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친타, 마리스코티의

Hyacintha de Maiscotis(1585~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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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친타 성녀.

히야친타 성녀.

성녀. 프란치스코회 율수 3회(Tertius Ordo Regularis, T.O.R.) 소속 수녀. 축일은 1월 30일.
1585년 이탈리아 비테르보(Viterbo) 근처에 있는 비냐넬로(Vignanell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클라리스였고, 어릴 때부터 자비심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녀로 성인품에 오른 분들은 대부분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경건한 삶을 꾸준히 이어가고 선행과 신비로운 체험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일반적인 경우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았다. 10대 초반에는 경박하고 세속적인 삶에 탐닉하였으며, 17세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에도 삶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세속적 태도는 비테르보의 성 베르나르디노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20세 때 혼담이 오가던 후작이 결국 여동생과 결혼을 하게 된 사건으로 그녀는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입어 우울증에 빠져 있다가, 성 베르나르디노 수녀회에 입회하여 히야친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입회는 세속과의 인연을 끊기 위해서였다기보다는 파혼당한 굴욕감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이후에도 수녀원의 자신의 방을 호화롭게 꾸미는 등 여전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수녀원 안에서조차 개인 주방을 사용하고 화려한 옷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서슴지 않고 아무나 만나고 다녔다.
이러한 생활이 10여 년간 지속되자 히야친타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이 퍼졌고, 이는 수녀회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런 생활 중에서도 그녀는 깊은 신앙심과 교회에 대한 존경심은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중병에 걸린 그녀는 고해성사를 하면서 신부의 간곡한 호소를 통해 과거를 참회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진정한 수도자의 삶에 살게 되었다. 히야친타는 낡은 옷, 맨발, 금식, 금육 등을 통해 심신을 극단적으로 단련하였는데, 이것은 그녀의 생명을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녀는 이전의 방탕한 삶에서 벗어나 경건한 삶으로의 극적인 변화를 이루어, 이후 성모 신심과 아기 예수 경배 그리고 성체 조배 등을 심화시켰고 많은 기적도 행하였다. 그리고 예언 능력과 더불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도 얻었다. 이때 그녀는 수녀로서 성인품에 오른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체험을 통한 기쁨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히야친타라는 이름은 그녀의 선행을 통해서 후세에 남겨지게 되었다. 비테르보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녀는 병자 간호에 헌신하였고 두 개의 자선 단체도 설립하였다. 그중 하나는 오늘날의 성 빈천치오 아 바오로회와 같은 성격을 가진 단체로, 환자들과 구걸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기부금을 모았다. 또 다른 단체는 노인들을 위한 집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활동을 주도하면서도 더욱 자신을 겸손히 하는 모습을 보여, 1640년 1월 30일 비테르보에서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들이 애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1726년 9월 1일 교황 베네딕도 13세(1724~1730)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1800~1823)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의 시성 선언문에서는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 주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데 유익하였다" 라며 칭송하였다.

※ 참고문헌  Francis Mershman,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VII, K. Night, 2003. [李種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