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敎
[라]Christianitas · [영]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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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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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하느님이 뽑은 왕임을 선언하는 사무엘.
그리스도라 불리는 인물 예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예수가 참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χριστος, Christus)이시다' 라는 신앙 위에 형성된 종교. 이 신앙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 를 치유하며 세리, 과부, 창녀 등 소외 계층과 공동체를 이루면서 모든 이에게 회개를 부르짖고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선포하다가 유대인의 고소로 로마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처형되었으며 3일 만에 부활한 분 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가와 부활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유일신인 삼위 일 체 하느님을 고백한다. 그리스도교라는 단어 크리스티아 니스모스(Χριστιανισμός)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에게 서 처음으로 찾아볼 수 있다(Magn. 10, 13 ; Phld. 6, 1;Rom. 3, 3). 이냐시오는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생활 양식을 유 대교(유다이스모스,Ἰουδαισμός)와 구별하여 이 단어를 사용 했으며, 후에는 이교도(엘레위스모스, Ελλημισύμος)에게도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이 표시는 애매하여 똑같은 단어 가 때로는 서로 다르게 이해되기도 하였으니, 오늘날 다 양한 그리스도교 교파 때문에 다양한 그리스도교 상(像) 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현상 때문에 그리스도 교를 한마디로 정의 내려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 니다. 신자수는 오늘날 약 12억(가톨릭 9억 5천만, 프로테 스탄트 2억 5천만)에 달한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 가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속 하는가, 아니면 그 현상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 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속한다 해도 구체적으로 어떤 교회를 말하는가 하는 문 제가 생겼다(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 등). 더욱이 비가톨 릭 신자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고, 활동적인 교회 구 성원이 아닌 사람에게도 은총과 의화가 가능하며, 나아 가 교회 밖에서도 성사의 유효성이 인정된다는 가톨릭의 가르침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교회 또는 가톨 릭 교회와 동일시될 수 없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교에 관 한 진술이 그대로 교회에 관한 진술에 적용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볼 때, 교회가 단순히 그리스 도를 믿는 신자들의 집단만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리 스도교는 사회적 제도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 주어져 있다. 하느님의 구원 행위는 구체적으로 하나의 가톨릭 교회 안에서 체험되며, 이 때문에 그리스도교에 관한 진술은 구체적인 교회에 관한 진술 안에 완성되어 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는 두 가지 방식 에 따라 이야기될 수 있다. 순수한 그리스도교의 자기 이 해와 '외부로부터' , 즉 아직 믿지 않는 이들(그러나 필연 적으로 그리고 늘 가능한 신앙의 은총의 빛 아래 서 있는 사람 들)이 그리스도교를 바라본 바에 따른 진술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교에 관해서 교의적이며 기초 신학적 인 방식으로 진술할 수 있다.
I . 형성 배경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으며, 예수라는 인물과 그리스도(히브리어로 메시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탄생하였다. 처음 예수의 추종자들 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힘없이 죽자 실망과 당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나, 곧 그에게 붙여진 '자칭 메 시아' 라는 죄목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면서 예수를 참 메 시아로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즉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메시아의 의미를 벗어나 남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를 희생한 예수가 인류 구원을 위한 참 메시아라는 것이었 다. 메시아 사상은 본래 유대 왕조 시대에 그 근원을 두 고 있다. 왕조 다윗 가문은 신적 합법성을 하느님께서 친 히 다윗의 후손을 당신의 아들로 받아들여 그 아버지가 되리라(2사무 7. 14 ; 시편 89, 3-4)는 예언, 즉 다윗의 아 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당신의 아들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는 예언에서 찾아냈다. 대관식 때 왕이 하느님의 아들로 지목된다(시편 2, 7)는 진술도 같은 목적으로 쓰여졌다. 이스라엘은 몰락한 시대, 특히 기원전 587년경 성전이 파괴된 후에, 야훼 자신을 통해서(시편 130편), 모세의 모 범을 따른 한 예언자를 통해서(신명 18, 15. 18), 선택받 고 또 영으로 충만한 야훼의 종이 가난한 이들에게 파견 됨을 통해서(이사 61, 1 이하), '다윗의 아들' 인 베들레헴 출신의 한 임금을 통해서(2사무 7, 12 ; 미가 5, 1-4) 구원 되리라는 기대를 가져왔다. 이상적인 시대로서의 옛 왕 조의 상황을 되새기며 다윗과 같은 구원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구원자의 모습이 왕이나 대사제, 또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리라고 믿었다. 이 모습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 직책 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유로 축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성유로 축성된 자를 메시아로 불렀고 그 메시아가 그리스어로 크리스토스(Χριστος)였다. 성유로 축성된 자는 동시에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지도 자, 구원자로 기대되었다. 기원전 167년 마카베오 반란 후 시대에는 이 예언자적 · 메시아적 인물의 기대가 종종 묵시적인 열심한 개개인에게 나타나는 미래의 형상으로 대체되거나 이와 혼동되었다. 즉 "하느님은 마지막 날에 하늘로부터 전세계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이사 65, 17 ; 묵시 21, 1 이하), 또는 "하늘의 구름을 타고 '사람의 아 들' 과 같은 이가 압박과 억압에 종지부를 찍고 하느님의 다스림을 세우기 위해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다니 7, 13 이하)는 등의 상상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개개인에게 걸 었던 희망이 죽은 의로운 자들이 무덤으로부터 부활하여 새 세상의 삶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이야기도 포함하게 되었다(다니 12, 2). 헬레니즘 사상의 영향으로 영혼의 불 사성(不死性)에 대한 사고도 생겨났으며(지혜 3, 1-8), 예 수의 출현을 전후한 수십 년 동안의 로마 제국 치하에서 는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하느님이 곧 간여 하리라는 열망이 종말론적 및 묵시적인 임박 기대와 관 련해서 더해 갔다. 이러한 기대감은 쿰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이들이 공동체를 형성하여 로마에 대항한 것, 열성파(열혈당) 운동이 형성된 것(Flavjos Bell I 564 ; V 98~205), 사막에서 임박한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도록 회개와 세례를 부르짖은 세례자 요한의 등장 등의 모습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는 이러한 때 태어나(기원전 6~7년경 아우구스투스 황 제 때), 28~30년경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요한으로부 터 세례를 받고, 하느님 나라가 임박했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요한과 달리 지금 하느님 나라가 왔고 지 금 하느님의 다스림이 시작되었기에 회개해야 한다고 선 포하였다. 회개란, 지금 하느님이 현존하기에 이제까지 와는 다르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데에 대한 신뢰였다. 구원도 대개의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처럼 로 마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지배로부 터, 말하자면 인간을 노예화하고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모든 악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이해하였다. 예수의 행위에 는 권위가 있었고 그 행위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고 대하던 구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표징으로 이해되었다 (루가 10, 18 ; 11, 20). 이에 따라 예수는 자신을-제2, 제3 이사야의 예언 속에서-가난한 이들을 위한 약속된 평화의 사자로 이해했으며(이사 52, 7 : 61, 1 이하 ; 루가 4, 18), 그의 말씀과 행위는 사명 의식으로 투철하였다. 예수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기와 하 느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나타내 보여 다른 예언자나 율법학자들과 차이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예수는 전 이 스라엘의 회개를 요구하면서 하느님이-예언적, 묵시적 표상에 따라-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민족을 위하여 약 속된 구원을 실현시켜 주리라고 확신하였다. 이런 목적 으로 예수는 제자들을 불러모았으며 그중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뜻에서 열둘을 선택하였다. 처음 얼 마 동안 예수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곧 백성의 지도자들로부터 그리고 나중에는 백성들로부터 저항에 부딪쳤다. 특히 예수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율법 해석 을 비판하고, 그들의 율법에 대한 형식적인 준수를 비판 하고 나선 것은 충돌의 큰 원인이 되었다. 사두가이파 사 람들도 예수가 그들이 성전 예배를 악이용하는 것을 비 판하자 반발하였다. 30년경 예수는 그들의 고발로 체포 되고 재판을 받았으며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의 총독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정치적 죄목으로 십자가형 을 받게 되었다. 예수는 자신의 이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으며, 최후의 만찬 때 열두 제자에게 자기가 무자비하게 잡혀 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였고, 자기의 이 외적인 좌절에도 불구하고 공고된 하느님의 다스림은 자신의 대리적 희생 과 이로써 제자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위임을 통해 실현 될 것임을 암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체포 되고 십자가형을 받은 것은 제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 고 걸림돌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도망치고 말았으며 예 수가 죽을 당시에는 어머니 마리아를 포함한 몇몇 사람 들만이 그 장면을 지켜 볼 뿐이었다. 그러나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를 보고 놀라 도망쳤던 베드로를 포함한 열두 제자 그리고 한때 예수의 부활을 믿고 고백하는 무리들 을 박해하던 바오로와 다른 이들은 곧 독특한 방식으로 (1고린 15, 5-8) 십자가형을 받은 나자렛 예수가 죽음의 영역으로부터 부활하여 권세 있는 주님으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을 체험하고(로마 10, 9), 그가 참으로 기다리 던 '주님이요 그리스도' (사도 2, 36)이며, 하느님의 아들 (갈라 1, 16 : 2고린 4, 6)이라고 선포하였다. 뿐만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를 믿어야 하며 그의 이름으로 세 례를 받아야 한다(사도 2, 38)고 선포하였다. 메시아를 새 롭게 해석한 것이다. 동시에 유대적 · 묵시적 표상에 따 라 그리스도의 재림(parusia)에 대한 임박한 기다림도 동 시에 선포의 내용이 되었다(1데살 1, 9 이하). 이렇게 해 서 제자들의 부활 체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는 신앙 고 백의 핵심에 서게 되었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그 리스도를 형이상학적이나 윤리적 진리를 발견한 자(부처 나 공자), 자기에게 계시를 준 하느님의 예언자나 파견자 (무함마드), 또는 자신을 절대적 유일신의 강생이나 인격 화된 것의 하나(힌두교의 크리쉬나)로서가 아니라 신앙의 내용으로 보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에 처형되고 부활한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고, 우주의 중심이며 지배자이고, 구원자이며 스승이고, 역사의 전 환점이며 완성자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런 신앙은 유 대교와의 마찰을 가중시켰고, 율법에 의한 구속을 부정 하기에 이르렀다. 나자렛 사람 예수의 추종자들은 안티 오키아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이라 불리게 되었고 (사도 11, 26), 소위 사도 공의회(49)에서는 유대인이 아 닌 이방 민족들도 유대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함이 없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새로운 도리"(사도 19, 9)와 "나자렛 사람들의 종파" (사도 24, 5) 로서의 예수 운동은 유대교인들에게 탄핵을 받았고, 결 국 얼마 안 가서(최종적으로 70년 이후) 유대교로부터 제 외당하였다. 예수의 일과 그의 죽음과 부활 체험을 고백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새 백성, 참 이스라엘, 유대 인과 이방인으로 된 하느님의 교회로 이해하였다. 그리 스도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원시 교회의 성 찬을 거행하였다. 바오로는 처음에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으나 개종하여 예수의 죽음에 그리스도적 의미를 심화시키는 데 본질적으로 기여하게 되었고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게 되었다. 바오로에게 있어서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써보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예수는 이러한 때 태어나(기원전 6~7년경 아우구스투스 황 제 때), 28~30년경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요한으로부 터 세례를 받고, 하느님 나라가 임박했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요한과 달리 지금 하느님 나라가 왔고 지 금 하느님의 다스림이 시작되었기에 회개해야 한다고 선 포하였다. 회개란, 지금 하느님이 현존하기에 이제까지 와는 다르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데에 대한 신뢰였다. 구원도 대개의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처럼 로 마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지배로부 터, 말하자면 인간을 노예화하고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모든 악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이해하였다. 예수의 행위에 는 권위가 있었고 그 행위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고 대하던 구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표징으로 이해되었다 (루가 10, 18 ; 11, 20). 이에 따라 예수는 자신을-제2, 제3 이사야의 예언 속에서-가난한 이들을 위한 약속된 평화의 사자로 이해했으며(이사 52, 7 : 61, 1 이하 ; 루가 4, 18), 그의 말씀과 행위는 사명 의식으로 투철하였다. 예수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기와 하 느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나타내 보여 다른 예언자나 율법학자들과 차이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예수는 전 이 스라엘의 회개를 요구하면서 하느님이-예언적, 묵시적 표상에 따라-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민족을 위하여 약 속된 구원을 실현시켜 주리라고 확신하였다. 이런 목적 으로 예수는 제자들을 불러모았으며 그중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뜻에서 열둘을 선택하였다. 처음 얼 마 동안 예수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곧 백성의 지도자들로부터 그리고 나중에는 백성들로부터 저항에 부딪쳤다. 특히 예수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율법 해석 을 비판하고, 그들의 율법에 대한 형식적인 준수를 비판 하고 나선 것은 충돌의 큰 원인이 되었다. 사두가이파 사 람들도 예수가 그들이 성전 예배를 악이용하는 것을 비 판하자 반발하였다. 30년경 예수는 그들의 고발로 체포 되고 재판을 받았으며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의 총독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정치적 죄목으로 십자가형 을 받게 되었다. 예수는 자신의 이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으며, 최후의 만찬 때 열두 제자에게 자기가 무자비하게 잡혀 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였고, 자기의 이 외적인 좌절에도 불구하고 공고된 하느님의 다스림은 자신의 대리적 희생 과 이로써 제자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위임을 통해 실현 될 것임을 암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체포 되고 십자가형을 받은 것은 제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 고 걸림돌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도망치고 말았으며 예 수가 죽을 당시에는 어머니 마리아를 포함한 몇몇 사람 들만이 그 장면을 지켜 볼 뿐이었다. 그러나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를 보고 놀라 도망쳤던 베드로를 포함한 열두 제자 그리고 한때 예수의 부활을 믿고 고백하는 무리들 을 박해하던 바오로와 다른 이들은 곧 독특한 방식으로 (1고린 15, 5-8) 십자가형을 받은 나자렛 예수가 죽음의 영역으로부터 부활하여 권세 있는 주님으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을 체험하고(로마 10, 9), 그가 참으로 기다리 던 '주님이요 그리스도' (사도 2, 36)이며, 하느님의 아들 (갈라 1, 16 : 2고린 4, 6)이라고 선포하였다. 뿐만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를 믿어야 하며 그의 이름으로 세 례를 받아야 한다(사도 2, 38)고 선포하였다. 메시아를 새 롭게 해석한 것이다. 동시에 유대적 · 묵시적 표상에 따 라 그리스도의 재림(parusia)에 대한 임박한 기다림도 동 시에 선포의 내용이 되었다(1데살 1, 9 이하). 이렇게 해 서 제자들의 부활 체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는 신앙 고 백의 핵심에 서게 되었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그 리스도를 형이상학적이나 윤리적 진리를 발견한 자(부처 나 공자), 자기에게 계시를 준 하느님의 예언자나 파견자 (무함마드), 또는 자신을 절대적 유일신의 강생이나 인격 화된 것의 하나(힌두교의 크리쉬나)로서가 아니라 신앙의 내용으로 보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에 처형되고 부활한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고, 우주의 중심이며 지배자이고, 구원자이며 스승이고, 역사의 전 환점이며 완성자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런 신앙은 유 대교와의 마찰을 가중시켰고, 율법에 의한 구속을 부정 하기에 이르렀다. 나자렛 사람 예수의 추종자들은 안티 오키아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이라 불리게 되었고 (사도 11, 26), 소위 사도 공의회(49)에서는 유대인이 아 닌 이방 민족들도 유대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함이 없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새로운 도리"(사도 19, 9)와 "나자렛 사람들의 종파" (사도 24, 5) 로서의 예수 운동은 유대교인들에게 탄핵을 받았고, 결 국 얼마 안 가서(최종적으로 70년 이후) 유대교로부터 제 외당하였다. 예수의 일과 그의 죽음과 부활 체험을 고백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새 백성, 참 이스라엘, 유대 인과 이방인으로 된 하느님의 교회로 이해하였다. 그리 스도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원시 교회의 성 찬을 거행하였다. 바오로는 처음에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으나 개종하여 예수의 죽음에 그리스도적 의미를 심화시키는 데 본질적으로 기여하게 되었고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봉 사하게 되었다. 바오로에게 있어서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써보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 이었다.
II . 발전과 역사
1 ) 사도들과 그들의 직계 제자들이 죽고 난 후 그리스 도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로마의 지배자 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다 양한 사상적 조류(특히 유대교, 그리스 철학, 그노시스주의, 밀교)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만 하였다. 이런 일련의 논 쟁 중에서 성서의 정경(canon)과 신앙 규칙(regula fidei)이 정해지고 그리스 철학의 용어와 개념들이 그리스도 신학 의 정립에 기여하게 되었다. 2)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종교 자유 법령으로 그리 스도교는 박해에서 해방되어 '합법적인 종교 (religio licita)가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의미도 대단히 팽배해져 황 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 왕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교회가 자기의 목표와 과제 를 실현하기 위해 로마 제국의 정치적 구조를 본뜨고, 드 디어는 제국주의 교회의 탄생을 초래하는 동기가 되었 다. 주교들은 국가의 고위 관료와 원로 대열에 끼게 되었 고 휘장을 두르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황제는 국가의 일 치를 위해 그리스도교 일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교회의 분열은 곧 국가의 분열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콘스탄틴 황제가 아리우스(+336) 때문에 발생한 하느님 의 친자성(親子性)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니체아 공의회 (325)를 소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니체아 공의회 의 결정은 뒤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에페소 공의 회(431), 칼체돈 공의회(451)에서도 천명되었다. 테오도시 우스 황제(379~395)와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 치하 에서 그리스도교가 계속 제국주의 교회로 발전되면서 서 방에서는 교황의 권위가 강화되었다. 박해 이후 적지 않 은 그리스도인들이 도시를 벗어나 사막으로 들어가 은수 자로서 또는 공동체를 이루어 복음적 삶을 살면서 수도 생활의 기원을 이룬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이들 수도 원에서 동방과 서방의 교회 학자로서 수많은 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3) 5~6세기 프랑크족, 앵글로-색슨족, 게르만족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슬라브 민족이 개종한 것 은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의 특징을 나타내는 데에 일조 하였다. 동서 로마의 분열 후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제2의 로마가 되었고 콘스탄티노플 주 교는 교황(로마의 주교) 다음가는 명예와 권위를 누렸으 며 그의 권력은 동방 교회 영역을 벗어난 곳까지 영향을 미쳤다. 동방 교회(비잔틴 교회)는 구원을 '진행' 으로, 즉 내재적 삼위 일체 경륜이 하느님의 인간 됨에서 시작하 여 역사 안에 나타나고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세상 을 밝게 비추는 진행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신학적 동기가 전례의 중심을 이루고 이 신비의 거행이 교회의 본질과 삶의 중심이었다. 동방 교회에서는 전례, 신학, 성화상 공경 등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 담겨 있는 것이 표준적으로 고수되었다. 카알 대제가 서로마 제국의 황 제가 됨(800)으로써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대립은 더 욱 첨예화되었다. '성자로부터도' (필리오궤, filioque) 교리 이해에 일치를 보지 못한 데서 동방과 서방이 서로 분열 되었다.
1054년 이슬람의 침략으로(1453년 콘스탄티노플 점령 때 까지) 동로마 제국이 완전히 붕괴되고, 정교회(Orthodoxie) 의 중심이 러시아로 옮겨져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가 되 었다. 동방 교회가 전례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근대에 이 르기까지 본질적으로 전통적 형식을 고수하고 있는 데 비해 서방 교회는 로마로부터 영향을 받아 법과 법률적 규정에서 발달을 보였다. 아일랜드스코틀랜드 선교사들 에 의해 고대 교회의 참회 실천이 더욱 발전되었다. 상징 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는 아일랜드인의 사고 방식으로 성체성사 안의 그리스도 참 현존 문제와 신심의 새로운 형태 때문에 논쟁이 발생하였다. 교황과 황제의 충돌이 잦았으며 성직자 서임(invesitur)이 논쟁점이 되었다. 이 시대의 세세한 실천들은 여러 면으로 지배 계급(성직자) 과 민중층의 종교 지식 결핍으로 특징 지어진다. 민중들 은 당시 봉건 체제에 따라 그들의 군주(대부분이 주교)에 대한 순종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으나 교회 안 에는 여전히 수많은 미신적인 이교도 풍습이 실천되고 있었다. 참 종교적 삶은 교부들의 신학이 꼼꼼하게 전수 된 수도원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신학적 사고에 따라 지어진 건축물 외에 심오하게 그려진 세밀화(細密畵, miniatur)에서도 증명된다. 종종 종교적 이상주의가 정치 적 관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4) 11~13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의 세력 확장에 대해 서방 교회는 십자군 운동으로 맞섰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이때부터 시작된 아랍 세계와의 무역, 이슬람 과의 만남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능하게 된 아리스토텔 레스 사상 수용의 결과로 중세기 말경 사고에 변화가 일 어났으며, 중기(中期) 스콜라 철학이 집대성되었다. 스 콜라 철학은 성서에서 자의(字意, sensus literalis)를 독자 적으로 해석하고, 자연을 관찰하고, 기적의 첫 원인과 둘 째 원인을 구분하고, 성서가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의 역 사적 사건에 관심을 같이하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이는 교회의 개혁 수도원(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과 특별히 예수의 삶에 방향을 맞춘 이들의 열심에 의해 장려되었 다. 특히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라 불리고, 아리스 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빌려 스콜라 철학의 체계를 완성 시킨 도미니코회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1266~1274, 제3권 30문)은 스콜라 철학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이런 사상적 변화는 중세기 의 그림 또는 수난과 부활 연극 등에도 잘 나타난다. 교 황 및 반교황의 태도는 공의회의 권한 문제를 거론하는 동기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로마와 군주 주교와 무 식한 성직자들의 폐해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 쇄신에 대한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교회 군주의 관심에서 일 어난 전쟁들, 페스트와 기아, 그리고 지옥 벌의 위협은 민중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심어 주었다. 이 때문에 많은 신자들은 성지 순례를 떠나고, 유해 숭배와 대사(大赦) 에 자신들을 맡겼다. 이것들은 또 종종 마술과 연관되어 있었고 설교가들은 이를 악용하기도 하였다.
5) 위클리프(+1384)와 후스(+1415) 의 교회 쇄신 시도에 이어 마르틴 루터(+1546)의 비판은 종교 개혁의 효시가 되었다. 당시 발달한 인쇄술로 인해 루터의 저서들과 그의 성서 번역이 널리 전파되면서 그의 비판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팽배해 있던 군주들의 정치적 권력 다툼과 로마의 이해 부족으로 루터가 이끄는 종교 개혁은 두번째의 교회 분열을 가져왔다. 이 분열은 츠빙글리(+1531)와 칼뱅(+1564)으로 개혁가들 을 분리시켰고 또 얼마 후에는 영국 성공회의 분리(1534)를 초래했다. 개혁가들은 '성서만으로' (sola scriptura)의 정신 으로 오직 신앙 안에서(sola fides) 하느 님께만(solus Deus) 영광을 드리려 하였다. 프로테스탄트 원리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방침으로 거의 구 두점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감받았다고 주장하는 '성서 만' 을 인정하였고, 로마 교회는 반종교 개혁 운동을 통 해 쇄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트리엔트 공의회, 1543 ~1563). 그리하여 현존하는 폐해를 극소화하고자 사제 양 성과 주교의 교구 순시, 성인 공경, 성체 신심 등을 통하 여 교회 생활을 쇄신하려 하였다. 성인들과 수도원 창설 자들, 옛 수도원 쇄신자들의 활동이 교회 생활 쇄신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반종교 개혁을 관철시키는 데 에 있어서도 종교 개혁에서처럼 종종 폭력적인 일이 일 어났다. 바로크식 건축물, 미술, 시, 문학에서 반종교 개 혁이 예술적으로 반영되었다. 신대륙 발견 후에는 선교 활동이 재개되고 처음으로 다른 종교 및 문화와의 만남 이 이루어지지만, 이 만남은 비그리스도교 문화의 파괴 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6) 데카르트(+1650) 이후 사상사적으로 '주체로의 전 환' 이 일어나고 세계는 자기에게 마주 대하여 있는 대상 으로 관찰되었다. 이로 인해 자연 과학이 발달하게 되었 고 그 방법론은 곧 모든 학문의 모델이 되었다. 이렇게 촉진된 실증주의-오직 '사실' 로 증명된 것만이 실제로 인정된다-는 결과적으로 이 세계로부터 신을 몰아내도 록 하였으며(理神論, deismus), 이어지는 세기에서는 점 점 더 경험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세계에 집중하고(세속 화) 지상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는 18세기 계몽주의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시기에 대해 소위 '암흑의 중세' 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게 하 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미성년' 으로부터 해방을 요구하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세속화(예컨대 요셉주의) 와 프랑스 혁명(1789)에도 영향을 끼쳤다. 18세기의 영국 의 이신론자들을 선두로 일련의 역사 비판적 성서학자들 은 그때까지 자명한 것으로 인정되어 오던 여러 진술들 (기적, 부활, 하느님의 친자성 등)을 부정하였다. 여러 주석 가들은 '맹신' 에 대해서 소위 안전한 연구 결과를 내놓 았다(예수의 생애 연구). 18~19세기에 합리주의 신학자 들은 성서에서 인간이 자기 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진 리들의 '계시' 만을 보고자 하였으며, 복음의 메시지들을 도덕적 가르침으로 축소시켰다. 물론 예리한 연구도 있 어 성서와 교회 전통을 종교사적 비교의 평가 등을 통해 지금까지보다 더 연구하기도 하였다.
19세기 말 비판적 연구는 여기에 더하여 다원(+1882) 의 진화론과 포이에르바하(+1872)와 프로이트(+1939)의 이론 등으로 도전받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각 교파는 그들 편에서 성서 진술의 역사성을 변호하거나 또는 가 톨릭 교회에서처럼 신앙을 위협하는 경향들을 차단시키 며 대항했다. 19세기 프로테스탄트의 경건주의(pietismus) 와 가톨릭의 복고주의(restauratio : 다양한 세속화 경향에 대하 여 사실주의와 연관된 반응) 경향과 함께 그리스도교는 가 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이든 수도원 설립, 세계 선교, 교 회 건축의 부문 등에서 부분적으로 전성기에 이르렀다. 당시 민족 국가적 시도가 강화되었지만(독일 문화 전쟁, 1848) 이러한 복고주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톨 릭 교회에서는 교황 수위권의 강화를 불러일으키는 계기 가 되었으며, 이렇게 해서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에서는 교황의 무류성(ex cathedra)이 선포되었다. 새로운 학문의 인식을 토대로 한 여러 가톨릭 학자들의 신학 시도가 교황 비오 10세(+1914)에 의해 '근대주의'(modernismus)로 판결받았으며, 성직자 는 반근대주의 신앙 선서를 해야 했다. 한편 프로테스탄트에서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umus) 성격을 띤 수많은 교 파가 형성되었다. 이 시대에 가톨릭 신심 운동으로 마리아 공경이 그 절정에 달하였다. 식민화와 공업화로 가속화된 경제 개발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으며, 산업 국가의 부와 다른 나라의 가난 사이에 잘못된 관계를 가져왔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그리스도교는 이 문제에 대해 다만 주저하면서 접근하였고 주로 개별 대책만가지고 있을 뿐 전체인 안목이 없어민족간의 소외가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7)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모든 인간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에 관련하여 기대를 걸었지만 이 기대는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따른 속권과 왕권의 결합에 종지부, 라테란 조약, 반교회적 사회주의 영향 등의 정치적 변화들은 성서와 전통에 마음을 쏟고 전례 쇄신, 성서 연구, 그리고 교회 일치 운동을 활발히 벌이게 했다. 특히 교회 일치 운동의 공동 작업은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독재 정권(공산주의, 파시즘, 국가 사회주 의)에 의해 무력으로 억압당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교 정 당의 정치 참여도도 높아졌다.
많은 종교학적 개별주의와 현대 통신 수단으로 비그리 스도교에 대한 새롭고 긍정적인 이해도 싹트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쓰라린 경험, 특히 유대인 학살에 대 한 쓰라린 경험으로 많은 그리스도교는 신심과 교회 행 정의 현존하는 형태에 대하여 자기 비판을 할 수 있는 계 기가 마련되었다. '탈(脫)신화화' 의 프로그램(R. Bultmann)이 불러일으킨 '성서를 둘러싼 논쟁' 은 학문이 제기한 여러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 여 주었다. 성서의 언어는 여러 관점에서 현대인의 호기 심(세상의 시작과 종말, 창조에서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상상, 기적 이해 등)을 벗어나 있다. 많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이 새로운 인식을 비판 없이 전수하였는가 하면(예수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인식을 배척하고자 하였다. 8)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함 께 성서학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보이게 되었으며, 교 회의 문호가 개방되어 그리스도교와 현대 세계와의 대화 를 위한 근원적인 발판이 마련되었다. 처음에는 급진주 의와 보수주의 사이에서 진통을 겪기도 하였으나 공의회 는 교회의 쇄신(aggiornamento)을 주창하였다. 이 공의회 의 영향으로 제3 세계 신학의 전개 토대가 마련되어, 남 아메리카에서 해방신학, 그리고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는 토착화 신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교회 일치 운동과 종 교간의 대화도 적극적으로 장려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자 기의 구원의 절대성을 부인함이 없이 타종교를 인정하고 자기를 하나의 종교로 인식하게 되었다. 무신론과의 대 화도 과감하게 장려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개방은 교회 가 제국주의의 모습을 벗어나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을 찾게 해주었다. 인구 문제, 환경 오염 및 의학의 발달과 첨단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유전자 조작, 원자력, 우주 여행, 대중 홍보 등)에 대한 불안한 문제들에 직면하여 그리스도 교는 엄청난 과제를 느끼고 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 교들이 교회 일치 운동의 협력에서-물론 그들 고유의 사명을 지키면서-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비그리스 도교 1항 : 사목 참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분포율도 유 럽, 북미에서 남미를 비롯한 제3 세계로 그 밀집도가 옮 아 가고 있는 추세이며, 이들의 삶과 문화가 신학의 중심 내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Ⅲ. 본질과 자기 이해
그리스도교 안에는 그 역사에서 빚어진 생활의 다양한 형태 때문에 마치 여러 개의 진리가 나란히 있는 듯한 인 상을 주지만, 이 진리들은 모두 성서적 증언을 축으로 하 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무엇보다도 그리스 도의 친자성(親子性) 물음에 관심을 가졌다. 신약성서를 보면 하느님의 아들이 스스로를 하느님으로 증언하고 있 다. 요한 복음서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일치를 규정하 고자 그리스 철학의 개념인 로고스를 끄집어 낸다(요한 1, 1-15). 성서는 또 성령의 인격성과 신성도 증언하고 있다(요한 16, 7-15). 이 증언들은 한 분 하느님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로 계신다(마태 28, 19)는 하느님의 삼 위 일체성 안에 종합된다. 교회의 세계 공의회들(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에페소, 칼체돈)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신성에 대한 신앙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 그 리고 그리스도의 참 인간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도 교의 모든 교파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신앙 고백 (credo)에 종합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진리는 다음과 같 다. 1)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창조주이며 구원자인 한 분 하느님(유일신)을 신앙한다. 하느님은 지고(至高)의 존재 이며, 지상 세계를 초월하여 있다. 하느님은 철학 특히 순수 철학적 유일신론(monotheismus)이 말하는 '제1 동 자' (動者, prima causa), 또는 저 세상에 있는 지선(至善) 이상의 존재이다. 하느님은 또 신화에서 만나는 '그 어 떤 것' , 그 무엇' 도 아니다. 그는 인격신이다. 인격신이 란 위격 개념(persona)에 나타나는데, 이는 신성과 인성 이 결합하여 하나의 개별적인 (신적) 통합체를 이루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신의 인간화나 인간화된 하느님 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위격신은 성서의 진술에 따르면 하느님은 이 세상을 초월해 있는 초월자이지만 끊임없이 세상과 관계하는 존재, 이 세상 안에서 끊임없 이 창조주로 일하며 인간의 생명에 참여하고 죄와 죽음 에 얽매여 있는 자기의 피조물을 구원하고자 오는 분임 을 말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성(聖)과 속(俗), 선 과 악, 옳음과 그름, 초월과 범주 등의 이원을 초월하여 있는 초월자, 절대자, 절대 거룩한 절대 신비이다. 이 하느님을 그리스도교는 계시의 하느님, 자기 자신 을 전달하는 하느님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어디엔가 에 홀로 계시는 분이 아니며, 또 무감정과 무감각의 하느 님, 변화하지 않는 하느님도 아니다. 그는 살아 계시는 하느님이다. 이는 그의 이름 '야훼' 에 잘 드러난다. 야훼 는 보통 "있는 자 그로다"로 번역되지만 셈어 "있다"는 것은 그냥 실존함보다는 "자신이 살아서 활동함을 아는 존재"를 뜻한다. 그래서 야훼는 "그분은 힘차고 활동적 이고 살아 계시다"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즉 그분은 살 아서 활동하기에 자신을 위해 홀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 다른 이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M. 림벡). 그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 님이다. 이 하느님을 예수는 아빠(αββα), 아버지라 불렀 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에페 1, 3)로, 또 "사랑" 으로 고백한다(1 요한 4, 14. 16).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처참함과 하느님의 침묵 속에서 도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른다면, 하느님의 그 침 묵은 인간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인간에 대 한 존중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에 관한 인간 의 비판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 된다(욥기 38, 41). 그리스 도교의 하느님 신앙은 본질적으로 단순한 인간적 소망 (포이에르바하, 프로이트)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부성적 염려와 사랑, 그 리고 모성적 마음(이사 49, 15 ; 호세 11, 4. 8)에 대한 구 약성서의 진술은 자기 아들을 내어 주고 성령 안에 자기 자신을 전달하는 하느님 사랑의 증거에 대한 진술에서 절정을 이룬다(요한 3, 16 ; 로마 8, 32 ; 2고린 13, 13). 2)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참 하느님이며 참 인간이라 고 믿고 고백한다. 예수는 참 하느님의 아들이며 모든 인 간의 구원자이다. 사도들은 예수를 "아들"(갈라 1, 16 ; 마태 16, 17)로, "주님과 그리스도"(사도 2, 36)로, 그리고 유일한 "구세주"(사도 4, 12 ; 요한 11, 25 : 14, 6)로 고백 하였다. 아들 칭호는 예수에게 부여된 단순한 직무의 칭 호만은 아니다. 아들 칭호는 대단히 일찍 예수 그리스도 에게 적용되었으며(갈라 4, 4 ; 로마 8, 32), 예수가 시간 밖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창조되지 않고 나시었다는 의미 에서 설명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하느님 친자성을 인간적 형태로는 (교의로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 신앙과 성령의 도움으로만 고백될 수 있는 신비 로 이해한다. 아들은 그 기원에서는 모든 점에서 아버지 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homousios). 그러기에 예수의 체 험이 곧 하느님의 체험이다.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 지를 보았다"(요한 14, 9).
예수의 죽음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고는 구약, 특히 유대교가 표현하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인식 에서 심화되었다. 인간은 아담으로 구체화된 전인류의 죄 안에로 짜여졌으며, 자신의 죄를 통해서(로마 5, 13) 그 자체로 영원한 죽음, 말하자면 생명의 근원인 야훼로 부터 멀어진 실존(초기 유대교에서 지옥으로 묘사됨)으로 던 져졌다. 이제 하느님의 아들 자신이 이 죽음과 하느님의 멀리 계심을 받아들임으로써("죽음의 나라〔고성소〕로 내리 시고") 모든 인간에게 타락으로부터 벗어나 구원에 이르 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구원의 차원에서 볼 때 지상의 비애와 생물학적 죽음은 단지 불완전한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 의하면 아들의 구원 행위의 정점은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다. 부활은 단순히 이 세상의 삶으로 돌아옴이 아니라 최종적인 죽음의 극 복이다(갈라 1, 66 ; 1고린 15, 3-8). 인간 각자는 십자가 형을 받고 부활한 자와 하나가 되는 데서 그리스도의 구 원 행위에 참여하게 된다. 자기 혼자서, 자기 자신의 업 적과 노력으로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리 스도를 전혀 모르거나 단지 왜곡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도-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그리스도를 통한 이 구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들에게 구원은 죽을 때 의식되며 이때 최 종적으로 주어진다(열망의 세례 ; 화세). 3) 그리스도교는 생명을 주는 성령을 믿는다. 성령은 하느님 생명의 숨, 아버지와 아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하 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은 요컨대 그 내면적 본질에서 부터 자신을 완전히 선사하는 분이다. 하느님은 자기 사 랑의 대상으로서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에게 자기 생명에 대한 참여를 선사한다. 이는 하느님의 넘쳐 흐르는 사랑 때문이다. 사도 신경은 신의 내적 생명 보다는 '밖으로 향한 신' , 즉 높임을 받은 주님이 그의 힘을 통해 세계사 한가운데에 하나의 새 역사와 새 세계 의 근원으로 현존하는 저 힘으로서의 성령에 관해 말하 고 있다. 즉 예수의 부활과 더불어 개벽한 역사 안에 활 동하는 신의 능력인 성령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들은 하느님의 영〔숨〕이 부활한 자를 통해 아버지로부터 그들에게 선사되었다고 확신하였다(사도 2, 33 ; 요한 15, 16). 초기 그리스도교는 성령의 위격 존재 때문에 어려 움을 겪었다. 그러나 성령에 관한 성서의 진술을 보면(마 태 28, 19 ; 2고린 13, 13 ; 요한 15, 26) 성령에게 완전한 신적인 품위가 부여되어 있는데, 이것이 삼위 일체(한 분 하느님의 세 위) 신비에 관한 진술에서 강조된다. 성령은 하느님을 모두의 아버지로(갈라 4, 6), 십자가 에 못박혀 죽은 나자렛 예수를 모두의 주님으로(1고린 12, 3) 고백하도록 한다. 영은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체를 이루는 형상이며, 교회는 영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교회 는 성령에 따라 성령이 세계에서 역사하는 터전이다. 교 회는 인간들의 집단이지만 삼위 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 앙을 보장해 준다. 영은 교회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것, 즉 하느님의 말씀을 말하게 하고, 교회가 스스로 줄 수 없는 것, 즉 성사를 수여하고, 교회가 스스로 봉사할 수 없는 것, 즉 화해와 설교직를 준다. 또 세례받은 자 모두 에게 하느님의 위대한 행위를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거 행하고 증언하게 하며, 사랑의 삶을 살아 이에 보답하도 록 고무한다. 하느님의 영은 사도들에게만 영감을 주고 그들의 설교만을 고무시키며 그들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 니라 온 그리스도교 백성과 교회의 직무자들을 진리 속 에서 보호한다.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교황에게 주어 진 무류성도 이런 맥락에서 고찰해야 할 것이다. 여러 카 리스마로 표현된 하느님 영에 의한 행동이 물론 그리스 도인들의 자유 의사와 성령을 거스를 수 있는 행위를 막 지는 않는다. 세례받은 자가 부활한 자의 생명에 참여하 며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 은 세례받은 자 안에 작용하는 성령 때문이며, 온갖 고통 과 어려움이 따르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기쁘고 긍정적 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것도 성령 때문이다. 세례받은 자는 선교적으로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진리의 충만함과 생명의 완전한 소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간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치프 리아노의 명제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말은 이 렇게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호소로 해석되어야지 세례받 지 않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저주로 해석되 어서는 안될 것이다.
4) 사도 신경이 말하는 모든 성인의 통공(communio omnium sanctorum)과 죄의 사함도 성령이 역사 안에서 어 떻게 역사하는지를 표현한 것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 다. 모든 성인의 통공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주님의 몸에 의해 하나인 교회로 묶는 성찬의 공동체성 을 뜻한다. 그러므로 쌍토룸(sanctorum : 우리 나라 신경에 는 '성인' 으로 번역되었음)이라는 낱말은 처음에는 사람들 을 가리켰던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찬의 거행에서 하느 님으로부터 선사받은 거룩함을 의미하였다. 그러다가 이 런 선사로써 서로 일치하고 거룩하게 된 사람들도 포함 해서 생각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교회는 성찬으로 서로 하나가 되는 모든 이의 공동체로 이해하기에 이르며, 곧 우주적 폭을 지녀 '성인들의 통공' 은 죽음의 경계를 넘 어서기에 이르렀다. 죄의 사함은 처음에는 세례와 관련 이 있었으나 곧 고해성사까지 포함하는 말이 되었다. 세 례는 처음 사죄의 대성사로, 개심의 일대 계기로 의식되 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또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 을 믿는다. 이 표현 또한 근원적으로는 성령의 힘에 대한 믿음의 전개이며 그 힘의 마지막 성과의 묘사이다. 죽음 을 극복한 삶(영원한 복락)을 죽고 난 후의 '영혼의 복락' 또는 영혼의 '정화' 로 보는 것은 성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낳은 견해로 그리스도교 본질에 속하는 것 이 아니다. 비슷하게 최후 심판 때까지 죽은 자의 영혼이 잠잔다든지, 인간이 완전히 죽어 종말에 다시 완전히 새 창조를 통해 지양(止揚)된다는 식의 견해도 비성서적 가 설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5) 지금까지 서술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 로 볼 때, 가령 계몽주의 시대 이후 그리스도교를 윤리적 가르침으로 축소시키려 한 것이라든지, 그리스도교 선교 에서 보여 준 그릇된 형태(강요와 배척, 또는 다른 종교의 가 치 평가 절하, 반유대주의 등) 및 그리스도교 신심에서 보여 준 그릇된 형태(미신에 가까운 성화와 성해 공경과 왜곡된 마 리아 신심) 등은 그리스도교의 본 모습이 아니다. 20세기 에 들어서면서 그리스도교는 타종교와 세속화로부터 도 전을 받고 있으며, 또 그리스도교의 성서와 신조를 인용 하는 신흥 종교는,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 교에는 자기의 본질적인 요소(계시, 하느님, 성서 등)에 근 거한 올바른 자기 이해와 반성이 요구되고 있다. 신흥 종 교의 발생은 사회적인 원인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그리 스도교에 대한 오해도 일조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주장은 종교의 절대성 주장이 정당화되는 데서 타당하다. 교회간의 대화뿐 아니라 종파간의 대화로 우 주의 창조 질서 보존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것 이 그리스도교 안의 큰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스도 교의 과제는 곧 종교의 과제이다. 종교와 모든 그리스도 교 교파의 공통적인 신앙의 내면적 핵심에 대한 숙고는 성서에 나와 있다. 이 성서의 중심에서부터 그리스도인 은 다원적이고 불안한 사회에서도 신뢰성을 갖고 진리를 단축하거나 흐리게 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삼위 일체 하느님과 유일한 해방자이며 구세주인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써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다.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본 그리스도교의 자기 이해〕 그 리스도교는 자신을 하느님의 자기 계시로 세워진 계시 종교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자기가 이 세상 안에 있으면 서도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기인한 초 월 종교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종교란 순수 인 간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회 단체 이상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교는 또 자신을 계시 종교와 참 종교 로 인식하면서 구원을 위한 절대 종교로 이해하고 있다. 일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시작한, 그래서 현상학적으로 볼 때 역사의 처음부터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인 류 역사의 처음부터 자신을 계시하면서 활동하는 하느님 이 계획한 종교로서, 자기 안에서 비로소 하느님을 구체 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절대성에 근 거하여 그리스도교는 모든 민족과 모든 문화와 모든 인 간이 구원을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의 복음과 약속을 받아 들여야 한다며, 자기의 보편성을 주장한다. 그리스도교 는 이 절대성과 보편성에 근거하여 다른 종교는 구원사 적으로 추월되어야 할 전단계(前段階) 또는 참 종교의 대립적 전(前)윤곽으로 보며 다른 종교 신봉자들은 가 능 그리스도인' 이라 부른다. 이런 견해는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배타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비판 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교 진리의 보편 타당성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또 자신이 전하는 하느님의 자기 전달이 모든 개념을 초월하여 있지만 인간의 언어로 진술된다는 것을, 그래서 이 진술이 유비적이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그 진술이 참되고 절대적인 진리임 을 알고 있다. 이는 그 안에 본래 의미하고자 한 바 자체 가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진술에는 자신을 표현 하는 하느님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진술에 내포 되어 있는 진리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변화에도 불구하 고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러한 진리를 가지고 있는 그리 스도교는 자신을 교의 종교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계시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는 그 근본에 있어 어떤 '틀' 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고 선포하며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틀들, 곧 천국과 지 상, 성(聖)과 속(俗), 초월과 범주 등 사이에 놓인 틀을 무너뜨리고자 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이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다. 그리스도교는 이런 의미에서 가톨릭적이다. 구원은 틀이 무너진 곳, 가톨릭적인 곳에서 가능하다. (-> 가톨릭 교회 ; 프로테스탄티즘 ; 동방 교회) ※ 참고문헌 F. König · J. Kremer · Hans Waldenfels ed., 《LexR》, Freiburg-Basl-Wiien, 1987, pp. 105~116/ Joseph Ratzinger, Einfilorung in das Christentum, Vorlesungen iiber das Apostolische Glaubensbekemminis, Miinchen, 1968(장익 역,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 분도출판사, 1974)/ K. Rahner, Grundkurs des Glaubens. Einfuihrung in den Begriff des Christentums, Freiburg-Bael-Wiien, 1976/ H. Vorgrimler, Theologische Gotteslehre, Diisseldorf, 1985/ Jaroslav Pelikan Heg., 《TRE》 3. [李濟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