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친토, 크라쿠프의

Hyacinthus Craooviae(185~1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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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친토 성인.

히야친토 성인.

성인. 신부. 도미니코회 회원. 폴란드의 사도. 축일은 8월 17일.
서폴란드의 유명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1185년 폴란드 남서부의 슐레지엔(Schlesien) 근처 란카 성에서 태어났다. 크라쿠프(Krakὸw)와 프라하(Praha)에서 초등 교육을 받고 볼로냐(Bologna)에서 법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폴란드로 돌아와서 크라쿠프 교구장의 비서가되었다. 이후 삼촌인 콘스키 신부가 크라쿠프의 주교가 되자 그는 참사위원이 되어, 1220년 주교와 함께 로마로 동행하였다. 이때 도미니코(Dominicus, 1170~1221)가 로마에 와 있었는데, 콘스키 주교는 도미니코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폴란드로 회원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히야친토 역시 감명을 받아 즉시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수련을 받은 후 성녀 사비나 성당에서 착복식을 가졌다.
폴란드로 돌아와 1222년 크라쿠프에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설립하고, 이를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에게 봉헌하였다. 그는 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여러 곳을 순회하며 설교를 하였다. 그의 뛰어난 설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1227년에 그다인스크(Gdask) 공동체를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산도미에, 플로코 등 폴란드의 여러 곳에 수도회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히야친토가 프러시아 지역의 선교를 위해 그다인스크로 가려고 비수아(Vistula) 강에 이르렀을 때, 장마로 강물이 불어난데다 다리나 배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자, 그는 땅에 무릎을 끓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를 하고 강물 위에 십자가를 긋고 나서 동료들과 함께 수도복 위에 걸쳤던 망토를 강 위에 펴고 그 위에 서서 강을 건넜다고 한다. 마치 '물 위를 걸은 예수의 기적 이야기' (마태 14, 22-33)와 유사한 이 기적은 그의 시성 조사 서류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선교 지역을 프러시아, 포메라니아, 리투아니아 지역으로 확장하였다. 1229~1233년에는 키예프(Ki-yev)에 머물며 선교 활동을 하였고, 발트 해를 건너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지에서도 선교를 하였다. 이후 러시아 남부 지역으로 진출하여 리보프(Lvov, Lemberg)를 비롯한 여러 곳에 공동체를 설립하였으나 프러시아에서는 독일 기사 수도회와 본의 아닌 대립을 하기도 하였다. 1238년 이후 타타르족(Tatar)의 침입으로 많은 수도원이 파괴되어 선교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지만, 수도원의 복구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 시기에 선교 활동 중심지인 크라쿠프로 돌아온 히야친토는 1257년 8월 15일 70세가 넘은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선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유해는 크라쿠프의 도미니코회 성당에 안장되었다. 1594년 교황 글레멘스 8세(1592~1605)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유해 중 일부는 현재 파리의 도미니코회 성당에 모셔져 있다.

※ 참고문헌  Francis Mershman,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VII, K. Night, 2003/ Friedrich Wilhelm Bautz, Biographisch-Bibliographisches Kirchenlexikon, Bd. Ⅱ, 1990, p. 1230/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 240. [李種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