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본당

黑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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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진리 35번지 소재. 1958년 11월 11일 산정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관할 구역은 신안군 흑산면 전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다촌, 사리, 오리, 장도, 홍도 제1, 홍도 제2 6개소. 〔교세〕 1965년 1,571명, 1971년 1,827명, 1976년 1,752명, 1980년 1,415명, 1985년 1,309명, 1990년 1,301명, 1995년 1,256명, 2000년 1,241명, 2003년 1,230명. 〔역대 신부〕 초대 브라질(S. Brazil, 진) 요한(1958. 11~1960. 4), 2대 쿠란(S. Curran, 추) 실베스테르(1960. 4~1963. 7), 3대 올레리(A. O'Leary, 오) 안드레아(1963. 7~1964. 8), 4대 카(F. Carr, 갈) 프란치스코(1964. 8~1966. 7), 5대 물라니(F. Mullany, 탁) 프란치스코(1966. 7~1967. 10), 6대 퀸(J. Quinn, 고) 요한(1967. 10~1968. 10), 7대 카힐(J. Cahill, 서) 요셉(1968. 10~1969. 3), 8대 러셀(J. Russell, 설) 요한(1969. 3~1972. 9), 9대 코닐리(J. Conneely, 전) 요한(1972. 9~1974. 1), 10대 물바니(P. Mulvaney, 문) 베드로(1974. 1~1975. 1), 11대 맥키(N. Mackey, 기) 노엘(1975. 1~1976. 6), 12대 네일론(G. Neylon, 나경식) 제라르도(1976. 6~1977. 6), 13대 서상채(徐相彩) 유스티노(1977. 6~1978. 1), 14대 고재영(高在榮) 야고보(1978. 1~1980. 2), 15대 김충호(金忠鎬) 미카엘(1980. 2~1981. 9), 16대 김홍언(金洪彥) 요한 보스코(1981. 9~1984. 1), 17대 김무웅(金武雄) 율리오(1984. 1~1986. 2), 18대 장홍빈(張洪彬) 알로이시오(1986. 2~7), 19대 강종훈(姜鍾勳) 안드레아(1986. 7~1988. 1), 20대 이재휘(李載輝 시메온(1988. 1~1991. 2), 21대 한세종(韓世鍾) 모세(1991. 2~1994. 2), 22대 정도식(鄭道植) 즈가리야(1994. 2~1996. 1), 23대 권병석(權柄碩) 세례자 요한(1996. 1~1999. 2) , 24대 정승욱(鄭勝旭) 다니엘(1999. 2~8), 25대 김재학(金哉學) 라파엘(1999. 8~2002. 8), 26대 안성완(安城完) 이냐시오(2002. 8~현재).
〔설립과 발전〕 흑산도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일원이었던 정약전(丁若銓)이 신유박해(辛酉迫害) 당시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 온 지역이었다. 그러나 정약전은 이미 배교한 상태였으며, 또 그가 흑산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흑산도 지역에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 조수덕(마리아)이 고향인 샘골로 돌아오면서부터였다. 흑산도의 신자수가 증가하자, 조수덕의 아버지인 조준열(요셉)은 이 지역을 관할하던 산정동 본당의 모란(T. Moran, 안) 신부에게 선교 전망을 알렸다. 이에 모란 신부는 1952년 1월 정용관(바오로)을 전교 회장으로 파견하여 흑산도의 사목을 담당하도록 하였으며, 아울러 가톨릭 구제회(C.R.S.)로부터 밀가루, 옥수수가루, 우유 등의 구호품을 가져와 흑산도 주민들에게 배포하며 가난한 살림을 도왔다. 이러한 활동이 바탕이 되어 천주교 신자가 급증하자 공소로 사용하던 가정집만으로는 미사 봉헌이 어렵게 되어, 1952년 8월 죽항리 109번지에 공소 건물을 건립하였다. 이어 1954년 장도, 1956년 심리, 1957년 사리에 각각 공소가 설립되는 등 복음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본당 설립의 필요성도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산정동 본당에서 흑산도 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브라질 신부는 1957년 골롬반회의 도움을 받아, 흑산면의 중앙에 위치한 진리에 성당 부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해 말 사제관을 준공한 후, 사제관에 임시 제단을 꾸미고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58년 3월 성당 건축 공사가 시작되어 그해 11월에 축성되었고, 이와 동시에 흑산 본당이 설립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브라질 신부가 임명되었다.
브라질 신부는 가톨릭 구제회의 구제품을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에 신자가 급증하여 흑산도 주민 중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교세가 증가하였다. 본당이 설립될 무렵 미혼 여교우들을 중심으로 '데레사회' 가 발족되어 초창기 본당 정리와 미화 작업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그리고 1959년 1월에는 수녀원 건물을 완공하여 인보 성체회에서 분원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도서 지방 전교의 어려움으로 수녀회는 2년 후 철수하였다.
한편 흑산 본당은 지역 사회 발전에도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우선 섬 내에 다리가 없어 이동이 불편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1958년 교량 사업을 펼쳐 주민들의 편의를 도왔고, 1960년 4월에는 중학교 미취학자들을 대상으로 중등 과정을 무료로 가르치는 '학술연구원' (1960년 11월 성모중학교로 개편)을 개원하였으며, 전교생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을 실시하였다. 또 이 무렵 목포 성 골롬반병원의 협조를 얻어 본당 내에 약국을 설치하고 흑산도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약을 공급하였고, 1969년 11월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하여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였다. 이어 섬이라는 지역 특성에 맞춰 1971년 1월에는 '대건 조선소'를 완공하여 100톤급 대건호를 비롯하여 소형 선박들과 시멘트 배를 건조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선박 수리를 실시하였으며, 5월에는 미8군의 협조로 '대건 발전소'를 세워 진리 · 예리 · 읍동 · 죽항리 등 4개 마을 350세대의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의 교세는 크게 줄어들었다. 구호품에 이끌려 신자가 되었던 이들이 냉담하기 시작하였으며, 어려운 외국인 신부들보다는 말이 통하는 한국인 전도사가 있는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는 이들도 증가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본당에서는 1976년 1월 성소 후원회를 발족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당의 재도약을 위한 여러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1978년 4월에는 여교우들을 대상으로 성모회와 성심회를 결성하였고, 같은 달에 루르드의 모후 쁘레시디움과 자모이신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다. 이어 8월에는 각 섬에 위치한 공소를 방문하기 위하여 금구선이란 명칭의 배를 건조하였고, 1981년 4월부터는 성 골롬반 병원 의료진의 협조를 받아 주민들에게 매월 무료 진료를 실시하였다. 또한 1983년 10월에는 성당에서 2km 떨어진 곳에 본당 회관을 건설하여 신자와 비신자 주민들이 공동 광장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흑산 본당은 여름철이면 흑산도 지역으로 피서를 오는 신자들이 증가하는 것에 주목하여, 1987년 7월 구 성모중학교 내부를 수리하여 일반 신자들의 숙박 및 피정과 산간학교를 실시할 수 있는 '휴양의 집' 을 개원하였다. 그리고 1988년 6월에는 광주 호남동 본당과 교환 사목을 실시하였고, 9월에는 새 전도선인 금구 2호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1989년 6월에는 홍도 제 1 공소의 축복식을 하였으며, 1990년 2월에는 사제관과 수녀원의 수리가 완료되면서 까리따스 수녀회의 분원이 설립되었다. 또한 1991년 5월에는 홍도 제2 공소의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1995년 5월에는 성모회 할머니들 40여 명을 대상으로 제주도 효도 관광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그해 7월에는 교육관 증축 공사를, 12월에는 사제관 보수 공사를 하였으며, 1996년 3월에는 요셉회와 모니카회를 결성하였다.
1998년 1월에는 오리 공소의 강당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9월에 새 공소를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99년 10월에는 신자들을 수송하기 위하여 본당 차량을 구입하였다. 이어 2000년 2월에는 활동이 부진하였던 성심회와 모니카회를 재창립하였고, 4월에는 부천 상동 본당과, 8월에는 광주 삼각동 본당과 교환 사목을 실시하였으며, 2001년 7월에는 흑산도 내 가족 호텔에서 성당 마당까지 진입로를 개설하였다.
2004년에는 본당 설립 50주년을 대비하여 5월부터 본격적으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 12월에 성가정상을 설립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그 사이 본당 관련 사진 및 자료들을 수집하여 11월에 흑산 성당 사진 엽서 시리즈를 발행하였고, 2005년 1월에는 교육관 내부를 수리하여 본당 관련 사진과 유물을 전시하는 본당 전시관으로 활용하였다.
한편 흑산 지역도 여느 지방과 마찬가지로 젊은 층의 지속적인 도시 이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신자수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 말 조사결과에 따르면, 흑산 본당의 지역 복음화율은 광주대교구의 평균 지역 복음화율인 8.2%를 크게 웃도는 36.7%로, 교구 내 1위를 차지할 만큼 높다. 그러나 흑산 본당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04년 9월부터 '1인 냉담자 1명 봉헌' 을 목표로 냉담자 회두를 위하여 노력하는 등 여전히 활발한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편,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 출판사, 1990/ 광주대교구 흑산 본당, <흑산 본당 사목 보고서 - 본당 연혁>, 2005 〔金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