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단성설

單性說

〔라〕monophysitismus · 〔영〕monophysi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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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 지하 성당 외벽에 남아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프레스코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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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 지하 성당 외벽에 남아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프레스코화) .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오직 하나의 성(性), 즉 신성(神 性)만이 있다는 주장. 이 주장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 인하는 아폴리나리우스(+390)의 설(아폴리나리우스주의) 안에서 그 징후가 나타나고, 콘스탄티노플 수도원장 에 우티케스(+454)에 의해 정립되고(에우티케스주의), 알렉산 드리아의 총대주교 디오스쿠루스(+454)로부터 지지받았 으나 칼체돈 공의회(451)에 의해 단죄받은 이단이다. 이 설은 오늘날에도 동방 교회들간에 단성론 교회가 잔존할 정도로 1천여 년 동안 그 지역의 교회들을 심하게 동요 시켰다. 〔배 경〕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라는 문제를 두고 안티오키아와 알렉 산드리아의 두 신학파는 각기 상이한 입장을 견지하였 다. 안티오키아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경험 론에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의 차이를 역설하면서 각 본성이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고 주장하였 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간적 차원을 무시하면 하느님 아버지와의 본질 동일성(ὁμοούσιος)을 훼손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인간성의 구성 요소에 관심을 쏟았다. '로고스-인간' 도식에 따라 "인간이 말씀에 의해 취해졌 다" (homo assumptus, 수용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 예수의 인간성을 부각시켰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체 적 및 정신적 생명을 충만히 누리는 완전한 인간으로 실 제적이고 충만한 인간성을 지녔다' 고 주장한다. 이 학파 는 인성을 역설하면서도 신성으로부터 분리시켜 두 본성 의 결합을 외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즉 부부가 결합하 여 한 몸을 이루지만 남녀의 고유한 요소를 그대로 간직 한 채 살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각기 고유 한 속성을 보전한 채 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인성을 살리는 데에 장점을 지닌 이 합치설 은 네스토리우스에 의해 극단화되어 격심한 논쟁을 야기 시켰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플라톤 사상의 영향 밑에 하느님 과의 일치를 희구하는 사변을 전제하며 말씀이 '육' 이 되어 구원 역사 안에서 맡게 된 역할을 중시하였다. 말씀 이 사람이 됨으로써 이루어진 신성과 인성의 결합은 인 간을 신이 되게 하는 신화(神化)의 바탕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인성에 결합된 그리스도의 신성을 통해 실제로 인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로고스-육(살)' 도식에 따라 로고스가 참 인성을 취하 였음을 명백히 설명하지만, 신성과 결합된 인성을 분명 히 다루지 않아 신성만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로써 인성이 자주성을 상실함으로써 신성에 흡수될 위 험을 안게 되었다. 에우티케스는 이 학파 특히 치릴로 (Cyrillus)의 이 같은 신학적 약점에 빠져 들어 단성설을 정립하였다. 〔논 쟁〕 안티오키아 학파에 속하는 다르소의 주교 디 오도로(+394)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던 아리우스를 반대하여 로고스의 완전한 신성을, 또 아폴리나리우스에 반대하여 말씀에 의해 취해진 완전한 인성을 내세웠다. 이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아들과 마리아의 아들을 너무 뚜렷이 구분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두 아 들의 단일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콘 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450)는 같은 노선 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지나치게 구분하여 마리 아가 그리스도의 인성인 예수만을 낳았으므로 그리스도 의 모친' (Christotokos)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 도의 완전한 인성을 살리기 위해 신성으로부터 분리시켜 이 두 본성의 온전성을 강조하려 하였다. 알렉산드리아 의 총대주교 치릴로(+444)는 이 합치설을 거세게 반박하 면서 그리스도 안에 "두 인격체 또는 두 아들"이 있음을 시사하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강생하신 말씀의 한 본성"(μία φύσις) 이라는 정식에 착안하였다. 이 용어는 치 릴로에게 있어 구체적이며 자존하는 본성을 가리키는 것 으로서 강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적 일치' (ἕνωσις ὑποστατική)를 뜻하였다. 그런데 치릴로는 위격적 일치를 본성적(φυσική) 일치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즉 영혼과 육 신의 결합처럼 두 본성이 일치되어 있지만 결합의 주체 가 본성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그 결과 그리스도 안 에 두 본성이 결합한 후에는 실제로 연탄에 있어서 연탄 과 불이 하나를 이루는 것처럼 한 본성을 형성한다고 설 명하였다. 에우티케스는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단죄한 에페소 공 의회(431)의 세대로서 이 이단을 격렬히 논박하면서 치릴 로의 '단일 본성' 이론을 극대화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서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강조하면서 신성에 의해 인 성이 강생한 그리스도 안에, 처음에는 두 본성이 있다가 결합 후에 인성은 "마치 바다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다 에 녹아 버리듯" 신성에 흡수되어, 결국 신성만 남는다 고 제창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폐기되고 실제 존재 하지 않으며 허상으로 전락되고 만다. 그것은 우리의 인 간 본성과 전혀 다른 것이다. 〔칼체돈 공의회 이후〕 칼체돈 공의회는 단성론을 단죄 하고 디오스쿠루스를 파문시키는 동시에 이른바 449년 에 "강도 회의"에 의해 단죄받은 플라비아누스와 에우세 비오의 명예를 회복시키면서, 교황 레오 1세의 교리 교 서를 신조로 통과시켜 위격적 일치의 그리스도론을 확정 하였다. "하나이요 동일한 그리스도는 본성이 둘이면서 도 뒤섞이거나 뒤바뀌거나 나뉘어지거나 갈라지지 않는 분으로 고백해야 한다. 이 일치를 빙자하여 본성들간의 구별이 말살되어서는 아니 된다. 오히 려 이 두 본성의 독특한 고유성이 고스 란히 보전되어야 한다. 이 두 본성은 한 인격(ἐν πρόσωπον)과 한 위격(μία ὑπόστασις) 안에 결합되어 있다"(DS 302). 공의회는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에 있어서 완전하여 하느님 아버지 및 인간과 본질상 동일함을 단언하면서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적 약점들을 보완하였다. 안티오키아의 네스토리우스주의를 거슬러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하느님 아들의 위격 안에 일치되어 있음을, 그리고 치릴로와 에우티케스의 단성설을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어떠한 혼합이나 분리 없이 그 주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단언하였다. 공의회는 단성설을 거슬러 두 본성이 지속적 구별 을 가르치고 에페소 공의회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리 스도 안에 주체의 단일성을 확보할 뿐 아니라 이 단일성 이 한 인격과 위격에 있음을 명확히 하였다. 이 결합에 그리스도의 전 구원 사업이 달려 있다고 천명하였다. 칼체돈 신조로 논쟁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공의 회 이후 동방 교회 안에서는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계속 단성설적으로 해설하였다. 그 지역 안에서의 수많은 집단이 칼체돈 신조의 일부 표현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공의회가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있다고 가르치는 네스토리우스주의에 양보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인격의 단일성을 부인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반발로 두 그룹의 단성설 학파가 생겨났다. 비교적 온전한 입장을 취하는 안티오키아의 세베루스(+538)는 에우티케스주의를 연상시키는 사상의 경향을 지녔다. 다른 그룹은 그리스도가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똑같은 본성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리스도가 자기의 인성을 신성에 일치되도록 변화시켰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스도에게 두 본성이 있다고 하면서 여전히 그 인격이나 본체가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고 판단하여 칼체돈 신조를 비판하였다. 단성설 논쟁 이후 그 후예인 단의설(單意說, monotheletismus) 혹은 단활설(單活說, monenergismmus) 논쟁이 이 어졌다. 단의설과 단활설은 단성설자들이 채택한 두 본 성의 결합 대신에 의지의 결합을 내세웠다. 즉, 신성과 인성이 긴밀히 결합되었고 서로 조화가 잘 이루어져 실 제로 그리스도 안에 단 하나의 자연적 · 신인적 활력과 단 하나의 의지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결 합의 원리를 위격이 아니라 본성에 두었다는 점에서 단 성설적 특징을 지녔다. 그리스도 안에 한 의지(신적 의지) 를 주장하는 단의설을 거슬러 라테란 공의회(DS 500 이 하)는 두 의지가 있음을, 그리스도 안에 한 작용 원리를 내세우는 단활설을 반대하여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 회는 두 작용 원리가 있음을 선언하였다. 이 두 공의회는 칼체돈의 두 본성 교리를 논리 정연하게 계속 연역하면 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두 의지와 두 활동 원리를 천명하 였다. 이 경우, 예수의 인간으로서의 의지는 하느님으로 서의 의지에 온전히 종속되는 것은 물론이다. 단성설은 칼체돈 공의회의 단죄에도 불구하고 팔레스 티나와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지속되었으며 "삼장서(三 章書) 논쟁"과 "성화상 파괴 논쟁" 따위를 야기시키는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단성설 관념은 신학 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방면에까지 확장되어 종교와 정치, 교회와 국가를 서로 흡수 융합시키는 동방 교회의 제국 신학을 발전시켰다. 동방 교회의 아르메니아인, 시 리아-야고보파, 이집트(콥트족), 아비씨니아 교회 등은 아직도 단성설적 성격을 띠고 있다. (→ 그리스도론) ※ 참고문헌  A. Grillmeier, Christ in Christian Tradition, vol. 1, pp. 414~568/ F.X. Murphy, 《NCE》 41 J. Lortz, Storia della Chiesa in prospettiva di storia delle idee, vol. 1, Roma, 1980, pp. 197~201. [崔榮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