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본당
錦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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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 305소재. 1929년 6월 1일 전라도 되재〔升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매괴. 관할 구역은 금산군 금 산읍 일부, 금성면, 제원면, 부리면, 군북면, 남일면, 남 이면, 진산면, 복수면, 추부면. 관할 공소는 2개소(지방 리, 백암리). 〔교 세〕 1952년 474명, 1962년 1,011명, 1979년 1,469명, 1980년 1,078명, 1989년 1,562명, 1993년 2,118명. 〔역대 신부〕 초대 이성만(李性萬) 이 냐시오(1929. 5~1931. 5), 2대 이성만(1935. 6~1939. 4), 3대 서병익(徐丙翼) 바오로(1939. 4~1941.3), 4대 서정수(徐廷 壽) 알릭스(1941. 3~1947. 4), 5대 조상익(趙相益) 베드로 (1947. 4~7), 6대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1948. 8~ 1951.2), 7대 김영태(金永泰) 도미니코(1951. 12~1955. 10), 8대 허일록(許日錄) 타대오(1955. 10~1961.7), 9대 이태규 (李泰圭) 요셉(1961. 7~1963. 6), 10대 이기순(李基順) 도 미니코(1963. 6~1967. 12), 11대 서용복(徐龍福) 토마 (1967. 12~1969. 12), 12대 김정원(金正元) 토마(1969.12~1971. 1), 임시 권영균(權寧均) 안토니오(1971. 1~4), 13대 김환철(金丸喆) 스데파노(1971.4~1974. 6), 14대 안 복진(安福瑱) 요셉(1974. 6~1976. 12), 15대 김병환(金炳 煥) 요한(1976. 12~1980. 1), 16대 오현택(吳賢澤) 가시미 로(1980. 1~8), 17대 고일봉(高一峯) 가브리엘(1980.9~1981. 9), 18대 신상욱(申相旭) 토마(1981. 9~1984. 3), 19대 김진화(金鎭和) 바오로(1984. 3~1985. 4), 20대 이창 덕(李昌德) 마르코(1985. 4~8), 21대 김정수(金貞洙) 바 르나바(1985. 8~1988. 8), 22대 블랑(Jean Blanc, 백) 사도 요 한(1988. 8~1993. 8), 23대 이재영(李裁榮) 사도 요한 (1993. 8~현재). 〔박해와 공소 시대〕 현재의 금산군은 옛부터 인접하여 있던 충청도 금산군과 전라도 진산군의 일부가 1914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한데 합쳐진 지역으로서 한국 천주교회사의 초기부터 순교의 전통을 계승하여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이곳은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辛亥 迫害) 때 순교한 윤지충(尹持忠, 바오로)과 권상연(權尙 然, 야고보)이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신앙 생활을 하던 곳이자, 순교 후 그들의 시신이 묻힌 곳(진산군 북면 莫峴 里, 현 금산군 진산면 막현리)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또한 1812년 홍주에서 순교한 이 바오로가 체포된 곳(금산군 개죽리)이며, 1866년(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진 산의 병방(兵房) 출신으로 공주에서 순교한 김공우가 생전에 거주한 곳(진산군)이었다. 또 같은 시기에 한경영(韓景永, 요한)· 손 마리아(또는 막달레나) 부부(금산군 개죽리)와 송 누시아(진산군)가 각각 순교한 곳이기도 하 다. 이러한 순교 사적으로 미루어 보아 이 지역에는 늦어도 19세기 전반에 이미 공소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보인다. 이 지역에서 문헌으로 검증되는 가장 오래 된 공 소는 최양업 신부의 1856년도 서한에 나오는 진밭뜰(또 는 진밧들) 공소인데, 1840년대에 형성된 것 같다. 또한 1861년 3월에 입국하여 활동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리델(F.C. Ridel, 李福明) 신부가 제작한 지도에 의하면, 1860년대 전국 153개 공소 중에 전라도 진산과 충청도 금산이 포함되어 있으며, 1884~1885년의 교세 통계표 에는 진산 지역의 소라니(현 금산군 금성면 上佳里), 막김 이(진산면 莫峴里) 등의 공소가 등장하고 있다. 그 후 1911년 4월 조선 대목구가 서울 대목구와 대구 대목구 로 분리, 설정되어 이 지역이 대구 대목구의 관할로 넘어 가기 전까지, 가세발(또는 가새벌, 진산면 芝芳里), 구만리 (또는 구만이, 福壽面 芝良里), 진산읍(진산면 邑內里), 안지 렁이(南二面 乾川里) 공소 등이 설립되었다가 폐지되곤 하 였다. 이 중에서도 1860년대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세발 공소는 설립 이후 한 번도 폐지되지 않았고 교우 수도 다른 공소들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1910년 진산 지역의 공소는 가세발과 안지렁이 등 2개 이며, 교우수는 모두 180명인데, 그중에 170명의 교우 가 가세발 공소 소속이 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본당의 설립과 변모〕 금산 본당의 직접적인 모태가된 것은 바로 이 가세발 공소로서, 1920년대에는 대구 대목구의 되재 본당 관할 아래 있었다. 1926년 공소 강 당을 건립하고, 1929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는데, 이때 초대 신부로 부임한 이성만(이냐시오) 신부는 1930년에 사제관 10칸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1931년 전라남북도 가 대구 대목구에서 분리되어 전라도 감목 대리구로 될 때 이 지방리 본당은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35년 금 산읍 중도리 현 위치로 옮겨서 교회 부지 729평과 건물 을 매입하고 7월 10일 본당으로 다시 승격하였으니, 이 것이 현재의 금산 본당이다. 1955년 백합 유치원을 설 립하였고, 부지 1,850평을 매입하여 1957년 12월 성 당 · 사제관 · 수녀원을 신축, 완공하였다. 1963년 부속 유치원 및 본당 회의실을 신축하였고, 1972년 신용 조 합을 창설하였으며, 이듬해 이금수(토마스) 회장으로부터 남일면 신정리의 임야 2,900평을 성당 묘지로 기증 받았다. 그리고 1977년 8월에는 복수면 백암리에 공소 건물을 신축하였다. 1980년 8월 29일 금산 본당은 전주 교구에서 대전교구로 이관되었다. 현재 이 본당에서는 1964년 이래의 낡은 성당 건물을 철거하고 새 성당을건립하기 위해 1990년에 준공한 교육관 지하에 임시 성 당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 교육관 안에는 성당 외에도 사 제관, 수녀원 등이 들어서 있다. 1964년 6월 인보 성체 수도회 분원이 개설되었으며, 1995년 1월 현재 추부면 에 새로운 공소를 설립 중에 있다. (→ 대전교구)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고문 · 색인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p. 270/ 임충신 · 최석우 역주, 《崔良業神父書翰集》,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pp. 166~1771 김 진소 편, 《天主教全州教區史年表》, 호남교회사연구소, 1993/ 김진 소, 《天主教全州教區史研究資料集 제1집(1882~1911, 地名調查報 告書), 호남교회사연구소, 1987/ 김진소, 《天主教全州教區史研究資 料集》 제2집(1882~1986, 教勢統計表), 호남교회사연구소, 1987/ 천주 교 대전교구, 《대전교구 30년》, 1988/ 천주교 대전교구,《천주교 대전 교구 통계 자료집》(1883~1989 교세 통계표), 1990/ 김구정 · 김영구 공저, 《天主教湖南發展史》, 천주교 전주교구, 1964, pp. 712~716/ 대 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大邱本堂百年史(186-19886), 1986/ <달레 교회사》 下/ 차기진, <한국 교회 최초의 치명터 전동 성당- 윤지 충 · 권상연의 거주지 및 풍남문과 관련하여 >, 《한국 천주교 최초의 참수 치명 순교자 윤지충 . 권상연과 전동 성당》, 천주교 전동교회, 1992/ 《가톨릭 사전》 본당사 보유 편, 1990. 〔元載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