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데가르트, 빙엔의 (1098~1179)

〔라〕Hildegardis Bingiam · 〔독〕Hildegard von B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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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르트 성녀(독일 뭔스터 자름하임 성당, 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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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르트 성녀(독일 뭔스터 자름하임 성당, 14세기).

수녀. 성녀. 신비주의자. 저술가. 시인. 미술가. 신학자. 정치가. 최초의 클래식 음악가. 축일은 9월 17일.
〔생 애〕 1098년 독일 남서부에 있는 팔츠(Pfalz)의 알자이(Alzey) 부근 작은 마을인 베르머스하임(Bermersheim)에서 귀족인 힐데베르트(Hildebert)와 멕틸드(Mechthild)의 10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였기 때문에 8세 때 디지보덴베르크(Disibodenberg)에 있는 베네딕도 수녀회에 맡겨졌다. 이곳에서 힐데가르트는 스판하임의 메긴하르트(Meginhard von Spanheim) 백작의 동생인 유타(Jutta, 1090~1136)의 보호하에 읽기와 쓰기, 찬미가 부르기, 수작업과 음악 등의 교육을 받았다. 12세 때부터 그를 따라 은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4세 때에 마인츠 대주교의 대리인 밤베르크의 오토 앞에서 수도 서약을 하였다. 유타가 이끄는 공동체가 명성을 얻자 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수녀원에 들어왔으며, 그들은 성서와 시편을 교재로 함께 읽고 기도하고 노래 하였다.
1136년에 유타가 세상을 떠나자 38세의 힐데가르트가 수녀원장이 되었다. 1141년 43세가 되던 생일날, 그녀는 거스를 수 없는 음성과 혀 같은 불꽃이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려와 보고 들은 것에 따라 쓰고 말하라는 예언자적 부르심과 일깨움을 들었다. "두려움에 가득 차서 떨면서 사로잡힌 집중으로 나는 천국의 모습에 사로잡혔다. 그때 나는 갑자기 엄청나게 밝은 광채를 보았다. ···트인 하늘로부터 불 같은 빛이 번쩍이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은 나의 뇌를 뚫고 들어가 나의 심장과 온 가슴에 마치 불타는 불꽃처럼 떨어졌다. 그것은 다 타 버리지 않았지만 태양이 사물 위로 떨어져 온기를 주는 것처럼 뜨거웠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복음서와 구약과 신약성서의 다른 성서들의 시편에 대한 해석으로의 통찰력을 얻었다"(《쉬비아스》 서문). 그녀는 이 체험을 거부하여 그것에 대한 내적인 갈등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스승이며 고해 신부에게 상담을 하였고, 그는 마인츠의 대주교에게 그 문제를 보고하였다. 그 결과 신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그녀가 체험한 환시(visio)의 신빙성을 확증하였고, 힐데가르트가 그것들을 글로 기록하는 일을 돕도록 수도승인 폴마르(Volmar)를 임명하였다. 부르심을 받아들이자 그녀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이때부터 힐데가르트는 첫 번째 저서인 《쉬비아스》(Scivias Domini, Scire vias Domini)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글은 1147년과 1148년 트리어(Trier)에서 개최된 교회 회의에서 교황 에우제니오 3세(1145~1153)로부터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한다는 인정을 받았으며, 그녀가 보고 들은 환시를 정확히 서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로써 힐데가르트의 환시는 교회의 인정을 받았고, 교회 회의 참석자들을 통해 빠른 시간 안에 전 유럽에 전해졌다. 그로 인해 그녀는 공식적으로 예언자적인 소명을 펼치게 되었다.
1148년에 힐데가르트는 빙 엔의 루페르츠베르크(Rupertserg)에 새로운 수녀원을 설립하고, 1150년 다른 수녀들을 데리고 디지보덴베르크 수도원을 떠나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그해에 《쉬비아스》를 완성하자 그녀의 명성을 더 높아졌다. 1158년에 힐데가르트는 당시 수도원이 교구장의 통제를 받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마인츠 대주교의 재치권에서 독립된 자치 수녀원으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1151~1158년 사이에 그녀는 자연과 치료에 관한 책을 저술하였으며, 1158년에는 두 번째 저서인 《책임 있는 인간》(Liber Vitae Meritorum, Der Mensch in der Verantwortung)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해에 힐데가르트는 병을 앓고 있었지만 마인(Main) 강을 따라 마인츠, 뷔르츠부르크(Würzburg), 밤베르크(Bamberg) 등지로 첫 번째 설교 여행을 떠났다. 여행 기간 동안 그녀는 성직자들의 부패상을 비판하고 올바른 신앙 생활을 설교하였다. 1160년에는 로렌(Lorraine, Lothringen)으로 두 번째 설교 여행을, 1161~1163년까지는 라인 강을 따라 콜른(Köln)까지 세 번째 설교 여행을 하였다. 1163년에 힐데가르트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 1152~1190)로부터 자신의 수녀원을 보호하겠다는 편지를 받아냄으로써, 당시 교황과 황제의 대립으로 인해 자행되던 수도원 파괴, 약탈 행위로부터 수녀원을 보호할 수 있었다.
1163년부터 그녀는 세 번째 저서인 《세계와 인간》(Liber divinorum operum)을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165년에는 라인 강 건너편 아이빙엔(Eibingen)에 두 번째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그녀는 일주일에 두 번씩 루페르츠베르크와 아이빙엔을 오갔다. 그녀가 라인 강을 건널 때 강물을 축복한 뒤 어느 눈먼 소년의 눈에 그 물을 뿌리자 눈을 뜨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167~1170년 사이에 힐데가르트는 또 한 번 중병을 앓았으나, 1170년에 슈바벤(Schwaben)으로 네 번째 설교 여행을 떠났다. 1173년에 그녀를 도와 주던 폴마르가 세상을 떠나자 후임자 임명 건으로 디지보덴베르크 수도원과 갈등을 겪기도 하였으나 1176년에 교황의 지시로 고트프리트(Gottined)가 임명되어 힐데가르트의 전기 제1권이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듬해에 그마저 세상을 떠나자 후베르트(Huber)가 힐데가르트의 비서가 되었다. 1178년 힐데가르트는 교회로부터 파문받은 젊은 귀족 청년을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 묘지에 안장한 일로 인해 마인츠 교구 참사회로부터 성무 제한 조치를 받았으나, 대주교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의 행동이 환시에 따른 것이었음을 강조하며 여러 차례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1179년 조치는 해제되었다.
그녀는 1179년 9월 17일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에 묻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30년 전쟁으로 1631년에 이 수녀원의 수녀들이 쾰른으로 피신할 때, 그녀의 유해 일부는 수녀원 성당 납골실에 보관하고 일부는 쾰른으로 모셨다가 1636~1639년 사이에 아이빙엔에 모셔졌다. 1929년 아이빙엔 본당에서는 그녀의 선종 7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유해함을 만들었으며, 현재까지 본당 제대에 모시고 있다.
1227년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은 힐데가르트의 시성을 청원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1227~1241)와 인노천시오 4세(1243~1254)가 그녀의 시성을 제안하였고 글레멘스 5세(1305~1314)와 요한 22세(1316~134)가 뒤를 이어 시성 작업을 추진하였으나, 승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664년부터 독일 마인츠 교구의 시간 전례서와 미사 경본에 9월 17일을 힐데가르트의 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하였으며, 1940년부터 이 축일을 교황청에서도 받아들여 독일의 시간 전례서와 미사 경본에 힐데가르트의 축일을 수록하였다. 1971년부터 전 독일어권에서는 독일 지역 교회 주교들의 합의로 매년 9월 17일을 힐데가르트 축일로 정하여 경축하고 있다. 비록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에도 힐데가르트를 성녀로 수록하고 있다.
〔저 서〕 힐데가르트가 남긴 저서의 원본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전해지는 저서들은 모두 필사본들이다. 그녀가 남긴 저서들에는 영적 계시, 당대의 과학적 지식 및 예언적 직관으로 혼합되어 있다. 《쉬비아스》, 《책임 있는 인간》, 《세계와 인간》 등 3권의 저서와 77편의 시와 노래, 36점의 그림, 500가지 식물 동물 · 광물에 대한 자료와 보석 치료, 자연 치료에 관한 의학 관련 저서들, 당시의 정치인들과 성직자, 신자, 백성들에게 올바른 삶에 대해 전한 300통 이상의 편지 등이 있다.
주요 저서 : 《쉬비아스》(1411~1151)에는 힐데가르트의 26가지 신비적 환시를 담고 있으며, 세 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또한 그녀의 환시를 그려 채색한 35개의 그림과 환시에 관한 주석, 계속되는 연작물을 위한 배경 연구가 수록되어 있다. 그녀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하느님이 원하는 바처럼 누구나 갈 수 있는 장소에서, 그리고 깨어 있고 의식이 있는 상태, 투명한 이성의 상태에서 내적인 인간의 눈과 귀로" 환시를 받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본래 이 책에는 표제 없이 내용을 총괄하는 서문만 있었는데, 1928년 독일어 번역본에서는 각 환시와 책에 각각의 내용을 요약해서 제목을 달았다. 이 책은 교리 교육용처럼 전달하는 내용들이 하나의 그림과 그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임 있는 인간》(1158~1163)은 삶과 관습에 대해 총 6장으로 구성된 윤리서이다. 여기에는 각각 35종류의 덕과 악덕들이 등장하여 서로 말하고 싸우는 놀라운 극(劇)이 전개된다. 인간이 세상을 형성하는 데 함께하는 것은 언제나 순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자신이 처한 상황, 그 순간의 결정 오늘의 그리고 현재의 결정이 중요하다. 인간은 매순간 악덕과 덕, 창조의 진보 발전과 파괴에서 어느 쪽을 향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점이 이 책의 역동성을 보여 준다. 음악극 <성덕의 열>(Orde virtutum)도 "책임 있는 인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와 인간》(1165~1174)은 힐데가르트의 우주론이 담긴 책으로, 《하느님의 창조 사업》(De operatione Dei)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세계와 인간 안에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작용에 대한 열 개의 환시에 대한 내용으로, 첫 번째 부분에서는 우주와 결합된 존재(Eingebundensein)로서의 인간과 소우주로서 존재하는 인간에 대해 서술한다. 인간은 창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우주와의 관계, 창조와의 관계에 책임이 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의 책임감에 대해 다루며, 세 번째 부분에서는 구원사를 다룬다. 우주 인간의 상(像)과 우주에 영향을 주는 힘들이 인간과 창조의 상호 의존 관계를 분명하게 한다.
자연학적 저술 : 힐데가르트의 자연과 치료에 관한 글들은 비전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이미 알려져 있던 지식들을 모은 것이며 직접 관찰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하지만 설사 기존의 지식들을 이용한 것이고 힐데가르트 이후에 계속 보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글들은 실제로 힐데가르트의 저술이다. 창조 신학에 따라 자연에 대한 지식을 규정, 배치하였다는 점과 자신의 신학적인 이상(Bildwelt)에 따라, 치료법으로 그녀가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당시 수도원의 치료법을 알고 적용하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아가 민간의 요소들도 수용하였으며 치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예방과 섭생을 위해서까지 지식을 체계화하였다. 이 책은 창조와 우주론에 대한 부분으로 시작한다. 이를 통해 하느님은 우주와 창조의 질서 안에서 인간을 완전하게 하고 구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병이란 창조주가 원하는 기능이 고갈된 것, 곧 '창조의 소진(消盡)' (Er-Schopfung)을 의미하고, 치유는 '재창조' (Wieder-Schoepfung)를 의미한다. 그래서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인간은 이렇게 창조와 대화한다는 것이다. 힐데가르트의 치료법은 광범위하다. 치료제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성(性)과 임신 및 분만, 심리적인 질병의 증상, 그리고 건강한 생활 방식과 의사들의 직업상에 대해서까지 쓰여 있다. 그녀가 건강에 좋다고 말하는 것들의 경우, 그것을 행하거나 섭취하는 것이 비위에 거슬리거나 불쾌해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인간에게 좋은 것은 하느님이 원하는 창조의 완성을 비추게 하므로 자연히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연학》(Physica)에서 그녀는 자연을 아주 정확하고 세밀하게 관찰하고 서술하였다. 이 책에서는 물고기, 돌(보석, 준보석 포함), 식물(나무에 관해서는 별도로 기록), 조류, 기타 다른 동물과 파충류, 금속의 생성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특히 물고기에 대해 집필한 장에서는 당시 나헤(Nahe) 강과 글란(Glan) 강, 라인 강에서 서식하는 모든 어류에 대해 세밀한 부분까지 기록되어 있다. 물론 민간에서 전해져 오는 지식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은 돌에 대해 기록한 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장에서는 금속의 생성에 대해 서술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자연학의 시작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기타 : 앞에서 언급된 저술들 외에도 성 아타나시오에 대한 신학적 고찰, 복음서 주해, 베네딕도 규칙서의 주석, 38가지 신학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 등의 저술들이 있다. 또한 《성 디지보트의 전기》(Vita des hl. Disibod),《성 루페르토의 전기》(Vita des hl. Rupertus), 《성 마르티노의 전기》(Vita des hl. Martin)가 있다.
〔영 성〕 힐데가르트는 창조된 세계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창조 질서에 조화된 삶을 찾아가도록 전하고 있다. 그녀의 환시는 모든 것을 주재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강조하면서 모든 피조물 안에 담겨 있는 그분의 사랑을 강조한다. 모든 것 안에 그분의 영이 담겨 있고, 그분의 영이 전하는 치유력이 담겨 있다. 대우주 안에 소우주로서의 인간을 표현하며 자연과 인간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하나임을 보여 준다. 자연을 이루는 것들이 인간의 몸을 이루고 또한 정신을 이룬다. 계절의 흐름 속에 땅의 힘으로 자라는 식물과 동물들과의 관계 안에서 삶을 꾸려 가는 창조의 손길 안에서 전체 질서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창조를 이어가는 삶이요, 구원의 삶이다. 그녀에게는 구원과 치유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늘 함께한다. 몸과 영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힐데가르트는 악함이 있어도 그 뒤에 늘 모든 것을 구원하는 분의 뜻과 손길이 있음을 보도록 하였다. 악 뒤에 있는 선을 찾고, 적 안에서 친구를 발견하며 병에서 건강함을, 그리고 약함 안에서 강함을 보고 찾으라는 것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악을 단죄하기보다 모든 것 안에, 모든 상황에 담겨 있는 선함과 구원으로 이끌어주는 은총의 씨를 느끼고 보도록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 창조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도록 안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나마 모든 생각을 접어두고 자연의 빛과 소리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체 하나하나의 삶과 죽음을 넘어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 안에서 인간도 그 자연의 일부로서 삶을 넘어 전체 창조를 이어가고 있다. 햇빛과 공기와 바람과 작은 풀뿌리 하나, 심지어 생명이 없다고 하는 돌들에도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 인간이 관심을 가지고 보고 대할 때 그 안에 담긴 치유와 구원의 관계가 살아 움직인다.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고 듣고 만져보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는 구원을 상대하는 도구인 것이다. 그래서 힐데가르트에게 있어서는 전례에 참례하는 것 뿐 아니라 바른 식생활과 자연 치료, 보석 치료, 음악, 그림이 영성적으로 모두 중요하였다. 또한 힐데가르트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받는 삶을 지향하였고, 삶이란 원죄에 대해 단순한 속죄 이상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세계는 온통 창조의 선함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창조의 선함이 힐데가르트 신학의 중심에 놓여 있다. 나아가 이런 사상의 성숙한 발달에는 변증법과 양단론을 포용하는 대범함이 있으며 이원론을 극복하고 있다. 단일성은 힐데가르트의 신비적 주제이다. 그녀는 피상적으로 얄팍한 차원에서 차이점과 양극점을 물리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인간을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품위 있고 자비롭고 사랑하는 존재뿐만 아니라 파괴하는 자로서 악하고 고집 세고 방종한 자로 묘사하였다. 더 나아가 선과 악, 빛과 어두움은 인간이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많은 형상과 색소와 향기로 인식된다. 그렇기에 힐데가르트에게 인간이 된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고, 깨어 있는 상태에서 반응하고 식별하는 것이며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또 힐데가르트가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놀라운 개념 중 하나는 다른 어떤 신학자에게서도 결코 들어 보지 못한 '푸르름' 또는 '푸르름을 만드는 힘' 이란 단어이다. 그녀는 모든 창조물과 특히 인류는 "푸르름을 만드는 신선함으로 씻기어졌고 열매를 맺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라고 말하였다. 분명히 창조력과 푸르름을 만드는 힘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녀는 "푸르름을 만드는 사랑은 모두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이 싱싱함을 들이마시는 이는 천상을 동경하는 열정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라고 하였다. 후대에 에크하르트(J. Eckhart, 1260~1328)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 16)라는 말씀에 심취하였으며 그리스도교 정신이 시들어 생명력을 잃은 사람과 조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씀은 모든 것을 싱싱하고 푸르게 하는 창조력이다." 그녀는 하느님을 "가장 순수한 샘"이라고 불렀다. 마치 후에 에크하르트가 하느님을 땅 밑으로 흐르는 거대한 강에 비유하였듯이, 힐데가르트에게 있어 성령이란 활동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고 번창하게 하고 찬양하게 하는 살아 있는 힘으로써 푸르름을 만드는 힘이었다. 사실 힐데가르트에게 치유란 습기에 젖은 푸르름을 만드는 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오페라 <성덕의 열>에서 이를 찬양하며 "태초에 모든 피조물은 푸르름과 생명에 차 있었다. 그들은 꽃 사이에서 번성하였다. 그러나 차츰 그 푸른 모습은 시들게 되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푸르름의 화신이라고 하였다. "이제 마음에 새겨라. 태초에 생겨났던 푸르름은 시들게 되지 않는다."
또한 "푸르름"은 인간이 영적 · 육체적 힘 안에서 받게되는 하느님의 새로움이다. 이는 봄철의 생명력이며 생성하는 힘이며 하느님에게서 와서 모든 창조물에 스며들어 결실을 거두게 한다. 이 강력한 생명력은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땅은 생명을 피우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라고 그녀는 말하였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가 영과 육의 대립을 제시하였다면, 힐데가르트는 "영혼은 육체의 신성함이다. 왜냐하면 지상이 습기를 통해 결실을 맺는 것처럼 몸도 영혼을 통해서 자라고 번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푸른 가지 중에서 가장 뛰어난 푸르름이요, 우리 가운데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는 푸르름의 존재이기 때문에 찬양받는다고 하였다. 즉 마리아는 봄철에 가장 푸르른 생명력으로 차 있는 가지이다. 성모 마리아께 드리는 찬가 중에 "당신은 자라고, 가장 푸르고, 푸른 싹이 트고··당신은 '시들고 말라 비틀어진' 세계에 무성하게 우거진 푸르름을 다시 한 번 가져옵니다"라고 그녀는 말하였다.
힐데가르트는 43세 때부터 생을 마친 81세까지 푸르른 삶의 화신이라고 할 만큼 창조적이고 열정적으로 살았다. 이는 음악과 시, 편지 쓰기와 설교, 치유와 그림 그리기, 조직과 기초 세우는 것 등에서 나타난다. 한때 자신의 창조 능력에 의지하기도 하였으나, 영적 체험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창조를 계속해 나갔다. 그녀는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그녀는 인간이 꽃이 만발한 과수원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사실 좋은 열매를 맺는 과수원이다." 우리의 일은 푸르른 일이 되고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느님처럼 물기가 어려 있어야 한다. 우리는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물기에 젖어드는 것이다. 세례는 우리가 젖어 들어 푸르른 상태에 머무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다. 이에 대해 힐데가르트는 다음과 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푸르게 자라게 하는 미풍이다. 나는 무르익은 과일이 풍성하도록 꽃들을 격려한다. 나는 이슬로부터 내리는 비이다. 이 비는 생명의 기쁨으로 풀들을 웃게 한다."
〔영 향〕 힐데가르트에 대한 연구는 교회 밖의 제반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독일어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신비주의, 의학, 정신 의학, 심리 요법, 비교 종교학, 자연 치료, 생태학, 여성학, 음악, 미술 치료 그리고 명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되었고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힐데가르트의 치료법은 병원이나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일상 생활에서 실제적으로 치료의 처방전이나 처방술로 약초 요법, 식이 요법, 정원 가꾸기, 유기 농산물, 치료 요양, 자연식, 채식, 건강 조리법, 돌과 보석을 통한 치료 등으로 분류되어 다양하게 소개되며 적용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서양에서 번지고 있는 동양에 대한 관심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생활 양식을 힐데가르트의 환시에서 찾고 있다. 이른바 힐데가르트의 의학지침서는 900년을 넘어 현대의 의학뿐만 아니라 생활건강에도 손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서양 의학의 대안, 즉 예방 의학이나 전일적인(holistic) 의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힐데가르트의 자연 치료 요법이 현대 약리학과는 전혀 다르다고 지적하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900년 전이 아닌 지금 현대인들의 건강, 먹거리, 의학으로써의 식품과 치료에 대한 그녀의 비법이 일상 생활에서 누구나 활용할 수 있고, 그리고 그녀의 전체적인 우주론은 동양의 사상과도 만날 수 있는 관련 고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다양한 풍요로움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제반 분야에서 실용적인 관심, 더 나아가 상업적인 관심에서 이루어진 연구로 12세기의 정치적 · 영성적 양심이었던 힐데가르트의 전체적인 모습은 오히려 한동안 가려져 있었다. 독일에서는 이미 성인 명단에 올라 9월 17일을 축일로 기념하고 있고, 그녀를 수호 성인으로 하는 15개의 성당과 병원, 학교, 복지 기관들이 제법 많은데도 불구하고 힐데가르트를 모르는 사람 역시 많다. 그녀의 전일적인 치료법은 실생활에 밀접하고 유용한 내용으로 이미 명성이 대중화되었지만, 그녀의 예언적 환시를 병리적으로 해석하거나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글들의 영향 때문에 신자들 중에는 힐데가르트에 대해 극단적인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녀의 환시 체험이 편두통이거나 히스테리적인 발작이나 정신 분열적인 환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인지의 여부는 말하기 어렵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평생동안 본 환시는 신비주의 역사상 아주 특이하고 드문 사건이다.
1979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800주년을 기념하는 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성녀' 라고 호칭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빌라의 데레사(Theresia ab Avila, 1515~1582)나 시에나의 가타리나(Catharina Senensis, 1347~1380)에 이어 교회 학자로 인정하도록 요청하는 청원서가 제출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성인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은, 그동안 그녀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영성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교회의 연구와 교육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1979년 선종 800주년부터 1998년 탄생 900주년 사이에 빙엔의 로쿠스 성당과 현 힐데가르트 수녀원의 노력과 많은 사목자들의 관심, 특히 1879년 선종 700주년을 기념한 마인츠 교구의 사목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총체적인 힐데가르트의 삶과 가르침을 역사적인 배경 아래에서 조명하고 다시 투영하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녀의 음악과 그림을 도구로 창조와 치유의 새로운 전례를 만들고, 특히 900주년 때에 그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체험하는 순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또한 개인, 가족, 단체를 위한 피정 프로그램과 일상 피정을 위한 성서 묵상, 명상 등 사목 · 영성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한국에는 힐데가르트의 영성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힐데가르트 학회' 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를 소개하고 여러 관점에서 활발히 연구하게 될 것이다. (→ 독일 신비주의)
※ 참고문헌  정홍규, 《빙엔의 힐데가르트》, 푸른평화, 2004/ 로날드 슈베페 · 알요샤 슈바르츠, 유순옥 역, 《빙 엔의 힐데가르트가 전하는 보석 치료》, 다른 우리, 2003/ www.celeuni.net. 〔鄭洪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