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 본당

金馬本堂

글자 크기
2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익산군 금마면 동고도리 888-1 소재. 1981년 4월 20일 여산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관할 구역은 익산군 금마면 전역, 왕궁면 · 삼기면 · 춘포면 일부, 이 리시 덕기동, 완주군 봉동읍 제네리 · 장구리. 관할 공소 는 장구리 공소. 〔교 세〕 1981년 588명, 1984년 820 명, 1988년 1,065명, 1993년 1,182명. 〔역대 신부〕 초 대 김반석(金盤石) 베네딕도(1981. 4~1985. 2), 2대 유종 환(俞鍾桓) 마태오(1985. 2~1988. 1 ) , 3대 이덕근(李德根) 사도 요한(1988. 1~1992. 2), 4대 문정현(文正鉉) 바르톨 로메오(1992. 2~1994. 1), 5대 조정오(曹正吾) 요셉(1994.2~현재). [공소 시대] 금마 지역에 복음이 전래된 것은 1854년 경 문규현(요한)이 연산 감옥에서 출옥하여 지금의 갓점 (미륵산 동쪽 산기슭 감나무골)에 은거하면서부터였다. 그 뒤 경북 달성의 서치삼, 충남 서산의 김만실, 경남 함양 의 박지숙 등이 금마에 정착하여 도화정 공소(현 왕궁면 동촌리)에 다녔다. 감나무골에는 1876년경에 공소가 형 성되었는데 1897년경 나바위 본당, 1900년경 전주(현 전동) 본당, 1950년경 군산(현 둔율동) 본당 관할로 바뀌 어 왔다. 1958년 이리(현 창인동) 본당의 관할이 되면서 정재석(鄭在石, 요셉) 신부와 박봉기(스데파노) 회장의 협조로 금마면 면사무소를 매입하여 금마 공소를 시작하 였다. 당시의 신자수는 38명(남 20, 여 18)이었다. 1959 년부터 여산 본당의 관할이 되면서 전교사와 전교 수녀의 활약으로 교세가 크게 신장된 금마 공소는, 그 후 계 속적인 신자수의 증가로 금마면 688번지의 공소 강당에 만 의존할 수 없었다. 그래서 1978년 성당 신축을 합의 하는 동시에 본당 설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설립 및 발전〕 1981년 4월 금마 공소는 본당으로 승 격되었다. 같은 해 9월 성당 건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하 고, 곧 이어 금마면 888-1번지의 하천 부지를 매입하여 1983년 3월부터 성당 건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하천 부 지라 지면이 낮아 인근 군부대의 매립 작업 지원으로 2~6m 정도 지면을 높여야 했지만 이듬해 12월 23일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제관과 유아원, 기타 부속 시설을 아울러 구비한 성당 건물은 2,000㎡의 대지 위 에 연건평 470㎡ 규모로 건축되었다. 이어 1985년 9월 에는 연건평 265㎡의 유아원 2층에 수녀원을 마련하였 다. 1984년 이후 본당 직할 구역과 공소에 레지오 마리 애를 조직함으로써 신앙 생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으 며, 주민의 복지 증진에도 힘썼다. 본당 관할 구역의 주 민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하며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적 지 않았는데, 특히 학생이 가장으로 있는 집들을 돕기 위 해 본당에서는 폐품 수집, 불우 이웃 돕기 모금 운동 등 을 전개하였다. 1985년 2월 이래 미리내 성모 성심 수 녀회의 분원이 설치되어 있다. (-> 전주교구)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