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 데이비드 (1711~1776)

〔영〕Hume,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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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

영국 경험론(empiricism)의 대표적인 철학자. 역사학자. 경제학자.
〔생애와 저술〕 1711년 4월 26일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지방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1723년 12세의 이른 나이로 에든버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나 3년 만에 그만두고 철학을 공부하였다. 23세 때 브리스톨의 한 상점에서 서기로 일하다가 주인과의 불화로 1년 만에 그만두고 귀향하였다가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 랭스(Reims)와 파리(Paris)를 거쳐 라플레세(LaFleche)에 정착하였다. 1739~1740년에 걸쳐 3부작의 《인성론》(ATreatise of Human Nature)을 집필 · 출간하였으나 주목받지 못하다가 그 직후 출간된《도덕 · 정치론》(Essays Moral and Political, 1741~1742)으로 호평을 받자, 이에 힘을 얻어 1744년에 에든버러 대학의 교수직을 지원하였으나 《인성론》이 이단과 무신론을 표명하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1748년에 세인트클레어 장군의 비서가 되어 외교 사절단의 일원으로 빈(Wien)과 토리노(Torio)를 방문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인성론》 제1부를 요약한 《인간 오성에 관한 연구》(An Enquiry Conceming Human Understanding, 1748)를 집필하였고, 이어서 제3부도 개작하여 1751년 《도덕 원리에 관한 연구》(An Enquiry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Morals)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1752년에는 에든버러의 도서관 사서가 되었고, 이때 《영국사》(The History of England, vols. 6, 1754~1762)를 집필하여 명성과 부를 얻었다. 1763년부터 파리 주재 영국 대사관의 서기로 활동하면서 백과 전서파의 학자들과 교제하였으며, 루소(J.-J. Rousseau, 1712~1778)와도 교분을 맺어 1766년 그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왔다. 1767~1768년까지 외무부 차관을 지내다가 1769년 에든버러로 귀향하였다. 오랜 병고 끝에 1776년 8월 25일 에든버러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만년에 집필한 책인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는 사후인 1779년에 출간되었다.
〔사 상〕 인식론 : 흄은 로크(J. Locke, 1632~1704)의 경험론을 이어받아 직접적인 감각 '인상' (印象, impression)과 간접적이고 재생된 '관념' (觀念, idea)을 구분하였다. 또한 실재하는 것은 오직 감각들의 '다발' 뿐이라고 하였던 버클리(G. Berkeley, 1685~1753)를 따름으로써 로크의 경험론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버클리가 유일한 실재로 인정했던 '지각하는 자아' 는 다양한 감각 · 지각들의 연속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아 부인하였다. 그에게는 '사물 자체' 의 세계 대신 과거 실재론자들이 전제하였던, 오직 감각 인상과 그것을 통한 관념들의 연합으로 구성된 의식 세계만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 결과 심리적인 것이 존재적인 것을 밀어내고, 과거 형이상학의 자리에 심리학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처럼 흄은 모든 문제를 심리주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런 태도는 인과 개념에서도 적용된다. 그에 의하면, 경험을 통해서는 결코 사건 A가 사건 B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A에 뒤이어 B가 나타났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즉 열을 가하면 버터가 녹는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해서 이것이 인과 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늘 해가 졌기 때문에 내일 해가 뜨리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일 뿐이다. '내일 해가 뜨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역시 해가 뜰 것이라는 주장 못지않게 합리적이고 모순이 없는 명제' 인 것이다. 흄에게 있어서 경험이란, 시 · 공간적 접촉에 근거한 관념의 연합이다. 하나의 사건에 이어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의식 속에서 이 두 개의 관념은 서로 연결된다. 그래서 첫 번째 것이 생기면 두 번째 것이 따라서 생기리라고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흄에게 있어서 모든 사실 과학들, 특히 자연 과학은 일종의 믿음(belief)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거기에는 이성의 통찰에 의한 증명(demonstration)은 없고, 개연성의 가치만을 지닌 검증(proof)이 있을 뿐이다. 경험의 폭이 넓어질수록 개연성도 더 커진다. 그렇지만 귀납(induction)이 아무리 개연성을 증대시킨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역시 개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인과 개념과 실체 개념을 부인함으로써 흡의 인식론은 회의주의 내지 불가지론으로 나아갔다. 또한 기존 형이상학의 토대를 뿌리째 뒤흔든 그의 비판 정신은 칸트(I. Kant, 1724~1804)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형이상학이 생긴 이래 이 학문의 운명에 관해서 데이비드 흡이 행했던 공격보다 더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다"라는 칸트의 말이 이를 증명해 준다.
윤리학 : 흡의 윤리 이론은 흔히 자연주의로 분류된다. 윤리학에서 자연주의란 17세기의 '신과학' (新科學, new science)의 등장과 관련되며, 그 특징은 경험과 관찰을 통한 방법을 중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인간을 탐구한 결과 흄이 얻은 결론은, '인간의 행위에 있어 지배적인 요인은 이성(reason)이 아니라 감정(sentiment)' 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도덕적 선악은 인지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 은 어떤 사람이나 행위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인' (是認, approbation)이나 '부인' (否認, disapprobation)의 감정(2차적 감정)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또 각각 '쾌감' 과 '불쾌감' 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감정(1차적 감정)과 결부되어 있다. 윤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도덕적 선악을 단지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것이다. 행위는 감정의 산물인데, 이것은 이성의 경우 논리적 판단의 진위나 사실의 확인에만 관여함으로써 행위를 이끄는 동기가 될 수 없는 반면, 감정은 만족스럽거나(쾌감) 고통스러운(불쾌감) 사태에 대한 예견을 통해 인간을 행위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흄은 "이성은 감정(passion)의 노예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에 복종하고 봉사하는 그 외에 다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인간에게 이러한 쾌감 또는 시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행동, 다시 말해서 도덕적으로 선한 행동은 무엇일까? 그는 개인이나 사회의 행복에 기여하는 행동인 유용성(usefulness)에서 그 답을 찾았다. 그런데 자기에게 유익한 것에 대해 시인의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로지 남(사회)에게만 유익한 것에 대해 시인의 감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그것이 인간의 공감(sympathy) 능력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공감이란 타인의 행복이나 불행을 마음으로 함께 느끼는 능력이다. 그것은 인간들 사이의 원초적인 연대의식과 비슷한 것으로, 인류애(humanity) 혹은 동료 의식(fellow-feeling)이라 불리기도 한다. 흄은 도덕의 기초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종교학 : 흄은 종교에 대해서도 심리주의적 입장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그는 자신의 인식론에서처럼 전통적 형이상학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특히 형이상학이 종교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하여 연구되는 경우, 더욱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주요 비판 대상은 인과 명제를 통해 초월적인 창조자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 스콜라 철학적인 유신론(有神論, theism)과 근세 영국의 이신론(理神論, deism)이다. 흄의 비판의 토대는 심리주의적인 경험론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들이 집이나 배를 보고 목수를 추리해 낼 수 있는 것은, 이미 그것들을 제작하는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에 관해서는 그러한 추리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주는 일회적인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우주가 어떤 뜻과 목적을 지니는지, 또 누가 만든 것인지 알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즉 흄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개념들을 신의 개념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신의 존재나 본성에 관한 모든 진술은 모두 무의미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종교는 지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신앙으로서는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인간 삶의 불확실한 운명과 미래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사후의 일에 대한 근심 등이 인간에게 초인적인 힘에 대한 신앙심(느낌)을 불러일으키며, 이것이 우리 삶에서 일정한 (위안을 주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 판〕 경험론의 논지를 끝까지 밀고 나간 흄의 인식론은 후에 실증주의(positivism)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성이 아닌 감정에 근거를 두고 도덕을 설명하는 흄의 윤리학은 후에 이모티비즘(emotivism, 感動說)을 등장시키게 되었다. 또한 자연 종교에 대한 그의 주장은 현대 무신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 경험론 ; 로크 ; 루소 ; 백과 전서파)
※ 참고문헌  D. Hume, A Treatise ofHuman Nature, ed. by L.A. Selby-Bigge, Oxford, 1896/ —, Enquries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and Conceming the Principles of Morals, ed. by L.A. Selby-Bigge, rev. by P.H. Nidditch, Oxford, 1975/ —, Dialogues Conceming Natural Religion, ed. by N.K. Smith, Edinburgh, 1947.〔朴贊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