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 禁慾

[라]ascetismus · [영]asce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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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금지 명령은 곧 금욕을 의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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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금지 명령은 곧 금욕을 의미하였다.


금욕이란 '훈련' , '수련' 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아스 케시스(ἄσκησις)에서부터 파생된 개념으로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어원 그 자체에 입각 하여, 욕망을 자제하려는 인위적이며 기술적이고 예술적 인 작업 특히 육체적인 단련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된 다. 그러나 철학이나 종교에서는 좀더 외연을 넓혀서 인 간 정신과 의지의 훈련이라는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의미 까지도 포함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후자의 의 미는 그리스 철학자들과 중세 신학자들에게서 잘 나타난 다. 용기와 정의를 갖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온갖 무절 제로부터 도피해야 한다고 주장한 소크라테스에 이어 스 토아 학파 역시 생각과 욕망을 지배하고, 그러한 욕망으 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금욕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로써 금욕은 윤리적인 덕목인 절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나아가 필로와 소크라테스는 금욕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명상, 신비, 지복직관 등의 의미로 이해하였는데, 금욕을 물질적인 세계의 속 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방법으로 보았던 것이다. 필 로의 이러한 이해는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와 오리제네스(Origenes)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리스도교의 금욕 이해에 상당한 공헌 을 하게 되었다. 글레멘스와 오리제네스는 금욕이라는 개념을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 금욕주 의의 신학적 이론을 제시한 최초의 교부들이었다. 이들 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한 방법으로 금욕의 필연성을 주장하고 있다. 욕망 또는 애욕과 같은 장애물을 제거하 고, 끊임없는 명상과 기도를 통해서만이 하느님과 일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에서는 필로 에 이은 글레멘스와 오리제네스의 입장에 따라 금욕을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서 이해하여, 금욕을 덕행의 훈련, 진리에 대한 인식의 훈련, 참회와 절제의 훈련 등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하여 금욕이라는 개념과 단어는 아주 급속하게 그 리스도교의 전문 용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중세 시대 신 비주의적인 그리스도교가 확산될 때에는 신비 체험을 위 한 하나의 방편인 금욕이 마치 신앙 생활의 목표인 것처 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17세기에 이르러서 금욕 이라는 단어는 신학적인 용어로 재등장하여 신비라는 개 념과 결합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신비주의 신학, 영성 신학이라는 학문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성서적 근거〕 금욕이라는 단어는 신약성서의 고린토 전서 9장 25절에 동사형 엑크라테에타이(ἐγκρατεύεται, 절제하다)로 단 한 번 등장할 뿐 성서에서 직접적으로 묘 사된 예는 없다. 그러나 성서에는 금욕을 인간의 존재론 적 상황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지워 놓고 있다. 인간들에 게 금욕적인 상황을 직접적으로 제시한 예로는 레위기의 정결 규정, 단식, 성적인 절제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나는 이러한 금욕적인 요구들이 어떤 맥락에 서 왜 제기되었는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리스 도교에서의 독특한 금욕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다. 그러므로 성서에 나타난 금욕의 사례만을 성급하게 찾기보다는 금욕이 인간의 존재론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인물인 아담과 예수가 처한 상황을 통해 그 리스도교인에게 금욕이 어떤 신학적 의미가 있는가를 밝 힐 수 있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 처해 있던 최 초의 상태에 대한 묘사에서 하느님은 인간의 존재론적인 상황을 규정하고 있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 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 는 나무와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 는 반드시 죽는다"(창세 2, 16 이하). 이것은 하느님에 의 해 부여받은 인간 즉 아담의 상황 자체가 이미 부단한 유 혹의 현실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유혹을 이겨내야 한 다는 것은, 끊임없이 충동되는 어떤 욕망을 절제한다는 것으로 곧 금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인간이란 하느님에 의해서만 자신의 현존에 대한 이해와 구원을 획득할 수 있으며, 따라서 하느님이 정해 놓은 그 이상의 것을 탐하게 될 때, 인간의 필연적인 상황인 유혹의 현실 을 극복하지 못할 때, 즉 인간의 존재론적 상황인 금욕적 인 삶을 포기한다면 더 이상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지속 할 수 없는 상황으로 타락하고 말 운명에 처해 있는 존재 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혹을 이겨내는 금욕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주어진 금욕적인 상황이며 존재론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아담은 자신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였 고 후손들은 그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게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지켜야 했던 것보다 더욱더 처절한 상황에 직면 하게 되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극복하지 못한 유혹 탓에 이후의 인간들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 커다란 희생과 가혹한 투쟁을 통해 더욱 가중된 유혹 을 이겨내고 믿음을 지켜 나가야만 하게 된 것이다. 그러 므로 인간의 현실에는 금욕의 계기가 더욱 절실하게 작 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아담의 죄를 원죄 로 물려받아 철저한 신앙의 삶을 살아나가야만이 하느님 에 의해 다시금 속죄를 받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의 인간은 어떠 한 삶을 사는 것이 하느님에게 대속받을 수 있는 삶인가 하는 고민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은 끊임없 는 유혹에 대한 부단한 투쟁, 철저한 욕망의 자제에 의해 서만이 하느님에 의한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창세 기 이후의 구약성서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상황을 극명 하게 보여 준다. 하느님의 계속된 요구들, 하느님의 계명 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한 상황, 하느님 의 분노와 계속되는 인간의 좌절 등의 현실 속에서 인간 에게는 유혹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끊임없이 쫓아다니 며 그것을 극복해야 할 금욕적인 요구가 점증되는 사태 를 아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예수를 통해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신 약성서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부단하게 이 세상적 인 것을 희생시키는 일련의 사례를 전해 주고 있다. 독신 으로서 가난하게 살았던 세례자 요한의 삶 속에서 그러 한 충분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삶은 단순한 절제나 금욕 이상의 것을 보여 준다. 예수 역시 인간들에게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는 윤리적인 자세를 가 르치고 온갖 유혹에서 이길 수 있는 단식과 훈련 등 금욕 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인 간들의 운명을 대신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는 금욕의 전 형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히브리서 12장 2절에 는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 다. 그분은 당신 앞에 놓인 기쁨 때문에 부끄러움을 개의 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아내셨다"고 묘사하였으며, 골 로사이서 2장 14절에는 "우리에게 불리한 빚 문서, 곧 그 조문들에 의해 우리를 책잡던 빚 문서를 말소하셨습 니다.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 사이에서 치워 버 리신 것입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과 의 일치를 위해서 예수가 살았던 삶에 대한 고백이면서 동시에 하느님과의 일치를 원하는 인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단편이기도 하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자신의 죽음까지도 불사 하였던 예수의 금욕적인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동참해 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신약에서는 분명히 제시하고 있 는 것이다. 아담이라는 최초의 인간이 당면하였던 존재 론적인 상황에서 제시된 금욕은 아담의 무절제에 의해 이후의 인간들에게 더욱 가중되어, 결국에는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으로써 그 전형을 보여 준 예수의 삶을 따라 야 하는 현실로 치닫게 만들었던 것이다. 성서에 나타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고찰해 볼 때, 금욕이라는 개념이 성서에 직접적으로 쓰여지지는 않았지만 금욕의 현실은 하느님과 대면한 인간의 존재론적인 상황에서 필연적이 고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표징으로서의 금욕〕 이상에서 살 펴본 성서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그리스도교에서의 금 욕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면, 여기서는 단순한 인간 의 훈련이나 단련 혹은 윤리적 금욕의 차원을 넘어선 것 을 알 수 있다. 하느님과 대면한 그리스도인에게서 금욕 이란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는 하나의 징표로 작용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규정한 인간의 존재론적인 상황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 한, 즉 선악과 를 따먹고 싶은 유혹을 극복하고 자제하는 한 무한한 축 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이었다. 이것은 곧 유 혹을 절제하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순종이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확신을 보여 주는 유일한 인간의 노력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상의 열매가 불멸의 삶을 선 사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져 다 주리라는 기대와 함께 지상의 열매를 따먹으려는 부 단한 유혹 속에 살고 있었던 아담은 끝내 유혹을 이기지 못함으로써 하느님이 주는 확실성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 은 자신의 존재론적 상황을 변화시켜 놓았다. 이러한 상 황에서 금욕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믿기 위한 필수적인 덕목이다. 예수가 보여 준 금욕적인 생활에서도 금욕은 신앙에 대한 순명 그 자체를 구성하는 근본 요소임이 드러난다. 예수는 금욕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다. 예수의 적대자들이 예수를 먹고 마시기 좋아하는 자라고 빈정대 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분명히 예수의 삶에는 단순히 윤 리적인 금욕을 통하여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려는 동기를 갖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가 금욕을 하였 던 것은 아담에 의해 파기된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여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도록 기반을 닦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금욕 혹은 그리스도교의 수련 의 근본적인 정신은 의심 없는 믿음이다. 이 믿음의 금욕 이란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헌신과 귀의를 의미한다. 그 러므로 인간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입각해서 금욕적인 생활을 실천할수록 그 실존의 근원이 밝혀지게 된다. 즉 인간은 모든 의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한계, 나약함, 고 통, 좌절, 허무 등을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앙 인이 이러한 태도를 철저하게 수용하면 할수록 더욱 분 명하게 하느님의 뜻을 체험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하 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귀의시킨다. 이러한 현실에서 다시금 그리스도교인에게 훈련과 포기 가 요구된다. 이렇게 믿음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곳에 개별적인 금욕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드러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금욕이 단순히 인간의 공적으로 돌려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여느 종교에서와 달 리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은 어떠한 행위를 통해서도 자 신의 허물을 자신이 제거할 수 없다고 본다. 불교나 힌두 교에서와 같이 인간이 명상을 통하여 스스로 깨우침의 영역 즉 구원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 다. 후자의 영역에서는 금욕이 순전히 인간의 업적으로 돌려진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경우, 인간은 항상 하느 님을 신뢰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희망해야 하는 존재이 다. 바로 여기에서 윤리적인 금욕을 통해 실현되는 완성 이 결코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고립된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에 의한 최종적인 구원의 빛 아래에서만 금욕의 목표를 완성할 수 있는 상 황에 처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리사이인들의 금욕 적인 삶을 비난하고 스스로 금욕의 전형이 되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바리사이인들은 율법에 따라 철저히 금욕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금욕을 스스로의 업적을 쌓는 방편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모 범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하느님에 의한 구 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그리스도교의 금욕은 금욕의 마지막 계기인 종말론적인 금욕의 빛에서 절정에 이른 다. 종말론적인 금욕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하지 않으면 안되는 독특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취소할 수 없는 하느님의 구원 결단이 내포하고 있는 '이 미' 와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러낼 '아직' 사이의 시간 안에 직면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존 재하지만 약속받은 것을 얻지 못하고 다만 그것을 멀리 서 바라보고 기뻐하면서 죽을 것이다(히브 11, 14). 이러 한 구원의 상황에 직면해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참고 견디 어내고 주님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 되는데, 이러한 훈련과 실천을 종말론적인 금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의도와 계획에 집 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쉽사리 자신의 의도를 하느님의 뜻인 양 오해하 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 간 중심적 혹은 윤리적인 금욕과 달리 그리스도교의 금 욕은 독특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맺음말〕 일반적으로 포기 · 절제 · 고행과 관련된 모 든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금욕이라는 용어는 아직 통일된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하느님에 대 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가톨릭 신학의 경우에도 금욕 을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추구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모든 노력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면에 서는 궁극적인 해탈을 추구하고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금욕으로 이해하는 다른 종교와 그리스도교 의 이해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좀더 신학적인 견지 에서 금욕을 이해할 때는 분명히 그 자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종교학적인 입장에서 구분한 신에 의한 타 력적 구원과 스스로에 의한 자력적 구원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자력적 구원에 근거할 경우 인간은 자신의 금욕적인 삶만을 통해서 구원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으나 타력적인 구원의 입장에서는 금욕적인 삶이 하나의 과정일 뿐 완성을 성취할 수 있는 완전한 방 법은 아니다. 즉 후자의 경우에는 금욕이 구원을 받기 위 한 신앙의 징표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창조의 완성 즉 구원의 성취를 금욕적이고 문화적인 노 력의 산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로 이해하 는 그리스도교의 경우에는 금욕이 철저히 하느님과의 관 련성 속에서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 므로 그리스도교의 금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의해 규정된 인간의 존재론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극기) ※ 참고문헌  《NCE》 1, pp. 936~944/ 《LThK》I K. Rahner . H. Vorgrimler, Kleines theologisches Worterbuch, Herder, Freiburg i/Br, 1961, pp. 33~34/ K. Hormann, Lexikon der christlichen Moral, Tyrolia, Innsbruck, 1969, pp. 50~51/ Neues Lexikon der christlichen Moral, Herg. H. Rotter · Giinter Virt, Tyrolia, Innsbruck, 1990, Pp. 54~648/ J.C. Childress . J. Macquarrie, Die Religion in Geschichte und Gegenwart, Bd.1, The Westminster Press, Philadelphia, 1967, pp. 44~461 H. Fries, Handbuch theologischer Grundbegriffe, Bd. 1, Miinchen, Deutscher Taschenbuch, 1970, pp. 138~ 145/ K. Rahner, Schriften zur Theologie, Bd. 3, Benziger, Einsiedeln, 1964, pp. 61~104/ 一, Herderstheologisches Tascherlexikon, Bd. 1, Herder, Freiburg, 1972, pp. 202~210. [安明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