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프, 울라프 (1900~1976)

Graf,0l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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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 신부. 원산(元山)교구 선교 사. 세례명은 헨리코. 수도명은 울라프. 한국 이름은 김 대진(金大振) 독일에서 태어나 1921년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의 수도자로 첫 서원을 했고, 뮌헨(München)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1927년 3월 7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 에서 공부를 계속하던 중 1928년 한국의 선교사로 임명 되어 영국을 거쳐 1929년 2월 2일 일본 동경에 도착, 1 년 반 동안 일본어를 공부한 후 1930년 10월 14일 한국 에 입국하였다. 당시에는 공무상(公務上)의 언어와 학교 수업에서의 언어가 일본어였고, 성당들이 있던 큰 도시 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에 일본어에 대한 지 식이 필요하였다. 약 6개월 동안 한국어를 공부한 후에 1931년 5월 9일 함경북도 회령(會寧) 본당의 보좌 신부 로 부임하였고, 같은 해 11월 28일 본당 신부로 임명되 어 전교와 청소년 교육을 중점적으로 사목했다. 1932년 7월 회령 본당이 개설한 초등 교육 기관인 명악 학교의 건축을 시작하여 이듬해 3월 19일 완공한 후 500여 명 의 어린이들을 교육하였다. 또한 학교 건축과 함께 성당 건립도 시작하여 공사 시작 3년 만인 1935년 10월 27 일 사제관과 함께 낙성하였다. 1938년 유럽으로 돌아가 네덜란드의 라이덴(Leiden) 대학에서 동양학(東洋學)을 전공, 1942년 가이바라 엑 겐((原益軒)의 교육 사상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어 1948 년부터 1953년까지 일본의 니이가따(新瀉)에서 사목하면서 중국 철학에 대해 연구, 1953년 일본 문화지(Monu-menta Nipponica)에 주자학(朱子學)에 대한 연구 주석서를 발표했다. 1957년 한국에 재입국하여 왜관(倭館)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연구 활동에 전념하였고, 1963년부 터는 서울의 베네딕도회 신학생 기숙사 사감(舍監)으로 3년 간 재직하였다. 1965년 단테 탄생 700주기를 맞이 하여 《신앙의 증거로서의 신곡》, <단테와 전례》라는 두 권의 책을 독일에서 간행하였으며, 1970년에는 《도(道) 와 말씀》(Tao und Logos, Wiesbaden, 1970)을 저술하였다. 1972년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잠시 머무른 뒤 예루살렘 시온 산으로 들어가 묵시록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1976년 독일에서 금경축을 지내고 그 해 9월 예루살렘 으로 돌아갔으나 12월 31일 선종하였다. 그는 20여 년 동안 한국에 체재하면서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를 위해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갖고 일한 모범적인 선교사였으 며, 한편으로는 바쁜 선교 생활 중에서도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정열적인 학자였다. (-> 베 네덕도회 ; 회령 본당) ※ 참고문헌  Chronik der Kongregation von St. Ottilien/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1/《경향갑자》.〔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