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철학
近代哲學
[라]philosophia moderna · [영]modern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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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철학의 배경을 이루는 인물 중 하나인 토마스 모어와 그의 가족들.
17~19세기 말에 전개된 서양의 여러 체계적 철학 사 상. 근대 철학은 한편으로는 고래(古來)의 문제를 계승 하여 이를 새롭게 해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 특유 의 문제에 기반을 두고 전(前) 시대와는 확연히 구별되 는 철학을 창조하였다. 특히 후자의 면모를 의식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내어, 인간 삶의 양식과 사회적 여건 그리 고 사고 방식 등이 중세와는 현격하게 달라졌음을 보여 준다. 〔배 경〕 근대 철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서 크게 지 목되는 것은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및 과학의 발달이다. 르네상스의 일반적 경향은 중세적 권위, 특히 가톨릭적 권위에 대한 불만을, 고대의 인문주의 사상을 발굴하고 찬미하는 것에서 찾는 것이었다. 문학과 예술은 인간의 적나라한 세속적 모습을 형상화하였고, 인본주의자들은 이성 존중을 통해 인간의 자율적 자기 결정을 고전 속에 서 찾았다. 토마스 모어(T. More, 1472~1535)는 경제적 · 정치적인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몽테뉴(M. de Montaigne, 1533~1592)는 고전 연구를 통해 당시의 관습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영향 하에 개인 존중, 인습 타파, 권위에 대한 도전, 이성 중시 등이 배양되었다. 이런 경향은 훗날 이탈리아의 인문학 연구, 프랑스의 계몽 사상, 독일의 낭만주의 운동 등에 밑바탕이 되었다. 한편,종교 개혁을 주도한 루터(M. Luther)는 개인이 신앙의 기본 문제에 대해 양심적으로 해결할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고 주장함으로써 철저히 개인주의를 선양하고, 종교적 의식보다는 내면적 신앙과 현세 생활에의 충실한 참여, 즉 즐거운 인생과 귀중한 인간 관계, 정치적 ·경제적 현실의 건설 등을 역설하였다. 이런 점은 르네상스와 상통하는 경향이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자들이 인간 이성을 신뢰하는 데 반하여 프로테스탄트들은 이성을 신의 뜻에 거역하는 인간의 오만 또는 원죄의 흔적이라고 격하하고, 그 대신 신앙을 의지적 믿음의 소관사로 보는 주의주의(主意主義)의 입장을 취하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 이성은 믿음에서 보면 외람된 것이고, 믿음은 이 성에서 보면 근거 없는 맹신이었다. 이러한 이성과 신앙 의 분리는 뒷날 변신론, 이신론(理神論) 등을 거쳐 결과 적으로 무신론에까지 이르게 된다. 서양의 근대 철학에 또 하나의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 은 16 ~17세기의 과학의 발달이었다. 코페르니쿠스(N.Kopernicus, 1473~1543)는,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 는 프톨레미(Polemy) 사상을 뒤엎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 으로 회전하는 하나의 유성에 불과함을 증명하여 지구 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선민 의식에 타격을 가하였을 뿐 아니라, 사고의 대전환을 초래하게 하였다. 케플러(J. Kepler, 1571~1630)는 다시 코페르니쿠스의 공식에 내재 한 오류를 수학적으로 수정 · 증명하여, 지구 공전설을 불변의 진리로 확정하였다. 갈릴레이(G. Galilei, 1564~ 1642)는 이와 같은 자연 과학의 혁명을 역학의 분야로 끌 어들여 '운동의 법칙' 을 공식화하였다. 이 법칙이 뒷날 뉴턴(I. Newton, 1642~1727)의 '운동 제1 법칙' 으로 선포 된 소위 '관성의 법칙' 이다. 모든 물체는 진공 상태에서 는 일정한 비율로 속도를 증가하면서 같은 속도로 낙하 한다는 것이다. 이들 과학자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진리 의 보고이고 그것을 여는 열쇠는 수학이라고 여겨졌다. 자연은 수학으로 쓰여진 진리의 텍스트였던 것이다. 근 대 철학의 두드러진 관심사는 이러한 자연 과학에서 거 둔 성과를 철학에서 수용하고 정초하는 것으로서의 인 식론' , 근대적 인간의 주체적 삶을 실현할 수 있는 터전 으로서의 공동체 즉 국가의 형성 및 생활 규범, 그리고 신에 대한 이성적 인간의 태도 등에 있었다. 〔철학 일반〕 인식론은 물론 고대로부터 있어 왔으나 근대 철학에서 크게 문제된 것은 진리의 궁극적 기준이 된 인간의 능력 중 인식의 원천을 이성에 둘 것인가 감각 적 경험에 둘 것인가, 양자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과, 인간의 경험과 자연의 실재와의 관계이다. 전자의 문제를 둘러싸고 대륙의 이성주의와 영국의 경험주의가 대립한다. 국가 형성 문제는 소위 사회 계약설을 내세워 여러 형태의 국가 모습이 그려지곤 하였다. 구상된 국가 의 형태에 따라 자연 상태와 자연권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로 전개되었다. 국가의 형태에 따라 그 안에 사는 인 간의 행위 규범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여기에서 여러 윤 리 학설이 나왔다. 인식론 : 프랑스의 데카르트(R. Decartes, 1596~1650)와 영국의 베이컨(F. Bacon, 1561~1626)은 다같이 기존의 학 문 전통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과학의 연구 성과를 전폭 적으로 수용하여 근대 철학의 기원(紀元)을 열었다. 그 러나 그들이 걸어간 사고의 길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었 다. 전자는 대륙의 합리론의 길을 열었고, 후자는 영국의 경험론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① 대륙의 합리론 : 데카르트는 갈릴레이의 영향 하에 역학과 수학이 가장 강력한 진리 인식의 도구라고 믿었 다. 그러나 역학이나 수학은 감각적 지각으로부터는 독 립적인 인식 도구이다. 이를 보여 주기 위해 그는 자기의 주저인 《방법 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37)과 《제1 철학의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1641)에서 방법적 회의(懷疑)를 서술하였다. 데카르트의 회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계에 관한 인식 기초로서의 감 각에 관한 것이고, 다른 또 하나는 대상 세계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능력과 권리에 대한 회의이 다. 그는 이 두 가지 회의를 '확실성' 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확실성에 도달하는 단계를 그는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번째 단계는 위의 회의 중 첫번째 회의의 결과로서, 대상 세계뿐 아니라 회의하는 '나' 를 회의한다 하더라도 회의하는, 즉 사유하는 나는 존재한다는 확신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 (Cogito, ergo sum)는 것이다. 자아에 관한 이런 인식 은 추론된 것이 아니라 직각 즉 직접적 통찰로 얻어진 것 이다. 그러나 이런 통찰이 허위나 악마의 장난이 아니라 는 보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선한 신(神)이 있음 을 증명해야 한다. 이것은 확실성의 두번째 단계로서 유 한한 자아를 초월하는 무한한 존재인 신은 "무한하고 영 원하며, 불변하고 독립적이며, 전지 전능하며 나 자신과 그 밖의 모든 존재들을 창조한 실체로서 있다"는 관념이 다. 확실성의 마지막 단계는 신의 보증으로 자연에 관해 인식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획득한 인간의 사고 자체 에 대한 것이다. 감각적 지각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그 가 취할 수 있는 것은 수학적 · 역학적 사고였다. 한편 데 카르트의 존재론에서 실체는 무한 실체로서의 신, 사유 실체인 정신 그리고 연장 실체인 물질의 세 가지로 나뉜 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인식론상으로는 지성을 유일한 인 식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합리론자이고, 존재론상으로는 정신과 물질, 사유와 연장을 완전히 별개의 두 실체로 보 는 이원론(二元論)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 은 두 실체 즉 정신과 물체의 결합체이다. 인간에게 있어 서 이 양자는 어떻게 상호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데카르트가 후세에 남긴 난제이다. 데카르트 자신 은 이 문제에 대해 뇌의 아래 부분에 있는 송과선(松果 腺)을 통해 외부의 자극이 신경 계통을 거쳐 수용되고 의지의 결정이 신경 계통을 통해 밖으로 나타난다는 '심 신 상호 작용설' (心身相互作用說)을 주장하였다. 데카르 트의 가장 큰 공적은 근대 철학으로 하여금 인식론을 주 류로 삼도록 한 데 있고, 그중에서도 자아에 대한 인식을 인식 확립을 위한 기본 요건으로 한 데에 있다. 데카르트의 이런 기본 입장을 추종하면서 그의 비판을 통해 합리론의 전통을 역사 속에 새겨 넣은 철학자가 스 피노자(Baruch, 또는 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와 라이프니츠(G.W. Leibnitz, 1646~1716)이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감각을 불신하고 지성만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데카르트의 노선을 지지하였는데 , 그것은 이들 세 사람 모두 수학자요 과학자라는 공통점 이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해석 기하학을 창시하다 시피 하였고, 스피노자는 당대의 일급 광학자였으며, 라 이프니츠는 미적분의 원리를 체계화하였다. 스피노자는 인간 행위의 원리를 기하학적 방법으로 증명한 합리론자 이다. 그러나 그는 오직 신만을 실체라 하고 그 신을 자 기 원인' (causa sui) 즉 "그 본질이 그 존재를 내포하고 있 는 것, 또는 그 본성이 존재한다고밖에 생각될 수 없는 것"이라 하며, 실체란 "그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사 물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이 사상은 일원론적 체계의 완결성을 보여 주긴 하지만 범신론으로 흘러갔다. 라이프니츠는 이 점을 고려하여 하나의 실체 대신 무수한 단자(單子, monad)를 상정하였 다. 그에 의하면 단자는, 마치 씨앗처럼, 장차 발현해서 자기를 완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하게 자기 속에 가 지고 있어 소우주라고도 일컬어지는 최소의 단위이다. 이러한 최고의 원리로서 실체를 상정하고 거기서부터 연역적으로 추론하고 이성만을 신뢰하는 인식론은 독단 론으로 흘러갔다. 이것은 결국 합리론의 전통을 계승한 볼프 학파가 형이상학적 독단론에 빠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귀결을 가져왔다. ② 영국의 경험론 : 대륙의 인식론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인식론이 베이컨을 선각자로 해서 17 ~18세기 영국에서 전개되었다. 베이컨은 두 측면에서 전통에 대 한 파괴적 견해를 천명하였다. 하나는 인식에 있어서 '우상' 타파이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연원을 둔 종래의 연역 추리(특히 삼단 논법)를 새 시대의 과학 정 신에는 쓸모 없는 것이라고 거부하고 그 대신 귀납 추리 를 과학의 논리로서 제시한 것이다. 인식은 경험에서 기 원한다는 주장은 철학사상 일찍부터 있었으나, 근세에 이르러 베이컨과 흡스(T. Hobbes, 1588~1679)가 경험 중시 사상을 계승하여 17~18세기 영국의 고전적 경험론을 형성하였고, 이것이 영미 철학의 전통이 되게 한 선구자 는 로크(J. Locke, 1632~1704)이다. 그는 합리론에서 본유 관념(本有觀念 ; 이것을 로크는 '생득 관념' 으로 이해한 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신에 의해 부여되거나 보 증된 진리의 원천이 있다는 데에 있어서, 이는 일체의 외 적 권위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리를 찾으려는 지성의 위 대함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 간의 의식은 애당초 백지(白紙, tabula rasa) 상태이다. 지 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관념은 후천적 경험에 의해 획득 된 것이다. 이 경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외적 대상에 관한 지각 즉 감각과 심적 작용에 관한 내부 지각 즉 반 성이 그것이다. 그는 인식은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만 형 성되므로 "감성 속에 존재하지 않은 것은 지성 속에 존 재하지 않는다" (Nihil est in intellectu, quod non fuerit in sensu) 라는 경험론의 정식을 새로이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식의 근본 재료는 단순 관념이다. 단순 관념은 경 험을 통해 외적 대상으로부터 받아들인 관념이지 외적 대상의 실재가 아니다. 단순 관념들을 능동적으로 결합 해서 만든 것이 복합 관념이다. 따라서 우리의 지식이란 관념들 상호간의 연결과 일치 또는 불일치의 지각일 뿐 이다. 인식은 경험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외적 사물 자체는 인식의 밖에 있는 것으로서 상정될 뿐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로크는 외적 사물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외적 사물에는 제1 성질과 제2 성질이 있는 데, 전자는 사물 자체의 고유한 성질이고, 후자는 사물과 우리의 주관 사이에서 생기는 성질이다. 제1 성질과 특 히 실체를 말하는 데서 로크는 경험론의 한계를 벗어나 실재론적 형이상학으로 넘어가는 경향을 보였고, 이 점 이 훗날 경험론의 커다란 쟁점 거리가 되었다. 버클리(G. Berkeley, 1685~1753)는 로크가 말하는 제1 성질을 제2 성질로 환원시킴으로써 로크의 불철저성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버클리는 제1 성질의 객관성을 부정 함으로써 그 성질의 담지자인 실체의 실재성도 부정하였 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가감적(可感的) 사물이라고 하 는 것에 있어서 감각이 지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 관념뿐 이고 이 여러 관념의 집합을 우리는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Esse est percipi)라는 것이 버클리 철학의 귀결이며 주장 이다. 실체의 부정은 흄(D. Hume, 1711~1776)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였다. 인간의 정신이란 '지각의 묶음' 에 불 과한데, 지각은 인상으로 환원된다고 흄은 주장하였다. 인상에 대응하지 않는 관념은 허위 관념이다. 그런데 인 상은 각각 독립적인 직접적 경험 즉 감각에서 유래하는 것이므로, 인상간의 결합은 필연적일 수 없으며, 따라서 단순 관념들이 결합되어 복합 관념을 형성하는 경우에도 그 결합이 필연적일 수 없다. 여기에서 인과의 관념도, 외적 사물의 지속적 존재라는 관념도, 인격적 동일성에 관한 관념도 필연적인 것일 수 없고, 단지 관념 연합의 법칙에 따라 높은 개연성이 성립될 뿐이라는 회의론이 귀결된다. 대륙의 합리론이 이성 존중에서 출발하여 독단론에 빠 지는 결과를 초래한 반면, 영국의 경험론은 경험에 인식 의 바탕을 두고 실체 내지 객관적 실재로 나가는 길을 봉 쇄한 결과 주관적 관념론과 회의론에 빠지고 말았다. 그 러나 경험론의 철학적 의의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첫째, 인간의 인식이 경험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고 경험을 초월한 것에 관해서는 확실한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하 여, 종래의 모든 형이상학은 독단적 체계로서 부정되게 되었다. 둘째, 인과율의 타당성과 필연성에 대한 흄의 회 의는 자연 과학적 인식의 확실성까지 동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③ 비판주의 : 칸트(I. Kant, 1724~1804)는 처음에 라이 프니츠와 볼프(C. Wolff, 1679~1754)의 합리론적 지반 위 에 서 있었으나 흄에 의해 '독단의 꿈' 에서 깨어나서, 새 로이 이성 능력의 비판에 착수하여 보편 타당한 학적 인 식의 가능 근거를 밝힘으로써 근대 철학의 두 주류를 종 합한 새로운 인식 이론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칸트의 철 학을 비판주의라 한다. 그는 흄의 경고에 의해 독단의 꿈 에서 깨여났다고는 하나, 흄과 같이 자연 과학의 확실성 을 의심할 수도 없었고 모든 형이상학을 단념할 수도 없 었다. 자연 과학적 인식의 확실성은 이미 뉴턴의 수학적 자연 과학에 있어서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서 확 립되어 있었다. 칸트의 인식 이론의 근본 의도는 그처럼 사실로 확립되어 있는 학적 인식의 근거를 밝힘으로써 자연 과학의 확실성을 정초하고, 나아가서 자연 과학과 같이 '학의 확실한 걸음' 을 걸을 수 있는 형이상학의 가 능성을 정초하려는데 있었다. 즉, 칸트의 인식 이론은 학 적 인식의 논리적 구조와 그 정당성을 밝히는 것이다. 그 에 따르면 모든 인식은 시간적으로 보아 경험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러나 경험은 인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 증하지 못한다. 이것을 보증하는 인식은 선천적(a priori) 인식이라야 한다. 모든 인식은 판단의 형식을 취하는데, 이는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으로 구분된다. 분석 판단은 주어 개념을 분석하여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술어 개념 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판단이므로 경험의 도움을 필 요로 하지 않고, 따라서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는다. 그러 나 그것은 주어 개념의 의미를 밝히는 설명 판단에 지나 지 않으며 인식의 증대를 초래하지 않는다. 반대로 종합 판단은 주어 개념에 새로운 술어 개념을 결합시키는 판 단이므로 확장 판단이기는 하나 술어 개념이 경험에 의 존하는 한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기 어렵다. 학적 인식을 확장시키면서 (종합적)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장하는 (선 천적) 판단 즉 '선천적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 칸트의 과제였다. 그러나 칸트는 그것이 수학 과 자연 과학의 명제 속에 이미 성립되어 있음을 본다. "7+5=12”(수학적 명제), "직선은 두 점 사이의 최단 거 리이다" (기하학적 명제), "물체계의 모든 변화에 있어서 물질의 양은 일정 불변이다" (자연 과학적 명제) 등이 그것 이다. 이와 같이 칸트의 인식 이론의 과제는 어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상 일 반을 인식하는 방식을 인식"하려는 데 있다. 그런 인식을 칸트는 선험적(transzendental)이라고 한다. 선천적 종합 판단은 선천적이기 때문에 경험으로부터 독 립되어야 하고, 종합적이기 때문에 경험에 의존해야 한 다. 여기에서 칸트는 '사고 방식의 변혁' 을 요구한다. 그 것은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요, 이를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라 한다. 그 것을 그는 또 자연 과학에 있어서 실험의 방식과 같다고 한다. 인식이 선천성 즉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게 하려면, 다시 말해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따르게 하려면 우리의 주관 가운데 선천적 형식이 있어서 이것이 대상을 구성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인식 주관은 어떤 선천적 형 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대상을 구성하는가? 칸트는 우리의 인식은 직관 능력으로서의 감성과 사유 능력으로서의 오성과의 협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하 였다. 감성은 직관하고 오성은 사유한다. 감성이 대상에 의해 촉발됨으로써 직관적 표상을 받아들이고 오성은 그 것을 개념적 사유의 소재로 삼아 대상을 파악할 때, 비로 소 대상 인식이 성립한다. 칸트의 표현에 따르면 "감성 이 없으면 어떤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성이 없으면 어떤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이처럼 인식은 감성과 오성이라는 두 인식 능력의 결합 에 의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므로, 선천적 종합 판단의 성 립을 위해서는 두 인식 능력에 각각 선천적 형식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감성적 직관의 선천적 형식이 없다 면 경험적 종합 판단이 가능할 뿐 선천적 종합 판단은 불 가능할 것이다. 또 만일 오성에 선천적 형식이 없다면 주 관적 지각 판단만 성립할 것이다. 그리하여 칸트는 감성 의 선천적 형식을 직관 형식이라 하고, 오성의 선천적 형 식을 순수 오성 개념 또는 범주라 하였으며, 전자를 《순 수 이성 비판》(Kritick der reinen Vernunft)의 선험적 감성론 에서 다루고 후자를 선험적 분석론에서 다루었다. 그런데 인식이 경험과 더불어 시작하고 경험적 인식 대상이 직관 형식인 공간과 시간에 제약되어 있다면, 그 것은 우리의 인식이 현상계에 국한됨을 뜻한다. 따라서 현상계를 벗어난 물 자체나 예지계(叡智界)에 대해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칸트는 인간의 인식 능 력이 감성과 오성에만 머무르려고 하지 않고 현상계를 넘어선 초경험적 세계에까지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을 인 정한다. 그 초경험적 세계를 인식하려는 능력을 그는 이 성이라 하고, 형이상학적 대상인 자유 · 영혼 불멸 · 신 등의 존재를 실천 이성으로써 인간의 도덕감을 충족시키 고 현실의 삶 정당한 보상을 위한 윤리적 차원에서 요청 한다. ④ 독일 관념론 : 칸트의 후계자들은 칸트 해석을 통 해 독일 관념론을 창조하였다. 피히테(J.G. Fichte, 1762~ 1814)는 칸트가 이론 이성으로는 인식이 불가능하고 실 천 이성의 요청을 통해 존재하는 것으로 정립한 이념의 세계를 주의주의적 결정론을 가지고 관철하는 주관적 관 념론을 형성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는 모든 인식은 내용 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절대적이라고 이해되는 나(자아) 의 순수한 활동에서 생긴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칸트의 비판 철학을 주관적 관념론으로 변형시키고, 독일 관념 론의 문을 열었다. 헤겔(G.W.F. Hegel, 1770~1831)은 이성을 절대화하여 절 대 정신으로 삼고 칸트가 남겨 놓은 이념의 세계를 절대 정신의 자기 현현으로 보았다. 이런 그의 사상은 절대적 관념론이다. 그에 따르면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 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절대 정신은 자기를 한꺼번에 드러내지 않고 역사 과정으로서 점차적으로 드러낸다. 현실은 전체로서는 절대 정신의 실현이다. 그의 주저 중 의 하나인 《정신 현상학》(Phänomenolgie des Geistes, 1807) 은 인간의 의식이 개별적 감각으로부터 절대 정신에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 과정 을 인류사적으로 펼쳐 보인 것이 그의 《역사 철학》이다. 또한 그의 《논리학》은 무규정적 유(有)와 무(無)가 변증 법적 과정을 통해 생성으로 나아감을 체계적으로 보여 준다.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현실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새로이 방법론으로서 개발한 것이 존재 세계의 실 상을 설명하는 논리로서의 변증법인데, 이에 따르면 하 나가 정립되면 그 속에 모순이 발생해서 반정립이 성립 되고 이 양자는 각각 자기를 지양하여 종합으로 나아간 다. 그리고 종합은 그것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고 종합 이자 동시에 새 단계를 위한 하나의 새로운 정립이 된다. 이리하여 역사적 현실은 무한히 발전하게 된다. 헤겔 철 학은 한때 전 유럽을 석권하였다. 그중에서도 마르크스 에 의한 비판적 계승은 다음 세기에 인류의 삶의 양식을 결정적으로 변혁시킨 이데올로기에 방법적 기반이 되게 했다. 정치 철학: 근대에 들어오면서, 중세의 봉건주의적 신 분 제도가 무너지고 국가와 종교, 황제와 교황의 역할이 분리됨에 따라, 마키아벨리(N.B. Machiavelli, 1469~1527) 가 강조한 정치 권력에 의한 일체 현실 생활의 무제약적 통제에 반발하여, 개인적 자유의 요구와 함께 국가 지배 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 제기가 발생되었다. 이 문제는 국 가 권력은 개인간의 합의에 의해 성립된다는 소위 사회 계약설에 의해 해결되었다. 흡스는 근대적 자연법 사상 을 도입하여 사회 계약설을 가지고 절대 군주제를 정당 화하였다. 이 계약설은 그 후 로크와 루소(J.J. Rousseau, 1712~1778)에 의해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기 위한 정치 이론으로 개조됨으로써 근대 시민 국가 형성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17~18세 기 시민 혁명의 사상적 무기가 되었다. 흡스는 자연 상태 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의 상태로 가정하고 이를 지양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연권을 계약에 의해 양도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생존을 보호할 수 있 는 절대 권력 국가를 창설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로크 는 사회 계약을 통해 입헌적 의회 제도의 확립을 뒷받침 하였다. 로크는 '입법권과 집행권' 을 분리하여 전자는 인민의 대표에게 부여하고 후자는 입헌 군주에게 위탁시 키며, 인민에게는 민의에 반하는 정권을 해체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시킴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켰다. 루소 는 사회 계약설을 가지고 공화제를 제창하여 현대 국가 의 기초를 닦았다. 개인의 자유 신장은 스미드(A. Smith, 1723~1790)와 리 카르도(D. Ricardo, 1772~1823) 등으로 하여금 자유 방임 주의를 주장하게 하였고, 이와 아울러 자유주의적 자본 주의 경제 체제가 확립되었다. 영국의 벤덤(J. Bentham, 1748~1832)과 밀(J.S. Mill, 1806~1873)은 자본주의를 정착 시켜 공리주의의 윤리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본의 독점과 부의 편재라는 현상이 나타나 자유에 대 한 위협이 되었다. 이와 함께 발전한 민주주의는 다수파 의 횡포와 여론의 압력을 초래하여 개인의 자유를 억압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모순을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프 랑스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자라났다. 마르크스(K.H. Marx, 1818~1883)는 이 이상을 계승하고 헤겔의 '정신' 을 '물질' 로 대치하면서 그의 변증법을 가지고 당시 자본의 노동 착취를 분석하여 새로 탄생된 계급 집단인 프롤레 타리아 해방의 기치를 들었다. 〔영향과 평가〕 신의 문제 : 중세에 비해 근대는 현저히 인간 중심의 시대였다. 진리가 이성이든 경험이든 인간 의 의식(意識)에 기초해서 논의되었다. 신은, 비록 신앙 의 사항으로 남겨두긴 하였으나,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게서 보듯이, 인식을 정초하 는 기능을 담당할 뿐 신앙의 대상은 아니었다. 특히 스피 노자에게 있어서 신은 곧 실체이긴 하나 그 실체는 자기 의 양상을 자연으로서 드러내기 때문에 범신론이 주장되 었다. 라이프니츠는 현실 세계의 불완전성과 악을 설명 하기 위해 신을 끌어들이는 변신론을 제기하였으며, 칸 트는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를 말함으로써 신에의 절대적 귀의에 제동을 걸었다. 헤겔은 신을 절대 정신으 로 보았으나, 여기에서 인격적 유일신 개념은 사라졌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규탄하고 인간 을 무신론으로 인도하였으며, 심지어 니체(F.W. Nietzsche, 1844~1900)는 '신의 죽음' 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후기의 흐름 : 근대 중엽 이후에는 고도의 과학 발달 과 산업 혁명에 의한 사회 문제로, 현실 문제 해결이 대 단히 긴급해지자, 칸트 이후의 관념론적 철학에 반대하 고 실증주의 사상이 대두되었다. 그 대표적 사상가로서 콩트(I. Comte)는 종래의 철학이 신학적 · 형이상적 단계 에 머물렀다고 하며 진정한 철학은 경험 과학적 실증성 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추상적 실재의 가정을 철저히 배격하고, 현상을 현상으로 관찰하며 그 현상간의 법칙 파악을 중시하였다. 이 실증주의는 당시 의 과학적 사고 방식에 영향을 주었고, 현대에 들어와서 도 과학적인 철학에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근대 후기, 즉 19세기 후반에는 사상적 위기가 발생하 기도 하였다. 여기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상 과 함께 유물 사상과 물질 사상 또는 과학적으로 모든 것 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 만능주의가 지배함으로써 인 간과 문화의 자유스러운 창조는 무시되고 말았다. 여기 에 반대하고 나선 사람으로는 19세기 전기에 있어서는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가 있고, 19세기 말에는 니 체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 입장을 달리하여 과학과 유 물론을 철저히 비판하고 칸트의 사상을 부흥시키는 동시 에 현대 철학의 새로운 기반을 이룬 것은 신칸트 학파 (neo-kantians)였다. 여기서는 과학의 한계를 결정짓는 동 시에 문화 · 역사 · 도덕 등 가치의 문제와 함께 사람의 자유 활동에 의한 문화 창조의 문제에 관심을 두었으며, 그것은 실용주의(pragmatism)나 현상학, 생 철학 등 많은 철학적 사상과 함께 20세기의 현대 철학과 밀접하게 연 결되었다. ※ 참고문헌 S.P. Lamprecht, Our Philosophical Tradition(김태길 · 윤명로 · 최명관 역, 《서양 철학사》, 을유문화사, 1965)/ B. Russell, History ofWestem Philosophy, London, 1969/ 소광희 · 이석윤 · 김정선 공저, 《철학의 제문제》, 지학사, 1986/ 《세계 철학 대사전》, 교육출판 공사, 1987. 〔蘇光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