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

克己

[라]abnegatio sui ipsius · [영]self-den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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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금욕주의와 신비적 금욕주의의 고행 실천은 전통 수덕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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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금욕주의와 신비적 금욕주의의 고행 실천은 전통 수덕의 방법이었다.


전문적 숙련을 목표로 하는 지속적 훈련, 즉 고행(苦 行)은 그리스어 아스케시스(ἄσκησις)라는 말에서 유래 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신 자들을 경기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시키는 경 기자(1고린 9, 24-27)에 비유하였다. 단식과 절제, 자선 과 기도는 그리스도의 성령에 예민해지기 위한 수련 방 법으로 간주되었고, 순교와 동정은 가장 훌륭한 고행으 로 존중되었다. 사막의 고행자들과 교부들을 통해서 형 성된 가톨릭 전통의 수덕(修德) 신학에서는, 고행의 문 제를 도덕적 훈련 및 신비적 훈련이라는 두 측면에서 취 급하여 왔다. 한편, 고행에 준하는 용어로서 극기가 유교 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통에서 사용되었다. 이는 《논어》 <안연> 편의 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인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욕망을 극복 하고 예(禮)에 맞게 사회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공자의 수양론인 것이다. 이처럼 고행과 극기의 개념이 두 개의 다른 전통에서 발전하였기에, 그 개념들을 각각 살펴보 고, 오늘의 시각에서 이 두 개념이 어떻게 조명되고 있으 며, 어떻게 상호 보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 가 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의 고행〕 고행이 그리스도교 완 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313년 그리스도교 가 로마 제국의 인정을 받고 세속화되면서부터였다. 순 수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현하려는 이상으로 순교 대신 사막을 택한 은수자들은 악과의 내적 투쟁, 자기 부정, 철저한 포기 등의 고행을 실천하였다. 은수자들의 고행 실천은 수도원의 규율적 생활 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수 도원 운동은 일반 신자들의 영성에 자극을 주었다. 그런 데 고행을 중시하는 중세기적 금욕주의 안에는 영과 육 을 반대 세력으로 보는 그리스 철학의 이원론이 자리잡 고 있었고, 공동체를 소외시키는 개인주의적 신심에 치 중하는 약점이 있었다. 현대에 들어와 완덕의 개념이 영 육의 조화된 일치와 공동체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고행의 의미와 역할은 신학적 반성의 주제가 되어 오고 있다. 전통 수덕 신학에서 본 고행 : 가톨릭의 수덕 신학 전 통에서는 도덕적 금욕주의(moralasceticism)와 신비적 금 욕주의(mystical asceticism)를 분리하여 취급하였다. 도덕 적 금욕주의 혹은 고행 실천은 악한 생활 습관을 떠나 하 느님과 이웃 사랑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마음의 회개 (metanoia)를 말하였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런 회개를 가장 중요시 여겨서, 악으로 이끄는 육체의 본능을 억제 하는 고행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런 금욕주의는 정신과 육체의 이원적 구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세 기의 신심을 대표하는 《준주 성범》을 보면 "그리스도인 은 이 세상의 나그네요 순례자로서 천국이 본향(本鄕)"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도덕적인 회개와 고행을 지속 적으로 촉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현대 심 리학은 육체적이거나 정신적 고행이 인간의 느낌과 감정 을 억압하게 하여 인간 성숙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혀 내었다. 또 개별적 증세를 치료할 때, 그런 증세들 밑에 깔려 있는 감정적 문제를 전체적으로 다루어야 될 필요성이 알려지면서, 종교적 고행 역시 새로운 국면으 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신비적 금욕주의 혹은 고행 실천은 하느님과의 온전한 일치를 목표로 한다는 면에서 도덕적 회개보다 더 높은 수준의 훈련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일치를 위한 마음의 정화와 잠심(潛心)의 훈련, 온전한 포기와 위탁, 꿰뚫어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를 있는 그대로 신앙의 어두움 안에서도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내면적 고행의 의미가 중시되었다. 전례적으로 하느님과의 일치를 준비하기 위 하여 교회가 요구했던 영성체 전의 공심재나 정화 의례, 단식, 밤샘 등도 그 의례 자체보다는 의례적 체험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맛본다는 내면적 의미가 더 중시되었 다. 그런데 전통적 수덕 신학에서 분리했던 이런 도덕적 고행과 신비적 고행은, 실제로 한 가지 그리스도교적 삶 의 두 측면으로, 이러한 이론적 구별이 오히려 그리스도 교적 삶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했다는 신학적 비판이 제기되었다. 도덕적으로 악한 생활에서 돌아서는 회개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지향하는 연결선상에서 그 목적과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도덕적 회개와 신비적 정화는 신앙 안에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가질 때에만 의미가 있음이 강조되었다. 현대 신학적 반성 : 신앙의 부르심에 대해 우리가 하는 매일의 응답은 새로운 안목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자기 부정을 요구한다. 신앙의 삶을 충실히 살고자 할 때 인간은 그침 없이 자기와 싸워 욕망을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 비움이 곧 그리스도교적 고행의 기초가 된다.아브라함은 하느님 앞에 자신을 굴복시킨 대표적인 신앙인이었다. 그는 야훼께서 보여 주는 약속의 땅을 향해서 자기가 귀중히 여겼던 고향, 친지, 이웃을 떠나야 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아들을 포기해서 모든 세속적 희망까지도 버려야 했다. 현대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교적 고행의 기초인 자기 비움과 아브라함의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그리스도교적인 고행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일별하고, 성덕(聖德)을 정의한다.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의 자유로움이야말로 신앙인의 삶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고행의 첫번째 특징이다. 두번째 특징은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당한 고통에 스스로 참 여함으로써 그 구원의 의미를 증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이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예수의 대속(代贖) 안에 동참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는 그리스 도교적 신앙에 근거를 둔다. 세번째 특징은 종말적 성격 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 공동체는 목적지를 향해서 걸 어가는 순례자들이다(히브 11, 10). 따라서 그들의 고행 으로 이 세상의 완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대신 불완전한 인간과 인간 사회를 인내롭게 받아들이 고 살아가면서, 하느님이 완성해 줄 마지막 날에 희망을 두어야 한다. 종말에 대한 신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현 세의 불완전함에 절망하지 않고 하느님께 위탁하는 데서 오는 힘과 평화를 준다. 현대 신학의 정의에 따르면, 성 덕이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어떤 사물이 아니다. 성덕 은 하느님과의 인격적 일치에 기초를 둔 것으로, 일면 하 느님의 선물이면서도 다른 일면 인간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일상사를 살아가는 실존적 성덕은 도덕 적 회개나 선행보다 더 넓고 깊은 것으로 한 사람의 존재 양식 그 자체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전통에서의 극기〕 유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오래 된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 안에서는, 천자 (天子) 자리에 오른 임금도 천명(天命)으로 받은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덕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사상이 있다.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뒤를 이어 성왕(成王, 기원전 1025~1005경)이 왕위에 오르면서 내린 칙서에는 "나는 현명(哲)하지 못하여 국민을 평안 하게 이끌지를 못하니 어찌 하늘의 뜻을 아는 데〔知天 命〕 이를 수 있겠는가!"(《서경》 大誥 편)라며 성왕(聖王) 이 될 자격이 부족함을 우려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 게 주(周)나라 초기에는 위정자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 던 인간의 이상상이, 기원전 6세기인 춘추 시기 말에 이 르러서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모든 인 간이 이상상에 다다르기 위한 동아시아의 보편적 수양론 은 공자에서 시작되고 그의 수양론은 극기라는 용어로 요약될 수 있겠다. 《논어》에 나오는 극기 : 공자가 일생 동안 가르치고자 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인자함으로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공자에게 있어서 인(仁)이란 천부적인 덕을 키워 모든 덕목이 완성된 상태, 곧 인간이 걸어야 할 바른 도를 충실하게 따름으로써 도달하는 최 고의 경지였다. 이 인을 이루는 방법으로 공자가 제시한 방법은 '충서' '(忠恕)였다(里仁 편 15장 ; 衛靈公 편 24장). 충서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서게 하고, 자기가 도 달하고 싶으면 남을 도달하게 한다" (雍也 편 28장)는 도 덕의 황금률을 말한다. 주자(朱子)의 주석에 따르면, '충' (忠)이란 자신 안에 있는 천부적 도덕성에 대한 충 실을 가리키고, '서' (恕)란 그것을 확충하여 남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충은 자신의 내면적 수양을 지칭하고, 서는 남과의 관계 안에서 실천되는 인자함을 가리킨다. 인자함을 이루는 방법(仁之方)으로 소개되는 충과 서는 《논어》 안에서 다른 용어로도 표현된다. 예를 들어 충은 수기(修己 ; 憲問 편 44장), 극기(顔淵 편 1장), 학도(學道 ; 陽貨 편 4장) 등으로 설명되고, 서는 안인(安 人), 복례(復禮), 애인(愛人) 등으로 설명된다. 자신을 닦고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여 인(仁)의 도(道)에 정진했 을 때, 남을 편안하게 해주고 사회가 예(禮)에 맞게 돌아 가게 하며 참으로 남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공자는 인을 이루려면 먼저 고난을 겪어야 한다 고 말하였다(雍也 편 20장). 그것은 자신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利)로움보다 의(義)로움을 선택하기 위해 서는 자신의 편안함을 버려야 하고, 말보다 행동을 앞세 우기 위해서도 자신과의 싸움이 불가결한 것이다. 공자 는 극기의 공부에 최우선을 두었다. 그래서 인을 이루려 는 군자(君子)는 잠시라도 인을 어길 수 없으며(里仁 편 5 장),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인을 이룬다(衛靈公 편 9 장)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극기의 공부는 진지한 것이며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를 갖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공자 이후 유가에서의 극기 :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킨 맹자는 극기의 방법으로 양심법(養心法)을 주장하였다. 도덕적 뿌리(四端)가 인간 마음 안에 박혀 있다고 본 맹 자는 자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마음을 키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 안에는 큰 것〔大禮〕과 작은 것〔小禮)이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 큰 것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도덕성 곧 사단(四端)으 로, 이것을 키우는 사람은 도량이 큰 인물[大人]이 된다. 작은 것이란 욕망으로, 이것을 따르는 사람은 마음 안에 있는 본심(本心)을 잃게 된다(告子 上편 10장). 따라서 맹 자는 본심을 되찾기 위해서는 욕심을 적게 하는 일〔寡 欲〕이 급선무라고 보았다. 사람이 관직을 얻는 것보다 자신의 인격을 키우는 일을 중시하여 하늘이 준 도덕성 을 따르게 되면, 그의 삶은 건강하고 오래 보존될 것이다 (順天者存 ; 離婁 上편 7장). 맹자는 군자가 일시적 고난 을 받게 되는 것은 천(天)이 그에게 시련을 주어 그를 강 하게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라고(告子 下편 15장) 하였다. 그는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 데서 오는 고통을 잘 견 디어 나가고, 도가 행해지면 관직에 나아가고 안되면 물 러갈 수 있는 '성지시자' (聖之時者)를 모든 성인들 중에 서도 최고의 성인이라고 극찬하였다. '성지시자' 가 소유 하는 분별력을 시중(時中)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든 성인의 덕을 결합한 상태이다. 은(殷)나라 말의 백이 · 숙제가 성인 중에서 결백함을 보존한 이들(淸者)이라면, 탕(湯) 왕의 재상인 이윤은 성인 중에서 직책을 지속한 이〔任者〕였고, 유하혜(柳下惠)는 조화시키는 이[和者]로 서, 이들은 각기 성덕의 한 면을 잘 발전시켜서 성인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때에 따라 필요하면 은퇴하여 결백을 보존하고 또는 세상에 나아가 화해하기도 하면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따라서 맹자 는 공자야말로 성인들 중에 때를 분별하여 나아가고 물 러남을 자유 자재로 할 수 있었던 '성지시자' 라고 하였 다(萬章 下편 1장). 이렇게 해서 유교 전통에서 시중은 자 기가 처한 환경 전체를 저울질하여 천리(天理)에 적중하 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도덕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극기의 최고 경지를 말했다. 순자(荀子)는 공자의 예학(禮學) 사상을 발전시킨 사 상가로 극기를 위한 배움의 단계를 체계화시켰다. 《순 자》의 <권학>(勸學) 편에서는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 적인 학문 수행과 더불어 인격적 수행을 그침 없이 계속 해야 함을 분명히 하였다. 군자란 자신의 감정이 예에 편 안하게 되고 지혜의 수준 역시 스승과 같이 된 사람이라 고 하였다(修身 편). 이와 같이 순자는 극기의 공부를 위 해서 학문적 공부와 덕을 닦는 수덕의 공부를 병립시켰 고, 마침내는 지적 배움은 인격 형성을 위한 방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순자는 극기의 공부가 완성된 성인은 도 를 모두 갖추어서 온전히 "아름답게" 된 인간이라고 하 였다(正論 편). 유가 전통사에서 한당(漢唐) 시대에는 순 자의 예학적(禮學的) 극기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고, 송 명(宋明)대에는 잃어버린 본심을 되찾는다는 맹자의 극 기 방법이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 나라 조선조에서 중심 을 이루던 극기론은 "마음 안에 주어진 천리를 보존하고 사사로운 욕심을 버린다" (存天理去私欲)는 신유학적 수 양론이었다. 퇴계와 율곡도 마음을 닦는 방법으로 정좌 (靜坐)와 학문을 중시하였고, 극기란 마음 안에서 천리 (天理)에 합당치 않은 것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격몽요결》 持身). 여기서 '천리' 란 마음에 내재한 도덕 성을 가리키고 '사욕' 이란 이에 어긋나는 모든 사사로운 욕망을 지칭하였다. 따라서 신유학자들의 극기 실천은 욕망을 포기하는 철저한 수양을 요구하였다. 〔현대적 해석〕 17세기 초 중국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 사 판토하(Diego de Pantoja)는 《칠극》(七克, 1614)이라는 수양론을 저술하였다. 《칠극》의 내용은 교만 · 질투 · 인 색 · 분노 · 탐욕 · 음란 · 게으름인 칠죄종(七罪宗)을 극 복하기 위해서 겸손 · 인애 · 관대 · 인내 · 절제 · 정결 · 근면의 칠추덕(七樞德)을 키우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칠극》이라는 서명을 택함으로써 판토하는 공자의 극기 와 대비되는 그리스도교적 수양론을 소개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인(仁)과 사랑에 공(公)과 사(私)의 개념을 적용하여 둘 다 지공(至公)으로 해석함으로써 모든 사욕 을 없앤 상태가 곧 인자함이요 사랑이라고 하였다. 《칠 극》은 유교의 극기론과 그리스도교의 고행론을 조화시키 려 한 첫 시도였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것은 유교의 인과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일치시켜서, 인 이 지니는 인간 중심적 인격 완성의 의미와 사랑이 지니 는 신 중심적 의미가 결합되어 사랑과 인의 개념 자체를 확대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고행에 중심을 두었던 그리스도교적 수덕론과 욕망의 철저한 제어를 요구하던 유교의 극기론은 오늘날 상당한 변화를 겪으면서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현대 신학 자들은 '칠죄종' 과 '칠추덕' 이라는 개념이 스토아 철학 과 플라톤의 이원론적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하 였다. 인간은 영육으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전 체라는 성서적 통찰이 교부 시대로부터 희미해졌고, 육 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그리스적 시각으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비록 현대 신학자들이 인간 욕망의 긍정적 의미를 재평가하기는 하지만, 역시 그들도 인간은 결국 은총의 도움으로 욕정을 극복하여 윤리적 질서 속에 이 를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수양의 필요성 을 인정한다. 현대 유학자들 역시 은총에 대한 말만을 제외하고는 신학자들이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곧 신유학자들이 인간 욕망에 대해서 지녔던 부정적이고 엄 격한 태도를 현대적 인간 이해에 따라 부드럽게 하고 유 교의 핵심을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 스도교와 유교 모두가 수덕(修德)의 형태를 현대화시키 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하겠다. 더욱이 유교적 영 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그리스도인들 은 새로운 수덕론의 형성에 있어서, 유교가 제시한 극기 론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군자 ; 공자 ; 맹자 ; 순자 ; 영성신학 ; ⇦ 고행) ※ 참고문헌  D. Pantoja, 《七克》, 1614/ 金勝惠, 《原始儀敎》, 민음사, 1990/ 琴章泰, 《儒教思想과 韓國社會》, 대동연구소, 1987/ 1, pp. 936~944/ 《ERE》 1, pp. 426~428 Friedrich Wulf, Asceticism, 《SMI》 1, 1968, pp. 110~116. 〔金勝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