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자르, 앙드레 (1873~1903)

Grisard, Andr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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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자르 신부.

그리자르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안드레 아. 한국명 지안덕(池安德) . 프랑스 르와르(Loire) 지방 에서 태어났다. 생 조다르(Saint Jodard) 신학교에서 그는 동료들과 선생님들로부터 끈기 있고 신앙심이 깊고 규칙 을 잘 지키는 사랑받는 신학생이었다. 1894년 11월부터 1895년 9월까지 생 테티엔느(Saint Etienne)에서 군 복무 를 하였고, 제대하자 곧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지원하여 그 해 10월 7일 입학하였다. 1898년 6월 26일 사제 서 품을 받고, 8월 3일 한국을 향해 출발하였다. 상해(上 海)를 거쳐 제물포(濟物浦)를 통해, 10월 8일 서울에 도 착하였다. 주교관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뮈텔(Mutel, 閔德 孝) 주교의 지도 아래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관례와 풍습을 배웠으며 한문도 배웠다. 1899년 봄 함경남도 안변군 위익면(安邊郡 衛益面)에 위치한 내평(內坪) 본당에 부임하였다. 그런데 당시 본 당은 전임 불라두(T. Bouladoux, 羅亨默) 신부가 교안(敎 案) 사건에 휘말려 물러난 후 교인들에 대한 외교인들의 박해가 날로 거세어지고 있었다. 부임 다음날 발생한 교 우 방사걸(方士杰, 미카엘) 피살 사건과 이에 따른 양인 선(梁仁善, 폴리가르포)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결하고 자 그리자르 신부는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외 에도 금광 채굴업자들에 의한 교우 과부 납치 사건과 교 우들을 추방하려던 외교인들의 계획적인 음모인 논 소송 사건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불라두 신부 의 실패를 교훈삼아 참을성 있게 견디어 나갔다. 그러다 가 결핵에 걸려 1903년 6월 10일 서울을 떠나 홍콩의 베타니아 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하였으나 회복되지 못하 고 8월 16일 선종하였다. (->내평 본당) ※ 참고문헌  Compte Rendu, 1903/<뮈텔 문서>.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