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시리아(Syria)의 도시. 소아시아 프리기아(Φρυγἰα, Phrygia)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성서적 배경〕 바오로는 골로사이의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미 서기 52년경부터 히에라폴리스에는 에파프라스(Epaphras)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골로 1, 7 : 4, 12). 만일 당시 골로사이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되었다면 그곳에서 직선 거리로 20km 떨어진 히에라폴리스에도 복음이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바오로도 에파프라스가 골로사이뿐만 아니라 히에라폴리스와 라오디게이아(Λαοδικεία, Laodicea)의 교우들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고 증언하였으며(골로 4, 13), 동료인 에파프라스가 이미 이 지역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 지역의 중복을 피해 본인은 히에라폴리스를 방문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적 배경〕 히에라폴리스는 소아시아 최대 규모의 온천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라오디게이아의 극장 터에서 동북쪽을 바라보면 산 능선의 일부가 마치 눈 덮인 것처럼 하얗게 보이는 언덕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터키 사람들이 '목화 요새' 라는 뜻의 '파묵칼레' (Pamukale)e)라고 불렀던 히에라폴리스의 하얀 언덕이다. 석회질이 풍부한 온천수가 언덕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여러 층의 계단식 연못을 형성하여, 보기 드문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도시 근처에는 멘데레스(Menderes, Meander) 강의 지류 중 하나인 뤼코스(Lykos) 강을 중심으로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일찍부터 농업이 잘 발달되었다. 특히 뤼코스 평야에는 목화가 재배되었고, 구릉 지역에는 포도원이 발달되었다.
또한 히에라폴리스는 예로부터 소아시아 내륙 지방에서 카리아(Caria) 지방이나 리디아(Lydia) 지방, 즉 에게해 연안으로 나아가는 교통의 요충지로 개발되었으며, 온천수로 얼룩진 아름다운 대리석을 비롯해서 구리 제품과 철제 못 등이 주요 특산품이었다. 또한 기록을 보면 이곳에 양탄자와 양모 등을 다루는 상인들의 조합이 있었다고 한다. 로마 시대 최고 특산품인 자주색 물감과 꼭두서니의 뿌리에서 채취한 염료도 이 도시의 주요 상품이었다. 아마도 이 지역의 독특한 온천수 때문에 염색천의 품질이 뛰어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배경〕 히에라폴리스는 온천과 그 근처에 자리잡은 플루토니움 동굴을 중심으로 최초의 주거지가 형성된 듯하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30/420?)가 언급한 도시 '키드라라' (Cydrara)를 히에라폴리스와 연관시키기도 한다. '키드라라' 는 물이 많은 습지를 의미하는 '히드렐로스'에서 유래된 단어로,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을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곳은 아나톨리아의 전통적인 모신(母神) 중 하나인 레토(Leto, Latona)의 성소를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히에라폴리스가 본격적으로 설립된 것은 기원전 300년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기원전 312~64)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88년 로마(Roma)와 시리아 사이에 맺어진 아파메아(Apamea) 평화 조약 이후 히에라폴리스는 페르가몬 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기원전 183년 페르가몬(Pergamm) 왕국의 에우메네스 2세(Eumenes Ⅱ, 기원전 197~160/159)의 기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당시 페르가몬 왕국은 셀레우코스 왕국과의 경계 지점에 있는 히에라폴리스를 전략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으며, 아마도 라오디게이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이 도시를 요새화한 것으로 보인다. 도시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텔레포스(헤라클레스〔Heracles〕의 아들)의 아내 히에라(Hiera)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곳에 수호신 아폴로(Apollo)를 비롯한 여러 신의 신전과 제의 장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룩한 도시' 라는 의미의 히에라폴리스로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가이사리아의 필립보(사도 21, 8-9)가 그의 네 딸과 함께 히에라폴리스에 정착하였다는 사실 또한 2세기의 기록을 통해 밝혀졌다. 필립보는 서기 80년경 이곳의 한 나무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늘날 히에라폴리스의 남동쪽 성벽 밖에는 5세기에 건설된 필립보 순교 기념 성당이 있다. 2세기 초에 주교로 파피아스(Papias Hierapolitanus, ?~?)와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Hierapolitanus, ?~?)가 활동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당시에 이미 그리스도교가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3세기 초에 히에라폴리스는 카라칼라(Caracalla, 198~217) 황제에 의해 '네오코로스' (neokoros) 즉 '신전 감독자' 지위를 부여받아 자율적으로 신전을 건축하고 황제 제의를 비롯해서 정기적인 축제와 경기들을 개최하게 되어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이곳 출신으로는 카라칼라의 교육을 담당하였던 소피스트 안티파테르(Antinpater)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4세기에 콘스탄틴 대제(Maannus Constantinus, 306~337)가 히에라폴리스를 프리기아 지방의 수도로 선포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us I, 527~565)도 이 도시에 대주교좌를 부여하여 지위를 격상시킴으로써 프리기아 지방의 그리스도교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유 적〕 히에라폴리스의 유적들은 1887년 독일의 휴만(C. Humann)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되기 시작하였으며, 1957년부터는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이 극장을 발굴 복원함으로써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히에라폴리스는 남북으로 이어지는 도로인 플라테이아(Plateia)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직사각형 구획으로 이루어진 바둑판 모양의 '히포다모스(Hippodamos) 양식' 으로 설계된 도시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히에라폴리스는 각각 서기 17년과 60년의 대지진으로 거의 파괴되었고, 지금 볼 수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1세기 이후 로마 제국의 플라비우스 왕조(69~96), 하드리아누스(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93~211) 등 황제들의 후원하에 확장 건설된 것들이다.
묘지 : 히에라폴리스에는 도시의 북쪽, 동쪽, 남쪽 세 곳에 묘지가 있다. 이 중에서도 오늘날 유적지로 들어가는 북쪽 입구 양쪽에는 터키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대 묘지가 늘어서 있는데, 이처럼 성문 입구 양쪽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은 앗소스(Assos, 베흐람칼레), 크산토스(Xanthos)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풍습이다. 무덤들은 총 1200기에 달하며, 아나톨리아의 전통적인 원형의 투물루스(tumulus)를 비롯해서 완벽한 건물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마우솔레움(mausoleum), 노천에 안치된 석관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중 300기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업적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가장 초기의 무덤은 원형의 능묘 형식으로 기원전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단순한 직사각형의 석관 양식 무덤과 완전히 집을 축소해 놓은 듯한 주택형 무덤도 조성되어 있다. 무덤의 외벽에는 주인공의 인적 사항과 함께 무덤을 훼손하였을 경우 부과되는 벌금의 액수 등이 기록되어 있다. 히에라폴리스에 대규모의 묘지가 조성된 것은 아마도 온천에서 치료하기 위하여 환자들이 많이 몰려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고라 : 북쪽 성문에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중앙 대로 동쪽에는 길이 280m, 폭 170m로 전체 면적이 1만 5천 평에 달하는 대규모 아고라(agora, 집회장으로 사용된 야외 공간)가 있다. 서기 60년 대지진 발생 이후 새롭게 건설된 상업 아고라이며, 2세기에는 동쪽면에 2층으로 된 스토아 바실리카가 개축되기도 하였다. 히에라폴리스의 아고라는 워낙 대규모이고 동쪽에는 일종의 객석 역할을 하는 여러 층의 계단이 있으며 그 길이가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의 경기장과 거의 같기 때문에, 한때 경기장 역할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 중심의 아폴로 신전 근처에도 시립 아고라가 있었던 듯하지만 온천수가 계속 유입되면서 석회질 퇴적 작용으로 파묻힌 듯하다.
극장 : 히에라폴리스에는 두 개의 극장이 있다. 성 밖의 아고라 동쪽 골짜기에는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건설된 극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특이하게도 골짜기의 물이 극장 지하의 하수도를 통해 흘러나가도록 설계되었다. 아직 체계적으로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확한 규모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도시 안쪽 한가운 데에는 매우 큰 규모의 극장이 잘 보전되어 있다. 원래 무대 배경 구조물이 무너져 있었지만 이탈리아 고고학 팀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모두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의 무대 배경에는 아폴로와 아르테미스에 관한 일화들로 꾸며진 대리석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프론티누스 성문과 플라테이아 : 프론티누스 성문은 히에라폴리스의 대표적인 북쪽 성문으로 같은 크기의 세개의 아치가 양쪽에 대칭으로 건설된 두 개의 원형 망대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성문 조각에 남아 있는 일부 기록에 의하면 이 구조물은 서기 85년 도미티아누스(81~96)황제 시대에 건설된 것이다. 성문의 건설자인 프론티누스(S.J. Frontinus, 30?~104?)는 소아시아의 총독으로 특히 급수 시설에 관한 저술을 남길 정도의 공학도였으며, 히에라폴리스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수로도 대부분 그가 설계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문 안쪽에는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폭 14m의 플라테이아(중앙 대로)가 남쪽으로 뻗어 있으며, 서기 100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길이 20.5m, 폭 6.3m 규모의 공중 화장실이 있다.
아폴로 신전과 플루토니움 :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동굴 옆에는 히에라폴리스의 주신인 아폴로 신전이 자리잡고 있다. 길이 70m, 폭 35m 규모이며 사방이 포르티코(portico, 前廊)로 둘려 있고, 사방 11m 규모의 내부 성소가 보존되어 있다. 그 옆에는 지하 세계의 신 플루토(Pluo)를 모신 플루토니움이 자리잡고 있는데, 땅 속에서 스며 나오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범인들은 이곳을 출입할 수 없고 오직 사제들만 안전하다고 믿었다. 1세기 초 히에라폴리스를 방문한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4/63~23?)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폭이 좁은 입구에서는 항상 독가스가 뿜어나오며, 가축이나 새가 들어갈 경우 곧 죽게 된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바람이 불 때마다 이곳에서 새어 나오는 독가스 때문에 근처의 사람들이 질식할 정도로 위험하며, 오직 갈리(galili)라 불리는 키벨레(Kybele) 여신의 사제들만이 무사히 이 지하 동굴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4세기경 입구가 봉쇄된 듯하다.
기념 성당 : 히에라폴리스에는 비잔틴 시대에 다섯 개의 기념 성당이 건축되었다. 도시의 북쪽 성문 입구의 목욕탕 바실리카를 비롯해서 아고라 남쪽에 위치한 주교좌 성당, 극장 객석 위쪽의 성당, 성 필립보 순교 기념 성당, 도시의 중앙 대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기둥 성당 등이다. 대부분의 기념 성당들은 5세기 이후에 건설된 것들이며, 특히 이 중에서도 북동쪽 언덕에 자리잡은 필립보 순교 기념 성당은 팔각형의 독특한 구조로 설계되었다. 목욕탕 바실리카는 2세기에 건설되었던 목욕탕 남쪽 벽에 반원형의 제단 부분을 만들면서 성당 건물로 재건한 것이다.
고고학 박물관 : 유적지의 서쪽에 위치한 대규모 목욕탕 건물이 지난 1986년부터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에서는 히에라폴리스의 유물들뿐만 아니라 근처의 라오디게이아, 골로사이 등에서 발견된 유물도 보관 · 전시하고 있다.
온천과 목욕탕 : 파묵칼레의 가장 중요한 온천은 동쪽으로 5km 떨어진 카라하어트 샘들로 유황, 석회질, 탄산 가스가 많이 포함된 섭씨 60도의 뜨거운 물이 솟아 나온다. 이 온천수가 여러 단계의 수로를 거쳐 히에라폴리스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33도 정도로 식혀지는데, 예로부터 심장병과 위장병, 신장의 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것으로 알려졌다. 2세기부터 냉탕(프리지다리움), 온탕(테피다리움), 열탕(칼다리움) 등으로 구성된 로마식 목욕탕이 건설되었으며, 현재까지 밝혀진 고대 수로만 약 60km에 달한다. 한편 뜨거운 물이 샘에서 솟아난 후 압력이 약해지면서 온천수에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고 바닥에 탄산칼슘이 일 년에 약 3cm 두께로 쌓이면서, 트라버틴(travertine)으로 불리는 약 20만㎡에 달하는 석회암의 순백색 언덕을 형성하였다.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수는 1L에 약 2.5g의 광물질이 녹아 있는 농도 짙은 광천수로 유명하다.
지난 1990년대 초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면서 터키당국은 대대적인 파묵칼레 복원 사업을 시작하여, 근처의 위락 시설들을 모두 철거한 후 규칙적인 온천수 공급을 통해 백색의 석회 언덕을 복원시키는 중이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물을 흘려 주고 나머지 6일 동안 햇빛에 건조시키면 백색의 석회 언덕이 형성된다. 오늘날 히에라폴리스는 전형적인 로마 시대의 유적지와 함께 비잔틴 시대의 성당과 끊임없이 펼쳐진 광대한 묘지 그리고 경이로운 테라스식 연못들로 구성된 순백의 언덕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로마 시대의 기둥들이 바닥에 널려 있는 노천 온천에 몸을 담글 수 있는 최상의 복합적인 관광지로 손꼽힌다. (→ 고고학, 성서학의 ; 라오디게이아 ; 프리기아)
※ 참고문헌 F. D'Andria, Hierapolis of Phrygia(Pamukkale), Istanbul, Ege Yayinlari, 2003/ W.C. Brice, A Note on the Descent into the Plutonium at Hierapolis of Phrygia, Journal of Semitic Studies 23, 1978, pp. 226~227/F.F. Bruce, 《ABD》 3, pp. 194~196. 〔金 聲〕
히에라폴리스
〔그〕Ιεράπολις · 〔라 · 영〕Hierap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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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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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라폴리스 유적지에 남아 있는 도로 플라테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