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 본당

金湖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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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 성동구 금호동 2가 760 소재. 1962년 9월 8일 신당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 되었으며, 주보는 성신 강림. 관할 구역은 성동구 금호 동. 〔교 세〕 1962년 1,800명, 1967년 3,410명, 1977 년 4,412명, 1987년 5,423명, 1993년 4,697명. 〔역대 신부〕 초대 김대성(金大星) 바오로(1962. 9~1963. 6), 2대 조창희(趙昌熙) 베네딕도(1963. 6~1965. 8) , 3대 김영일 (金永一) 발타사르(1965. 8~1967. 4), 4대 경갑룡(景甲龍) 요셉(1967. 4~1969. 4), 5대 김병일(金秉溢) 요셉(1969. 4~1971. 2), 6대 최익철(崔益喆) 베네딕도(1971. 2~1973. 5), 7대 이사응(李思應) 안토니오(1973. 5~1979. 6), 8대 송광섭(宋光燮) 베드로(1979. 6~1982. 6), 주임 신부 서리 임경명 엠마누엘(1982. 6~9), 9대 안충석(安忠錫) 루가 (1982. 9~1985. 8), 10대 염수완(廉洙完) 야고보(1985. 8~1989. 2), 11대 서춘배(徐春培) 아우구스티노(1989. 2~1990. 9), 12대 전용선(田溶先) 요한(1990.9~1991. 9) 13대 이해욱(李海旭) 프란치스코(1991. 9~현재). 〔설립 및 발전〕 1954년경부터 무수막(水鐵里, 현 금호 동)에 본격적인 난민촌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공소 신자수는 늘어났으나 관할 신당동 본당이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이 지역에 새로운 본당의 설립이 필요하게 되 었다. 1959년 전덕규(全德奎, 요한) · 김기창(金基昌, 요한) · 김용희(金龍熙, 베드로) · 김 마르타 등을 중심으 로 공소 신자들은 본당을 설립할 부지를 마련하고자, 그 들의 몫으로 배당된 구호 물자를 매각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러 차례 기금을 조성하였다. 마침내 500평의 성당 부지를 매입하기에 이르렀고, 1962년 9월 8일 1,800여 명의 신자들로 금호동 본당이 신설되었다. 본당 설립 후 의 선결 과제는 성당 신축이었는데 확보해 둔 부지가 돌 이 많은 경사지였기에 성당을 건립하기에는 부적합하였 다. 이를 매각하고 원호청 소유의 정양원(靜養院) 창고 를 인수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963년 7월 금 호동 산 10번지의 대지 205평을 매입하여, 같은 해 12 월 6일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건평 42평의 임시 성당을 준공하고 이어서 건평 40평의 목조 건물에 사무실, 교리 실, 회의실을 마련하였다. 그 후 신자수가 증가하자 1967년 2월 '성전 건립위원회' 를 조직하여, 이듬해 11 월 24일 현대 감각을 최대한 살리면서 제대 중심의 부채 꼴로 실내 좌석을 배치 설계한 성당(104평)을 준공하였 다. 1969년 7월에는 사제관을 건립하였고, 1977년 4월 새 사제관과 부속 건물을, 1981년 10월 같은 건물 위에 3층 강당을 각각 건립하였다. 그리고 성당 대지를 확장 하고자 9대 안충석 신부 재임시 성당 인접 대지 70여 평 을, 10대 염수완 신부 재임시 60여 평을 각각 매입하였 다. 한편 1971년 9월에는 경기도 포천군 포천면 동교리 의 임야 86,000여 평을 본당 묘지로 매입하였다. 1967년 6월 월보 <천주교 금호동 교회>를 발행하였 고, 10월 5일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분원을 개설하였 다. 1969년 11월 22일 행당동 본당을 분리하고, 1970 년 11월 1일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실을 개관 하였으며, 1972년 8월 1일 각 구역을 행정 구역 명칭에 따라 조정하였다. 1973년 마산교구 문산 본당과 제주교 구에 사목 보조금을 지원하였으며, 10월 1일에는 옥수 동 본당을 분리하였다. 1978년에는 90여 평의 마석 공 소(현 마석 본당) 경당 건립을 지원해 주었으며, 주일학교 의 청년부를 확대 운영하고 유급 교사제를 도입하였다. 1982년 신자수가 5천 명에 육박하여 신자들간의 친교를 위해 '인사 나누기 운동' 을 시작하였다. 또한 가톨릭 노 동 청년회를 조직하여 노동 사목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 정의 구현 운동도 전개하였다. 본당 설정 25주년인 1987년에는 기념 사진전, 예술전, 체육 대회 등 다채로 운 행사와 7회의 특강을 실시하였다. 또한 외짝 교우, 냉 담자 등의 실태를 조사하여 사목에 반영시키고 25년사 발간을 준비하는 한편 1988년 3월 월간 《무수막 소식》 을 창간하였다. 같은 해 5월 노인 사목의 일환으로 '금 호 장수 대학' 을 설립하고 지속적인 성체 조배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89년 3월에는 《금호동 본당 25년사》 를 발간하였다. 1994년 2월, 기존의 낡은 성당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 1995 년 1월 현재까지도 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 서울대교 구)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