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 [라]corpus Christi [영]bodyofChnist
[라]corpus Christi · [영]body of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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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의 반신상을 완성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초기 교회 공동체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성장 원리를 당대의 이해 지평에 접근하여 찾으려는 한 시도이다. 이 개념은 오늘 날에도 교회를 이해하는 데 핵심 요소이다. 특별히 제2 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성사' 요 '하느님의 백성' 이 며 '그리스도의 몸' 이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계약의 공동체' 로서 정의하였다. 이 모든 개념 들은 바로 이 그리스도의 몸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 고 있다. 이것들은 서로를 보완하여 완전히 개념화하거 나 파악할 수 없는 교회의 신비적 본질을 상대적이긴 하 지만 적극적으로 표상하고 있다. 이 개념은 바오로의 서간들에 와서 깊은 신학적 내용 을 담아 '전문 용어' 가 된다. 그리고 시대의 변천과 함께 그 내용의 강조점도 각기 다른 곳에 놓이면서 교회의 여 러 모습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표현하는 개념이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 내 용을 파악하고 그 원천적 이해에 근거하여 오늘날에도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몸 개념 에 대한 어원적이고 성서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어 원〕 몸(σῶμα)이란 단어가 신학적 내용을 담기 이 전에 지녔던 본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맨 처음 이 단어가 나오는 호머(Homer)의 시에서 는 인간의 주검이나 혹은 동물의 시체를 지칭하는 말이 었다. 플라톤에 와서는 새로운 의미가 첨가되면서 의사 가 보살피는 대상인 몸, 특별히 인간의 육신을 뜻하게 되 었다. 그러던 것이 불, 땅, 물, 공기가 가시적 몸으로 표 현되면서 비가시적 영혼에 대당(對當)되는 실체(substantia)로서의 내용을 지니게 되었다. 또 이 개념은 인격(persona)을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몸을 단순 히 하나의 사물로 이해하지 않고 자신 안에 전체가 내포 되어 있는 '형상' (σχῆμα)과 관련시켜 이해하였다. 즉, 몸은 이제 인간을 가시적이고 외적으로 표현해 주는 어 떤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 총체성이 인격의 총체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몸은 영혼과 합치되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 인격의 총체성을 지니게 되는데, 여기서의 몸 개념에는 플라톤의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가 깊숙이 자리를 잡 고 있고, 영혼에 대당되는 부정적 의미를 많이 지니게 되 었다. 플라톤에게 몸이란 말은 명시적으로 우주(kosmos) 란 말과 관련되어 자주 사용된다. 이는 몸이 우주로서 살 아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몸이란 단어는 인간의 몸을 뜻하 였다. 그러나 그는 몸과 영혼을 자주 병행시켜 사용하였 다. 그리고 플라톤과는 달리 육신이 영혼에 앞서 존재하 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두 개념의 우열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영혼을 인간만이 가지 는 고유하고 탁월한 요소로 강조하려 하였다. 그리고 플 라톤이 보여 준, 우주는 신적 이성이 지배하고 충만해 있 는 생명체라는 사고를 아리스토텔레스도 계속 잇고 있었 다. 고전 스토아 학파는 육신과 영혼의 관계에 대한 문제 를 중점적으로 토론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πνεῦμα) 이 몸을 보전하고 움직이게 하는 영혼에 봉사하는 육체 의 형상을 지닌 질료라고 이해했다. 여기서는 아직 질료 (materia)와 형상(forma)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이렇게 영을 육체의 형상을 지닌 질료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죽음을 육신과 영혼이 서로 분리되어 떠나는 것, 즉 물질 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에서 떠날 수 있다는 물질주의적 견해가 자리잡게 되었다. 신학적 개념인 그리스도의 몸 개념과 관련하여 이 시대에 특기할 사실은 소마(σῶμα) 개념이 백성 혹은 의회단, 더 나아가서는 합창단, 군대 혹은 군중의 무리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는 점이 다. 즉 일정한 수의 사람이나 무제한적인 수의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어떤 것을 '소마' 라 표현하였다. 이런 이해 에서 나중에 교회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는 '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란 말을 소마란 단어와 동일시하여 이해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후기 스토아 학파에서도 역시 소마란 말은 머리를 가 장 중요한 지체로 가진 인간의 몸을 표상하는 단어였다. 그리고 이 소마란 말이 신적 이성이 충만되어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우주를 표현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우주론적 견해는 제우스 사상과 맞물려 제우스가 머리요 중심으로서 모든 것을 자신 안에 내포하고 또 모 든 것을 그가 유출시킨다는 사고를 가능하게 하였다. 신 약성서가 쓰여질 당시 이러한 사고의 영향을 받았고 그 래서 하느님과 우주를 동일시하는 사상이 신약성서 안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우주론적 사고 방식을 슈바이 저(E. Schweizer)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ThWNT, 1037). "우주는 하느님이다. 즉 전체로서의 하느님이다. 그는 '커다란 몸' 으로서 그의 지체는 우리들이다. 하나의 몸 안에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모두 수렴하는 것이 다.···이 커다란 몸은 곧 하느님과 동일시된다." 신약성 서는 바로 이러한 소마에 대한 그리스적 사고를 바탕에 두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비유를 사용한 것이다. 〔성서적 고찰〕 구약성서에는 육신과 영혼의 확연한 이 분법적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도 죽을 때에 영혼이 육신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표현이 없고 죽음은 둘 모두에게서 '생명' 을 앗아가는 것으로 이해되 었다. 구약성서에는 소마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고유한 단어가 따로 없었고 늘 인간을 총체적 인격성을 지닌 어 떤 것으로 파악하였다. 후기 유대주의에 들어와서야 그 리스 사상의 영향으로 영혼의 영속적인 삶에 대한 숙고 가 이뤄지고 헬레니즘적 이원론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런 변천 과정 속에서 소마란 개념 대신에 사륵스(sarx) 란 개념이 들어와 서로 동의어로, 때로는 의미상 구분되 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두 단어를 명쾌하게 구분하여 설명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바오로에게 소 마란 개념은 일반적으로 인간 그 자체의 '육체성' 을 지 칭하는 데 반해 사륵스는 특별히 신학적 부연 설명과 함 께 "죄의 세력이 자리를 잡고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쓰였다. 즉, 인간은 소마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 라 인간이 스스로 소마이고 단지 사륵스를 인간이 부가 적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보았다. 신약성서 전반에 걸쳐 소마란 말이 142번 등장한다. 그중에서 91번이 바오로계 문헌들에서 발견되고 그 이 외의 문헌 전체를 통틀어 51번(이 중에서도 시체, 종이란 의 미로 사용된 것을 제외하면 33번만이 사용됨)밖에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 개념은 바오로가 특별하게 사용한 '전문 용어' 임에 틀림없다. 바오로계 서간들을 제외한 신약성서 전체에서 사용된 소마의 의미는 첫째, 전통적 으로 시신, 특별히 예수의 시신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마르 15, 43 ; 마태 27, 59 : 루가 23, 55 : 24, 3. 23 ; 요한 19, 31. 38. 40 ; 20, 12). 둘째, 삶의 일상 용어로 병의 치유를 체험하고 식량과 음식을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 이해하였다(마르 5, 29 : 야고 2, 16). 셋째, 그리스적 사고 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소마는 전체적인 것이요 각 개별 지체는 그것과 대상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마태 5, 29 ; 6, 22 ; 야고 3, 2. 6 이하). 여기에 인간 은 자신의 지체와 거리를 둘 수 있다는 몸과 지체를 객관 화시키는 사고가 등장하였다. 넷째, 죽음과 부활을 체험 한 인간이다. 여기에서는 예수가 의식적으로 자신의 몸 을 희생물로 봉헌하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마 란 단어가 이렇게 쓰인 것은 매우 독특한 경우로서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 용법이다. 이는 지극히 헬레니즘 적 사고의 영향이 미친 본문에 나타나는데, 영원히 불사 불멸하는 영혼을 위해 소마를 희생할 수 있는 것으로 표 현되었다. 여기서 몸은 비본질적이며 낯설고 덜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바오로에게 와서 소마는 이방인 세계 안에 복음이 선 포되고 그 가운데 반대자들과의 대면과 토론 과정 속에 서 본격적으로 신학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 바오로가 사용한 이 개념의 뜻은 첫째, 신약성서 다른 곳에서 사용 하는 것처럼 시신이나 종이란 뜻으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둘째, 죽은 자들이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는가 하 는 반대자들의 질문에 미래의 삶이 육체성을 지닌 것이 라고 확신하였다(1고린 15, 38). 바오로가 종말론적 희망 을 표현하는 고린토 후서 5장 1-10절까지의 본문에서 소마는 특별히 이 세상의 몸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 세상의 몸 안에 그리고 그 몸을 통해서 천상적 존재가 싹트고 보전되어짐을 강조하였다. 그러기에 바오로에게 천상의 존재는 "무엇 안의 존재"를 뜻하는 것이지 비육 체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오로는 지 상적 소마가 의미를 지니고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필립비서 3장 21절에서 "우리의 비천한 몸이 그리 스도의 현양된 육체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 였다. 소마는 여기서 단지 인간의 외적인 양태이기를 넘 어서 인간의 비천함과 영광 혹은 인간의 지상적 또는 천 상적 존재를 드러낸다. 셋째, 바오로는 자신의 신학적 관심인 육신의 부활을 주장하면서 소마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특히 고린토 전 서 15장 34-44절에서 죽음 후에 이어지는 영원한 삶이 소마의 부활과 깊은 연관을 맺는 것은 바오로에게 육체 성을 지니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 다. 여기서 소마는 어떤 경우도 '자아' 와 떼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넷째, 소마란 단어는 유대주의에서처럼 생식 기관(로마 4, 19), 부부 사이의 성적 관계를 표현하 기도 하였다(1고린 7, 4). 다섯째, 소마란 단어는 바오로 의 서간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고린토 전 · 후서에 많이 등장하였다. 이는 고린토 공동체 안에 그노시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지적이고 영적인 면만을 강조하려는 일단의 무리에게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인간의 총체적 삶, 즉 인 간의 내 · 외적인 면 또는 영 · 육의 면을 모두 포괄하는 삶과 관련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1고 린 5, 3 ; 7, 34 ; 2고린 7, 1 ; 10, 10).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몸 주제와 직접 관련된 것으로 소마 개념이 서술적 표현에서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명령 어적 표현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로마 12, 1). 바오로에 게 소마는 신체의 각 부분이 아니라 늘 총체적 인격 내지 는 전체의 인간이다. 그러나 이것이 폐쇄적인 개인주의 적 개별 인격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혹은 죄 또 는 타인(이웃)에 대상적으로 서 있는 인간을 의미하였다. 즉 소마는 바로 인간이 '하느님의 지배' 에 자신을 귀의 시키는 신앙이 자리할 수 있는 장(場)이요 바로 그런 의 미에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행할 수 있고 이웃에 봉사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언제나 인간의 외양 이나 능력 그리고 성격 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소 마의 행위, 곧 소마와 함께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일에 관 심을 가졌다. 이렇게 바오로는 소마의 서술적이요 명령 적인 표현을 병행하여 사용함으로써 가시적 실체만을 중 시하는 율법주의나 비가시적 실체에만 가치를 두려는 비 현실적 이념주의를 정당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경계하고 배척하였다. 바오로에게 소마는 바로 그 안에서 느끼고 사고하고 체험하며 행동하는 모든 것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인간 총체성을 의미하였다. 〔바오로 신학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앞에서 성찰한 "몸" 개념에 대한 선 이해를 바탕에 두고, 성장하는 초기 공동체의 동질성 이해와 공 동체 상호간 또는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유기적 연대 성과 단일성을 서술하려는 용어였다. 이 단어 역시 앞에 서와 같이 바오로가 빈번하게 사용한 전문 용어로서 그 의 후기 문헌(특히 에페소서와 골로사이서)에 와서 그 내용 이 더 깊어지고 풍부해졌다. 바오로의 신학에서 소마가 이웃(타인)과의 만남 안에서 신앙을 실현하는 장이요 또 이웃 동료 인간에게 봉사하고 자신을 희생시키는 장이라 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최후 만찬 의식의 발전 과 심화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자 들과 나눈 예수의 고별 만찬에 등장하는 소마는 '피' 란 말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하게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봉헌(희생)한 '예수의 몸' 으로 이해되 었다. 여기서 소마는 우선적으로 인간이 이 세상 안의 존 재임을 표상하는 육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는 곧 타 인을 만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해되었다. 고별 만찬의 본문 안에서 빵과 소마를 연관시켜 만찬 의 의미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서술적 부가어 "여러분을 위하는"(1고린 11, 24)은 예수의 행위가 자기 희생임을 드러내는 것으로써 바로 그 예수의 행위와 언사가 소마 개념의 교회론적 지평을 여는 결정적인 요소를 제공하였 다. 즉 십자가 상의 예수 몸은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공 동체 안에 현존하고 그 현존은 너희(공동체)를 위해 십자 가에 희생된 "그리스도의 몸"의 현존을 의미하는 것이다 (1고린 10, 16 ; 11, 27. 29).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은 바 오로에게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소마이고 이 몸 은 과거형의 형상을 지닌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의 현 존' 을 뜻하였다. 그래서 바오로에게 "십자가 상의 예수 몸과 부활 후 시간과 공간을 초극하는 "현양된 그리스 도의 몸"은 나뉠 수 없는 동질성을 지녔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의 시공성 안에 지속적으로 살아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었다. 바오로에게 또한 공동체(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서 생명력을 얻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공동 체 그 자체였다. 고린토 전서 12장 27절의 공동체 안에 서 "하나 됨"을 위한 바오로의 훈화는 소마가 여러 지체 를 통해 이뤄지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 라는 "전체"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라는 공동 체의 단일성과 고유성은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 기에 이미 그 시작에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바오로는 파악하였다(로마 12, 4-5 ; 1고린 10, 17 ; 12, 3). 이런 근 거에서 바오로에게 "하나인 몸"(ἐν σώμα)은 서술형이면 서 동시에 공동체가 늘 지향해야 하는 명령형이다. 바오로는 어떻게 여럿의 지체가 하나를 이룰 수 있는 지를 전통적인 고별 만찬의 전례 형식으로 설명하였다(1 고린 10, 17). 즉 많은 이가 하나인 몸, 하나인 빵을 분유 (分有)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의 공동 체(κοινωνία)를 이룬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여기서 그리 스도와 인간 개개인 사이의 개인주의적이요 직접적인 "하나 됨"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그리스도와 공동체 사 이에 또는 그리스도와 공동체 안에 포함된 지체인 개인 과의 사이에만 "그리스도와 하나 됨" 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언제 나 공동체이지 어떤 의미에서도 개별 인간일 수 없다는 것이 바오로의 생각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느 님이 이미 "주신" 현실이지 공동체가 만들어 내는 "생산 품은 아니다(1고린 10, 13). 결국 바오로에게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이미 선사한 선물로서 그 안에 공동체가 자리할 수 있는 하나 의 "현재적 장(場)"이다.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의 현존을 통해 공동체는 "하나"가 된다. 이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역시 교회의 본질 이해를 위 한 성서적 개념인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시켜 볼 때 그 의미가 더 뚜렷해진다. 이 두 개념은 그 뿌리가 같지만 함축하는 의미는 각기 다르다. 하느님의 백성이란 말이 교회에 관해 구원사적인 측면을 나타내 준다면 그리스도 의 몸 개념은 이러한 시간적 개념보다는 공간(장소)적 범 주를 더 강조하는 비유이다. 구약에 뿌리가 있는 하느님 백성이란 사고 안에는 오늘의 교회 아니 더 나아가 종말 (παρουσία)에 미치는 하느님의 총체적 구원 역사의 발전이 본질적 요소이다. 그리스도의 몸 개념 안에서도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행위로부터 생 명력을 얻고 새로운 하느님의 역사 안에서 수용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하 느님의 그러한 구원 행위가 현재와 미래에까지 이르는 길(방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현양된 그리스 도와 항상 하나를 이루는 일치성 곧 하느님 구원 행위의 현존이란 점에 강조점을 더 둔다. 바오로에게 이 두 개념 은 서로 깊은 관련이 있는 개념이고 하나를 따로 떼어 생 각할 수 없다. 이러한 바오로의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후기 문헌, 특 히 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에 와서 보다 더 교회론적으로 발전되어 정착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은 다름아닌 교회임 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였다(골로 1, 18 ; 3, 15). 또한 당시 발전하고 있던 우주에 대한 그 시대의 사고에 응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 개념을 우주론적으로 성찰하는 면모 가 드러났다. 그리스도가 모든 창조물과 우주의 머리이 고 교회는 그의 몸이란 점이 이러한 성찰 안에서 강조되 었다. 이는 공동체가 성장하고 복음이 세상 전체에 전파 되면서 "세계 교회"에 대한 사고가 새로이 생기고 이를 우주론적으로 숙고하여 그리스도의 몸 개념을 통해 표현 하려 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이고 그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는 세상 끝까지 현존할 수 있다(골로 2, 19). 그리고 그리스도는 단순히 지체들을 모아 놓은 연 합체로서의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그 를 머리로 하고 하나를 이루게 되는 몸의 머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교회는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를 포괄하는 하 나의 종말론적 사건이요, 바오로에게 있어서는 하느님의 신비가 이 세상에 드러나고 그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이다. 〔교의 신학사적 고찰〕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바오로의 가르침은 교부들의 해석을 통해 세 가지 방향으로 더욱 심화 · 발전되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제2의 아담으로 모든 사람은 존재적으로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된다는 "집합적 인격성"(korporative persönlichkeit)을 숙고하였다. 둘째로 육화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은 그리스도와 인류의 일치를 위한 기본 전제이다. 이 일치의 실제적 실현은 세 례의 기초 위에서 행해지는 성찬 안에서이다. 그리고 교 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교회가 성사적 그리스도의 몸으로부터 생명력을 부여받기 때문이라는 사고가 무르 익었다. 셋째로 성찬을 그리스도교적 이웃 사랑의 실제 적 완성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따라서 성사적인 것은 윤 리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즉, 성찬은 차별 없는 모든 믿 는 이들의 "식탁 친교 공동체" (Tischgemeinschaft)를 표현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요구한다. 중세를 거치면서 바오로나, 교부들에게 나타나지 않았 던 부가어 "신비적"이란 말이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에 첨가되었다. 그러면서 "신비적 몸" 혹은 "신비체"(corpus mysticum)란 말을 점점 법적 의미인 어떤 조직 혹은 조직 체란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토마 스 아퀴나스는 "신비적 교회의 몸"(corpus ecclesiae mysticum)이란 말을 일반화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발전 추세 속에서 신비체란 말은 성서적인 본래의 의미 에서 이탈하여 일반적 법률 용어로 자리를 잡고 급기야 중세 후기에 와서는 그 본래의 의미와는 완전히 별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프로테스탄트 신학이나 가톨릭에 새로 이 등장한 "낭만주의"(특히 양 세계대전 사이에 튀빙겐 학파 를 중심으로 이루어짐) 안에서 나름대로 신비체에 대한 법 적 사고에서 바오로의 원래 의미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는 하 였지만 문제의 핵심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신비체란 개념을 오로지 그리스도와 개인 사이 의 내적이고 신비적인 은총의 친교만을 강조하고 가시적 인 면은 완전히 배제하는 한계를 보였다. 가톨릭의 낭만 주의는 이에 비해 의미 있는 역사적 탐구를 통해 원천에 다가서는 노력을 보였지만, 성사적이란 의미의 '신비' 란 말을 내적 신비라는 의미의 부사 즉 신비적이란 말을 사 용하여 총체적 의미의 교회론을 서술하기에는 부족하였 다. 이렇게 신비체 개념에 대한 혼돈이 넓게 자리잡고 있 을 때 교황 비오 12세는 원천인 성서와 교부에 대한 성 찰을 바탕으로 이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심화에 분 기점이 되는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 : 1943. 6. 29)를 반포하였다. 오늘날에 그리스도의 몸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바로 이 회칙에 근거를 두 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 개념을 일방적으로 일상 의 법률 용어인 조직체 혹은 사회의 모델로 보려는 주장 과 또 다른 한편 일방적인 내적 관계로서 가시적인 소여 성을 전연 간과한 채 은총의 친교만을 주장하려는 양 극 단 사이에 융화와 조화의 길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 었다. 곧,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특별히 이 세상 안에서 주의 만찬의 거행을 통해 이루어지고 또 하나의 일정한 꼴을 지닌 하느님과의 식탁 친교 공동체 곧 교회의 가시 성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교회의 고유한 존재 양 식을 표현하였다. 이것이 성사(sacramentum) 혹은 거룩한 표지(sacrum sigmum)이다. 오늘날 교회론에서 큰 과제는 어떻게 교회의 가시적 형상의 모든 본질적 요소들을 이 그리스도의 몸 개념을 통해 표상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 이다. 동시에 어떻게 그 개념을 가시적인 것에서 비가시 적인 것으로 옮아가는 총체적 예표로서 교회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성체 ; 교회 ) ※ 참고문헌 Eduard Schweizer, sw~ma, 《ThWNT》 7, pp. 1024~1091/ -, Die Kirche als Leib Christi in den Paulinischen Homologumena, Neotestamentica, Stuttgart-Zurich, pp. 272~2821 -, Die Kirche als Leib Christi in den paulimischen Antilegomena, Neotestamentica, pp. 293~316/ H. Schlier · J. Ratzinger, Leib Christi, 《LThK》6, pp. 907~912/ J. Ratzinger, Das neue Volk Gottes, Düsseldof, 1969/ J.B. Metz, Leiblichkeit, 《HthG》2, pp. 30~371 Henri de Lubac, Corpus Mysticum, Einsiedeln, 1969/ 임병헌, <하나 됨의 근거를 위한 바오로의 Koinonia 개념 성 찰> , 《신학과 사 상》 6호, 1991, pp. 54~771 정하권, 《교회론》, 신학 총서 18, 분도출판 사, 1979, pp. 52~75. 〔林炳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