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라회

[라]Ordo Sanctae Clarae · [영]Poor Cla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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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에 있는 성녀 글라라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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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에 있는 성녀 글라라 대성당


1212년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 녀 글라라가 창설한 관상 봉쇄 수도회. '성녀 글라라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 라고도 하며 프란치스코회의 제2회 에 속한다. 〔창립과 발전〕 1194년 아시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 난 성녀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엄격한 복음적 가난 의 이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1212년 3월 18일 성지 주일에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성 프란 치스코로부터 '보속의 수도복' 으로 착복하고 순명을 서 약하였다. 이후 성녀 글라라는 친동생 아네스를 비롯한 몇몇 자매들과 함께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성 글라라 수 도회의 모태가 된 복음적 가난과 사랑을 실천하는 관상 봉쇄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느님의 구원 성업을 거드는 짝이며 성교회의 심장으로서 그 연약한 지체를 떠받치는 받침대' 가 되는 프란치스코적 관상의 삶을 시작한 것이 다. 수도회 회칙은 성 프란치스코가 이들에게 준 생활 양 식(foma vivendi)을 바탕으로 성녀 글라라가 직접 작성하 였으며, 임종 직전인 1253년 8월 9일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인가되었다. 성 글라라 수도회의 각 수도원은 독립적이고 총본부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총장직이 없다. 성녀 글라라의 생 존 중에도 이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에서 여러 수녀회 가 창설되었다. 가난에 있어서 성 글라라 수도회는 많은 수도회들 가운데 매우 엄격한 편에 속한다. 성녀 글라라 는 1215년과 1228년에 '가난의 특전' 을 성청으로부터 허락받았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수도원에 재산을 소 유하도록 강요할 수 없는 이 특전은 후에 성녀의 회칙에 포함되어 수도회의 유산으로 남겨졌다. 한편 가난에 대 한 엄격성 때문에 교회는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도 원을 위해 소유를 허락하는 완화 회칙을 주어 일부 수도 원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많은 수도원들이 성 다 미아노 수도원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녀의 회칙과 가난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충실하였다. 13~14세기에는 여러 개의 회칙과 서로 다른 명칭의 혼동 속에서도 수도회는 발전하였다. 하지만 1회와 마찬 가지로 가난과 봉쇄 규정의 완화 때문에 양적인 증가에 비해 영적인 쇠퇴 현상도 겪게 되었다. 그러나 14세기 말엽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개혁 운동이 일어났는 데 그중에서도 성녀 콜레트(St. Colette de Corbie)의 개혁이 수도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이후 발전과 쇠퇴를 거듭한 후 19세기 초부터 다시 활발하게 생기를 되찾았 고 20세기에는 다른 성 글라라 수도원들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현재 전세계 1,000여 개의 자치 수도원에 2만 여 명의 회원들이 있다. 〔영 성〕 성 글라라 수도회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 라라의 영성대로 교회 안에서 복음을 그대로 본받아 따 름을 생활 양식으로 한다. 그리고 "산 위에서 기도하신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기도 생활로써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인 그리스도 신비체의 완성을 위해 봉헌된 관상 수 녀회이다. 이 수도회의 복음적 '생활 양식' 이란 첫째로 교회에 종속되어 순명함에 근본을 두는 교회 안의 삶, 둘 째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울 삼아 개개 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일치를 보존하는 형제애, 셋째는 가난한 자매로서 가난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생 활, 넷째는 십자가 상의 주님을 관상하며 그분과 하나 되 어 기쁨과 평화 가운데 하느님께 끊임없이 찬미의 제물 을 바치는 삶을 들 수 있다. 성 글라라 수도회에서는 그 동안 많은 성녀들이 탄생 하였는데 창립자 성녀 글라라(+1253) 외에도 아시시의 아네스(+1253), 프라하의 아네스(+1282), 콜레트 (+1447), 볼로냐의 가타리나(+1463) 메시나의 에우스토 키아(+1458), 실바의 베아트리체(+1490), 볼로아의 요안 (+1501), 베로니카 줄리아니(+1727)가 있으며 22명의 복녀와 35명의 가경자도 있다. 〔한국 진출〕 현재 제주, 이리, 이천에 진출해 있다. 제주 성 글라라 수도원 : 1960년 당시 광주교구장이 던 헨리(Harold Henry, 玄海, 1954~1971) 주교가 자신의 출신 지역인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던 성 글라라 수도원 에 진출을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967년에 교황청으로부터 미국 글라라 수도원의 한국 진출을 인정 받고 독립된 수도원으로 인준도 받았다. 마침내 1968년 3명의 미국인 수녀가 한국에 파견되어 2년 간 언어 교육 을 받은 후 1972년에는 한국인 수녀 3명과 함께 제주도 한림읍에 있는 이시돌 목장 연수원에서 첫 출발을 하였 다. 1974년 2월 8일 수녀원을 축성하고 그 해 6월 한국 에서는 처음으로 지원자가 입회하여, 1982년에 첫 종신 서원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1980년 6월 13일에는 수녀 회 내 봉쇄 소성당 및 외부 대성당과 수련소를 마련하여 기반을 다졌다. 봉쇄 관상 수녀회이기 때문에 외부 활동은 없으나 기 도와 함께 육체 노동으로 1973년부터 젖소를 사육 하였 고 1992년부터는 약초 알로에를 재배하고 있다. 이것은 인근 주민들과 같은 형태의 육체적 노력을 통하여 가난 한 자들과 실제적으로 함께하는 삶의 한 방법이 되고 있 다. 이러한 복음 지향적 삶은 또한 각자 일상의 소임 안 에서도 한 맥이 되어 기도와 침묵으로 살아 움직인다. 또 한 수녀원 외부 성당은 언제나 개방하여 모든 이들이 주 님을 찬미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형제로서 서로 신 뢰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995년 현재 종 신 서원자 11명, 유기 서원자 4명, 수련자 5명, 청원자 8명, 지원자 5명 등 모두 33명의 가난한 자매들이 하느 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 안에서 자매적 사랑을 나누며 복 음적 가난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소재지 :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금악리). 이리 성 글라라 수도원 : 이리 수도원이 한국에 진출한 때는 1981년이다. 그러나 독일 아욱스부르크 교구에 있 는 성 글라라 수도원에 이미 1966년부터 1978년 사이 에 세 명의 한국인이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침 당시 전주교구장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주 교가 유럽 순방 중에 독일의 같은 교구에서 사목하던 백 남익(白南翼, 디오니시오) 신부의 중재로 1978년 마리 아 페스퍼필드 수도원으로 이들을 방문하고 전주교구 진 출을 요청하였다. 한국 진출이 수도원 총회에서 결정되 고 교황청의 허락을 받은 후, 1981년 세 명의 한국인 수 녀가 전주교구에 파견되었다. 먼저 이리에 있는 해바라 기 농장 안의 임시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는 한 편 수도원 신축을 시작하였다. 곧 이어 지원자들이 입회 하였고 1984년 수도원과 성당을 축성하였으며 1988년 에는 진출 후 첫 입회한 자매들의 종신 서원이 있었다. 1993년 교황청은 이리 수도원을 교회법상 자치 수도원 으로 승격시킴으로써 수도회 고유의 생활 양식을 한국적 토양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적으로 관상을 목적으로 고독과 침묵 중에 항상 기 도하고 자진 보속하며 하느님만을 위해 사는 관상 봉쇄 수도원' 이고 일반적인 사도직 활동은 없다. 다만 수도회 고유의 전통대로 성체 앞에서 조배하며 소규모의 밭농사 와 제병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과 보다 깊은 만 남의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기도와 관상의 쉼터로서 수 도원 외부 시설을 개방하고 있다. 세상을 떠나 있으면서 도 세상 안에서, 세상과 교회를 위한 삶을 지향하는 이리 수도원에는 1995년 현재 종신 서원자 9명, 유기 서원자 7명, 수련자 5명, 청원자 6명, 모두 27명의 가난한 자매 들이 있다(소재지 : 전북 익산시 월성동 산 180). 이천 성 글라라 수도원 : 13세기 말경 이탈리아의 남 부 살레르노 지방 노체라 인훼리오레에서 창설된 노체라 (Nocera)의 성 글라라 수도원은 수원교구 김남수(金南 洙, 안젤로) 주교의 초청으로 1994년 10월 16일 한국으 로 진출하였다. 이러한 진출은 이미 1987년 이래 8명의 한국인 지원자들이 노체라의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 생 활을 함으로써 준비되었다. 그러던 중 성녀 글라라 탄생 800주년(1193~1993) 기념의 해를 맞으면서 교황청이 이 천에서의 수도원 창설을 인준함으로써 진출이 본격화된 것이다. 앞으로 이천 수도회는 순수 관상 기도 생활 양식 을 따라 봉쇄 수도원이라는 하느님과 신비한 만남의 장 소 안에서 동정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과 항상 일치하는 기도 생활을 영위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 생활 에서 힘을 얻어 이것을 다시 교회의 전 지체로 보내는 교 회의 심장 역할을 하고자 한다. 또한 봉쇄 안에서 앞으로 생계의 수단이 되고 기도 생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단 순하고 알맞은 노동도 할 계획으로 있다. 현재 프란치스 코회 한국 관구에서 임시 거처로 마련해 준 서울 송파동 엠마오의 집에서 한국인 수녀 2명과 이탈리아 수녀 1명 이 이천에서의 수도원 설립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白仁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