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천동 본당

休川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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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소속 본당.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2동 642- 59 소재. 1958년 8월 15일 봉화 본당에서 영주 본당으로 분리 설립되었다가 1988년 8월 28일 '휴천동 본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주보는 성 베드로 사도. 관할 구역은 영주시 휴천2 · 3동, 가흥1 · 2동, 영주2동 일부, 장수면, 문수면, 평은면, 부석면이며, 관할 공소는 부석 1개소. 〔교 세〕 1958년 100여 명, 1965년 643명, 1970년 1,012명, 1975년 858명, 1980년 846명, 1985년 1,591명, 1990년 1,942명, 1995년 1,596명, 2000년 1,877명, 2005년 1,893명. 〔역대 신부〕 초대 펠리스(M. Pélisse, 裴世榮) 마르첼리노(1958. 8~1967. 5), 2대 르베리에(L. Leverrier, 여동찬) 로제리오(1967. 5~ 1969. 1), 3대 펠리스(1970. 1~1973. 4) , 4대 곰리(M. Gormley, 고성수) 미카엘(1973. 4~1979. 5), 5대 류강하(柳康夏) 베드로(1979. 5~1983. 2), 6대 이상복(李相福)비오(1983. 2~1989. 3) 7대 유재준(兪在濬) 타대오(1989. 3~1993. 5), 8대 남정홍(南廷洪) 스테파노(1993. 5~1998. 2) 9대 조종율(趙宗汨) 베르나르도(1998. 2~2002. 6), 10대 이성길(李聖吉) 프란치스코(2002. 6~현재).
경남 거창에 살던 권용덕(빈천시오) 가족은 1946년경 영주읍 하망5리(현 하망1동)로 이사하여 그의 집에서 신자 10명과 함께 주일 미사를 행하였는데, 이것이 영주 지방에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955년 권용덕은 현재의 하망3동 중심가에 건물을 세워 철물점을 운영하면서 2층을 공소로 사용하다가, 1956년에는 본당 승격을 목표로 원당천 건널목 하천 부근의 부지 600여 평을 매입하여 성당(50평)과 사제관(12평)을 건립하고 공소를 이전하였다. 1958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영주 공소는 마침내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펠리스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리고 공소 설정에서 본당 설립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헌을 한 권용덕은 초대 본당 회장에 임명되었다.
펠리스 신부와 신자들은 1959년 벽돌 건물인 사제관(30평)을 신축하고 수녀원(12평)을 건립하는 등 본당의 기틀을 다져나갔지만, 1961년 7월 폭우로 서천 제방이 무너져 영주 시가지가 침수되면서 성당과 사제관이 큰 피해를 입었다. 복구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본당 부지 일부가 도시 계획에 의해 봉화 통로로 편입됨에 따라, 펠리스 신부는 본당 부지를 매각하고 현 본당 소재지인 휴천 2동 642-59의 1,011평을 매입하였다. 그리고 새 부지에 성당(148평)과 사제관(30평), 수녀원(22평), 강당(53평) 등을 신축하고 1963년 9월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부속 건물로 종탑을 세웠으며, 종은 펠리스 신부의 부모가 기증하였다. 이어 1964년에는 성모상을 건립하였고, 이듬해에는 단산 공소와 순흥 공소를 설립하였다. 1967년 5월에 2대 주임 르베리에 신부가 부임하여 활동하였고, 1970년 1월에는 초대 주임 펠리스 신부가 다시 본당에 부임하였다. 농촌 근대화 사업은 종교적 기초 위에 수립된 신앙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신념으로, 펠리스 신부는 1970년 2월부터 영주군 이산면 원리 2부락을 대상으로 농촌 개발 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는 농지 조성을 위한 지하수 개발, 과학적 병충해 방제에 의한 소득 증대와 환경 개량 사업 등을 실행하였고, 농산물의 공동 판매, 공동 작업반 구성 등의 준협업 형태의 부락 형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예천 본당에서 노좌 공소와 하촌 공소를 이관받았고, 영풍군 평은면에 평은 공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71년에는 본당의 재정 운영을 위해 총무부를 신설하였으며, 베드로 친목회와 성모회가 공동으로 이산면에 임야 9,982.5m2를 교회 묘지로 구입하였다. 이어 1972년에는 단산 공소와 순흥 공소를 폐쇄하였고,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안동교구 최초로 성당 안에 현대식 의자를 설치하였다.
4대 주임 곰리 신부의 재임기인 1974년에는 교구 최초로 전자 오르간을 구입하고 정식으로 주보를 발간하였다. 1977년에는 사제관을 증축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믿음 · 사랑 · 기쁨' 을 주제로 한 안동교구 신앙 대회를 주관하였다. 5대 주임 류강하 신부의 재임기인 1980년 1월에는 풍기 본당을 승격 분리하고, 영풍군 봉현면의 하춘 공소와 영풍군 부석면의 부석 공소를 이관하였다. 또한 평은 공소가 관리상의 문제로 공소의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폐쇄하였고, 1981년에는 수녀원을 현대식으로 개축하였으며 1982년에는 휴천3동에 대지 504평을 성당 부지로 매입하였다. 6대 주임 이상복 신부 재임기인 1984년에는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신자들의 성금을 모아 대지를 구입하고 건평 110평 규모의 교육관을 건립하였으며, 1986년에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교세에 따라 새 성당 건립을 위해 영주시 원당천 매립 부지 880평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1987년에는 '제2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 를 구성하고 공사를 진행하여 1988년 8월 28일 하망동 본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며, 영주 본당은 '휴천동 본당' 으로 본당 명칭을 변경하였다. 7대 주임 유재준 신부 재임기인 1989년 10월에는 예수 성심상을 건립하였고, 1992년에는 풍기 본당 소속이던 부석 공소를 이관받아 공소 건물을 세웠으며, 사제관 보수 및 사무실 설치 공사를 시행하였다. 8대 주임 남정홍 신부 재임기인 1997년에는 상아탑 쁘레시디움에서 창조주의 어머니 쁘레시디움이 분단되는 등 본당 단체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9대 주임 조종율 신부의 재임기인 2002년 5월에는 신축 수녀원의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0대 이성길 신부 재임기인 2003년 9월에는 태풍으로 고통을 겪은 이웃을 위해 모금한 금액을 수재민들에게 전달하였으며, 이후에도 지역 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안동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시보> 1963년 10월 6일자 · 1977년 11월 13일자/ 《안동교구사 자료 제6집 - 본당, 활동 수도 단체, 교구 단체, 기 관》, 천주교 안동교구, 1997.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