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 본당

金井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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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금정구 장전1동 213-5 소재. 1974년 11월 7일 온천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 었으며, 주보는 성 바오로. 관할 구역은 구서1동, 오륜 동, 장전1~3동, 부곡2~3동. 〔교 세〕 1975년 530명, 1980년 1,438명, 1984년 3,334명, 1993년 5,154명. 〔역대 신부〕 초대 머레이(Aidan Murray, 함) 예단(1974.11~1978. 3), 2대 스위니(Robert Peter Sweeney, 서) 로베르 토(1978. 3~1980. 4), 3대 던(Patrick Gerard Dunne, 손) 제라 르도(1980. 4~1984. 2), 4대 김성도(金成道) 모이세(1984. 2~1988. 2), 5대 장병룡(張丙龍) 요한(1988. 2~1990. 2), 6 대 이병만(李炳萬) 요셉(1990. 2~1992. 2) , 7대 최영철(崔 榮喆) 알로이시오(1992. 2~1994. 2), 8대 배상섭(裴尙變) 요한(1994. 2~현재). 〔설립과 발전〕 온천 본당의 안달원(安達遠, 베드로) 신부는 앞으로 본당 관할 구역과 인근 지역에 대단위 아 파트 단지가 조성되면 신자수도 증가하리라 예상하고 새 본당 설립을 교구에 건의하였다. 이에 부산교구는 현재 의 성당 대지 389평을 매입한 후,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에 사목권을 위임하였다. 1974년 10월 현 본당 소재지 에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같은 해 11월 금정 본당 으로 설정되었고, 이듬해 5월 4일 8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런데 설립 당시 신자들의 거주 분포는 부산대학교 새 정문을 경계로 하여 장전1 동, 부곡2동 등지의 40~50여 세대를 비롯하여 구서동, 청룡동, 두구동, 그리고 공소인 양산군 정관면 두명리 등 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었고, 이 지역 대부분이 농경지여 서 교통이 매우 불편하였다. 또 본당 위치가 부산대학교 북쪽의 비교적 외진 지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미사 참례를 위해 30분 정도 걸어야 했기에 자녀를 둔 신자들은 금정 본당보다는 인근의 동래 본당이나 온천 본당을 다녀야만 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평신도 단체 조직과 전교 활동 을 전개하며 내실을 다져간 금정 본당은 설립 10년도 채 안된 1982년에 성전을 새롭게 증축 완공하게 되었다. 마침 부산시가 장전동 일대를 아파트 단지로 조성하자 인구 증가와 함께 신자수도 상대적으로 급증하였으므로 본래의 성당 규모로는 전신자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 이었다. 신자들의 성전 모금 운동과 골롬반 외방선교회 의 기금을 토대로 하여 1980년 4월부터 공사를 시작, 1982년 2월 14일에 대지 389평, 건평 295평 규모의 새 성전을 완공하고, 이어 1984년 11월 사제관과 수녀원도 건립하였다. 이처럼 양적 발전과 기반을 다져 간 금정 본 당은 내실과 쇄신에도 주력하였다. 기초 공동체의 육성, 가정의 성화, 신자 재교육과 신심 활동, 불우 이웃 돕기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오면서 사목과 선교 활동에 다양 성을 기해 왔던 것이다. 가정 사목의 일환으로 1986년 부터 평화의 날(1월 1일)에 가난한 마을 어린이들을 찾아 선물을 전달하고, 성탄절에는 본당 구역 내의 60세 이상 노인들을 초대하여 경로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다. 특히 1993년 9월 5일에는 부산교구에서 네 번째로 노인 대학 을 개교하여 지역 주민과의 친교를 통한 복음화 구현과 노인 복지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본당 설립 20주년을 맞아 1994년 6월 29일에는 역대 본당 신부와 수녀, 평협 회장 등을 초청하여 기념 미사와 기념 식을 거행함으로써 전신자의 신앙 쇄신 다짐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부산교구)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