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니사의 (335?~395?)
Gregorius, Nyss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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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투르의 그레고리오.
성인. 주교. '가빠도기아 3교부' 의 한 사람. 대(大)바 실리오의 동생. 니체아 그리스도론의 완성자. 바실리오 와 동생 베드로(Petrus, Sebaste) 및 그 자신이 모두 주교였 고, 맏누이 마크리나는 수녀원장이었다. 그는 가빠도기 아의 가이사리아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콘스탄티노플과 아테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후 가이사리아에서 잠 시 가르쳤을 때 아버지에게 수사학과 철학을 배웠다. 그 후 교회의 강사로 봉직했으며 364년경 수사학자가 되었 다. 370년 형이 가빠도기아의 가이사리아 주교가 된 후 이듬해 그 근교 니사의 주교로 추거되자, 그 동안 이름없 던 니사는 호모우시오스(homoousios)의 아성으로 유명해 졌다. 아리우스파인 발렌스 황제는 전통파 압박 정책을 취하였기 때문에, 그레고리오가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선 언한 제1차 니체아 공의회의 신앙 고백자였던 만큼 그는 아리우스파의 책모로 376년 추방되었다가, 황제가 죽은 뒤인 378년에 복직되었다. 바실리오의 사망(+379) 후 그레고리오는 형의 뒤를 이어 교회 정치적인 과제뿐만 아니라 활발한 문학적 활동도 전개하였다. 379년 멜레 시우스(Meletius)에 의해 소집된 안티오키아 종교 회의에 참석한 후, 폰투스(Pontus) 지방의 안니 시에 있는 수녀 원의 원장인 누이 마크리나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누이 는 병으로 다음날 저녁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형 바실리 오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누이까지 세 상을 떠난 것이다. 마크리나의 지혜로운 가르침과 거룩 한 생활은 그레고리오와 바실리오, 두 사람에게 똑같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레고리오는 주교 선거 감독을 위해 이보라와 세바스 테 두 곳을 방문하였을 때 자신의 뜻과는 달리 세바스테 의 주교로 선출되었으나 동생 베드로에게 주교직을 위임 하고 니사로 돌아갔다. 그 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에 출석,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 주교 취임 축하 연설을 하였다. 이 공의회의 결과를 승인하는 황제 테오도시우 스 1세(379~395)의 칙령에서 그레고리오는 전통 신앙을 지키는 가이사리아의 헬라디오와 멜리테네의 오트레이오와 함께 '규범적인 종교 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정통 신앙을 인정받기 원하는 다른 주교들은 이들과 유 대 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그는 이 공의회의 위탁으로 아 라비아 지방의 수도인 보스타라의 주교직 논쟁을 조정하 였으며 그의 분투 노력에 의해 아폴리나리우스파는 이단 으로 선고되었고 그 후 적어도 세 번 콘스탄티노플 공의 회(383, 385, 394)에 출석하였다. 〔저 서〕 가빠도기아 교부들 중의 유일한 저술가였던 그레고리오의 저서는 다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교리적 저서 : 그레고리오가 쓴 신학적 논쟁서들 가운 데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네 권으로 이루어진 《에우 노미우스 논박》(Adversus Eunomium, 380~383?)이다. 에우 노미오의 《변론을 위한 변론》과 《신앙 고백》에 대해 매 우 상세한 비판을 하고 있는 이 저서에서 그레고리오는 성자와 성령의 신격에 대한 형 바실리오의 견해를 명백 하게 변호하였으며, 제1차 니체아 공의회의 정통 교리를 뛰어나게 논증하였다. 그리고 《아폴리나리우스파 논박》 (Adversus Apollinaristas)에서는 그리스도의 육체가 하늘에 서 내려왔으며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정신(nous)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유설(謬說)을 반박하 고 그리스도 안에 두 성이 결합되어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의 가장 중요한 교리적 저서인 《대 교리 문답》은 교회 의 지도자들을 위해 그리스도교의 전반적인 교리에 관한 사변적인 설명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니체아 공의 회 이후부터 구분된 개념인 '테올로지아' (theologia)와 '오이코노미아' (oikonomia)를 명확히 구분하였다. 플라 톤의 파이돈을 본보기로 삼은 대화집 《영혼과 부활에 관 한 대화》는 인간의 기원, 영혼, 죽음, 불사, 부활 등에 관 한 자신의 견해와 누이 마크리나의 견해를 싣고 있다. 성서 해석에 관한 저서 : 두 명의 다른 가빠도기아 교 부(형 바실리오,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와 마찬가지로 오리 제네스의 성서 해석 원칙을 따르고 있다. 창조사를 다루 고 있는 두 작품 《인간의 창조자에 관하여》와 《헥사메론 의 변론》은 바실리오의 《헥사메론》의 성서 주석을 보충 한 것으로 성서 본문에 관한 잘못된 견해를 지적하고 있 는데 이 두 저서에서 그레고리오는 성서의 문자적 의미 를 중요시했다. 이 밖의 다른 성서 해석 작품에서는 대부 분 우의적(寓意的)인 해석을 사용하고 있다. 《모세의 생 애》에서는 모세의 삶에서 하느님께 향한 영혼의 신비적 고양의 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으며, 《시편의 표제》에 서는 시편의 분류와 표제를 우의적인 해석을 통하여 덕 과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그레고리 오의 가장 원숙한 작품인 《아가서 주석서》에서는 인간의 영혼(교회)과 하느님의 일치가 결혼식의 표상을 통해서 설명된다. 위의 두 작품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그레고리 오가 위대한 신비 신학자임을 거듭 증명하고 있다.
수덕서 : 그레고리오의 첫 작품인 《동정성에 관하여》 는 바실리오의 수도원 규칙을 거론하면서 아울러 동정성 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싣고 있으며, 《마크리나의 생애》 는 그의 누이에 대한 교훈적인 전기이다. 그리고 금욕서 에 속하는 네 권의 영적 소책자 《De professione christiana》, 《De perfecta christiani forma》, 《De instituto christiano》, 《De castigatione》가 있다. 연설문과 설교문 : 수적으로 많지 않으나, 다루어진 주제는 다양하다. 또한 지금까지 보존된 30여 편의 편지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성지 순례를 과대 평가하지 말 라는 제2 서간문이다. 〔신학적 견해〕 그레고리오의 삼위 일체 사상은 엄격한 아리우스주의, 유대교의 일신론, 이교도의 다신론에 대 한 반박에 신학적 근거를 두고 있다. 가빠도기아 사람들 과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오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차등이 없는 하나의 신적 실체를 강조하며, 구원 경륜에 있어서 삼위 각각의 고유한 역할을 규정한다. 모든 은총 을 나누어 주는 성령, 창조의 중재자이며 인간의 모습을 취한 성자, 모든 사물의 근원인 성부라는 이 특성들은 바 뀔 수 없으며, 각각의 자주성에서 위격을 규정하였다. 그 리고 세 위격은 대조를 이루나 서로 종속되지 않고 항상 삼위 일체적 관계에서만 구분된다. "성부는 성자 없이, 성자는 성령 없이 생각될 수 없다. 성자를 거치지 않고서 는 성부께 갈 수 없듯이(요한 14, 6), 마찬가지로 성령 안 에 있지 않으면서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다(1 고린 12, 3). 그러므로 ··· 성부, 성자와 성령은 항상 함께 완전한 삼위 일체 안에서 고찰된다." 그레고리오의 그리스도론은 그가 에우노미오의 과격한 아리우스적 그리스도론을 반박하여 그리스도의 완전 한 신성뿐 아니라 완전한 인성을 주장한 데서 분명히 나 타난다. 그리스도 안의 두 성의 일치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근본적으로 '혼합' 의 범주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레고 리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은 구원론적인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의 강조는 그리스도를 중재자로 내세우는 논제에서 강조된다. 육화에 근거를 둔 그리스도의 이 중재성은 모 든 인간을 하느님과 만나게 하고 그와 결합시킨다. 한편 그레고리오의 종말론은 오리제네스의 영혼 선재(先在) 사상을 단호하게 거부하나, 옛 상태로의 '회복' (apokatastasis) 개념은 받아들여 이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는 이 개념을 약속된 부활과 동일시하였다. ※ 참고문헌 M. Aubineau, Grégoire de Nysse, Traité de la Virginité, Paris, 1966 / D.L. Balas, Gregor v. Nyssa, 《TRE》 14 / J. Barbel, Gregor v. Nyssa, Die große katechetische Rede, Stuttgart, 1971 / W. Blum, Gregor v. Nyssa, Über das Wesen des Christl. Bekenntnisses, Über die Vollkommenheit, Über die Jungfräulichkeit, Stuttgart, 1977 / J. Daniélou, Platonisme et théologie mystique, Paris, 1954 / ——, La chronologie des oeuvres de Grégoire de Nysse, 《StPatr》 7 / ——, Grégoire de Nysse, La vie de Moïse, Paris, 1968 / H. Dorrie, Gregor v. Nyssa, 《RAC》 12 / M.N. Esper, Allegorie u. Analogie bei Gregor v. Nyssa, Bonn, 1979 / G. May, Gregor v. Nyssa in der Kirchenpolitik seiner Zeit, 《JÖBG》 15 / P. Maraval, Grégoire de Nysse, Vie de s. Macrine, Paris, 1971 / ——, Grégoire de Nysse, Lettres, Paris, 1990 / C. McCambley, S. Gregory of Nyssa, Commentary on the Song of Songs, Brookline, 1987. [河聖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