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폴리토 (170/175?~25)

Hippoly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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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폴리토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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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폴리토 성인.

성인. 신부. 그리스 교부. 순교자. 교회 저술가. 최초의 대립 교황(217~235). 축일은 8월 13일.
히폴리토에 관한 사료들은 많지만, 몇 가지 오류 및 상이한 점들이 발견되고 있어 최근에도 연구와 토론, 논쟁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와 예로니모(Hieronymus, 347~419)는 히폴리토가 3세기 초 로마에 있는 교회의 주교였다고 증언하지만, 어느 곳에서 주교로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리제네스(Origenes, 185~253)가 212년경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 로마 교회의 이름난 사제였던 그의 강론을 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
〔생 애〕 출생 연도는 170~175년 사이로 추정되나, 어디에서 출생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여러가지 상황과 자료, 즉 그리스 철학과 신화, 그리스 신비 예식들에 대한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 작품에 나타난 종교적 심성 등으로 보아 동방 출신임은 분명하다. 또한 그의 신학적 입장과 '말씀' (Logos)에 대한 설명이 그리스 교부들과 유사한 점 등으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헬레니즘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히폴리토는 동시대의 인물인 오리제네스에 필적할 만큼 방대한 저서를 남긴 로마 교회의 대표적인 저술가이긴 하지만, 창작과 사상면에 있어서는 오리제네스에 뒤진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 · 이론적 문제보다는 실천적 ·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었으며, 그의 관심사는 광범위하여 오리제네스가 전혀 다루지 않은 분야에까지 관심을 두었다. 예를 들면 이단을 반박한 작품들이나 《연대기》(Cronaca) 및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 등이 그러하다. 포시우스(Photius, 801?~897)의 증언에 의하면 유실된 한 작품 속에서 히폴리토는 자신이 이레네오(Ireneus Lugdunensis, 130/140?~202?)의 제자라고 증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노에투스(Noetus), 클레오메네(Cleomene), 에피고누스(Epigonus), 사벨리우스(Sabellius) 등의 모달리즘(modalismus), 즉 '성부 수난설' (聖父受難說, patripasianismus)을 지나치게 반박하다가 '성자 종속설' (聖子從屬說, subordinatianismus)에 떨어져 말씀 신학의 결핍과 오류를 가져왔다.
로마의 주교 즉 교황 선출에서 경쟁자였던 갈리스도 1세(217~222)가 선출되자 히폴리토는 그의 신학 노선과 사목 방향을 비판하였다. 특히 갈리스도 1세가 중죄를 범한 신자들의 보속과 벌을 완화하자, 엄격하고 야심과 명예욕이 높았던 히폴리토는 교황이 초대 교회의 전통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하였고 결국 교황과 결별하였다. 또한 그는 갈리스도 1세가 사벨리우스의 제자이며 성부 수난설에 물든 위험한 사람이라고 단죄하며 추종자들과 함께 새 교회를 세우고 로마 주교로 선출되어 이른바 교회 역사상 최초의 '대립 교황' (Antipapa)이 되었다. 이러한 분열은 교황 우르바노 1세(222~230)와 본시아노(230~235) 때까지 계속되었으나,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미누스 트락스(Maximinus Thrax, 235~238)의 박해를 전후로 히폴리토와 본시아노는 모두 체포되어 '죽음의 섬' 으로 불리던 사르데냐(Sardegna)로 유배되어 이곳에서 화해한 듯하다. 본시아노는 235년 9월 28일 교황직을 사임하여 후계자를 뽑도록 길을 터놓았고, 히폴리토 역시 자신의 대립 교황 직책을 포기하고 로마를 떠나기 전후에 로마 교회로 귀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로마의 유일한 새 주교, 즉 교황으로 안테로(235~236)가 선출되었으며 히폴리토와 본시아노는 얼마 후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교황 파비아노(236~250)는 두 사람의 유해를 로마로 모셔와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고, 본시아노는 성 갈리스
도 성당의 지하 경당에 그리고 히폴리토는 티부르티나 가도(Via Tiburtina)에 있는 공동 묘지에 안장하였다. 두 사람의 장례식이 236/237년 8월 13일에 거행되었기에 교회 전례는 두 분을 모두 8월 13일에 공경하고 있다. 또한 교황 다마소 1세(366~384)는 비문을 통해 히폴리토가 노바시아누스(Novatianus, 200?~?)의 제자였지만 후에 추종자들과 함께 로마 교회와 화해 및 재일치를 이룬 후 순교한 분이라며 들어 높였다.
1551년에 로마에서 히폴리토의 대리석상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과연 그의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계속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머리 부분이 파손된 채 발견된 이 석상은 본래 그의 무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상의 기둥 양면에 히폴리토의 《부활절 규범 규정》(Canon paschalis)과 그의 일부 작품 제목이 새겨져 있다. 1959년까지 라테란 박물관에 보존되었으며, 그 뒤부터는 바티칸 도서관의 입구회랑에 전시되어 있다.
〔신학 작품〕 히폴리토는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지만 오리제네스의 경우처럼 대부분 유실되었다. 그의 그리스도론이 지닌 몇 가지 오류와 대립 교황이라는 오점 그리고 히폴리토 이후 로마에서 라틴어만이 사용되어 그리스어 저술이 널리 읽히지 않던 상황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특히 라틴어 역본을 비롯하여 시리아어 역본, 콥트어 역본, 아랍어 역본, 에티오피아어 역본, 아르메니아어 역본, 루지야어 역본, 고대 슬라브어 역본 등 완역 또는 단편으로 전해지는 작품도 많다. 이처럼 동방 지역의 많은 언어로 번역된 것은 히폴리토의 명성과 권위를 입증해 주며, 그의 권위 때문에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작품들도 많다. 유실된 작품들 중 후대 교부들의 증언에 따라 제목만 알려진 것은 《우주의 본질》, 《아르테몬(Aremon) 이단논박》, 《부활론》, 《세베리나 권고》, 《마르치온(Marcion)논박》, 《요한 복음과 묵시록》, 《가이우스(Gaius) 논박》등이다.
《철학 총론》(Philosophumena) : 히폴리토의 대표작으로 제1권이 《철학 총론》 또는 《모든 이단에 대한 논박》(Refutatio omnium haeresium)이라 시작되었기에 저자는 '모든 이단에 대한 논박' 을 제목처럼 부르기도 하였으며, 총 10권으로 전해지는 이 작품은 모든 이단과 열교 사상을 논박하는 작품이다. 《철학 총론》이라는 제목은 그리스인들의 철학을 다루고 있는 1~4권에만 해당되는 내용으로 뒷부분과는 무관한 제목이다. 문제는 이 작품의 제목이 석상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에우세비오(《교회사》 6, 22)나 예로니모(《명인록》 61)의 히폴리토의 작품 목록에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서론과 10권 30절, 32절에서 저자가 《반(反)이단 총론》(Syntagma)과 《우주의 본질》, 《연대기》 등을 자신의 저술로 언급하고 있기에 히폴리토의 작품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내용은 대부분 이레네오의 주장과 비슷하다. 서론은 작품 전체의 내용과 대상, 구분 등을 명백하게 하고 있다. 즉 이단자들의 파생 근원, 동기, 그리스 철학에서 받은 영향 등 모든 정체를 파헤치며 저술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단의 특징은 그리스도교의 신앙 자산과 무관하며 이단 철학에 종속되어 있고 그리스 철학과 신화론의 표절자라고 하였다.
이 작품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제1편은 1~4권으로, 이단 사상의 여러 철학 계보를 다루고 있다. 1권에서는 탈레스(Thales, 기원전 6세기경)에서 헤시오도스(Hesiodos, 기원전 8세기)에 이르는 그리스 철학의 역사를 나름대로 요약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겉핥기식의 소개이기에 학문적으로 크게 가치 있는 내용은 아니다. 2~3권은 유실되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리스 신화 및 이교인들의 경신례에 관한 내용으로 추정되며, 4권에서는 점성술과 마술을 다루고 있다. 제2편은 5~9권으로, 제1편의 이교 철학 사상에 근거하여 파생된 33개의 그노시스주의(Gnosicicim) 분파를 열거 · 논박하며 그노시스주의의 선구자들 및 유사한 견해를 지닌 사람들, 그리스 철학, 헬레니즘 철학을 독자 스스로 비교할 수 있게 하였다. 저자가 합리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제2편은 학문적으로도 인정받는 내용이다. 10권에서 히폴리토는 전술한 모든 내용을 짧게 요약한 다음 히브리 역사를 소개하며 그 참된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레네오의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에 전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유실된 몇몇 그노시스주의 자료들을 사용하였으며 이 작품 역시 그노시스주의의 역사를 정립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저술 시기는 222년 이후로 추정된다.
《반(反)이단 총론》 : 이 작품은 《철학 총론》보다 먼저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에우세비오의 《교회 사》(6, 22)에서 히폴리토의 이 작품을 《모든 이단 반박》 이라 하였고, 예로니모의 《명인록》(61)에서는 《모든 이 단 논박》(Adversus omnes haereses)이라 칭하였으며, 포시 우스의 《도서록》(121)에는 이레네오의 제자인 히폴리토 가 32개의 이단을 거슬러 《반(反)이단 총론》을 저술하였 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포시우스의 증언은 비록 원 전은 아니지만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을 취 급하였던 후대의 많은 저술들을 참고하면, 이 저서에 언 급된 32개의 이단 목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특히 에피파니오(Epiphanius Salaminius, 310/320-402/403)는 저 서 《약 상자》(Πανἀριον)에서, 필라스트리오(Philastrius, 325?~397?)는 《이단론》(Liber de haeresibus)에서 많이 인 용하였다. 즉 《철학 총론》보다 이 작품이 후대 교부들에 게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 교황 제피리노(199~217?) 재 임기에 쓰여졌으며, 《철학 총론》의 서론(1, 20)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히폴리토 생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반(反)그리스도론》(De Antichristo) : 히폴리토가 남긴 유일한 교의 작품으로, 완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저술 시기는 200년경으로 추정되며 그리스어로 집필되었다. 서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형제"인 테오필로스라는 사람이 수신인이다. 히폴리토는 반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며 고찰하였다(5장). '반 그리스도는 어디에 존재하며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 것인가? 언제, 어느 순간에 그 악의 정체를 드러낼까? 어느 지파에서 나올까? 성서에 숫자로 언급된 그의 이름은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 끝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그 오류가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 퍼질 것인가? 성인들을 거슬러 어떻게 박해와 혼란을 가져올 것인가? 어떻게 하느님처럼 행세하여 영광을 받을 것인가? 그의 종말은 과연 어떠할까? 그리고 주님께서 갑자기 하늘로부터 어떤 모양으로 오실까? 세상에 있을 큰 불의 전쟁은 어떠할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 될 그 시간, 그때의 영광, 성인들의 천상 왕국은 어떠할까? 마지막 죄인들이 받을 불의 심판, 그 벌은 어떠할까?
사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로마를 반그리스도 제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폴리토는 로마가 다니엘서의 묵시 장면에 언급된 네 번째 세력에 해당된다고 역설하면서 반그리스도는 로마 제국 다음에 나타나리라고 주장하였다. 비록 로마 제국 황제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193~211)가 심한 박해를 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반그리스도의 출현은 그렇게 임박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이 작품 내용은 반그리스도론에 대한 초기 교회의 귀중한 증언 자료이며, 이 작품의 진정성은 히폴리토가 《다니엘서 주석》(4, 71 : 13, 1)에서 언급한 것으로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 이레네오의 영향하에 있는 내용이지만 히폴리토의 독창적인 생각도 많이 수록되어 있다. 3개의 그리스어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고대 슬라브어 역본, 그루지야어 역본, 그리고 아르메니아어 단편 등이 전해진다.
〔성서 주석 작품〕 히폴리토도 오리제네스처럼 성서에 대한 방대한 주석 작품을 저술하였으며, 성서 해석에 있어서 주로 우의적 · 상징적 방법을 따랐다. 그러나 오리제네스가 신비적 · 영적인 방법으로 우의적 해석을 한 반면 히폴리토는 보다 협의적으로, 즉 덜 광범위하고 보다 절제하여 사용하였다. 그의 많은 주석 작품 중 소수만이 남아 전해진다.
《다니엘서 주석》 : 이 작품은 고대 슬라브어역으로는 완벽하게 전해지며, 그 외에 몇몇 단편을 토대로 그리스어 원본을 재구성할 수 있다. 저술 연대에 대하여 학자들 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으나, 202년부터 시작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박해를 암시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204년경이라고 추정한다. 현재 전해져 오는 주석 중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4권으로 구성되었으며, 제2 경전을 포함하고 있는 테오도시오(Theodotius)의 그리스어 역본 성서(170?)를 본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1권에서는 수산나(Susanna)를 교회의 상징적 예표(prefigura)로 보면서 그리스도의 정배로 이해하였다. 그것은 또한 두 백성 곧 유대인과 이방인들에 의해 박해받는 교회의 표상이다. 제2권은 다니엘서 2장과 7장에 언급된 네 왕국을 바빌론,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과 동일시하는 내용이다. 제 3권은 당시의 난제인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제4권 23장에서 히폴리토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수난일을 4월 25일로 기술하였다. 교회 문헌 중 이 날짜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기록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으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우구스투스 황제 42년 12월 25일 수요일에 탄생하였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는 성탄 축일에 대한 언급이므로 귀중한 자료이지만, 학자들은 후기에 삽입된 것이 아닌지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아가서 주석》 : 오늘날 그루지야어 완본이 전해지며 그리스어, 고대 슬라브어, 아르메니아어, 시리아어로 된 단편이 전해진다. 그루지야어 역본은 10세기경의 필사본이며, 아가서 3장 7절까지만 주석이 되어 있으나 이것이 이 작품의 전부인 듯하다. 강론체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공공 집회에서 행해진 연설로 추정되는데, 그 해석 방법이 우의적이며 오리제네스가 저술한 동일한 제목의 《아가서 주석》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에서 아가에 나오는 왕은 그리스도이며, 그의 신부는 교회를 가리킨다. 때로 오리제네스의 의견과 같이 신부는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신자 각 개인의 영혼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의적 해석은 후대 라틴 교부들의 성서 주석뿐만 아니라 중세의 신비주의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암브로시오(Ambrosius, 339~397)는 시편 118을 주석함에 있어서 히폴리토의 《아가서 주석》을 많이 참고 · 인용하였다.
《이사악, 야곱, 모세의 축복》 : 창세기 27장과 49장에 언급된 이사악과 야곱의 축복은, 원문은 그리스어로 되어있고 아르메니아어역 및 그루지야어 역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신명기 33장의 모세의 축복은 아르메니아어역 및 그루지야어 역본 그리고 그리스어 원문으로 된 두 개의 단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주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예표론적(ypological)이다. 오리제네스와 안티오키아 학파 주석보다는 유스티노(Justinus, 100/ 110?~165), 이레네오, 테르툴리아노(Q.S.F. Tertullianus, 155?~230/240?) 등의 해석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 사무엘 상 17장에 대한 강론으로, 아르메니아어역 및 그루지야어 역본으로 전해진다.
《시편 강론》 : 현재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 필사본에는 시편에 대한 서론 부분이 수록되어 있으며 히폴리토가 저자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의 원본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얼마 전 시편에 관한 그리스어 카테나(Catena)가 발견되었다. 이 카테나에는 저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시편에 대한 일반론과 시편 1-2장에 대한 강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일반적으로 시편의 올바른 해석의 의무와 그 심오한 의미, 중요성을 술회하고 있다. 그것은 어느 이단이 한 시편을 잘못 해석하였는데도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배경에서 연유된 것이다. 즉 제1편은 이단을 논박한 것으로, 비록 다윗이 시편 전체를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가 시편의 저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편의 제목들은 각각 영적인 의미를 지니며 서로 관계된 시편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각 시편의 제목이 후대에 첨부되었으며 또 다른 의도에 의해 삽입되었다는 견해를 일축하고 있다. 제2편에서는 시편 1-2장에 왜 제목이 없는지, 그리고 왜 처음에 위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두 장이 시편 제일 앞에 위치하게된 것은 이것이 그리스도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바로 만물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1장은 그의 탄생을, 2장은 그의 수난을 묘사한 것으로 이 두 사건은 이미 성서에서 예언자들을 통해 충분히 암시된 것이기에 제목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원문은 본래 긴 내용이었지만 전달 과정에서 강론의 마지막 부분이 누락된 듯, 상례적인 영광송 부분이 없고 후반부의 내용이 짧다. 히폴리토의 대리석상에 새겨진 작품 목록에도 이 작품명이 수록되어 있고, 예로니모도 《명인록》에서 《시편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작품을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히폴리토가 문제삼은 그 이단의 장본인이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다. 그 외에 여러 성서 말씀에 대한 주석 내용을 기술하였지만 극소수의 단편만이 전해 온다.
〔연대기 작품〕 《연대기》 : 히폴리토는 천지 창조에서 저술 연도인 234년까지의 역사를 이 작품에서 서술하였다. 많은 이들이 천년 왕국설 때문에 심판과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불안에 떨었으며, 박해가 심해지자 이를 종말의 신호로 이해한 신자들 또한 많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폴리토는 이들을 안심시킬 목적으로, 종말까지는 6,000년이 필요하지만 천지 창조 후 아직 5,738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남았다고 설명하였다. 특기할 점은 지역 간의 거리 측정에 관한 자료로 후대 교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내용 전체에서 헬레니즘 문학의 영향이 드러난다. 성서는 물론, 아프리카누스(Sextus Julius Africanus, 180?~250?),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 등에게서 많은 암시를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그리스어 단편과 라틴어 역본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파스카 축일 계산》 : 석상 목록에는 '파스카 축일 계산'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 에우세비오도 《교회사》(6, 22, 1)에서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222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며 파스카 축제, 즉 부활 축일이 유대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것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술되었다. 히폴리토는 음력을 중심으로 파스카 축일을 계산하였다.
〔강 론〕 히폴리토의 주석은 대부분 강론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강론과 주석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둘 다 신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교육적인 목적으로 저술된 것이다.
《파스카론》 : 에우세비오는 파스카에 관한 히폴리토의 두 작품을 언급하였다. 이 파스카론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준비하는 파스카의 제정에 대한 출애굽기 12장 1-14, 43-49절의 내용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성서의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연결시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파스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 다음에 저승에 내려가심과 구세주의 결정적 승리를 기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스카를 니산달 14일로 기술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구세주 찬미》 : 오리제네스가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에 들었던 이 강론은 예로니모의 《명인록》 61에 언급되어 있으나,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이단 노에투스에 관하여》 : 강론이라기보다는 이단자인 노에투스를 논박하는 소개서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단편으로 전해진다.
《유대인 논박》(Demonstratio adversus Judaeos) : 단편으로 전해진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죽게 한 장본인이라는 점을 비난하며, 그 결과로 이들이 처하게 될 비참하고 불행한 상태를 언급하였다.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 215년경에 집필된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19세기에 발견된 롭트어, 아랍어, 에티오피아어, 라틴어로 개작된 번역본만이 남아 있다. 현대 학계에서는 그 저서명부터 저자, 저술 시기, 저술된 교회 등에 대한 문제가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문헌은 《디다케》(Didache)와 함께 전례와 교회 규범에 관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머리말' (1장)과 '맺는말' (43장)을 포함해 총 4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머리말' 과 '맺는말' 에서는 신자들이 사도로부터 전해 오는 전승 안에서 올바른 신앙을 보존함으로써 오류나 이단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 은총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하는 데 이 책의 의도와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제1부(2~14장)에서는 주로 교계 제도(주교 서품, 사제 서품, 각종 직무의 수여 절차)에 대해, 제2부(15~21장)에서는 예비자의 등록에서 세례 예식까지의 입교 과정에 대해, 제3부(22~42장)에서는 신자 생활의 제반 규범들(기도 시간과 방법, 단식 규정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교회의 전례와 신자 생활에 대해 폭넓게 규정하고 있는 이 문헌은 초기 동 · 서방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후기 각종 전례 문헌의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각종 예식서와 전례서에도 그 기본적인 틀이 남아 있을 정도로, 교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모달리즘 ; 본시아노 ; 《사도 헌장》 ; 성부 수난설 ; 오리제네스)
※ 참고문헌  히폴리투스, 이형우 역, 《사도전승》, 분도출판사, 1992/ 함세웅,<히뽈리뚜스>, 《사목》 90(1983. 11), pp. 54~63/ —, <히뽈리뚜스(2)>, 《사목》91(1984. 1), pp. 69~77/ J. Quasten, Patrologia, vol. I, Marietti, Casale Monferrato, 1992/ A. Di Berardino, Dizionario Patristico e di Antichità Cristiane, Marietti, Casale Monferrato, 1994/ A. Hamman, Dictionnaire des Pères de I'Eglise, Descle De Brouwer, 19771 H.R. Drobner, Lehrbuch der Patrologie, Herder, 1994(하성수 역, 《교부학》, 분도출판사, 2001)/ A.P. Frutaz · Q. Cataudella · E. Josi, 《EC》 7, pp. 171~180/ C. Scholten, 《LThK》 5, 1996, pp. 147~149/ —, 《RAC》 15, pp. 491~551/ E. Amann, 《DTC》 6, pp. 2487~2511/ F. Cabrol · H. Leclercq, 《DACL》6, pp. 2409~2483/ M. Marcovich, 《TRE》 15, 1986, pp. 381~387/ M. Richard, 《DSp》 7, Pp. 531~571/ M.R.P. McGuire, 《NCE》 6, pp. 1139~1141/ P.-Th. Camelot, 《Cath》 5, pp. 755~760. 〔安奉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