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론

[라]Christologia · [영]Chris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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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구원자인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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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位格)과 속성(屬性)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연구하는 교의 신학의 한 부분. 이 연구는 단순히 이론적인 관심에서 이루어진 것 이 아니라 매우 실천적인 관심에서 이루어진다. 그리스 도를 경배하는 것이 교회의 삶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 도는 누구인가' 하는 연구는 곧 교회의 근거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란, '예수는 그 리스도이다' 라는 고백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라는 고백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집약하는 약식(略式) 신앙 고 백문이며, 그리스도론은 바로 이 약식 신앙 고백문의 양 심적인 해설인 것이다. 그리스도론의 출발점은 그리스도교에서 믿고 생활하 고 실천하고 있는 그리스도 신앙이라는 현상(現象)이다.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그리스 도에 대한 신앙에 이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론의 본격적 내용과 그 최종적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요, 그분 의 생애, 그분의 운명, 그분의 말씀, 그분의 업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론의 제1차 적 기준이고 교회의 신앙은 제2차적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기준을 서로 반립시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해서는 안된다. 〔역사적 발전〕 초대 교회 : 신약성서 저자들은 두 가지 기본적인 전제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즉 그리스도는 한 위격으로서 불가분적으로 한 분이라는 것과 그분은 완전 한 하느님이고 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세상의 구원을 위한 예수와 하 느님의 활동의 일치는 곧 존재의 일치를 의미하였다. 때 문에 그들은 예수와 하느님을 동일시하였다. 실지로 몇 몇 구절들은 하느님이란 용어를 예수에게 사용하고 있기 도 하다(요한 1, 1. 18 : 20, 28 ; 히브 1, 8-9). 바오로는 하느님의 "독생자" 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였다(로마 8, 32).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 라는 것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 론의 중심 사상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 성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두 본성이 어떻게 한 위격 안에 결합되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구원 사적 관점이 강조되고 있는 삼위 일체의 도식 속에서, 즉 한 분인 하느님이 강조되는 경향 속에서 그리스도론이 전개되었다. 교부 시대 : 이 시기에 들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이해가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자연적 으로 인간 정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고,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리스도 교 메시지를 다른 문화권에 소개하고자 하는 요구 때문 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고 신성 을 거부한 양자설(養子說, adoptianism)과 신성을 강조하 면서 인성을 거부한 그노시스주의(Gnosticism) , 그리고 가현설(假現說, docetism) 등이 생겨났다. 이에 맞서 안티 오키아의 이냐시오(Ignatius), 유스티노(Justinus) 사르디 스(Sardis)의 멜리토(Melito) 이레네오(Irenaeus) 등과 같 은 사도 교부들과 초기 호교 교부들은 복음 메시지를 글 자 그대로 반복하거나 신중하게 선택한 용어를 사용하였 다. 이 교부들은 그리스도론과 구원론(soteriology)을 아 주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2세기 말엽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교부들 이 등장하면서 그리스도론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리스 철학의 체계와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리스도론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종속설(subordinationism), 즉 성자가 성부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상에 빠지기 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은 아리우 스(Arius) 때문이었다. 성자는 피조물로서 하느님도 사람 도 아니요, 단순히 중간적인 존재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니체아 공의회(325)는 성부와 성자의 동일 실체성(consubstantiality)을 강조하였고, 성자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태어난 것"임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신학 학파도 형성되었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 중에서 신성을 더 강조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인성을 더 강조한 안티오키아 학파가 형성되었다. 이 두 학파는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두 본성과 한 위격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제시 과정 속에서 이단들도 속출하 였다. 라오디체아(Laodicea)의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는, 그리스도가 인간적인 영혼을 갖고 있지 않기 때 문에 참된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다가 제1차 콘스 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 단죄되었다. 네스토리우스 (Nestorius)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강조에서 그리스 도가 마치 두 위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마리아 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 머니(Christotokos)라고 주장하다가 에페소 공의회(431)에 서 단죄되었다. 에우티케스(Euyches)는 그리스도의 인성 이 신성에 흡수되어 신성만이 있다는 단성설(monophysitism)을 주장하여 칼체돈 공의회(451)에서 단죄되었 다. 아울러 그리스도에게는 신적 의지만 있다고 주장한 단의설(monothelitism)도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681)에서 단죄되었다. 중 세 : 이 시기에 들어오면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이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교부 시대 이후로 신학적 발전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 였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 외 중세 신학자들은 더욱 엄 격한 철학적 범주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서 신성과 인성의 결합인 위격적 결합(hypostatic union)과 그리스도가 갖고 있는 지혜 · 은총 · 자유의 유형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하였다. 아울러 신학이 그리스도를 신성 의 차원에서 더 많이 표현하였던 것에 반해, 교회 예술, 대중 신앙과 널리 퍼져 있던 신심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 성과 인간적 체험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이콘(icon) · 성 탄 구유 · 성가 · 십자가의 길 · 그리스도의 성심에 대한 신심 등은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실재적인 인성 에 대한 본능적인 접근이었던 것이다. 신약성서는 구원에 대해 크게 세 가지 해석을 내렸는 데, 즉 자유로서의 구원, 속죄(expiaion)로서의 구원, 변 형시키는 사랑으로서의 구원이었다. 켄터베리의 안셀모 (Anselmus)는 이 세 가지 해석 중에서 두번째 해석을 발 전시킨 자신의 책 《왜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에서 '속죄 이론' (theory of satisfaction)을 주장 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행적에 초점을 맞추었다. 안셀모 에 따르면, 죄는 우주의 균형을 파괴시켰고 동시에 인류 에게 빚을 부과하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죄는 하느님의 영예를 손상시켰기에 이에 따른 속죄나 형벌이 부과되어 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직 신인(神人) 인 그리스도만이 하느님의 영예와 우주의 균형을 복구할 수 있고 인간이 안고 있는 빚을 탕감할 수 있다는 것이 다. 이 안셀모의 이론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수정이 있은 후에야 중세와 그 이후에 주된 사상이 될 수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부 시대의 사상, 특히 그리스도 를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mediator)로 본 아우구 스티노(Augutinus)에 기초하여 종합을 꾀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론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한 부 분은 추상적이요 사변적인 그리스도론으로 전통적이면 서도 보다 체계적이었다. 또 하나는 예수 생애의 신비들 에 관한 구체적인 그리스도론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그리스도론은 중세 신학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다. 그 리스도의 수장성(首將性, headship), 중개자로서의 역할, 신적 선함(divine goodness)의 현현으로서의 육화와 그리 스도 삶의 신비의 적합성 등에 관해 말하고 있음에도 불 구하고, 그가 자신의 그리스도론에서 주로 강조하고 있 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 형상이었다. 즉 하나의 신 적 위격과 함께 두 본성의 결합, 그리스도의 지혜, 의지 와 자의식, 힘의 작용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그리스 도에게 초첨을 맞추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 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이러한 토마스 아퀴나 스의 그리스도론은 이른바 존재론적 문제, 즉 그리스도 자신은 누구인가? 에 주된 초점을 맞춘 것이고, 구원론 적 문제인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는 단지 이차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구속(救贖)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죄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께 진 빚이 완전히 속죄된 것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한정지었다. 부활과 승천은 구속의 구성적 요소라기보다는 하나의 부속물로서만 여겨졌다. 그리스도의 존재를 그 자체로 놓고 사변을 전개하던 토마스 아퀴나스를 위시한 스콜라 신학의 이론에 대한 반발에서 루터(M. Luther)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이 '나를 위하여' (pro me)라는 점을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도 루터는 그리스도론적 고백의 객관적 의미를 끝까지 고수하였다. 하지만 멜랑흐톤(P. Melanchthon)에 와서는 '나를 위하여' 라는 원리가 매우 일방적으로 확대 적용되 었다. 그의 저서 《로치 꼼무네스》(Loci Communes, 1521)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 있다. "그리스도를 인식한다는 것, 그것은 곧 그분의 혜택을 인식하는 것이 다. 그러므로 그것은 저들이 가르치는 바와 같은 그분의 본성들과 육화의 양식을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다." 근 대 : 종교 개혁과 반종교 개혁이 기본적으로 교회 문제와 그 밖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주된 흐름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의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 았다. 하지만 16세기에 들어오면서 예수의 신성과 삼위 일체 교의를 거부하는 유니테리언주의(Unitarianism)가 발생하였다. 17세기에는 그와 같은 경향을 보인 이신론 (理神論, deism)이 나타났다. 따라서 18세기부터 그리스 도론은 역사와 성서 연구에서 비판적 방법의 영향을 깊 이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중세기의 접근 양식에 서 근대적 접근 양식으로 변화하게 된 두 가지 주요 근거 는 다음과 같다. 신약성서를 무비판적으로 읽던 것에서 비판적으로 읽기 시작했다는 것과, 인간 존재에 대해 고 정적으로만 이해하던 것에서 혁명적으로 이해하게 된 점이다. 이 두 근거는 18세기 계몽주의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근대 성서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예수 생애의 연구' 라는 분야였다.이 연구는 고정적인 교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역사의 예수를 찾아나선 것이다. 이 연구의 배후에는 신앙을 위하고 신앙을 쇄신하려는 의도가 그 동기로 작용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 성서신학과 아울러 예수 생애의 연구에 계몽주의라는 당시의 시대 사상적인 영향이 있었다. 예수 생애의 연구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예수사이의 차이, 예수의 메시지가 가지는 종말론적인 성격 및 이와 함께 제기되는 재림 천연(再臨遷延)의 문제, 정치적 예수라는 소재 그리고 후대인에 의한 예수 메시지의 심령화(心靈(化)라는 것들이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 (Christology from below)을 구축 하려는 시도에 있어서 예수의 메시지와 업적은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이며 내면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 생애의 연구는 오늘날 대체로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러한 실패는 세 가지 직관에 기인했다. 첫째, 슈바이처(Schweizer)가 지적했듯이 예수의 역사라고 내세운 것이 저자 각 개인의 사상과 관념들의 반영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둘째, 신약학의 양식사 학파에서 제공한 것으로, 복음서가 교회 공동체들의 신앙의 증언이라는 것이다. 복음서들의 관심은 공동체의 복음 선포와 전례 그리고 그 생활 전반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였으며, 예수가 남겨둔 흔 적은 제자들의 신앙뿐이다. 셋째, 해석학적인 관점이다. 〔현대의 그리스도론〕 현대에 이르러 그리스도론에 대 한 새로운 고찰은 칼체돈 공의회(451)의 1,500년 기념 제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칼체돈 공의회의 결의 사항인 "한 위격 안에 두 본성" (duae naturae in una persona)을 오늘 의 신앙 안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당시 널리 보급 된 실존 철학이라는 현대 철학적 방법과 범주를 이용하 여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 주자는 데 있었다. 즉 어떤 이례(異例)적인 인간이 동시에 하느 님일 수 있으며, 따라서 보편적이요 절대적이며 능가할 수 없는 의의를 요구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이다. 이 물 음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가능하나, 현대 그리스도론 은 세 가지 구상으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 신 앙을 하나의 우주론적인 지평에서 고찰한다. 이 방면에 서 가장 오래된 것은 2세기의 로고스-그리스도론(Logos-Christologia)이다. 이 그리스도론은 우주 어디서나 즉, 자연과 역사, 철학과 심지어 이교도들의 종교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게 나타난 동일한 로고스의 단편들(λόγοι σπερματικοί)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우주론적 해석을 독창적으로 이끈 인물이 바로 사르댕(Theihard de Chardin)이다. 둘째 구상은 인간학적 지평이다. 인간이란 실재 전체 에 개방되어 있으며 충일한 신비를 찾아가도록 언제나 지시받고 있는 존재이다. 이를 제시한 인물은 칼 라너 (Karl Rahner)이다. 그는 그리스도론을 인간학의 가장 근 본적인 실현으로 보았다. 또한 인간 실재의 본질이 유일 회적으로 실현된 최고의 사례가 '육화 신비' 라고 하면 서,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을 제시하였다. 즉 인간은 자신의 인간 존재를 그 염원과 지향에 따라 완전히 내맡 기고 이러한 인간 존재를 전폭적으로 수락할 때, 언제나 자기의 실생활에서 이미 모색적이요 익명적인 그리스도 론을 실천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라너의 그리스도론은 다음 세 단계로 전개된다. 첫째, 인간은 인식 및 자유의 범주적 행위를 할 때마다 자신은 물론 일체의 범주적 대상을 초월하여 어떤 포착할 수 없 는 신비를 지향하도록 언제나 지시를 받고 있는 자신을 체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떻게 보면, 본성상 정 의를 내릴 수 없는 존재이며 어떤 충만한 신비를 찾아가 보도록 지시받고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하는 존재이 다. 둘째, 인간은 가장 과감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희망은 인간을 움직이는 지탱자로서, 인간의 현존재 를 지탱하고 주재할 뿐 아니라 자신을 바로 인간의 완전 한 실현으로 제공하는 신비이다. 이 신비를 우리는 하느 님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자기 수교(手交)는 다시 한번 역사를 통해서 매개된다. 여기서 인간은 절대 구세주 및 절대적 구세 사건이라는 개념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 하느님의 자기 수교는 인간의 자율적인 수락 을 전제로 한다. 셋째, 육화는 인간이 자기 본질에 힘입 어 자기 길을 걸으면서 언제나 겨냥하고 있는 목표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육화는 인간 실재가 그 본질을 실현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모든 인간 속 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자기 수교에 대한 인간의 자기 개방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라너는 자신의 초월적 그리스도론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 도론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인간학이요 인간학은 미완 성 그리스도론이라고 하였다. 인간으로서의 자기의 삶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함축적으로 인 자(人子)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라너의 주장에 대하여, 그가 인간의 주체성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나-너-우리' 로 형성되는 인간의 상호 주체성을 경시하였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리고 그의 세 번째 구상은 보편사적 지평이다. 인간 그 자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인류라는 하나의 역사적 전체에 편입되 어 연대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 구 원을 추구하는 질문은 역사 전체의 의미 안에서의 구원 을 추구하는 질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분야의 첫 시도 자는 판넨베르크(W. Pannenberg)이다. 또한 라너의 세 가 지 착상에 대하여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는, 이 와 같은 착상에 따라 해석된 예수 그리스도는 미리 주어 진 어떤 도식에 이입 분류된다는 것과 신앙이 이처럼 우 주론적이나 인간학적으로나 보편사적으로 축소될 때 그 것은 하나의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론을 새로이 고찰하려는 두 번째 파장이 밀려왔다. 이 파장은 역사의 그리스도에 관한 질 문의 재발견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나타났으며 불트만 (Bultmann)의 제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들에 의하면, 그리스도론적 신앙 고백을 위한 정식의 사 리적(事理的) 기준은 예수라는 인격 자신이다. 그리스도 론의 신앙 고백이 역사의 예수에 조금도 근거를 둘 수 없 다면 그리스도 신앙도 역사적 관계가 전혀 없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하나의 세계관에 불과할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하였다. 이 새 고찰에서부터 '예수 본연의 일' (Sache Jesu)이라는 표현 양식이 등장하였다. 이 표현은 그 자체 로 보아서는 매우 고무적인 것이지만, 이 개념을 하나의 원리와 공리처럼 확대 사용하게 된다면 결국 예수의 인 격과 업적을 지상 생애 동안의 예수로 국한해서 평가하 게 된다. 그래서 지상 생애 동안의 예수와 그 소신을 알 아보고 여기에서 얻은 실적만을 그리스도론으로 평가하 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활한 다음 승천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은 이러한 소신을 끝 까지 굽히지 않고 죽음까지 불사한 역사의 예수가 옳았 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정도의 기능밖에 인정받지 못하 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파장을 모두 거 부한다면, 그리스도론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역사의 예수와 케리그마 (kerygma) 및 교의(dogma)의 그리스도라는 그리스도교 의 신앙 고백의 가장 기본적인 두 요소를 진지하게 다루 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왜, 그리고 무슨 근거로 복음 선포 및 신앙의 대상으로서 의 그리스도로 될 수 있었는가를 묻고 이를 해명해야만 할 것이다. 즉 나자렛의 예수라고 하는 유일회적이며 역 사적인 한 인물이 그리스도 신앙이 내세우는 보편적 요 구에 어떻게 관계되었는가를 묻고 이를 해명하여야만 하 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에서의 선구자는 튀빙겐 학파의 가이젤만(Geiselmm)이다. 〔과제와 전망〕 현대 그리스도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 지 과제를 가지게 되었다. 첫째, 역사적으로 정향된 그리 스도론이 요청된다. 즉 나자렛의 예수는 누구였는가, 그 는 무엇을 원하였던가, 그의 메시지 · 그의 처신 그의 운명은 어떠한 것이었던가, 그의 소신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있는데, 이 러한 예수가 어떻게 그리스도로 선포되고 신앙될 수 있 는가를 탐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학적 질문 들은 그리스도 신앙의 도전적인 구체성을 진지하게 대하 려 한다면 결코 회피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 들을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소위 순수 한 신앙이라는 무풍 지대는 이미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질문들을 순전히 사학적으로만 다루는 것으로는 부족 하고 역사적인 것에 신학적 의미의 중요성도 아울러 다 루어야 할 것이다. 둘째, 보편적으로 책임 있게 답변할 수 있는 그리스도 론이 되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론은 시대 특유의 문제들 과 아쉬움에 호응하면서 인간과 사회의 질문 및 그 아쉬 움을 안중에 두고 구상되어야 하며, 그 나름대로 책임 있 는 답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실재의 최종적이요 가장 심오한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유일회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제시되었기에 그리스도 신앙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다. 이는 결국 그리스도론이 가장 넓은 의미의 그리스도 교적 실재 이해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와 문화, 그리스도교 와 정치, 그 밖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구원론적으로 정향된 그리스도론이 되어야 한 다. 예수의 인격과 역사를 그 보편적 의의에서 따로 떨어 져 생각할 수 없기에, 따라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은 하 나의 통일을 이룬다. 구원론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의 구원 의미에 관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 및 그리스도론적 교의의 구 체적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예수가 우리에게 가지는 해방과 구원의 의미를 추구하여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 도론과 구원론을 분리시키고자 한 스콜라 신학은 거부되 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론을 구원론으로 축소시키는 것도 거부되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의미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머물 수 있기 때문이며, 이 것을 우리는 루터의 '나를 위하여' (prome)에서 볼 수 있 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라는 신앙 고백은 존 재와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신앙 행위는 신앙 의미를 지향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우리 는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이 질 문은 두 차원에서 할 수 있는데, 즉 역사 속에서와 종교 속에서이다. 그리스도론의 내용과 그 으뜸가는 기준은 지상 생애 동안의 예수와 부활하여 현양된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는 지상 생애 동안의 예수와 부활 신앙의 그리 스도가 서로 상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은 예 수 그리스도를 육(肉)과 영(靈)에 입각하여 이중으로 평 가하고 있으며, 두 가지 지위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 내에서는 이 두 지위론이 결국 상실되었 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에서는 그리스도의 두 지위론이 중요한 구실을 하여 '겸허의 그리스도론' (Kenosis-Christologie)으로 발전되어 갔다. 이 그리스도론은 두 본성 그 리스도론을 비하와 현양의 역동적 사건으로 이해하고자 했지만, 로고스가 자기의 신성을 완전히 기각한 것으로 이해한 것은 비판적인 시선을 받는다. 또한 그리스도론의 출발점은 교회 공동체의 신앙 고백 이다. 이 고백의 내용과 이 신앙 고백에 앞서 주어진 규 범은 예수의 역사와 그 운명이다. 그리고 '예수는 그리 스도이다' 라는 신앙 고백의 해설로 자처하는 그리스도론 의 내용적 중심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여기에 역 사의 예수로부터 신앙의 그리스도, 현양된 그리스도로 넘어갈 수 있는 다리가 놓이게 된다. 이러한 십자가와 부 활에 중심을 두는 그리스도론의 기본 문제는 상승 및 현 양의 그리스도론이 육화론적 사상에 언표되어 나오는 하 강형 그리스도론에 어떻게 관계되느냐에 있다. '하강형 그리스도론' 에서는 예수의 역사를 그분의 신인(神人)으 로서의 존재에 뿌리박게 하지만 '상승형 그리스도론' 에 서는 그분의 존재가 이 역사 안에서 그리고 이 역사를 통 해서 구성된다. 따라서 그리스도론은 우리로 하여금 사 유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곧 존재와 시간의 상호 관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만이 아니라 지극히 일반적 의미의 그리스도교적 실재 이해가 문제되는 것이다. (-> 그리스 도 단성설 ; 네스토리우스주의 ; 니체아 공의회) ※ 참고문헌  W. Kasper, Jesus der Christus, Mattias Grunewald Verlag, Mainz(박상래 역, 《예수 그리스도》, 분도출판사, 1988)/ Richard P. McBrien, Catholicism, Winston Press, 1980/ Gerald O'Collins, Jesus, 《ER》 Aloys Grillmeier, Jesus Christ Ⅲ, 《SM》 E.A. Livingstone(ed.), 《CODC). [邊宗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