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 본당

興南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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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 하덕리 소재. 1935년 10월 덕원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하였으며, 1949년 폐쇄되어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주보는 성 펠리치타스. 〔역대 신부〕 초대 히머(K. Hiemer, 任竭忠) 갈리스도(1935. 10~1943. 6), 2대 구대준(具大浚) 가브리엘(1943. 6~1949. 1), 3대 피셔(G.Fischer, 魚) 제롤도(1949. 1~5)
1920년대 중반 흥남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비료 공장과 함께 이미 인구 5만 명을 자랑하는 거대 도시였기 때문에, 원산교구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여 1929년 흥남에 공소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신자수가 점차 증가하여 100여 명에 이르자, 1935년 사우어(B. Sauer, 辛上院) 주교는 영흥 본당에 있던 히머 신부에게 본당 부지를 물색하도록 하였다. 이에 히머 신부는 두 차례에 걸쳐 흥남 읍내에 부지 2,000평을 매입하고, 1935년 10월 흥남 본당 초대 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즉시 성당 건설에 착수하여 1936년 7월 12일 성당 및 사제관을 완공하고,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로트(L. Roth, 洪泰華)신부의 집전으로 봉헌식 및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1936년 8월 해성학교(海星學校)의 설립을 계획하여 이듬해 5월 16일 개교하였다. 당시 전교생은 약 150명이었고, 우선 1, 2학년만으로 2부제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 무렵 흥남 본당의 교세는 빠르게 성장하여 1937년에는 신자수가 400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히머 신부에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구대준 신부는 일제 말기의 사설 학원 폐지 압력에도 불구하고 해성학교를 계속 운영하였고, 1944년에는 2층 사제관에 '대건의원' (大建醫院)을 설립하여 서영옥(마리아 데레사)에게 운영을 맡겼다. 또한 광복 이후 가중되는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 속에서도 1948년 5월 20일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흥남 분원을 신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49년 5월 15일 새벽 3시경 정치 보위부원들이 본당을 습격하여 그해 1월에 부임한 피셔 신부를 납치한 이후 흥남 본당은 폐쇄되어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폐쇄되기 전까지 흥남 본당 관내에는 3개의 공소가 있었다. (→ 함흥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어 자료집》,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89/ 一, 《원산교구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1/ -,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5. [金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