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
哲學
[라]philosophia Graeca · [영]philosopy of Gr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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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초기 서정 시인을 묘사한 그림.
그리스 철학은 서양 철학의 사실상의 기점이다. 그러 나 이 그리스 철학 자체의 시발점을 어디로부터 잡을 것 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그건 어 느 날 갑작스레 본격적인 철학적 탐구가 그리스에서 일 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 본 격적이고 활발한 철학적 탐구 활동이 일어난 것은 그때 까지 성숙된 기반이 있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 기반 은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하여 복합적으로 조성된 것이었 다. 그 요인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적 · 경제적 상황의 변천을 통한 그리스인들 의 의식 변화이다. 이는 미케네 문명의 종식에 따른 왕정 의 붕괴와 이에 이은 귀족 체제와 참주(僭主) 체제 시대 의 도래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갖게 됨으로써 인생과 자연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둘째, 자연 현상을 비롯하여 인간의 심리 및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신화적 접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 로 신화는 놀라움(驚異, θαῦμα)으로 가득 차 있고, 이 '놀라움' 은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이를 설 명해 보려는 그리스인들의 시도와 이어진다. 셋째, 사물 을 일반화시켜서 보편적 관점에서 보는 그들 특유의 방 식이다. 예컨대, 호메로스 이래로 '사람다움' 이라는 것 을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에 의해 일반화시켜 생각 하는 태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 아무리 철학적 탐구의 기 반이 잘 조성되었다 할지라도 정작 그것이 본격적인 탐구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떤 계기가 있고서야 가능하였다. 이 계기는 탈레스(Thales)라는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에 의해 마련되었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은 철학적 관심사와 시대적 · 지역적 특성에 따라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이를 몇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철학〕 개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그리스인들 은 기원전 7세기 이후 인생과 자연의 무상함을 반영하는 서정시를 내놓았다. 이른바 이 서정시적 시기를 거치면 서, 기원전 7세기 말 및 6세기 초에 그리스의 초기 철학 자들은 이 무상한 변화를 반복하는 자연(φύσις)에 대해 철학적인 의문을 갖고 이에 대한 해답을 시도하였다. 외 견상 자연 현상들은 변화 무쌍하지만, 잘 관찰하면 어떤 반복적인 규칙성 또는 법칙성을 보이는 것이었다. 따라 서 그들은 이 규칙성이나 법칙성이 어떤 통일성과 영속 성을 지닌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시도함에 있어서, 키르크(G.S. Kirk)의 말대로, 그들은 신화적 접근의 두 가 지 기본 틀을 따랐다. 즉 그 하나는 자연 현상의 설명을 발생적 관점에서 하는 것으로서, 현상들이 무엇에 그 근 원을 갖는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어떤 근 원적인 물질 즉 원질(原質)에서 찾으려 했다. 다른 하나 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신이 모든 것을 규제하듯이 자연에는 어떤 원리 내지는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 고, 이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려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른바 '자연에 관한 탐구' 가 진행되는데, 이 탐구는 곧 자연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에 대한 탐구요, 그 ‘근원’(ἀρχή)에 대한 탐구이다. 이는 또한 변화 무쌍한 현상들과는 달리 그 배후에 있는 영속적이고 참된 존재, 즉 ‘실재’(τὸ ὄν)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이기도 하다. 탈레스는 원질을 물이라 하였다. 그에 이어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의 근원을 아직 그 어떤 특정한 물질로도 ‘한정되지 않은 것’(τὸ ἄπειρον), 따라서 대립되는 성질의 것들이 혼재한 상태로 설명하고 이를 대립되는 것들로 온·냉·건·습 등이라 하였다. 동 시대의 아낙시메네스 는 '공기' 라는 한 가지 질료를 원질로서 내세웠다. 이들 은 이오니아 지역의 밀레토스라는 도시 국가 출신들로서 밀레토스 학파 또는 이오니아 학파라 불렸다. 이들 자연 철학자들이 내세우는 근원적 질료(hyle)는 단순한 물질 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었기 에, 이들의 주장은 물활론(物活論, hylozoism)으로 지칭 된다. 이들에 이어 등장한 철학자들은 피타고라스와 그를 추 종하던 사람들, 이른바 피타고라스 학파이다. 피타고라스는 우주를 코스모스(κόσμος)로 부르기 시작한 최초의 사람이다. 그리스어로 이 말은 ‘질서’, ‘장식’ 또는 ‘치장’ 등 ‘아름다움’을 연상시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말로써 그가 의미한 것은, 이 우주는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움은 질서에서 비롯되며, 질서의 비밀은 수(數) 및 수적 구조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제대로 알 수 있고, 이를 알고 이에 따른 삶을 살 때에 비로소 사람은 우주적 질서에 동화되어 그것을 닮은 이(κόσμος)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취지에서 “사물은 수이다”라고 하였다. 필롤라오스를 포함하는 이른바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 들은 그의 이런 취지에 따라 사물에 대한 수학적 접근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잘 보여 주는데, 여기서 이후의 그리스 철학이 질료가 아닌 다른 것에서 사물들의 근원 이나 원리 또는 실재를 찾게 되는 또 하나의 그리스 철학 의 줄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에페소 출신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의 원리를 로고스(λόγος)라 하였다. 그는 감각에 현혹되지 않고 모 든 사물에 공통되고 그것들이 따르게 마련인 이 로고스 를 이해함이 곧 지혜로움이라고 하였다. 그는 "모든 것 은 투쟁 관계에 있어서 끊임없이 흐르는 상태, 즉 운동 상태에 있으며, 사물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니, 이는 바른 이치이다"라고 말한다. 예컨대 낮과 밤은 대립된 것 같지만 함께 하루를 이룬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하나의 길을 이루며, 현악기의 공명판과 거 기에 매인 채 팽팽하게 조여져 있는 줄들 사이의 긴장 관 계가 음악을 이루게 한다. 이것이 사물이 이루어지는 이 치이다. 그런데 그는 앞서의 밀레토스 학파의 경우처럼 아직도 근원적인 것을 어떤 질료적인 것에서 찾는 사고 의 틀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서, 로고스의 상징 적 질료로서 불〔火〕을 내세웠다. 끊임없는 운동 상태에 서 사물들의 참 모습을 찾은 헤라클레이토스는 운동과 생성의 문제와 관련해서 전개되는 철학의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남 이탈리아의 엘레아 출신인 파르메니데 스는 고정 불변한 것으로서 존재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철학자이다. 그를 위시한 그의 추종자들을 후세 사 람들이 엘레아 학파라 일컬은 것은 이 지명에서 연유한 다. 이제까지의 만물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실재, 즉 참 존재' 에 대한 탐구였다. 바로 이 존재에 대한 철저한 논 리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이다. 그 는 “있으며(εἶναι) 있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만이 진리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있다’고 함은 논리적으로 가장 충실한 의미에서의 ‘존재함’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사유될 수 있음’ (νοεῖν)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의 존재론에 있어서 사유될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 (τὸ ὄν)이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경험하고 버릇들인 감각의 차원에 있어서 ‘존재하는 것’은 파 파르메니데스적 존재론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 (τὸ μὴ ὄν)이 없다. ‘존재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생성되지도, 파멸되지도 않기에 아무런 변화나 운동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이며 단일하고, 완전히 불가분적이다. 이러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은 극히 생생하게 생명들로서 ‘있지 않은 것’을 걸러낸다. 따라서 그의 존재론에 있어서 현상계는 그렇게 ‘보일 뿐인 것’ 즉 ‘이름’ (ὄνομα)뿐인 것으로 귀결된다. 또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적 결론에서 벗어나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합리적 철학적 탐구로 돌아가려는 최초의 등장한 것으로서 다원론 (多原論)이 있다. 다원론에서는 원질을 여럿의 원질들로 보며, 이 원질들은 운동에 의해 다양한 결합을 하게 되는 것으로 본다. 다원론을 연 것에 내세운 사람은 치릴리아 아크리티스라 불리는 인페도클레스이다. 그는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 원질을 단일한 것이 아닌 다음 네 가지의 원소 (στοιχεῖον)들, 즉 흙·불·물·공기로 제시하며, 이들 각각을 뿌리(ῥίζωμα) 라는 말로 그 상징성을 나타냈다. 사물들이 생성되거나 소멸하는 것은 이 4원소들의 결합과 분리로 인 한 것이며, 사물들의 다양성은 이 원소들의 결합 비율의 상이성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원소들의 결 합과 분리를 가능케 하는 운동 원인을 물질로부터 독립 시켜 '사랑' 과 '불화' 로 제시하였다. 그를 잇는 다원론 자는 이오니아 출신으로 아테네에 와서 활약하였던 아낙 사고라스이다. 그는 사물의 다양성을 네 가지 원소들만 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무한수의 것들을 내세우 며 이것들을 '씨앗들' (σπέρματά 하였다. 그러나 이 것들은 '모두가 함께' (ὁμοῦ πάντα) 있는 형태를 취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것에는 모든 종류의 씨앗들이 함께 있는 데, 다만 씨앗들의 혼합 비율에 따라 사물의 다양성이 가 능하게 된다. 그도 혼돈 상태에 있던 세계에 질서를 부여 한 운동의 원인을 내세웠는데, 그것을 ‘정신’ (νοῦς)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운동 원인을 그 이상 발전시키지는 못하였다. 이들에 이어 다원론적 이론을 내세우되, 그들과는 구 별될 수밖에 없는 주장을 편 사람들이 있다. 특히 원자론 자들이라 칭하는 자들이다. 원자론은 흔히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창시한 것으로 본다. 원자론은 파르메니 데스의 주장을 의식한 것으로 무한수의 원자들과 원자들 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인정한다. 공간이 허공인 데 비해, 원자는 충만 상태에 있는 실재이다. 원자(ἄτομον) 란 지극히 미세하여 더는 쪼갤 수 없는 것' 이란 뜻으로, 다른 다원론자들의 원소들과는 달리 원자들 사이에는 질 적 차이는 없고, 다만 크기와 모양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 을 뿐이다. 이런 원자들이 무한 공간에서 운동하는 가운 데 비슷한 것들은 비슷한 것들끼리 얽히거나 모이게 되 어 먼저 원소와 같은 형태의 물질을 형성할 것이고, 이것 들이 다시 모여서 사물을 이루게 되는데, 사물들의 다양 성이 확보되는 것은 이런 원자들의 결합 순서와 형태 그 리고 상대적 위치 등으로 말미암아서이다. 트라케의 압 데라 출신인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57경)는 백 살이 넘도록 장수한 탓에 이 원자설을 그의 인식론에까지 확 대하여 적용하게 되는데, 인식론적 고찰은 바로 다음 시 대의 철학적 관심사이다. 〔소크라테스 시대 철학〕 기원전 5세기 후반 이후로 접 어들어서 그리스 철학의 주된 무대는 아테네로 옮겨 온 다. 이는 아테네가 기원전 480년 이후 그리스 전체의 중 심이 되고 이 나라가 완벽한 민주 제도화가 이루어진 때 문이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나라 일 에 관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 있는 이 체제는, 이른바 '소피스트' (sophist, 궤변론자)라 불린 부류의 사람들을 등장케 하였다. 그들은 사람을 빼 어나게 하는 '훌륭함' (ἀρετή)을 습득케 해주겠다고 하며 돈 가진 집안의 자제들을 모아서 가르쳤다. 이들에게 있 어서 여러 가지 기술들 중 변론술이 으뜸으로 여겨졌다. 유명한 소피스트인 피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 (μέτρον)”라고 했는데, 이 말은 각자가 모든 판단(δόξα) 의 척도이고, 이 판단의 능력으로 인간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감각(αἴσθησις)일 뿐임을 뜻한다. 모든 사람들이 승복할 수 있는 그런 진리도, 그런 진리를 알 수 있는 능 력도 인간에게는 없다. 각자가 그때마다 저 나름의 지각 에 의해 갖는 판단이 고작이요, 그런 판단들은 근본적으 로 모두가 대등하나, 상대적으로는 더 낫거나 못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민회에서나 법정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약 화시키는 한편 자신의 주장을 강화시켜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만들 수가 있다. 소피스트들은 인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행위의 문제에 있어서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는 상대주의적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대하여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철학적인 문제점들을 제쳐놓더라도, 자칫 변론술과 선동 정치에 아테네의 장래가 내맡겨질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을 예견하였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람의 훌륭함은 앎 (ἐπιστήμη)이다." 이 뜻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는 제화공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제화공으로서 훌륭하게 됨은 구두의 구실 즉 기능(ἔργον)에 대한 앎을 갖고 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고서야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람 구실을 하게 하는 것을 그는 이성이라 하였다. 그가 델피 신전에 새겨진 잠언을 빌려 "러 자신을 알라" 고 한 것도, 저마다의 혼을 보살필 것을 끈질기게 권유한 것도 실은 이 이성의 능력을 저마다 자신의 혼 속에 지니고 있 다는 사실에 대한 일깨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성의 적절하고도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모두가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참된 인식에 이를 수 있다고 하며, 대화 형 식의 문답법(διαλεκτική)을 그 활용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 로 제시하였다. 그의 문답법은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앎 이 사사로운 판단이나 의견(δόξα)에 불과함을 자각하게 하는 논박의 단계와 스스로 인식에 이르도록 하는 산파 술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뒤로 그 맥을 잇는 것은 플라톤(기원전 428/427~ 347)의 철학이다. 그가 철학을 하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 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스승을 사형에 처 한 당시의 아테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데 뜻 을 두고, 스승의 미완의 철학적 작업을 이어받고자 하였 다. 그런 작업의 일환으로 그는 아카데미아 학원을 수립 하였다. 스승의 철학적 논의의 행각이 그랬듯이, 대화편 형식으로 된 그의 저술들은 초기 · 중기 · 후기로 나뉘는 데, 초기의 것들은 소크라테스적인 것들로서, 의미 규정 적 작업이 그 주류를 이룬다. 중기 대화 편들에서는 플라 톤 특유의 이데아 내지 형상(形相, εἶδος) 이론이 본격적 으로 나타난다. 그는 앎과 관련되는 주관의 능력을 크게 나누어 감각적 지각(αἴσθησις)과 지성(νοῦς) 또는 지적 직관(νόησις)이라 하는 한편, 그것들에 알려지는 대상들 을 각각 '감각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 (τὸ αἰσθητόν, 감각 적인 것)과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 (τὸ νοητόν, 지 적인 것)이라 하였다. 이데아 또는 형상이란 지성에 직관 되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고, 그것은 우리의 지각과 독 립해서 또한 그것에 앞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리고 그것에 대한 인식과 함께 사물들에 대한 지성적인 접근은 사물들의 바른 이해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것이 라는 것이다. 그가 '최대의 배움' 으로 일컫는 '선(善, τὸ ἀγαθόν)의 이데아' 에 대한 인식은 자연에 있어서 궁극적 원리로서 균형의 구현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데 미우르고스라는 우주 창조자가 우주를 창조한 것도 이 원리에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스 철학의 마지막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이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의 사망(기원전 323) 이듬해에 죽었으므로, 철학사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을 그리스 철학이 아니라, 이른바 헬레니즘 (hellenism) 시대의 철학이라 본다. 그는 17세에 아카데 미아에 입문하여 플라톤이 죽기까지 향후 20년 간을 이 곳에서 수학하였다. 그 뒤로 그는 몇 곳을 옮겨 다녔고, 알렉산더의 스승 노릇도 하였다. 기원전 335년에 아테 네로 돌아온 그는 아카데미아 학원에 맞먹는 리케이온 학원을 세웠다. 이곳을 무대로 학문을 한 사람들을 소요 학파라 일컬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학원 내의 산책 길을 거닐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데서 온 말이 다. 그는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 는데,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것들은 그 가운데 1/5에 불 과하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방대한 규모의 것이다. 그의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자연에 관한 이론이 다. 자연적 개체는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는 기체(基體, ὑποκείμενον)이며, 그 자체에 운동의 원리, 즉 자연적 본 성(φύσις)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본래 기체는 그 기능 (ἔργον)과 관련된 형상(εἶδος)이 아직 적극적으로 실현되 지 않고 있는 결성(缺性, ἑτεροούσιος) 상태에 있는 것이어 서, 질료(ὕλη)적인 것이다. 질적 변화로서의 운동으로 이 질료적인 것은 형상 실현의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이 는 그것의 형상 즉 기능이 가능성으로만 있다가 마침내 실현되는 현실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기체는 다른 방해를 받지 않는 한, 가능태(δύναμις)에서 현실태(ἐνέργεια)로 이행하는데, 이 현실태는 그 기능이 일단 실현을 본 상태와 그것이 활동하고 있는 상태, 즉 활동태로 내용상 구분된다. 그리고 그 기능이 더 이상의 발전적 진행을 할 필요가 없게끔 된 완성(τέλος)의 상태 를 완성태 또는 완전태(ἐντελέχεια) 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 생명도 이런 발전적 방향으로 이루어져 간다. 인간 은 처음에 이성 및 지성의 능력에 대한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났으나, 이를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양한 방향 과 여러 단계로 실현시킬 수 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욕 망을 이성으로 늘 다스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윤리 적 훌륭함(德, ἀρετή)을 구현하게 되는데, 이는 중용(μεσότης)을 습성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반면에 이성 및 지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함으로써 성취하게 되는 훌륭함을 그는 ‘지적인 훌륭함’(德)이라 하였는데 인간의 행복은 이런 상태에서의 활동, 즉 ‘관상’(觀想, θεωρία) 내지 사유(νόησις)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만이 인간은 신(神)의 활동인 ‘사유의 사유’ 즉 ‘순수 사유' 에 참여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 기원전 322년 아리스 토텔레스 사망 이후, 고전적 그리스는 새로운 헬레니즘 시대로 들어가고, 국가적 기반의 상실에 따라 개인주의 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여러 학파의 출현이 있 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윤리학, 특히 개인 윤리학이었다. 이들은 형이상학 · 물리학의 연구를 전연 등한시하지는 않았으나, 그들 학문의 특성은 자기 자신 속에 침잠하는 것이었다. 이들 중에 하나가 스토아(stoa) 학파이다. 이 들은 외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족하는 현자의 심경을 추구하였다. 또 하나는 에피쿠로스(epikuros) 학파로서 진정한 내적 쾌감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외계의 모든 것 을 의심하였던 회의(skepsis) 학파가 있었다. 이들 학파들 의 견해는 로마의 사상계에 보급되었으며, 로마의 이에 대한 관심은 큰 것이었다. 그리스 철학을 로마 사상계에 전달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은 치체로(Cicero)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고대 철학을 장식하는 그리스 철학은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에 의하여 완결된다. 이는 인 간지(人間智)의 불완전성이 증명되었으므로 구원은 신 앙에 의하여 획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후 로 다시 한번 여러 선행(先行) 학설을 기초로 하여 시대 의 요구에 응한 일종의 철학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이루 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신 플라톤 학파이다. 이들은 플라 톤의 이데아설을 계승하여 일체 사물의 정신적 근원으로 서 이데아를 내세우고, 이데아의 창조자로서는 신(神)을 생각하고 신비적 직관에 의하여 신의 경지를 체험하려고 하였다. 그 대표자는 플로티노스이며 그의 사상은 대표 작 《엔네아데스》(Enneades)에 의하여 전해진다. 그러나 이 신 플라톤 학파는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세력에 의하 여 사상적으로 압도당하게 된다. (→ 소크라테스 ; 아리 스토텔레스 ; 플라톤) ※ 참고문헌 W.K.C. Guthrie,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vols. 1~4, Cambridge, 1972~1981/ -, The Greek Philosophers(From Thales to Aristotle), New York, 1960(박종현 역, 《희랍 철학 입문》, 종로서적)/ T.H. Irwin, Classical Thought, Oxford, 1989/ J. Barnes,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London, Routledge, 2nd ed., 1989/ G.S. Kirk . J.E. Raven· M. Schofield,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Cambridge, 2nd ed., 1990/ Diels Kranz,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Ⅰ~Ⅲ , Weidmann, 1952. [朴琮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