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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無形) 상태에서 기와 존재를 본 노자의 사상을 표현한 '어유도' (魚遊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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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無形) 상태에서 기와 존재를 본 노자의 사상을 표현한 '어유도' (魚遊圖).


자연과 인간의 모든 작용과 현상을 설명하는 동양 철 학의 개념. 이 기의 개념은 선진(先秦)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변천되어 왔고, 그 적용 분 야도 철학뿐 아니라 종교 · 정치 · 예술 · 의학 · 천문학 병법 · 체육 등에까지 광범위하게 미쳤다. 기론(氣論)은 학자마다 약간 이견이 있으나 대체로 세 단계를 밟아 왔 는데, 선진 시대에는 기론의 형태에 대한 분류(察類)에, 한당(漢唐) 시대에는 기화(氣化) 원천에 대한 탐구(求故)에, 송 · 명 · 청 시대에는 기화 법칙에 대한 천명(明理)에 각각 관심을 두었다. 그 결과 선진 시대엔 정기론(精氣論)이, 한당 시대엔 원기론(元氣論)이, 송 · 명 · 청 시대엔 이기론(理氣論)이 주류를 형성하였다. 〔어원과 의미〕 기 (氣)라는 글자는 일찍부터 생겨나 이미 갑골 문자에 나타나 있고, 서주(西周)의 금문(金文)과 동주(東周)의 금문에도 나타난다. 허신 (許愼)의 《설문해자》에서는 "기는 운기(雲氣)이다. 형체를 본뜬 것이다"라 하였으니, 기는 곧 상형 문자이며 그 모습은 구름이 흘러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뒤에는 쌀 미(米)자가 그 안에 들어간 기(氣) 로 되었는데, 《설문》에서는 이를 설명하여 "기(氣)는 손 님에게 꼴〔芻)과 쌀을 선물로 보내는 것인데, 미(米)는 내용이고 기(气)는 소리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甲骨 文) 복사( 卜辭)에서는 기를 운기(雲氣) 이외에 '몹시 간 구한다' 〔乞求〕, '···에 이른다' 〔迄至〕, '끝마치다' 〔終訖〕 과 같은 뜻으로도 풀이하였다. 또 금문(金文)의 '기' 자 는 '걸' (乞)자와도 통하였다. 그러나 '기' 자가 철학 범 주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운기(雲氣)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의 의미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5가지로 분류하여 설 명할 수 있다. 첫째, 자연계의 현상들에 나타난 기로, 공 기, 운기, 천기(天氣), 지기(地氣), 풍기(風氣), 음기, 양 기, 기상(氣象), 기압(氣壓), 기온(氣溫) 등의 개념들은 바로 여기에서 파생되었다. 둘째, 힘〔氣力)과 숨〔呼吸〕 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생명력으로서의 기이다. 고 대 철학자들은 사람이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모두 기 와 서로 관련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 기는 온 세상에 가 득 차 있고, 언제나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생명체의 코나 입 등〔九竅〕, 심지어는 살갗을 통하여도 드나들 수가 있 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를 일러 숨이라고 한다. 이 기가 우리의 몸 속에서 음양(陰陽)의 균형을 이루는데, 어느 한쪽이 지나치면 질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정 신 상태 및 도덕 경계(道德境界)로서의 기이다. 맹자(孟 子)가 "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맹자》 公 孫표)고 한 것은 도덕적 용기를 말하며, 이것은 '사기가 떨어진다' 고 말할 때의 기와 비슷하지만 더 차원이 높 다. 이것은 단지 몸 속에 들어 있는 음양의 기가 아니라 도덕적 수양(集義)을 통해 드러난 정신 경계인 것이다. 넷째, 어떤 구체적 사물로 이루어지기 전의 혼돈 상태로 서의 기가 있다. 그것은 엉겨 모이고, 작용하여 형체가 있는 만물을 생겨나게 할 수 있다. 《회남자》(淮南子)에 서는 이를 가리켜 "우주가 기를 낳고, 기는 한계를 가지 고 있다. 맑고 밝은 것은 얇아서 하늘이 되고, 무겁고 흐 린 것은 엉겨 쌓여서 땅이 된다"《회남자》 天文訓)고 하였 다. 주자(朱子)는 "만물을 구성하는 자료" 〔生物之具〕로 서 기 와 그 근본(生物之本)으로서의 '이' (理)를 구분 하고, 후자를 형이상(形而上)에, 전자를 형이하(形而下) 에 귀속시켰으며, 기의 맑음과 흐림(淸濁), 순수함과 뒤 섞임(粹駁), 올바름과 치우침〔正偏〕, 두터움과 엷음〔厚 薄〕에 따라 만물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다섯째, 스스로 움직이는 동력(vitality)을 가진 본체로서의 기를 들 수 있 다. 장횡거(張橫渠, 1020~1077)는 "태허는 형체가 없으 며 기의 본체이다" 太虛虛無形 氣之本體, 《正蒙》 太和 편)라 하여 태허를 바로 기(太虛即氣〕라 함으로써 기 이외의 어떤 것(天이나 理, 道 같은 것)도 궁극적 실체로 상정하지 않았다. 왕부지(王夫之, 1619~1692)는 "흩어져 태허로 돌아가 그 인온(絪縕, 왕성하게 작용함)의 본체를 회복하니, 소멸 되는 것이 아니다"(《정몽)의 注)라고 하여 정이천(程伊川, 1033~1107)이 "이미 흩어진 기가 어찌 다시 존재함이 있 겠는가?"(河南程氏遺書))라고 반문한 명제를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중국 학자들의 기론〕 선진 시대 : 이 시대의 대표적인 기론은 음양 2기(陰陽二氣)설, 6기 5행(六氣五行)설, 그 리고 정기(精氣)설이다. 첫째, 음양 2기설은 《국어》(國 語)에 나타나는데, 음양 2기는 일정한 방위와 질서가 있 으며 그 운동 변화도 일정한 법칙이 있어 이 질서가 뒤집 혀 혼란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이상한 현상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주(周)나라 백양부(伯陽父)는 지진이 일어난 원 인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대체로 천지의 기는 그 순서 를 잃지 않는다. 만약 그 질서를 지나치게 되면, 백성이 혼란하게 된다. 양기(陽氣)가 숨어서 나올 수 없고, 음기 (陰氣)는 억눌려 증발되지 못하여 지진이 생겨났다" (《周 語》 上). 둘째로 6기 5행설은 《좌전》(左傳)에 주로 나타 나는데, 6기란 그늘〔陰〕 · 햇볕〔陽〕 · 바람〔風〕 · 비 〔雨〕 · 어둠〔暗〕 · 밝음〔明〕이며, 5행이란 금(金) · 목 (木) · 수(水) · 화(火) · 토(土)이다. 이 6기 5행설의 특 징은 6기는 하늘에, 5행은 땅에 속하게 하고, 양자를 서 로 연결시켜 우주 대자연의 질서를 이루는 양대 요소로 설명한 것이다. 셋째, 정기설은 《역전》(易傳)과 《관자》 (管子)에 주로 나타난다. 《관자》에서는 기가 바로 정 (精)이며, 이 정기가 세계 만물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하 였다. "대체로 사물의 정기가 나란하면 생명이 된다. 내 려와 5곡을 낳고, 올라가 별이 된다. 천지 사이에 흐르는 것을 일러 귀신이라 하고, 가슴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일러 성인(聖人)이라 한다"는 것이다. 또 《역전》에서는 "정기는 사물이 되고 유혼(遊魂)은 변화가 된다" 고 하였 다. 그 밖에 선진 유가의 기 사상 중 중요한 것으로는 공 자의 혈기(血氣), 맹자의 호연지기, 순자(荀子)의 자연 지기(自然之氣)가 있으며, 도가(道家)의 것으로는 노자 (老子)의 충기(沖氣), 장자(莊子)의 '음양의 기 와 신기 (神氣)가 있다. 진한(秦漢) 시대 : 이 시대의 기론은 우주관의 '혹사' (或使)와 '막위' (莫爲)의 논쟁에 따라 전개되었다. 혹사 란 기 밖에 어떤 초월적인 주재자가 있어 사물의 운동 변 화를 밀고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막위란 이러한 외 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기 자체가 저절로 그렇 게〔自然〕, 아무런 것도 함이 없지만〔無爲〕 자기 스스로 움직이는 동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대의 철학자 중에서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 104)는 "천(天)이 기를 거느린다" 〔天統氣〕 또는 "천이 기를 가게 한다" 〔天行氣〕고 하면서 자신의 혹사설을 주 장하였다. 그는 우주의 최고 주재는 천(天)이며, 천의 주 재 작용은 원기(元氣)를 통하여 드러난다고 생각하였고, 음양 오행의 기를 천의(天意)를 체현(體現)하는 도구로 파악하였다. 그는 또 기를 천인 감응(天人感應)의 중개 물(仲介物)로 여겨 "천에 음양이 있고, 사람 역시 음양이 있다. 천지의 음기가 일어나면, 사람의 음기도 이에 응하 여 일어난다. 사람의 음기가 일어나면 천지의 음기도 마 땅히 이에 응하여 일어나야 한다. 그 도(道)는 하나이다" (《同類相動)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회남자(淮南子, 기원 전 179~122)는 천지가 아직 형성되기 전인 혼돈의 '무 형' (無形) 상태에서도 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즉 "천지가 아직 형태를 이루기 전에는··태태大昭昭)라고 불 렀다. 도는 허확(虛c)에서 시작되고, 허확은 우주를 낳 는다. 우주는 기를 낳으며, 기는 한계가 있다. 맑고 밝은 것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흐린 것은 뭉쳐서 땅이 된다" (《天文訓》는 것이다. 회남자는 선진 도가처럼 '도(道)→ 기(氣)-> 물(物)' 이라는 도식을 제기함으로써 기는 천지 만물을 이루는 질료가 되지만 결코 우주 만물의 본체는 아닌 것으로 보았다. 셋째로, 왕충(王充)은 기 밖에 어떤 주재자(天 · 道)를 설정하지 않고, 기가 저절로 그러하게 〔自然而然〕 천지 만물을 구성한다고 생각함으로써 막위 설(莫爲說)의 대표자가 되었다. 또 "천(天)의 운행은 기 의 자연을 베푼 것이다. 기를 베풀면 만물이 저절로 생겨 난다. 일부러 기를 베풀어 만물을 낳은 것이 아니다" (《說 日》)라고 하여 기의 자연성을 언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양기가 저절로 나와 만물이 저절로 생장하며, 음기가 저절로 일어나 만물이 저절로 이루어져 간직된다"(《自 然)고 하여 기의 자위(自爲)를, "원기는 황홀하다" 《論 死》》)고 하여 기의 무형성을, "기는 아득하고 넓어 끝이 없다" (《變動》)고 하여 기의 무한성을, "원기는 천지의 정 미(精微)함이다” (《四緯》)라 하여 기의 정미성을 주장하였 다. 위진남북조 시대 : 이 시대는 현학(玄學)의 본체론이 성행하여 기론은 한대만큼 성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유무' 를 논변하는 동안 기화(氣化)의 원천에 대한 인식 이 깊어지게 되었다. 우선 왕필(王弼, 226~249)은 "무 (無)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귀무론(貴無論)의 입장에서 "비록 만 가지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충기(沖氣)가 하나 로 한다"(《老》 注 42장)고 하여 기를 본체의 '무' (無)로 간주하면서 본체론의 지위에 올려 놓았다. 다음으로 곽 상(郭象, 252~312)은 '기의 독화' 〔氣之獨化〕설로 '귀무' 와 '숭유' 에 치우치지 않고 유무를 통일시켜 설명하였 다. 즉 "기가 스스로 존재한다"(氣自有)는 전제 하에 "하 나의 기이지만 만 가지 형체가 되며 변화하지만 죽음과 삶이 없다" (《至樂》 篇注)고 하였다. 또 기를 운동 변화하 는 그 자체라고 생각하여 "비록 변화가 서로 갈마들지 만, 그 기를 근원으로 삼는 것은 한 가지이다"(《寓言》의 注)라고 하였다. 만물은 모두 저절로 생겨나고, 저절로 변화하고,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지 어떤 외재적인 힘이 그렇게 시키지 않는다(無使物然)는 독화(獨化)론이 기 론에도 예외일 수가 없으므로 기의 취산(聚散) 변화는 모두 저절로 이루어지는〔自成〕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셋 째로, 갈홍(葛洪, 284~364)은 동진의 연단술사(練丹術 師)요 도교의 이론가로서 양생학(養生學)의 측면에서 기 를 논하였다. 이러한 갈홍의 기는 '보정행기' (寶精行烈) 의 기공 태식법(氣功胎息法)과 관련이 있다. 기(烈)는 도교에서 사용하는 글자이며, 선천일기(先天一氣)를 뜻 한다. 보정행기는 태식을 조정한 다음 내적인 수련〔內 練〕 공부를 하고, 정(精)을 단련하여 기를 변화시키고 〔煉精化氣〕, 기를 단련하여 신을 변화시키고〔煉氣/化神〕 , , 신을 단련하여 허로 돌아가〔煉神還虛〕 인체의 생명력을 증강시키며 질병을치료하고 수명을 늘이는 목적에 도달 하는 것이다. 도교의 이러한 기 사상은 의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수당(隋唐) 시대 : 인도 불교가 한나라 때 중국에 들어 온 이래 불교는 유교 · 도교의 기 철학을 흡수하여 개조 하였다. 혜원(慧遠, 334~416)은 기가 있으면 신(神)도 존 재하고 기가 없어지면 신도 없어진다는 유교 · 도교 학자 들의 논점을 반대하였고, 당나라 때의 종밀(宗密, 780~ 841)은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을 회통하여 유 · 불 · 도 3가를 혼합하였다. 종밀은 또 원기는 지각도 없고, 정신 적 작용도 하지 않으며(不神), 또 유(有)도 아니고 무 (無)도 아니라고 도교의 설을 반박하면서 기는 허공 중 의 큰 바람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윤회 응보의 이 론에 의거하여 기는 혼돈한 어떤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成) · 주(住) · 괴(壞) · 공(空)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라고 주장하였다. 의식(心〕과 대상〔境〕은 모두 공(空)이 라는 불교의 이치(大乘實理)로 도교의 원기설을 비판하 고, 기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하였다. 다시 말해 원기는 제8식(alaya식)이 변화하여 드러내는 대상계로 근 본은 마음이고, 마음이 대상을 낳고, 마음과 대상이 합하 여 천지 그리고 인간이 된다. 이처럼 도가의 원기설은 불 교의 심식론(心識論)에 흡수되어 버렸다. 송명(宋明) 시대 : 기론의 발전에서 볼 때, 본체론과 우주론을 결합한 기론은 이 시대에 출현하였다. 송명의 철학은 기(氣) · 이(理) · 심(心) 세 가지 문제로 표현되 었으며, 이것이 기학(氣學, 장횡거가 대표), 이학(理學, 주 자가 대표), 심학(心學, 왕양명이 대표)이 되었다. 우선 장횡거는 유가의 본체론적 기론의 입장에서 불 교 · 도교의 기론을 비판하였다. 그는 "태허는 바로 기이 다"라는 명제를 제시하고, 태허는 기로 가득 차 있어 "기 가 없을 수 없고 형체가 없으나 기의 본체이며, 기는 태 허에서 모이고 흩어진다"(《大和》)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 는 기가 "유와 무, 허와 실이 통하여 하나로 된 것"(《乾 稻》)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허와 기, 유와 무는 단지 존재 형태가 같지 않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일기(一氣) 의 유행(流行)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시 말해 기의 본체 〔體〕는 유무 · 허실의 통일이며, 기의 작용〔用〕은 만물의 모임과 흩어짐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와 주자(朱子, 1130~ 1200)의 철학 체계에서는 이가 우주의 본체이며, 기는 만 물을 생성하는 질료에 불과하였다. 음양의 운동 변화와 만물의 생성은 그 근원이 기 자체에 있지 않고, 그 까닭 으로서의 이에 있으며, 후자가 형이상학이요, 전자는 형 이하학으로써, 기는 이에 종속된다. 이정(二程, 정호와 정 이)은 "만물의 시작은 모두 기의 운동 변화이다"(《遺書》) 권5)라고 하여 만물의 생성은 기를 떠날 수 없다고 하였 다. 그런데 장횡거와 달리 이정의 기화론(氣化論)은 기 가 흩어져 사물이 없어진 뒤에는 다시 본원의 기로 되돌 아가지 않으며, 태허가 본원이 아니라 기의 취산은 이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천지의 변화 가 비록 만물을 낳고 낳아 그치지 않지만, 어찌 이미 죽 은 형체와 되돌아간 기에 근거하여 다시 조화를 일으키 겠는가?”(《遺書》 권15)라고 하여 장횡거의 기본론(氣本 論)을 비판하였다. 주자는 이정의 학설을 계승하여 이선기후(理先氣後) 설과 이기불리(理氣不離)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는 기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형이상이고 기는 형이 하이다. 형이상과 형이하를 말하니 그것들이 어찌 선후 가 없겠는가? 이는 무형하고, 기는 조잡하고 앙금이 있 다" 고 하여 이와 기를 형이상 · 하로 구분하였다. 명대 심학의 집대성자인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은 육구연 (陸九淵)의 심학을 계승 발전시켰다. 그는 양지(良知)설 을 제시하여 마음의 양지로서 기를 논하였다. "무릇 양 지는 하나이다. 그 묘한 작용으로 말하면 이를 신(神)이 라 하고, 그 운행〔流行〕으로 말하면 이를 기(氣)라 하고, 그 엉겨 모인 것으로 말하면 이를 정(精)이라 한다"는 것 이다. 즉 원기 · 원신 · 원정은 모두 양지가 다른 모습으 로 표현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이란 기의 조 리(條理)이며, 기란 이의 운용이다. 조리가 없으면 운용 할 수 없고, 운용이 없으면 역시 그 조리라는 것을 볼 수 없다" 《傳習錄》 中)고 하여 기는 양지〔理)의 운행이며, 이 는 기의 조리라고 보았다. 청(淸)대 이후 : 이를 기의 조리로 파악한 왕양명 이후 이보다 기를 궁극적 실재(太極)로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 났는데, 그 대표자가 왕부지(王夫之)와 대동원(戴東原, 1723~1777)이다. 왕부지에 의하면 기는 우주의 본체이 고, 만물이 나오는 근원이며, "태허는 곧 기이고, 인온 (絪縕)의 본체이다"(《正蒙》의 注). 그는 정주(程朱)의 기 소멸론' 에 반대하여 만물은 기에 의하여 생성되고 그것 이 소멸된 후에는 다시 기로 복귀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대동원은 정주가 이와 기를 형이상과 형이하로 나누는 것을 부정하고, "형(形)은 이미 형질(形質)을 이룬 것을 말한다. 형이상은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하는 것과 같고, 형이하는 형질이 이루어진 뒤라고 하는 것과 같 다"(《孟子字義疏證》 中)는 명제를 내세웠다. 형질 이전과 형질 이후 모두 하나의 기를 말하는 것이다. 기는 영원히 쉬지 않고 운동 변화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만물이 생성된다고 하였다. 그는 기 밖의 어떤 주재도 인정하지 않고, 기가 최고 존재이며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근대 철학자들의 기론 : 아편 전쟁 이후 중국의 지식인 들은 서양 사상과 기론을 결합시켜 설명하였다. 강유위 (康有爲, 1858~1927)는 기의 상호 마찰이 열과 빛, 그리 고 원질을 생기게 한다고 하여 기를 번개 또는 전기라 생 각하였다. 엄복(嚴復, 1853~1921)은 "기라는 것은 질점 이 있고, 끄는 힘〔愛力)과 미는 힘〔拒力〕을 가진 사물이 며, 그 무게를 재 수 있고, 그 운동을 느낄 수 있다"(《名 學淺說》)고 하여 기를 원자(atom)와 비슷한 것으로 파악 하였다. 담사동(譚嗣同, 1865~1898)은 지구의 모든 생명 은 기에 의존하는데, 지구는 우주 공간에 떠 있으며, 그 주위는 한층의 두꺼운 대기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였다. 이 대기가 바로 몽기(蒙氣)라는 것이다. 그는 뒤에 기 대 신 이태(以太, 에테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 장태염 (章太炎, 1869~1936)은 기는 에테르이고 그 실질은 원자 라고 생각하였다. 〔중국 선교사들의 기론〕 성리학자들은 기의 흩어짐으 로 죽음을 해석하고, 혼(魂)을 기의 한 면으로 보아 사라 져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프란치스 코 삼비아시(Francisicus Sambiasi, 畢方濟, 1582~1649)는 《영언여작》(靈言蠡勻)에서 "혼에는 생혼(生魂) · 각혼 (覺魂) · 영혼(靈魂)의 세 종류가 있다. 생혼 · 각혼은 질 료(質料)로부터 나오며, 모두 그 형체에 의거하여 존재 한다. 의거한 곳이 다 없어지면, 생혼 · 각혼도 모두 없어 진다. 영혼은 인간에게 있는데 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 형체에 의거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비록 사람 이 죽더라도 소멸하지 않는다"고 하여 혼을 기라고 주장 하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잘못된 학설을 바로잡아야 한 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영혼에는 기함(記含) · 명오(明 悟) · 애욕(愛欲)의 세 가지 기관이 있으며, 기함의 기능 은 억기(憶記, 기억)와 추기(推記, 추리) 두 가지라고 한 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추기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죽으면 억기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은 성리학의 기본 범주인 태극· 이기 · 음양 · 오행의 개념에 대해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기를 서구의 4행(土 · 水 · 氣 · 火)의 하나인 공 기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조물주는 전능하시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다. 유의 시작이 되는 물질은 원행(元行) 이다. 원행에는 4가지가 있다. 흙 · 물 · 공기 · 불이 그것 이다”(《泰西水法》)라 했다. 그러므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는 "기란 것은 물 · 불 · 흙 3행과 함께 만물의 형체가 되는 것이다" 《天主實義》 제4편)라 하 여 기를 공기로 파악하고, 중국 선비(中士)가 기를 귀신 과 영혼으로 간주한 전통적 성리학을 비판하였다. 그것 은 선교사의 교리에 대한 양광선(楊光善)의 다음과 같은 비판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천주가 비록 신(神)일 지라도 사실 두 기(氣)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두 기 중 하나로서 만물이 가지고 있는 두 기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어찌 이치에 닿겠는가?”(《闢邪論》 上). 이것 은 천주를 잘못 이해한 데서 생긴 것이지만, 신을 기의 작용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중국 지식인의 태도는 선교사 의 입장에서 보면 유학의 천주교에 대한 이론적 반박이 라 생각되었다. 이러한 비판에 직면하여 마테오 리치가 기는 공기에 불과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만약 기를 신이라 하여 생명 활동의 근본으로 본다면, 산 것이 무슨 까닭으로 죽을 수 있는가? 죽은 뒤에도 기는 안팎에 여 전히 충만해 있으니 어디 간들 기를 벗어날 수 있으며, 또 기가 없이 죽는 것을 왜 걱정하겠는가? 그러므로 기 는 생명 활동의 근원이 아니다. 털끝만한 차이로 천리의 오류가 생긴다고 한다. 기가 4행의 하나라는 것을 모르 고 있으니 그것을 귀신이나 영혼과 같다고 하는 것도 이 상할 것이 없다”(天主實義) 제4편)고 주장하였다. 또 선 교사 알레니(Julio Aleni, 艾儒略, 1582~1649)도 "기는 조물 (造物)의 재료에 불과한 것이며, 스스로 만물을 지어내 는 것이 될 수 없다" (《萬物真原》)고 하여 창조주인 천주와 피조물인 기를 뚜렷이 구별하였다. 〔조선 학자들의 기론〕 고려 시대의 문인이자 철학자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원기(元氣)가 천지 만물을 이루는 근원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과 만물의 태어남 〔生〕은 모두 명조(冥兆)에서 정해지고, 자연에서 발생된 다. 하늘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조물주 역시 알지 못한 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는 것은 본래 저절로 생 겨날 뿐이요, 하늘이 태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원기가 처음 갈라져 올라가 하늘이 되고, 내려와 땅이 되었으며, 사람은 그 가운데 있으므로 이들을 삼재(三才)라 한다" 《東國李相國集》 後集, 권11 問造物) 하였다. 조선 초기의 성 리학자인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은 '심기리' (心氣 理) 편을 지어 불교는 심, 도교는 기, 그리고 유교는 이 를 중심으로 전개된 철학이라고 보았다. 그는 "환히 빛 나게 이가 천지의 앞에 있고, 기는 나〔理〕로 말미 암아 생겨나고, 심(心) 역시 거기에 부여받아 있 다"(《《心理》)고 하였다. 권근(權近, 1352~1409)은 이것을 분명히 풀이하여 "이는 심과 기의 본원이 다. 이가 있은 뒤에 기가 있으며, 기가 있은 뒤에 양의 가볍고 맑은 것은 올라가 하늘이 되고, 음의 무겁고 탁한 것은 내려와 땅이 되었다" (《陽村集》 권10)고 설명하였다. 다음으로 조선 시대 '기' 철학자인 서경덕(徐 敬德, 1489~1546)은 기가 만물의 근원이며 "태허 가 곧 "〔太虛卽氣)라는 명제를 설명하면서 "밖 이 없는 것을 태허라 하고, 시작이 없는 것을 기 라 하니, 허가 바로 기이다. 허는 본래 끝이 없으 니 기 또한 끝이 없다"(《花潭集》 理氣說)고 하여 기 는 시간적으로 무궁하고 공간적으로 지대(至大) 하다고 생각하였다. "기 밖에 이가 없으며, 이란 기의 주재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재한다 는 것은 밖에서 와서 그것을 주재하는 것이 아니 다. 기가 작용하는데 그렇게 되는 까닭의 올바름 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주재함"이라 하였다. 그러므 로 이가 기에 앞서지 않고, 기는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 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기일원론(氣-元論) 과 기불멸론은 우리 나라 철학사에서 후대 학자들에게 비판되기도 하고 계승되기도 하였다. 조선 이학(理學)의 대표자인 이퇴계(李退溪, 1501~ 1570)는 이를 최고 범주로 삼기 때문에 서경덕의 기불멸 론을 비판하였다. 그는 "화담은 기를 성(性)이라 잘못 알 고 있다"(《退溪集》)고 하였다. 그러므로 화담의 설은 이를 기로 인정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역시 그 설에 빠져 기라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 이나 항시 존재하며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려 한 다고 생각하였다. 반면에 이율곡(李栗谷, 1536~1584)은 퇴계의 이선기후 론(理先氣後論)이나 서경덕의 기일원론과는 달리 '이통 기국' (理通氣局)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담일청허한 기 가 어느 사물에도 존재하지 않음이 없다고 생각하여 스 스로 수많은 성인들이 다 전하지 못한 묘(妙)를 얻었다 고 생각하였으나, 특히 위로 다시 이통기국의 한 면이 있 음을 알지 못하였다. 이는 변함이 없으나 기는 변함이 있 다. 원기(元氣)는 쉬지 않고 서로 생겨나, 낡은 것〔往者〕 은 가버리고 새 것〔來者〕이 이어질 뿐이다. 이미 가버린 기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栗谷全書》 권10)고 하면서, "그러나 화담은 일기(一氣)가 오래 존속하며 낡 은 것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 오는 것도 연속되지 않는다 고 하였다. 이것은 화담이 기를 이로 본 병폐이다"(상동) 라고 하여 이통기국의 입장에서 서경덕의 일기장존설(氣長存說)을 비판하였다. 그는 이와 기의 관계를 "이가 아니면 기는 근거할 데가 없고, 기가 아니면 이는 의지할 데가 없다. 이미 두 가지도 아니요 또 한 가지도 아니다. 한 가지가 아니므로 하나이면서 둘이요, 두 가지가 아니 므로 둘이면서 하나이다"(상동)라 하여 양자의 관계를 역 동적으로 파악하였다. 임성주(任聖周, 1711~1788)는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 理論)을 바탕으로 율곡의 이통기국설을 비판하고, 서화 담의 기 철학을 계승하여 유기론(唯氣論)의 관점에서 기 론을 전개하였으며, 주자의 이일분수론(理-分殊論)을 반대하고, 기일분수론(氣一分殊論)을 주장하였다. 그는 "요즈음 사람들은 매번 '이일분수' 를 가지고 이는 같고 기는 다르다고 하는데, 이의 하나 됨은 기의 하나 됨에 즉(卽)하여 나타나는 것임을 특히 알지 못한다. 진실로 기의 하나 됨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그 이를 볼 것인가? 반드시 '이일분수' 라는 것은 이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 고, 나눈다(分)는 글자 역시 당연히 이에 속해야 하는데, 만약 기를 주로 하여 말한다면, '기일분수' 도 역시 옳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鹿門集》 권26)라고 하였다. 그에 의 하면 원기란 천지를 가득 채우고, 고금에 걸쳐 유행하는 것이며, 우주 사이에 상하·내외가 없고, 시작과 끝이 없 이 가득 차서 수많은 조화를 일으키고, 사람과 만물을 만 들어 내는 것은 하나의 기(氣)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3)는 전통적 기 철학과 서학 의 기용학(器用學)적 자연관을 결합하여 독특한 기 철학 의 체계를 완성하였다. 그는 기를 천지의 기(天地之氣) 와 형체의 기(形體之氣)로 나누고, 만물과 인간이 형성 되기 전에는 단지 자연 상태인 천지의 기만이 있었으며 이것이 천지 만물을 낳는 시원이라고 하였다. 사람과 만 물이 생겨난 뒤에야 형체의 기가 있게 되며, 이것이 구체 적인 물체를 구성하는데, 구체적 사물이 소멸되면 다시 천지의 기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는 기일원론에서 출발하여 인식의 원천과 과정, 앎과 행위, 그리고 진리 문제 등을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그는 신기(神氣) 개 념을 가지고 인식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 식의 주체는 감각 기관을 통하여 외부 사물을 접촉하고, 신기(神氣)를 작용시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 로 "사물이 없는데 신기만 발동하여서는 통하는 데가 없 다. 사물이 있는데 신기가 발동하지 않아도 통하는 데가 없다. 사물도 있고, 신기도 그에 따라 발동해야 비로소 통하는 데가 있다" 《氣則體義》 通虛)고 하였다. 인식하는 데는 사물, 감각 능력, 그리고 신기가 작용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최한기는 신기를 설명하면서 <영언여작》설을 도입하여 "사람의 신기는 명오(明悟)로 말미암아 기역 (記繹)이 있고, 기역으로 말미암아 애욕(愛慾)이 있다" (《氣學》)고 하였다. 이러한 신기 개념은 전통적인 기 철학 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서학의 영향으로 형형질이 있는 기 가 되었으며, 전통과 서학적 기론을 융합시켜 기학 체계를 완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 사상가들의 기론〕 김경탁(金敬琢, 1908~1970)은 기를 현대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에너지와 대개 성질이 같다고 하여 에너지가 항존 불변하는 것처럼 기도 항존 불변한다고 주장하였다((中國哲學에서 본 氣의 學說》). 또 김용배(金龍培)는 관자(管子)의 철학이 현대 과학 철학 의 원기론(energism)과 일치하는 내용을 가졌다고 하였 다. 풍우란(馮友蘭)의 《중국 철학사》를 번역한 보데 (Derk Bodde)는 기를 영문으로 Chi 또는 Ether, matter, material force, natal force, corporeal matter 등으로 번역하였으며, 진영첩(陳榮捷, Wing-Tsit Chan)도 기를 비슷하게 영역하 였다. 독일어의 경우 Wirkungskraft(활동력), Lebenskraft(생 명력), Fluidum(흐름), Materie(물질) 등의 역어가 있다. 한편 현대 중국 철학자들은 기론을 유물론에다 종속시 켜 버렸다. 그러나 최근 기 철학에 대한 본격적인 저서가 나오면서, 서양 철학과 비교하여 그 특징을 설명한 경우 도 있다. 장립문(張立文)은 서양의 물질 개념과 기를 비 교하면서 물질 개념에는 연장성, 불가입성(不可入性) 타성(惰性) 즉 관성이 있다고 하면서 중국의 기 개념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연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체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기는 첫째로 모형에 차이가 있다. 기는 형질이 없으므로 가입성(可入 性)을 가지며, 포용성이 있으며, 삼투성(滲透性)이 있다. 둘째로 존재 형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중국의 기는 기체를 모형으로 하고 있어 인온, 취산 등 운동 형식을 구상하였다는 것이다. 또 이지림(李志林)은 기론과 원자 론의 7가지 차이, 즉 첫째로 정체성과 개체성, 둘째 연속 성과 간단성(間斷性), 셋째 무형성과 유형성, 넷째 공능 성(功能性)과 구조성, 다섯째 화생성(1L生性)과 조합성 (組合性), 여섯째 변증성과 기계성, 일곱째 직관성과 사 변성 등을 들어 기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 이 ; 이기 론) 李文 ※ 참고문헌  張立文, 《氣》, 中國人民大學出版社, 1990/ 李志林, 《氣論與傳統思惟方式》 學林出版社, 1990/ 葛榮晋, 《中國哲學範疇 史》, 黑龍江人民大學, 1987/ 中國哲學史研究 編輯部, 《中國哲學史 主要範疇概論簡釋》, 浙江人民出版社, 1988/ 朱紅星 外, 김문용 역, 《한국 철학 사상사》, 예문서원, 1993/ 신원봉, 《惠崗의 氣化的 世界 觀과 그 윤리적 合義》, 정신문화연구원 박사 논문, 1993. 〔鄭仁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