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기적자 (213~270?)

Gregorius, Thaumatur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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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축일 11월 17일. 소아시아 폰투스(Pontus) 주 (州) 네오체사리아의 주교. 부유한 이교 가정에서 태어 난 그는 고향에서 법률학과 수사학을 공부한 다음 그의 동기 아테노도루스와 함께 베리투스(현 베이루트)에서 학 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마침 그의 매부가 팔레스티나에 집정관 보직을 받고 근무하게 되어, 누이의 초청을 받아 체사리아에 와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당시 오리제네스 (Origenes, 185?~254?)가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체사리아에 머물면서 신학 강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형제는 오리제네스를 만나 새로운 체험을 하면서 그리스도교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들은 5년 간(233~238) 오리제네스의 강의를 들으면서 신앙 생활에 대한 체험과 신학 지식을 심화시켰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주교품을 받고 네오체 사리아의 첫번째 주교가 된 다음 복음 선포에 일생을 바 쳤다. 그는 264년에 바오로 사모사타의 이단 문제로 소 집된 안티오키아 주교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270년쯤 사망하였다. 그에 대한 전기가 5가지 있는데, 사목 생활 동안 많은 기적들을 행하였다고 하여 그의 이름에 '기적 자' (Thaumaturgus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는 오리제네 스의 충실한 제자로서 그의 신학을 열렬히 따랐으며, 실 천과 행동의 사도적 인물이었다. [저 서] 《오리제네스에게 드린 사은가(謝恩歌)》 : 그레 고리오가 오리제네스로부터 5년 간의 학업을 마치고 고 향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자신을 가르쳐 주고 영적으로 키워 준 스승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한 글 이다. 그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게 섭리한 하느님께 먼저 감사 드리고, 스승의 생애와 훌륭한 인품과 교육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다음, 체사리아를 떠나는 이별의 아 픔을 말하면서 스승의 강복과 기도를 청하는 것으로 끝 을 맺고 있다. 이 글은 그리스도교의 초기 교육 방법 연 구에 중요한 사료가 된다. 《신앙 제시》 : 성삼께 대한 그레고리오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글이다. "하느님은 한 분뿐입니다. 그분은 생활 한 말씀의 아버지입니다. 그 말씀은 곧 하느님의 지혜와 능력이며 하느님의 영원한 모상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한 분으로서 완전한 분을 낳았으며, 독생 성자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주님 또한 한 분뿐입니다. 주님은 유일한 분에 게서 나신 유일한 분이며 하느님의 표상과 모상 그리고 능력의 말씀입니다 ··· 성령 또한 한 분뿐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에게서 본체를 취하시고 성자를 통하여 사람들에 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성자의 모상으로 완전한 분 의 완전한 모상입니다 ··· 삼위는 나누어지거나 갈라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삼 안에서는 그 어떠한 창조나 주 종 관계도 없습니다. 그리고 성삼 안에서는 처음이나 이 후에나 그 어떠한 것도 첨가될 수 없습니다" (EP 611). 성 삼위의 위격적 구별, 동일한 본성, 영원성 등 성삼론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는 이 신앙 고백서는 니체아 공의회 이전의 교회 문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법 규정 서간> : 이 서간을 법 규정' (canonica)이라고 부르는 것은 몇 가지 법적 규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서간의 중요성은 특히 끝부분에 나오는 죄인들의 참 회 양식에 있다. 이전의 교회 문헌들에서는 파문받은 죄 인들이 교회로부터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공적 고백, 참 회, 화해 선언을 거쳐야 한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 서 간은 둘째 요소인 '참회' 를 어떻게 하는지를 자세히 묘 사하고 있다. 참회자는 먼저 성당 문밖에서 엎디어 울면 서 신자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빌어야 한다. 둘째 단계에서 그는 성당 현관에서 말씀의 전례까지만 참여하고 성찬 전례는 참여할 수 없다. 셋째 단계에서는 성당 안에 들어올 수 있으나 바닥에 엎디어 말씀의 전례 까지만 참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넷째 단계에서 화해 선언을 받은 그는 비로소 성찬 전례에 참여하고 성체를 영할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특징은 각 단계마다 장소적인 변화가 있으며, 파문받은 사람은 화해 선언을 통해 정상적인 신자의 신분에 복귀된 다음에야 성찬 전 례에 참여하고 영성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서간보다 한 세기 후에 대(大)바실리오(Basilius, 330?~379)가 쓴 서 간 217에서는 위의 4단계를 다 마치는데 11년이 걸리 며, 이런 참회의 기회도 일생에 한 번만 주어진다고 하였 다. 그 외 그레고리오의 저서로는 70인 역본의 《전도서 해설》과 《하느님의 비수난성(非受難性)과 수난성》이 있 다. ※ 참고문헌  H. Crouzel, 《SCH》 148, Paris, 1969 / V. Ryssel, Gregorius Thaumaturgus, Leipzig, 1880 / A. Knauber, Das Anliegen der Schule zu Cäsarea, Münch. Tehol. Zeit. 19(1968), pp. 182~203 / H. Crouzel, L’Ecole d’Origène à Césarée, 《BLE》 71(1970), pp. 5~27 / E. Marotta, I neologismi nell’orazione ad Origene di G. il T, 《VetChr》 8(1971), pp. 241~256, 309~317 ; 10(1973), pp. 59~77 ; 13(1976), pp. 81~86 / J. Quasten, Patrologia I, Torino, 1971, pp. 387~391. [李瑟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