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적 인간의 자기 발견, 그리스도교적 인간의 인간 존중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인문주의' 는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며 인간적인 삶을 왜곡하는 모든 인습과 도덕, 이념과 사상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자 하 는 것, 즉 자유로운 인간이고자 하는 자각으로부터 전개 되는 인간성(humanity) 혹은 인간적인 존재 형태를 지향 하는 사상적 경향이라고 정의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억 압과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인간의 도야(陶冶冶) 능력과 발전 능력에 대한 확신 그리고 인간의 가치 및 개 성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창조력과 제 능 력의 전면적인 육성과 자유로운 발휘 및 전개를 지향하 고 종국적으로는 인간 사회의 고차적인 발전과 인류 일 반의 완성 및 자유를 꾀하는, 인류의 역사 속에 나타난 모든 이념 및 노력의 총체이다. '그리스도교 인문주의' 란 바로 이 '인문주의' 일반의 정의를 따르면서 그리스 도교 본연의 가르침과 신앙 및 정신에 기초한 인간 지향 과 인간성의 존중이다.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규범 및 도덕과 사상 및 체제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인류 일 반의 자유와 완성을 도모하는 데에 있어서의 그리스도교 적 입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일반 정의의 논란〕 이러한 단언적 개념 규정은 많은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여지가 농후하다. 왜냐하면 인문 주의라는 말 자체가 이미 역사적으로 다양한 의미로 상 황에 맞게 사용되어 왔으며, 그 역사적 변천 전개 과정이 대단히 복잡하여 모호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예 를 들어서 '인문주의' 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이들은 단테(A. Dante) 페트라르카(F. Petrarca), 보카치오(G.
Boccaccio) , 에라스무스(D. Erasmus) 등의 인문주의자들 (humanist)이었다. 이들은 중세적 교회의 권위와 신(神)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그리스, 로마의 세계관으 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옹호하는 것이라 하여 인문주의라고 불렀다(고전적 의미의 인문주 의). 이후 17~18세기의 시민 혁명기에 이르러 봉건적 신분 질서를 타파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외친 시민 사상가들(대표적으로 루소, 몽테스키외)이 자신들의 사상을 인문주의라 부르며 나섰다(시민적 부르주아 인문주의). 또 한 산업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발생한 사회적 · 계급적 대립, 인간의 기계화, 인간의 자기 소외, 공황과 실업의 사회적 불안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회주의자들(대표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자신들 의 사상을 인문주의라 불렀다(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 인 문주의). 근 · 현대에 이르러 실존주의자들(대표적으로 샤 르트르)은 실존주의적 인간의 주체성 확립이 인문주의에 이르는 길임을 강조하고, 실존주의를 인문주의라고 불렀 다(실존주의적 인문주의). 또한 현대 산업 사회, 이데올로 기적 상황이 낳은 많은 문제와 맞서 싸우며 인간의 자유 와 행복을 주장하는 현대의 많은 지성인들(대표적으로 프 롬, 러셀, 아인슈타인) 또한 자신들을 인문주의자라고 불렀 다(현대적 의미의 인문주의).
이렇게 다양한 주장들과 경향 또는 역사적 정황을 깊 이 고려할 때, '인간 존중 또는 인간 해방' 이라는 관점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대주제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는 공통성이 발견된다. 진정한 '인간 해방' 이란 무엇인가? 각각의 인문주의는 이에 대해 각각 서로 다른 응답을 하
고 있다. 이와 나란히 '그리스도교 인문주의' 는 바로 이 인간 존중, 인간 해방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응답 및 입장 을 말하는 것이다.
〔역사적 기원 - 예수 그리스도〕 인간 존중, 인간 해방 이라는 인문주의의 그리스도교적 기원을 구체적으로 예 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율법에 얽매인 교조주의를 통렬히 반박하며, 안식 일과 율법 또한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마태 12, 5-8)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인 간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 둘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 곧 하나임(마르 12, 28-34)을 역설하고, 그 당시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가난한 자들에게 사랑과 관 심을 보여 주었다. 그는 당시의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비 난을 받으면서도(마르 2, 15-16) 진정한 하느님 사랑의 길이 곧 인간을 사랑하는 길임을 삶으로 보여 주었다. 또 한 하느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자신의 죽음으 로 증명하였다. 즉 하느님 최대의 관심과 사랑은 그 무엇 도 아닌 바로 인간이며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라는 것을 삶으로 가르친 것이다. 또 진리는 결코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여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명령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진정 자유롭게 하는 것(요한 8, 32)이라고 역설하 였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근원이며, 동시에 인간 존중, 인간 사랑, 그 전형을 삶으로 열어 보여 주고 있는 것이 다.
하느님이 인간과 세계를 억압하고 구속한다는 주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설득력을 잃는다. 예수 그리스도 가 선포한 하느님은 결코 공포와 징벌의 하느님이 아니 며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구속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인 간의 호소와 탄원에 기꺼이 응답하고자 하는 자애 깊은 아버지 같은 하느님이고(루가 15, 11-32), 오히려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에 호소하여 간청하고 애원하는 사랑의 하 느님이다. 이는 서양 세계에 있어서 인문주의의 사상사 적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되는 그리스 · 로마 세계의 신들
과 인간과의 관계 차원보다 더욱 심원하고 성숙한 차원 의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은 재론의 여지없이 확고한 그리스도교적 인문주 의의 전형을 이룬다.
〔주요 인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이 그리스도 교의 핵심이라면, 그의 삶과 가르침이 사랑에 기초한 하 느님 나라의 선포였다면,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들은 헤 아릴 수도 없이 많이 열거될 수 있다. 정확하고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면 그리스 도교 인문주의자가 아닐 수 있는 그리스도교인은 없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사도 시대로부터 그리스 · 로 마 문화의 그리스도교적 수용에 고심하였던 수많은 교부 들, 에라스무스, 토마스 모어(T. More), 또한 현대의 여 러 사조들과 맞서 그리스도교의 수많은 가르침을 옹호하 였던 그리스도교 지성인, 뉴먼(J.H. Newman), 헥커(T. Haecker) 발타사르(H. Balthasar), 마르탱(J. Martin), 뤼박 (H. Lubac), 콩가르(Y. Congar), 마르셀(G. Marcel), 라너 (K. Rahner), 프로테스탄트의 불트만(R. Bultmann) 등에 이르기까지에서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평가 및 의의〕 인문주의가 서구 세계를 중심으로 전 개된 고귀한 역사적 전통이라는 사실에 이론을 제기할 자는 없다. 동시에 이것이 서구의 근대 문화를 형성하게 한 근본 동인의 하나로서 오늘날까지 그 영향을 행사하 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또한 인문주의 일반이 어 떠한 형태, 어떠한 내용으로 나타나건 인간을 세계의 중 심으로 생각하여, 그 지위를 확립하고 그 본성을 적극적 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정신이라는 면과 동시에 인간을 모든 억압과 굴레로부터 해방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인 정하는 동시에 이를 발휘시키고 신장하려 한다는 점에서 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의 인문주의는 일반 인문주의를 비판하고 넘어섬으로써 정당성과 차별
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인문주의 는 각 인간의 역사 발전 과정과 여러 시 대적 상황에 부응하여 여러 가지 형태 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중세기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르네상스(문예 부흥) 시대의 인문주의를 통설적으로 인문주의로 인정하는 경향 때문에 그리 스도교와 인문주의는 상호 충돌하는 인 상을 갖게 되는 면이 있다. 당시의 인문 주의자 에라스무스가 말하였듯이 교회 가 인간을 억압하고 사회 발전을 저해 하는 하나의 굴레였다는 사실은 크게 이의 없이 인정되었다. 그래서 교도권 의 횡포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는 인문 주의가 반종교적 성향을 지닌 채 결국 은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고대 철학 의 입장까지 전개되었다. 그러나 '신 없는 인문주의' (Humanism without God),
영성(spirituality)을 내팽개친 인문주의의 종국은 역사가 보여 주고 있듯이, 회의주의(skepticism), 혹은 허무주의 (nihilism)로, 또는 공산 사회의 몰락과 같은 또 다른 인간 의 굴레로서의 현상과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한편 종교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인문주의일지라도 끝내 그 존립 근거를 종교적 요청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 었던 경우도 있었다. 이는 인문주의가 인간의 본성, 운 명, 자유와 직결되는 한 종교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는 '신 없는 인문주의' 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가를 확인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만큼 하 느님(초월자 혹은 초월적인 것)과의 관계를 본성적으로 갖 으며, 반종교적 인문주의는 바로 이 점을 간과한 것이다. 그리스도교 또한 고정적이고 정체된 가르침이 아니라 아 직도 묻고 그 대답을 구하는 과정을 밟아 가고 있다는 사 실을 상기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진 리 또한 말씀과 계시에 근거한 종교적 진리이지 모든 것 을 다 알고 확신하고 있다는 식의 진리가 아니라는 자각 이 필요하다. 이는 인문주의의 성화 혹은 영성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태도가 되어야 한다. 한스 큉(Hans Küng)은 이 시대의 언어로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명확하 게 표명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존 재》(On Being of Christian)를 통하여 "신 없이는 인간이,
인간 없이는 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그는 "왜 그리스도인가?" 라는 물음에 "참으로 인간이기 위하여" 라고 대답한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본질, 그리스도교 인 문주의의 핵심을 꿰뚫는 심원한 통찰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칼 라너의 '인간 중심의 초월 신학' 또한 인간 과 하느님(초월자)과의 불가분의 관련을 신학적 언어로 보여 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온전한 인간의 완성은 신 없는 인간만으로도 인간 없는 신만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 의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 무조건적 사랑을 발견 하게 되는 이유이다. 바로 그리스도교 인문주의는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정당한 응답이다. (-> 인문주의)
※ 참고문헌 J. Maritain, True Humanism, 1938/ -, Humanisme integral, 1936/ H. de Lubac, Drama ofatheistic Humamism, 1949/ K. Barth, Humanity of God, 1960/ Q. Breen, Christian Humanism, 1967/ E.H. Harbison, The Christian scholar in the Age ofthe Refomation, 1956/ M.P. Gilmore, World of Humamism, 1952/ W. Jaeger, Humamism and Theology, 1943/ G. Wilson Knight, Christian Renaissance, 1962/ J.P. Sartre, Existentialism and Humamism, 1948/ K. Jaspers, Man in the Mordern Age, 1957. 〔吳將均〕
그리스도교 인문주의
一敎人文主義
[영]Christian hum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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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페트라르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