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人
[라]Christianus · [영]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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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는 예식이다.
I . 교의 신학적 의미 세례를 받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신앙 고백하는 이들 을 총칭하는 말. 그리스어 크리스티아노스(Χριστιανός 는 신약성서에 세 번 나타난다(사도 11, 26 ; 26, 28 ; 1베 드 4, 16). 먼저 사도 행전 11장 26절에 따르면 "처음으 로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을 '그리스도인'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크리스티아노스는 '그리스도' 라고 옮겨 사용하고 있는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라는 말에 이아 노스(ιανός)라는 접미사가 덧붙여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크리스토스는 베드로가 예수께 메시아라고 고백(마르 8, 29)한 데서 비롯한다. 이 말은 이후 원시 그리스도교 신 앙 고백의 핵심어로 자리잡게 되는데, 이것은 구원자라 는 뜻의 히브리어인 메시아(מָשִׁיחַ,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를 그리스어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아노스는 '누구에게 속하다' 를 의미하는 접미사이다. 그러므로 크리스티아노 스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 , '그리스도를 따 르는 사람들' 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안티오키아의 이냐 시오에 의해 교회에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져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의 어의와 관련하여 볼 때, '그리스도인' 이란 하느님에 의해 기름 발린(축성된) 이들 로 구성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그 리스도의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그분의 집안에 속해 있는 지체가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표지로서, 그리스도인이란 세례를 받고 그 리스도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 의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그의 제자들인 것이다. 〔정 의〕 그리스도의 형상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은 자로서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자이다. "그분은 보 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골로 1, 15), "일찍이 아 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품안에 계시는 외 아들 하느님이신 그분이 알려 주셨다"(요한 1, 18). 인간 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그 리스도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다시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창세 1, 26),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한 것으로 만드셨고 당신의 본성을 본따서 만드셨다"(지혜 2, 23). 인간 창조로 하느 님께서는 당신을 드러내었으며, 아들의 강생을 통하여 이것을 완전히 이룬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은 세상에 있어 '하느님 현존' 의 모습, 하느님 주권의 대 리자, 하느님 권능의 집행자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형 상을 닮았다"는 것은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이 죄를 지은 상태에서도 하느님은 그 생명을 존중하여 인간을 죽이지 말라고 명하였기 때문이다. "사 람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니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도 흘리게 되리라"(창세 9, 6)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 으로(2고린 4, 4 ; 골로 1, 15 : 히브 1, 3 ; 2, 6-9) 고백하 며, 그분만이 죄로 인해 가려진 하느님의 형상을 복구할 수 있는 분이라고 하였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 버지의 뜻에 순명함으로써 이를 이룬 것이다(필립 2, 611 ; 골로 1, 15-20 ; 히브 5, 8). 그리하여 인류는 그리스 도를 머리로 하여 하느님께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스도 가 '하느님의 형상' 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리스도의 형 상' 으로 창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 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도록, 즉 영광 중에 나타날 그분 을 완전히 닮도록 부름을 받았다(로마 8, 28). 이로써 인 간은 아들 안에서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되며, 또한 그리 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2고린 5, 17). 바로 이 러한 존재가 참된 그리스도인인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참된 자녀' 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 : '하느님의 자녀' 란 표현은 먼저 이스 라엘 민족에 적용되는데, 이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관계를 인간의 '부모 자식 관계' 로 표현한 것이다. 이스 라엘은 출애굽 사건을 체험하면서 이를 역사적인 체험으 로(출애 4, 22 : 호세 11, 1 : 지혜 18, 13), 예레미야는 세 말의 해방을 제2의 출애굽으로 묘사하면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상기시키고 있다(31, 9. 20). 이 체험 을 바탕으로 '자녀' 라는 표현이 하느님의 백성 모두에게 적용된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이 칭호는 하느님 아버지 께 축성되어 바쳐짐을 의미하기도 하고(신명 41, 1-2 ; 시 편 73, 15),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기 위하 여 사용되기도 하였다(호세 2, 1 ; 이사 1, 2 ; 30, 1. 9 예 레 3, 14). 신약성서의 경우 '하느님의 자녀' 라는 진술은 여러 곳 에서 발견된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 느님을 '우리 아버지' (마태 6, 9)라고 부르게 하였으며,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들(마태 5, 9)과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루가 6, 35)과 부활한 의인들에게(루가 20, 36) '하 느님의 자녀' 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요한 복음서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요한 1, 12). 이러한 '자녀' 관은 바오로에게서 명백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특권이었 다(로마 9, 4). 하지만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 도에 대한 믿음으로 더 강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갈라 3, 26 ; 에페 1, 5) . 이들은 자신들 안에 이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는 성령을 모시고 있다(갈라 4, 5-7 ; 로마 8, 14-17). 이들은 하느님 자녀의 모상을 자 신들 안에 재현할 수 있도록 예정되었고(로마 8, 29), 아 들과 함께 공동 상속자로 예정되었다(로마 8, 17). 이렇게 되기 위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 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투신을 통하여 새로 태어나야 한다(디도 3, 5 ; 1베드 1, 3 ; 2, 2). 그리스 도의 길을 통한 이러한 새로 태어남이 죽음을 이긴 아들 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해준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 하여 그 '아들 안에서 참된 자녀들' 이 된다. 하느님은 당 신의 지혜이고, 당신의 아들인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 을 성령으로 '신적 친자녀 관계' 로 미리 정하고, 사랑 안 에 거룩한 자들이 되게 하기 위하여 선택하였다(에페 1, 4-5). 이는 모두 인간의 구원과 성화와 신화(神化, divinizaio)를 위한 것으로서, 인간을 단지 구원에 참여하 도록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2베드 1, 2). 사도 바오로 는 에페소인들에게 하느님은 "세계를 창건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뽑으시어 사랑으로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나무랄 데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당 신 뜻의 그 호의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 금 당신의 아들 되는 자격을 얻도록 예정하셨" (에페 1, 45)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예정설' 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예정이란 하느님께서는 모 든 인간들을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그리하여 당신의 생 명에 참여하고 그 생명을 나누도록 인간들을 불렀고 초 대하였다는 뜻이다. 창조 때부터 이미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의 뜻이었다. 아들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한 인간에 대한 영원한 예정(로마 8, 28-30)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의 한 것이다(에페 1, 5). 그분의 성의(聖意)에는 이스라엘 의 구원 역사, 각 신자들의 운명, 그리고 하늘과 땅의 종 말론적 운명이 모두 포함된다(에페 1, 11). 그분의 성의는 구원의 영원한 '섭리적 성의' 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현세 이전에 예정하신 것입니다"(1고린 2, 7). 이 지혜를 통하여 하느님은 인간들을 그리스도 안에 서 미리 보았고, 결과적으로 모든 피조물에 앞서 선택하 였다(1베드 1, 2). 창조의 목적은 그러므로 아들 안에서 인간들을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는 데 있었다. 모든 인간은 이 목적을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내졌 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존재의 비밀을 발견 하고 또한 자신을 완성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힘을 발견 하게 된다. 하느님은 인간들을 당신의 참된 자녀들로서 살게 하려고 이들을 그리스도의 본성적이고 신적인 친자 녀 관계에 참여하도록 해주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 여 당신과 신자들 사이에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의 참된 관계를 맺으면서 친자녀 관계로 미리 정하였다. 이는 인 간들에게 친교를 나누는 성령을 통하여 인간들 안에서 효과를 나타낸다. 이 예정은 아버지의 기뻐하는 뜻과 당 신의 자유로운 무상의 사랑에 의한 것이지, 인간의 자격 이 가져온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자 : '아들 안에서의 자녀' 란 하 느님께서 인간들이 당신 아들의 형상과 같이 되도록 미 리 정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 선택의 목적은 인간들의 완덕에 있다.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하여 우리에게 오며, 그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의 일치에서 인간은 구 원의 영원한 선성(善性)에 참여하도록 아버지로부터 상 속을 받았다. 이 예정으로 인간은 아버지의 구원 계획에 따라 하느님으로부터 신앙과 구원으로 부름을 받았고 여 러 가지 방법으로 그 신앙과 구원으로 인도되기에 이르 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정의 목적은 충만한 친자녀 관계이며, 아 들 그리스도를 닮는 것, 그리고 그분과 함께 하기 위해 그분과의 일치 안에 있는 것이다. 본성적으로 인간은 악 에 기울어져 있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창조 때에 이미 부 여받은 사랑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의해 계시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이면, 그 사람 안에서 하느 님께 대한 사랑이 회복될 수 있게 된다(1고린 2, 9 ; 8, 3). 그 하느님은 언제나 그분을 믿는 이들의 기쁨과 생명 이 되어 주는 분이다. 믿는 이들은 사랑하는 한 하느님의 영원한 결정으로 선택된 자들임을 나타내게 된다. 왜냐 하면 오직 하느님이 그들에게 부르심의 은총을 주었고, 그들 안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 다. 하느님께 부름 받은 이들이 누리는 구원이란 이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로 존재하는 것이다(필립 2, 6). 그 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영광 안에서 당신과 아주 가까운 많은 사람들 안에서 재현될 모범을 이루며, 독생 성자이면서, 자녀들 중에 맏아들로 있다. 하느님이 신자 들을 선택하였다든지, 예정을 해놓았다는 것은 그리그리스 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와 같이 한 것 이다. 믿는 이들이 부름을 받게 되면 그들의 삶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기에 믿는 이들은 지금 이 땅에서 계속적인 죄와 죽음의 불행한 처지를 고 통스러워 하고 신음하면서도(로마 8, 23), 이미 영원의 빛 속에서 하느님 앞에서 성취될 완성과 영광을 향한 도정 에 있음을 알고 있다. "그분은 당신이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 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로마 8, 30)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백인 것이다. 이것 은 하느님의 은총과 그분의 자비,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무상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찬미이다. 새로운 인간 : 아들인 그리스도는 당신을 건네주는 하 느님의 사랑을 최상의 방법으로 드러내면서, 모든 인간 들을 위해 결정적인 생명과 은총의 계약을 맺었다. 즉 아 들은 은총의 가장 큰 장(場)이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은 총을 통하여, 인간을 새로운 인간이 되게 하며,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갖도록 한다(로마 8, 15. 28-30 : 갈라 4, 56).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 게" (2베드 1, 4) 된다. 즉 신화(神化)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인간이 하느님화되도록, 인간이 하느님의 아들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느님의 아들과 "우리와의 친교는 곧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1요한 1, 3)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모든 성소가 빛 을 발하게 된다. 인간은 성령 안에서 아들과 아버지 사이 의 사랑의 상호 관계에 참여하면서 '하느님의 형상을 닮 음' 을 실현하도록 불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은 신화 (神化)의 은총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자신의 존재를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사랑하는 모든 이는 하느님에게서 났고 하느님을 알기 때문입니다"(1요한 4, 7). 그러나 인간 성소의 결정 적인 완성은 오직 '새 하늘과 새 땅' 에서 이루어진다. 인 간은 이미 하느님의 자녀이며, 이 때문에 점차적으로 자 신의 '하느님의 형상과 닮음' 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자녀인 한, 신화는 인간의 신앙 체험 중의 매우 오묘한 유산으로서, 신화된 인간은 바로 성삼위의 거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우리는 그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입니다"(요한 14, 23).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공동체성 : 바오로는 그리스도 인들이 '그분 안에서' 부활하고(골로 2, 12), 그 사람 안 에서 또 다른 그리스도가 "형성되도록"(갈라 4, 19) 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다" 고 언명하고 있다. 그리 스도 안에서의 이 일치에서 출발하여 신화된 그리스도인 의 영혼 안에 성삼위의 존재가 또한 실현된다. 아들 안에 서의 자녀들로서, 그리스도 안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 이 갖는 일치와 친교는 성삼위의 모상이다. 실제로 은총 안에서 거룩한 영적인 면의 상호 관계에서 개별적으로만 성삼위의 실제적인 모상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한 그들 상호간 사랑의 관계 안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 는 모든 것 안에 모든 것(골로 3, 11)이라고 한다. 그러므 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 (갈라 3, 28)를 이루는 공동체성을 띠는 것으로서, 실제로 그리스 도를 따르는 이들은 어느 한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바 로 열두 제자로 대변되는 무리, 하느님의 새 백성을 구성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그분 안에서 성삼위의 일치와 같은 모습으로서 당신 제자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였다(요한 17, 22). 그러기에 신약성서에 따 르면 새로운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의 일치를 표상하며, 이 일치는 하나이며 거룩한 삼위를 따른 것이 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께 서 제 안에 계시고 저 또한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 또 한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요한 17, 21). 인간을 변화시키고 들어 높이는 하느님의 현존은 이 세계 안에서 우리가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매순 간 실현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본 모습을 온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실현은 오직 하느님 자녀의 삶의 원리인 거룩한 성령의 업적일 수 있 다. 우리를 공동체 삶 속에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고 그 분을 향한 도정에서 우리를 밀어 주는 모든 것은 우리 안 에 거처하는 성령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모든 순간 하 느님의 자녀로서의, 그리고 새로이 태어난 피조물로서의 인간 공동체의 존재 안에서 실현된다. 그러기에 그리스 도인의 삶은 하느님의 아들딸로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성령의 세 가지 선물에 의해 살게 되고 완성될 것인데, 이는 바로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 에 의해 선포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해 나갈 원동 력이 되어 줄 신앙과 희망과 사랑이다. 공동체의 과제 :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서 창조되었지만, 자신의 오만에 빠져 죄를 짓고 죽음에 이르는 숙명을 띠게 되었다(창세 3장 ; 로마 5, 12). 이에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이 인간 세상 에 생명을 되찾아 주었다(요한 3, 16). 이제 이 새로운 생 명 공동체에 속해 있는 하느님의 새 백성은 그리스도인 으로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완 성시켜 가야 할 과제 앞에 서 있다. 아직은 그 새 백성이 온전한 충만에 이른 완성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어 있 지 않은 까닭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 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저 새로운 생명 공동 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아직 하느님의 생명에 온전히 참 여하지는 못한 채 그 생명을 향하여 나아가는 도정에 있 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온전한 생명의 나라 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미 걸었던 십자가 의 길을 통해서이다.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의 뜻을 이 루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어 십자가의 죽음까 지 받아들이셨던 스승이자 맏이이신 그리스도" (필립 2, 6-8)를 따라서 자신을 내어 주는 삶을 살아 나갈 때 그리 스도인들은 바로 그 이름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루가 14, 33).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제 약성을 띤 채 자신들에게 고유하게 주어지는 능력을 자 신과 가족과 교회와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실현해 나가 는 과정으로서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를 때, 참 으로 그리스도를 닮고 하느님의 자녀 신분을 살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십자가가 더 이상 치욕의 표시가 아니라, 하나의 도전이고 영광에의 길임 을 보여 주었다. 바로 하느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흘린 당신 아들의 피로써 만물을 화해시켰고(골로 1, 20), 세 상에 생명을 주었다(요한 19, 30-34). 이에 십자가는 이 제 죽은 나무가 아니라, '생명의 나무' 로서 구원의 살아 있는 표징이 되었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의 운 명도 스승의 그것과 같으리라고 하였다(마태 16, 24 ; 마 르 8, 34 ; 루가 9, 2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서 십자가는 단지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을 뜻하지만은 않 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지는 십자 가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는 철저한 투신으 로 나타나게 되고(마태 10, 34-39 ; 루가 12, 51-53 : 14, 26-27),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박해까지도 수락할 수 있 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 제자 됨의 표징이다 (마태 23, 24). 또한 이러한 십자가는 선취(先取)된 영광 의 표지이기도 하다(요한 12, 26). 그리스도 자신이 이미 "고난을 겪고 다시 영광을 누리게 되어 있다" (루가 24, 26)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역설적인 성 격으로 인하여 십자가는 바오로의 말대로 "유대인들에게 는 걸림돌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 을 받아 예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유대인 이나 헬라인을 막론하고 그들을 의화시켜 주는 도구이면 서, 또한 "하느님의 지혜"가 되는 것이다(1고린 1, 2324).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때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박혀서 하느님 안에 살기 위하여 죽었다(갈 라 2. 19). 그리하여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오 직 그리스도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여(2고린 1, 5) 그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겪는 고난 을 채워 나가게 되는 것이다(골로 1, 24). 그리하여 십자 가의 지혜와 능력으로 일관되는(1고린 2장) 그리스도인들 은 이와 같은 의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인간의 죄를 당 신 친히 지고 간 그리스도의 모범(1베드 2, 21-24)을 묵 상하여 이를 생활화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그 리스도인들은 아직 다 성취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향 하는 여정에서 고난의 표지인 동시에 영광의 표지이기도 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 세계 속에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구원 공동체의 지표로 선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그리스도인〕 제2차 바 티칸 공의회는 신약성서에서 사용된 그리스도인의 원래 의 의미를 되살려 냄으로써 그리스도교가 동방과 서방, 가톨릭과 여러 교파의 프로테스탄트로 갈린 이후 가장 분명하게 교회 일치의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교회 헌장> 15항에서 교부들은 비록 일정한 제한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신자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완전한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고 혹은 베드로의 후계자 밑에서 교류의 일치를 보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도 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결합되어 있음을 알고 있 다" 고 천명한다. "성세 때에 믿음으로 의화된 그들은 그 리스도의 몸에 결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 이 당연하며 가톨릭 교회의 자녀들은 그들을 주님 안의 형제로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일치 1~4, 6 항).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는 구세주이시며 일 치와 평화의 원천이신 예수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불러모 아, 교회(곧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우심으로써 모든 사람 과 각 사람을 위하여 구원을 이룩하는 일치의 볼 수 있는 성사 역할을 하게 하시었다"(교회 9항)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관련한 분명한 인식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구원 으로 불렸다"(13항)는 인류의 보편적 구원 요청에 의해 보다 더 확고하게 다져지고 있다. <사목 헌장> 22항에서 선언하고 있는 것과 같이 단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만 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역사하는 은총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모든 선의의 인간들에게도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부활의 희망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 을 위하여 죽으셨고(로마 8, 32) 인간이 불린 궁극 목적도 사실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신적인 것이므로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 에게 파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사목 22항)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토대 위에 서 비로소 이 땅의 교회는 참으로 '그리스도인' 이라는 칭호에 맞갖게 오랜 세기에 걸친 분열을 극복하고, 세계 교회와의 연대를 이루며 이 땅의 문화와 역사 안에서 하 느님 안의 충만한 생명을 함께 나누는 한 자녀 관계를 온 전히 성취하는 일치의 표지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될 것이 다. ※ 참고문헌 J. Audusseau . X. León-Dufour, <십자가>,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1984/ J. Ratzinger, 장익 역, 《그리 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 분도출판사, 1974/ M. Bordoni, Antropologia teologica, Roma, 1976/ P. Coda, La Chiesa porfezia dell umanità compiuta. Abozzo di antropologia trinitaria, La Chiesa salvezza dell'uomo, Roma, 1984, pp. 77~112/ T. Federici, Cristo e I'uomo icona di Dio, Doxologia 1, Roma, 1987/ A. Ferrua, 《EC》 4, pp. 909~910/ G. Gozzelino, Vocazione e destino dell 'uomo in Cristo, Torino, 1985/ L. Ladiria, Antropologia teologica, Roma, 1986/ H. Lerclereq, 《DACL》 31 1, 1913, PP. 1464~1478/ J. Moltrman, Dio nella creazione, Bresoia, 1986/ B. Mondin, Antropologia teologica, Storia problumi prospettive, Milano, 19771 Hans Kiing, 정 한교 역, 《왜 그리스도인인가》, 분도출판사, 1982/ Hans Kiing, 《오늘을 사 는 그리스도인》, 분도출판사, 198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NCE》 17. 〔曹旭鉉〕 II . 교회법적 의미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평신도, 성직자, 수도자 모두 를 통칭하는 말이다. 현 교회법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 의회의 <교의 헌장> 31항의 정신을 이어받아 "그리스도 교 신자(정확히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세례로 그리스도께 합체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성되고, 또한 이 때 문에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 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하느님이 교회에게 이 세상 에서 성취하도록 맡긴 사명을 각자의 고유한 조건에 따 라 실행하도록 소명받은 자들이다"(교회법 204조)라고 정 의 내리고 있다. 비가톨릭 수세자(受洗者)의 경우, 신학 적으로는 이미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 회에 합체되어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비 록 그 합체가 완전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교 신자' (그리스 도인)라 표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교회법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성사에 참여하고 적법한 목자들에 대한 순명 을 통하여 가톨릭 교회와 온전히 일치를 이루는 신자들 을 지칭한다. 예비 신자들의 경우, 아직 세례를 받지 않 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자(그리스도인)는 아니지만 특 수한 방식으로 교회와 연결된다. 즉 "그들은 성령으로 감도되어 교회에 합체되기를 명백한 의지로 소망하고, 따라서 바로 이 원의와 함께 실행하는 신덕과 망덕과 애 덕의 삶으로써 교회와 결합되고, 교회는 이들을 이미 회 원들로서 애호한다”(206조). 따라서 교회는 장례식에서 예비 신자들에게도(1183조 1항), 신자들과 같은 축복들을 베푼다(1170조) 〔구 성〕 그리스도인들은 교계적으로 볼 때 크게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된다. "하느님의 제정으로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는 교회 안의 거룩한 교역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법에서 성직자들이라고 부르고 그 외의 신자들은 평신도들이라고 부른다" (207조 1항). 이러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인정법(人定法)이 아니라 신정법(神定法)에 근거하는데 단순한 역할과 직분의 차이가 아니라 존재론적 성격을 지닌다. 즉 신분의 근거가 각각 세례성사와 신품성사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세례로 다시 태어난 단순한 신자들이며, 성직자들은 세례성사 이외에 신품성사를 받는데 이 신품성사로써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하도록 거룩한 교역자로 선임되는 신자들이다(1008조). 이 두 신분은 상호 보완적이며 거룩한 교역자는 하느님 백성의 선익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봉사자(διακονία) 의 정신을 근본으로 한다. 한편 수도자는 "교회의 교계 조직에는 상관이 없지만 교회의 생활과 성덕에 속하는"(207조 2항) 신분으로서 "이 양편(성직자와 평신도)의 그리 스도교 신자들 중 교회에 의하여 인정되고 재가된 서원 이나 그 밖의 거룩한 결연을 통한 복음적 권고의 선서로 써, 특별한 양식으로 하느님께 축성되고 교회의 구원 사 명에 이바지하는 이들이다"(207조 2항). 〔의무와 권리〕 의무 : 각자의 고유한 조건과 임무에 따 라 그리스도의 몸 건설에 협력할 의무(208조), 교회와의 친교를 항상 보존하여야 할 의무(209조 1항), 거룩한 생 활로 교회의 성장과 줄기찬 성화 증진에 노력할 의무 (210조), 복음을 전파할 의무(211조), 교회의 공식 가르 침에 순명하여 따를 의무(212조), 물질적으로 교회의 필 요를 지원할 의무(222조 1항), 사회 정의를 증진시키고 또한 주님의 계명을 명심하여 자기 수입에서 가난한 이 들을 도와 줄 의무(222조 2항) 등이 있다. 권리 : 복음을 전파할 권리(211조), 교회 선익에 관련 된 문제를 목자들과 신자들에게 알릴 권리(212조 2항), 교회의 영적 선익에서 특히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들에서 거룩한 목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권리(213조), 예식의 규정대로 하느님을 경배하고 또한 교회의 가르침에 맞는 영적 생활의 고유한 형식을 따를 권리(214조), 애덕이나 신심의 목적으로 단체를 결성하고 집회를 가질 권리(215 조), 사도적 활동을 증진시키거나 지원할 권리(216조)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받을 권리(217조), 자기의 신분 선 택에서 어떠한 강제도 받지 아니할 권리(219조) 등이 있 다. 그런데 자기의 권리를 행사할 때에는 교회의 공동선 뿐 아니라 타인들의 권리 및 타인들에 대한 의무도 참작 해야 하며, 교회 권위자는 그리스도인들이 고유한 권리 를 공동선에 비추어 행사하도록 조정할 소임이 있다(223 조), (⇦ 그리스도인) ※ 참고문헌 L. Chiappetta, II Codice di Diritto Canonico, vol. 1, Edizioni Dehoniane, Napoli, 1988, pp. 265~287. [宋悅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