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아우구스티노 의전 수도회(Ordo Fratrum Sancti Augustini)의 영성 작가. 신비주의자.
〔생애와 활동〕 힐턴은 14세기 영국의 탁월한 신비주의자이다. 출생지와 가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살았던 시기는 백년 전쟁(1337~1453)으로 황폐한 때였고, 가톨릭 교회가 서구 대이교(schisma magnum occidentale)로 영적인 위기에 놓여 있을 때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힐턴의 저서를 포함하여 익명의 작가가 저술한 《미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과 롤(Richard Rolle, 1300?~1349) , 플레이트(William Flete) 등의 영적 경향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유명하였는데, 이는 에크하르트(J. Eckhart, 1260~1328), 폴리뇨의 안젤라(Angela di Foligno), 시에나의 가타리나(Catharina Senensis, 1347?~1380),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79/1380~1471) 등 유럽 신비주의 영성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힐턴은 은둔에 따른 관상적인 삶과 활동적인 삶이 잘 어우러진 생애를 살았다. 그러나 당시의 다른 은둔자들처럼 그의 전기에 대한 자료나 기록은 찾아 보기 어렵다. 혹자는 그가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교에서 시민법을 공부하고, 1375~1380년 사이에 몇 년간 링컨(Lincoln) 교구에서 홀로 은둔 생활을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가 교구 신부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시민법, 교회법, 신학에 박식하였던 힐턴은 카르투지오회(Ordo Cartusiensis)에 호감을 갖고 자주 접촉하였지만 입회하지는 않았으며, 1396년 뉴어크(Newark) 근처의 투르가르톤(Thurgarton)에 있는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여 참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비판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다.
그는 14세기의 영성사, 특히 영국의 신비주의학파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된 작품인 《완덕의 단계》(The Scale of Perfection)는 영어로 쓰여지고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라틴어본 《완덕의 단계》(Scale Perfeccionis)는 오랫동안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사랑의 채찍》(Stimulus amoris)의 번역으로 여겨졌으나 힐턴이 저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사랑의 채찍》 또한 프란치스코회 수사인 밀라노의 야곱(Giacomo di Milano, 13세기)의 작품임이 밝혀졌다. 《완덕의 단계》는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 권은 영성 생활의 구체적이고 세밀한 정진 단계를 다루고 있으며, 은둔생활을 하는 자신의 영적 딸인 한 수녀를 위해 쓴 것이었다. 둘째 권은 영적 성숙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것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영성을 서술하고 있으며, 사목 신학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책 제목은 힐턴이 사망한 후 둘째 권의 17장에서 뽑아 붙인 것이다. 이 책은 간행되자마자 유럽에 빠르게 퍼져, 1533년 이전에 4판이 나왔고 1600년대까지 3판이 더 출판되었다.
일부 주장에 의하면 힐턴이 토마스 아 켐피스의 작품인 《준주성범》(De Imitatione Christi)의 첫 3권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교회의 음악》(Musica Ecclesiastica)의 저자라고 한다. 《준주성범》 역시 그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그것은 이 책이 영국에서 번역되었을 때 저자가 익명이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어느 신비주의자가 책을 썼을 것이라고 추측하였고, 그 당시 힐턴은 영국에 널리 알려진 신비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완덕의 단계》는 아직까지 학자들의 토론이나 비평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저자의 삶과 그가 집필한 저서들에 대한 신빙성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힐턴은 영국 노팅엄셔(Nottinghamshire)의 투르가르톤 수도원에서 1396년 3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영성과 사상〕 현재도 성직자,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의 영성 생활에서 지침서가 되는 《완덕의 단계》에는, 당시 신비주의 영성에 획기적인 바람을 몰고 온 릴과 익명의 작가에 의해 쓰여진 《미지의 구름》에 나타나는 사상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힐턴은 영적인 딸과 관상 및 수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 이미 알려져 있던 영성 사상을 많이 인용한 듯하다. 특히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해 소박함으로 돌아가야 함과 금욕 생활을 위해 고행의 길을 제시하는 점이 대표적이다. 릴과 《미지의 구름》에 의하면 하느님에게 이르는 유일한 길은 인식이 아니라 사랑이며, 관상적인 삶은 바로 이 사랑에 정향되어 있으므로 활동적인 삶보다 우월하다. 마음의 순수함은 하느님과 열렬한 사랑의 영적인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며,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과 의식을 단절한 상태에서만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관상적인 삶에만 집중한 《미지의 구름》이나 《내밀한 권고의 책》(The Book of privy Counselling)은 주제에 따른 개별적 도식이 없는 반면, 《완덕의 단계》는 주제에 따라 단계별로 적절한 방법을 알려 주어 관상하는 이들이 은총의 시간을 갖고 완덕에 이르는 길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완덕에 나아가는 길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세 작품이 흔히 그러하듯 간혹 주제에서 이탈되기도 하지만, 처음과 마지막이 숙고 · 계획된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작품이다.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분량이 거의 비슷하며, 서로 다른 시기에 쓰여졌지만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다.
첫째 권에서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ardus de Clairvaux, 1090~1153)와 프란치스코(Franciscus Assisii, 1181/1182?~1226)의 영성 경향을 엿볼 수 있고, 둘째 권에서는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 6세기)와 《미지의 구름》의 저자와 비슷한 신비주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두 권 모두 관상으로 하느님과 합일을 이루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에 이르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힐턴은 '신앙 안에서의 쇄신' 인 활동적 삶과 '감성 안에서의 쇄신' 인 관상적인 삶을 구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활동적 삶과 금욕적이며 관상적 · 신비주의적 삶을 구별하였다. 힐턴은 '신앙' 이라는 말을 '하느님과 진리에 대한 동의' 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즉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진리이지만 하느님의 진리이며 교회의 가르침이기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 없다 해도 보이지 않는 진리를 무조건 믿음으로써 은총의 도움으로 나쁜 습관이나 악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구원을 위해서는 관상적인 삶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평상적인 삶인 '신앙 안에서 쇄신' 되는 것으로 족하다. 반면 감성은 성령에 의해 조명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식을 뜻하며, 초자연적이며 신비적인 경험과 연결된다. 즉 신비주의적 삶이란 일상적 삶과 구별되는 초자연적이며 신비적인 지각이나 경험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상적인이고 신비적인 삶을 위해서는 '감성 안에서의 쇄신' 이 필요하며, 이 쇄신은 영혼이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초자연적 인식을 가질 때나 하느님에게 사로잡혔을 때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하느님은 그 영혼 안에 있게 된다. 감성 안에서 쇄신되기 위해 인간은 감각적인 만족이나 희열을 얻기 위한 인간적인 수단들을 거부해야 하며, 자신에 대한 자체 인식과 강한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완전한 완덕에의 길은 이 세상이 아닌 하느님 나라에서만 도달할 수 있다.
첫째 권에서는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완벽하게 복구시킬 수 있는가 하는 신비주의적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힐턴은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은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이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영혼이 지녀야 하는 여러 가지 금욕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최종 목표, 즉 관상 안에서 하느님과의 합일(《완덕의 단계》 1권, 1~14장)을 알게 한 뒤 영혼이 그곳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많은 매체(1권 15장)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덕(16~23장), 소리 기도와 묵상(24~36장), 어디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리스도를 찾는지와 그와 합일되는 데 방해하는 요소들(44, 46, 47, 48, 49, 50~51, 54, 86~87, 91~92장)을 상세히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경향에 따라 완전한 관상에 이르는 길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관상의 1단계는 다른 이의 가르침이나 성서 공부 등 인간의 지적 활동을 통해 하느님이나 영적인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단계이다(1권 4~5장). 2단계는 주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정감적 관상' 상태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실히 살면 도달 가능한 단계이다. 마지막은 '완전 관상' 단계로, 성령의 은총으로 조명된 영혼은 천상의 삶을 느끼고 체험하게 된다. 영혼과 육신은 평온해지고 의식은 순수하게 되어 영혼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삼위 일체의 모상 안에 변형되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신비 경험은 환상이 아니고 환시나 출현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1권 10~11장 참조). 힐턴은 《미지의 구름》의 저자처럼 높은 관상에 의한 초자연적 기도와 환시, 상상적인 것이거나 육체적인 것, 열정적이며 감정적인 경험, 환시에 의한 혼돈을 잘 식별하였다. 그는 환시, 내적인 말, 감각적인 위로는 관상이 아니라고 경고하였다 오히려 그것들은 인간 영혼의 강함보다는 나약함이 드러난 것이라고 확언하였다. 그러므로 이상하고 특수한 현상들은 그에게 있어서 이차적인 것이었다. 힐턴은 모든 노력의 종착점은 관상가가 부동의 침묵 상태에 이르게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1권 32장 참조). 평화와 침묵 안에서 만나는 하느님은 부드러움, 감미로움, 평화, 사랑, 열렬함을 가져온다. 이 특수한 은혜는 혼인적인 결합이라고 표현되는 상태이며, 은자나 관상가들에게만 허용되는 특수한 은혜이다(1권 9장 참조). 관상가들은 이러한 사랑을 위해 세상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높은 관상은 영육이 정적 상태 안에 살면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에게만 특별히 유보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받은 은총에 따라서 하느님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들의 정신과 영혼을 바친다(1권 3장 참조).
활동적인 삶이나 활동과 관상이 합일된 삶은 하느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지만 단지 높은 완덕의 단계를 준비하는 낮은 단계로서, 평신도들은 특별한 은혜 없이 완덕의 상태에 이르기 어렵다고 하였다. 힐턴은 93장에서 이 첫째 권은 완덕을 향해 정진하는 관상가들을 위해 쓰여졌고 은총을 받은 순수한 영혼은 이 긴 책의 내용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볼 수 있다고 결론짓고 "아멘"이란 말로 끝맺었다. 이는 이 책 안에 그가 쓰려고 했던 내용을 모두 다 담고 완성하였다는 뜻이다. 또한 완덕의 상태는 관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삶과 직결되므로 관상 기도를 최상의 기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첫째 권에서는 삶의 '상태' (state)가 완덕의 '상태' 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힐턴에게 있어서 완덕은 완전한 관상 안에서 완성된다. 《미지의 구름》의 저자처럼 정진의 어려움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힐턴은 육체적인 금욕 면에서 극도의 배고픔이나 고통은 관상 생활을 방해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중도의 길을 걷도록 권하였으며 내적인 고행을 주장하였다.
전반적으로 '하느님 중심주의' 경향이 강하게 보이지만 인간 구원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예수를 찾고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 집착이나 자기애와 같은 모든 죄의 근원들을 없애야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실천해야 하는 의무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관상은 우리 안에 그분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며(1권 92장 참조) 그리스도에 대한 강한 믿음이 바로 구원의 길이라고 하였다. 특별한 은총을 받은 영혼은 자연과 천사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예수가 하느님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1권 46장 참조).
반면 《완덕의 단계》 둘째 권은 첫째 권의 가르침을 보다 완벽하게 하기 위해 몇 년 후에 쓰여졌다. 첫째 권에 비해 영적으로 현저히 성숙하였으며, 관상의 '상태' 에만 제한되지 않고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수준 높은 관상 기도 형태들을 발견함으로써 관상을 영성의 최고 목적으로 보았던 중세 때의 지평을 넘어서고 있어 가톨릭 영성사에 큰 공헌을 한 저술이다. 영혼의 성숙을 다루고 있는 둘째 권은 풍부한 개인 성찰과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높은 완덕으로 향하는 순례 여정에 부름을 받았으므로 관상적인 삶은 더 이상 삶의 '상태' 가 아니다. 신비적 · 관상적인 삶은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능하며 그들은 이러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관상의 삶이란 세례성사와 함께 시작한 일반적인 삶의 발전이며 영적 정진 과정을 발전시킨 종착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일반인이 관상만 하는 사람들보다 더 쉽게 도달할 수도 있다(2권 10, 21, 27, 39장 참조). 힐턴은 사랑의 실천은 관상, 관상적 기도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며, 이 둘 모두가 하느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새로운 직관은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의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랑은 인식에 선행한다. 영혼은 사랑의 활동으로, 하느님에 대한 인식이나 환시 안에서 지복지관을 느끼게 되며,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에 이르게 하는 원동력은 사랑이며, 이 사랑은 하느님을 향하는 인간 영혼 안에 있는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먼저 시작된 죄인인 인간에게 향하는 그분의 사랑이다(2권 34장 참조). 하느님께 향하는 인간의 내적 본성은 본질적으로 '세상에서의 도피' (fuga mundi)가 아니라 사도적 활동을 통한 사랑의 실천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교계 제도에 얽매이기보다는 이웃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계속 실천하는 데 있다고 하면서 "아픈 이들이 있는 병원으로 가라. 그곳에서 바로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힐턴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혼의 어두운 밤' 을 통한 영혼의 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어둡고 수동적인 밤에 대한 언급(2권 23~28장 참조)은 후에 십자가의 요한(Joannes a Cruce, 1542~1591)이나 스페인의 신비 영성에서 다시 등장하였다. 밤은 밝음이 결핍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밝음에 접근하기 위한 것이므로 "밝은 어두움이다"(2권 24장 참조). 고통스럽고 정화를 요구하는 밤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영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얻기 위한 갈망이다. 이러한 갈망을 위해 자신과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데, 어둠이란 단지 영혼이 먼저 이것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사랑과 겸손으로 추진력을 받은 영혼은 어두운 밤을 지난다. 영혼이 정진을 거듭할수록 더 깊은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2권 30장). 처음에는 이 단계가 고통스럽기에 인내가 필요하지만, 차츰 영혼이 적응되면 어두운 밤의 맛과 하느님의 위로를 느끼게 되고 천상 예루살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인식으로 가득 차게 된다.
힐턴은 둘째 권에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였다. 즉 하느님 자리에 그리스도를 대치시킴으로써, 강한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경향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스도와 성령으로부터 온 은총으로 모든 죄는 소멸되고, 영혼은 감미로운 사랑으로 예수와 합일되어 그의 완전한 연인이 된다. 이때 예수의 현존은 바로 육체 안에 있는 영혼과 같이 필수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영혼은 예수의 신비로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정화되고,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업적을 보고 관상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지게 된다. 둘째 권에서 나타나는 관상적인 삶은 바로 영혼 깊이 숨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음으로써 영혼 안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preformation) 하느님의 모상을 계발시키는 것이다.
힐턴은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성령에 대해 많이 언급하였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리스도가 보낸 것이므로 그에게 성령의 활동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이었다(2권 35장 참조).
〔평가와 영향〕 힐턴의 신비적 체계는 일반적으로 생 빅톨의 리카르도(Richardus a Sancto Victor, +1173)의 신비주의를 단순화시킨 것처럼 보인다. 힐턴 자신은 하느님과의 합일을 체험할 수 있는 관상의 은총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였고, 단지 서술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고백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수도회 전통의 위대한 영성 스승들, 즉 아우구스티노,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 베르나르도, 그리고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미지의 구름》의 익명 저자, 롤, 플레이트의 사상적 흔적이 나타나지만, 그는 이 유산들을 자신의 고유한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힐튼은 약 50종류나 되는 필사본으로 된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극히 단순한 언어로 저술된 《완덕의 단계》는 사상의 아름다움과 표현의 단순함으로, 아주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영성 지도서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신심 문제를 다룬 4통의 편지와 영어로 씌여진 2통의 편지가 있다. 하나는 사회적인 지위와 부를 가졌지만 신심이 깊은 남자에게 관상과 활동적인 생활을 혼합한 삶에 대해 충고하기 위해 쓴 것이고(To a Devout Man in Temporal Estate), 다른 하나는 순수한 신비주의를 다루면서 롤을 비판한 <천사의 노래>(The Song of Angels)이다. 그 외에도 힐튼은 프란치스코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시편과 애가에 대한 주석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작품 중에 어떤 것이 진본인지 확인되지 않아 아직도 편집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 많다. (→ 신비 신학 ; 영성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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