 문학 교육을 강화시켰고 더 나가서 자연 철학, 역사 연구, 정치 이론에 새로운 출발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때의 휴머니즘은 고전적 이교도(異敎徒) 사상의 문화와 계시에 근거한 그리스도교 문화를 화해시키는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였다. 페트라르카는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를 따라 '그리스도는 우리의 하느님' 이라는 사상 공식을 성립시켰고, 에라스무스는 '그리스도교 철학' 의 방향으로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더욱 노력하였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과 스토아 학파와 치체로를 연계시키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은 오리제네스(Origenes, 185~253)가 이미 시도한 바 있으며, 하나의 체계를 준비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맞도록 예비하는 것을 자기 교육의 확실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스콜라 철학의 배후로 돌아가 신앙의 근원을 찾아서 성서의 정확한 원전을 규명하려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노력은 종교 개혁의 길을 닦아 놓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하나의 독립된 운동으로서의 휴머니즘은 종교 개혁으로 말미암아 끝났다. 하느님의 말씀만을 절대적으로 믿는 종교 개혁자들은 심미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휴머니스트와는 대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고대의 고전 문학과 예술에 기반을 두고 배우는 모든 분야를 가리키기도 한다. 고전을 공부하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인간을 형성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스콜라주의자들과 다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휴머니스트'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세에서 고전 문학은 하나의 교육 수단으로 간주되었을 뿐이었다.
산업 혁명 이후 세속화가 확대되면서 정치 체제가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고 도시들은 부를 축적해 나갔으며 시민의 자유는 확대되었다. 세속적인 쾌락이 인생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비세속적 · 초월적인 삶은 세속적인 삶과 갈등을 겪게 되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과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개인의 요구를 소중히 여겼던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자신들의 전형(典型)을 발견하고 새로운 운동을 일으켰다. 이 새로운 운동은 신학과 교회로부터 점차 멀어져,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삶의 원리로 삼았으며, 중세의 문화를 비하하고 새로운 이상을 과대 평가하였다. 페트라르카는 고대 문화, 특히 시에 관심을 가졌으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고전의 원고들을 발굴해 냈다. 그는 고대의 고전들, 특히 베르길리우스(P. Vergilius, 기원전 70~19)와 치체로에 매료되었고, 그들을 모방하다가 계관 시인이 되었다. 그의 라틴어 저술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었다. 그의 제자인 보카치오(G. Boccaccio, 1313~1375)는 《데카메론》(Decameron)을 통해 휴머니즘을 널리 퍼뜨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휴머니즘의 인문주의적 방법의 핵심이었던 문헌 비평의 원리를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휴머니즘은 메디치 가(家)를 비롯한 피렌체의 유력한 가문들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예술의 모든 분야를 발전시켰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 르네상스 운동은 전 유럽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라틴어의 보편적인 사용과 구텐베르크(J. Gutenberg, 1390?~1468)의 인쇄술 발달로 더욱 촉진되었다.
〔계몽주의 휴머니즘, 네오 휴머니즘,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 17세기에 들어와서 휴머니즘은 근대 과학의 합리주의와 결합되면서 변질되었다.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를 비롯한 대륙의 이성주의와 영국의 경험론은 초월적인 '은총의 빛' 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빛' 에 의해 세계를 인식하려고 시도하였고, 수학적 방법을 학문의 확실한 기초로 삼았다. 이러한 사상은 18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계승되면서 인간의 이성을 극대화하고, 이성이 자연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등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진보 사상을 고취시키기에 이르렀다. 계몽주의는 소위 백과 전서파(百科全書派, Encyclopediste)를 이룩하고 서양 근세 사상, 즉 합리주의와 과학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근대주의(modernism)의 중추가 되는 인간 중심주의를 확대시켰고, 중세 이래의 스콜라 신학 중심 세계에 반기를 들고 무신론적 유물론을 배태하였다. 이러한 무신론적인 합리주의적 휴머니즘은 오늘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독일에서 계몽주의의 합리화 사상과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던지며 신인문주의, 즉 네오 휴머니즘(Neuhumanismus) 운동이 발생하였다. 그리스의 미(美)의 이상을 고취한 미술사가인 빙켈만(J.J. Winckelmann, 1717~1768)을 비롯하여 레싱(G.E. Lessing, 1729~1781), 헤르더(J.G. von Herder, 1744~1803), 괴테(J.W. von Goethe, 1749~1832), , 실러(F. von Schiller, 1759~1805),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 등은 아름다움을 통하여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고, 이는 훔볼트(F. von Humboldt, 1767~1835) 등에 의해 계승 발전하였다. 그들은 고전적인 휴머니즘의 이상을 부활시켰고, 김나지움(Gymasium)에서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교육을 실시하여 인간성의 이상을 학습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교육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1970년대에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훔볼트가 중시한 전인 교육론은 페스탈로치(J.H. Pestalozi, 1746~1827)를 거쳐 슈프랑거(E. Spranger, 1882~1963)의 제3 인문주의 교육, 볼노브(O.F. Bollnow, 1903~1991)의 교육학적 인간학으로 오늘날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의 시조인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산업 혁명으로 야기된 소외당한 인간들의 해방을 주장하여 당시 많은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객관적인 실재는 인간 노동의 산물이다. 이 산물은 노동의 배분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평등한 배분에 의하여 불평등의 해소와 인간 해방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실천 과정에서 폭력과 억압이 정당화되는 모순을 낳아 신흥 계급과 독재 정권이 출현하였고,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이 더욱 위협을 받게 되었다. 특히 스탈린(I.V. Stalin, 1879~1953)의 사상에서는 개성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집단 계획을 수행하는 개인만이 인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후 스탈린 말기에 이르자 코르쉬(K. Korsch, 1886~1961), 샤프(A. Schaff), 페트로비치(Perovic), 코지크(K. Kosik) 등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대두하여 인간의 자유와 자율적인 개성과 인권 존중을 외쳤다. 이들은 무자비한 공산주의 독재 정권에서 인간성의 말살에 신음하고 있던 사람들과 자본주의의 모순하에 갈등을 겪고 고통받던 사람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권들이 차례로 붕괴하자 무신론적 유물 변증론인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들은 오늘날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현대의 복잡다기(複雜多岐)한 휴머니즘〕 20세기에 히틀러(A. Hitler, 1889~1945)와 스탈린 등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국가의 인권 박탈과 과학주의의 만연, 인간의 기계화와 대량 살상 무기의 발전으로 말미암은 인간 소외와 인간성 상실은 인류 문명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현대의 휴머니즘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다양한 현대 사상을 토대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예컨대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은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 1813~1855),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 마르셀(G. Marcel, 1889~1973) 등이 주장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 휴머니즘과,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 카뮈(A. Camus, 1913~1960) 등이 주장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휴머니즘으로 나누어진다. 이 외에도 마르크스주의적 휴머니즘으로 샤프(A. Schaff), 블로흐(E. Bloch, 1885~1977) 등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인권 사상이 있으며, 헉슬리(J. Huxley), 실러(F.C.S. Schiller) 등이 주장하는 실용주의적 휴머니즘, 하이데거 휴머니즘 등이 있다. 휴머니즘은 공통적으로 사람다움과 인간성 옹호를 부르짖지만 때로는 정반대의 측면에서 사람다움을 추구하기도 하므로, 사람들은 종종 어떤 주장이 진정한 휴머니즘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서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 즉 하느님 같은 절대자와의 관계에서만 비로소 사람다움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과학이나 기술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은 인간성을 확충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고안해 내고 연마함으로써 자연의 지배자로 이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환경 오염과 자원 고갈, 과학 기술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와 빈부의 격차 등으로 말미암아 이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는것을 깨닫고, 세계의 합리화와 기계화는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이러한 추세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길이라는 주장도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이처럼 현대의 휴머니즘에는 상반되는 주장이 병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다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인간학적인 물음과 올바른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휴머니즘이 추구해야 할 선결 과제이다.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 마리탱(J. Maritain, 1882~1973)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1225~1274)의 스콜라 철학에 기반을 두고 이를 수정하여 윤리 이론을 발전시켰다. 인격주의적 휴머니즘이 지배적인 그의 윤리 이론은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 '진정한 휴머니즘' , '완전한(integral) 휴머니즘' , '하느님 중심적 휴머니즘 이라고 불린다. 마리탱의 주장에 의하면 유물론과 실증주의의 산물인 무신론적인 인간 중심적 휴머니즘은 절대적 가치와 진리를 거부하고 초시간적 · 절대적 존재자인 하느님을 부인하면서도, 인간의 존엄과 기본적 인권과 평화와 우애와 형제애를 인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세속적 휴머니즘은 악을 초월하는 진화에 있어서 불완전하고 일시적 단계일 뿐이다. 유물론적 휴머니즘은 삶을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영혼을 부인하며, 자유를 믿으면서도 그 자유에는 자유 의지와 극기(克己)와 도덕적 책임이 없으며,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그 평등에는 정의가 따르지 않으며, 기계나 물질적 법칙의 노예 상태에 살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인 목적 없이 단지 유용성(有用性)만을 위하여 행복을 찾으며 양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결국 유물론적인 세속적 휴머니즘에 의하면 인간의 인격성은 동물성으로 환원되고 이성과 의지는 환상으로 해석되며, 따라서 신적 창조력, 동정심, 헌신, 종교적 믿음, 관조적 사랑 등을 타고난 영적인 인간은 단순히 성적 충동의 승화이거나 물질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처럼 인간을 위한다며 하느님을 버린 세속적 휴머니즘은 마르크스, 다원(C. Darwin, 1809~1882), 프로이트(S. Freud, 1856~1939), 니체(F. Nietzsche, 1844~1900) 등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마리탱은 이러한 잘못된 인간 중심적 휴머니즘에 반대하여 하느님 중심적인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을 제창하였다.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은 인간의 참된 모습을 회복하여 인격 공동체를 재생시킴으로써, 그리스도교적 가치 위에 새로운 하느님 중심적인 그리스도교 세계를 건설하려고 한다. 이것은 현세적이며 세속적인 것과 영원한 신적인 것을 조화시키는 '완전한 휴머니즘' 이며, 현세적 질서에 신성(神聖)을 도입함으로써 하느님과 세계를 연결시킨다. 그 결과 인간의 현세적 세계가 자유, 정의, 시민적 연대감을 토대로 그리스도와 실존적으로 연결되며, 그리스도교적 양심을 일으키는 그리스도교적 인격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인간의 참된 모습은 하느님의 모습으로부터 유래하며, 인권은 하느님이 부여한 자연법(본성법)에서 나온다.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은 인생의 의의와 방향, 그리고 정의와 우정의 기준들을 계속해서 완수하는 형제애로 뭉쳐진 나라를 이 땅에 이룩한다는 최고의 이념을 역사에 부여한다.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고 투쟁하고 기꺼이 죽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요청받으며, 그 요청에 따라 역사적 이념과 과업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바르트(K. Barth, 1886~1968)도 "복음이 없는 휴머니즘은 없다"라고 주장하며 하느님의 영상으로 창조된 존재인 인간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 사상이야말로 휴머니즘적이라고 확언하였다. 또한 독일의 불트만(R. Bultmann, 1884~1976), 러시아의 베르자예프(N.A. Berdyaev, 1874~1948)도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 운동에서 중요한 몫을 하였다. 요컨대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은 종파를 떠나서 하느님을 인격의 중보자로 보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들 사이의 사랑이 이 사회에서 실현되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 판〕 일부 백과사전에서는 무신론적(특히 반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휴머니즘은 하느님 중심적인 스콜라 신학 및 철학에 반기를 들고 나온 인간 중심적인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즘은 당시 도시 국가들의 신흥 상류 계층들이 스콜라 문화와 궁중에서의 기사도 문화를 병행하면서 교의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자유스러운 학과, 즉 교양 학문과 고대 문화를 섭취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며, 스콜라 철학 자체가 그리스도교 사상과 고대 철학을 연관시키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발전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왜곡된 서술이다. 예컨대 르네상스 휴머니즘 운동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네덜란드의 신학자인 에라스무스는 중세의 내세주의적 세계관에 비판적이었고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옹호하였으나,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정신에 반기를 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영국의 순교자인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와 아주 친밀한 사이였고, 그와 함께 휴머니즘 운동을 펼쳤다. 토마스 모어도 《유토피아》(Utopia, 1516)에서 전통적인 사회 제도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이상적인 사회상을 제시하였으나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 품에 올랐다.
오늘날 인간 중심주의자들과 과학 만능주의자들은, 과학이나 기술의 발달과 합리성의 철저한 추구가 휴머니즘을 발전시키는 유일한 길이며 인간은 하느님의 도움 없이도 기술의 힘만으로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지상에서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신론자인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마저도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과학 기술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이제 사람들은 세계의 합리화와 기계화가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인간성과 자연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현대의 휴머니즘은 아직 혼미 상태에 빠져 있고, 그 지향하는 바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갈라져 있다. 하지만 모든 인류가 인종, 종교, 사회 체제를 떠나서 인류애와 연대 의식과 공동선을 추구하고 과학 기술의 폭력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운동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인문주의 ; → 그리스도교 인문주의 ; 르네상스 ; 르네상스 교황 ; 마르크스주의 ; 마리탱, 자크 ; 모어 ; 에라스무스 ; 치체로)
※ 참고문헌 A. Abusch, Tradition und Gegenwart des sozialitischen Humanismus, Berlin, 1971/ K. Jaspers, Über Bedeutung und Moeglichkeit eines neuen Humainismus, 1962/ M. Heidegger, Über den Humanismus, Frankfurt am M., 1968/ J. Huxley, Knowledege, Morality and Destiny, 1960/ H. de Lubac, Drama ofAtheistic Humanism, 1949/ C. Menze, J. Ritter, hrsg, Historisches Worterbuch der Philosophie, vol. 3, pp. 1217~1219/ J. Maritain, Christian Humanism, The Range of Reason, New York, Scribner, pp. 187~191/ —, True Humanism, New York, Scribner, 1938, pp. 16~17/ M. Müller, Menschenbild und Humanismus der Antike, Leipzig, 1980/ A. Rabil ed., Renaissance Humanism, Philadelphia, Univ. of Pennsylvania Press, 3 vols./ G. Rohrmoser, Humanismus heute, Sttutgart, 1976/ J.-P. Sartre,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 Paris, 1946/ H. Seidel, Gedanken zum Begriff und Geschichte des Humanismus, Dt. Ztschr. f. Philos., H.8-9. 1985/ R. Weiss, Dawn of Humanism in Italy, 1947/—, The Renaissance Discovery of Classical Antiquity, Oxford, Blackwell, 1969.〔秦教勳〕
휴머니즘
〔라〕humanismus · 〔영〕hum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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