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민주당
基督教民主黨
[프] Parti de Démocratie chrétienne · [독]Chrislich-Demokratische Part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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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정당을 최초로 창당한 라므네.
기독교 민주당은 각 국가에 따라 발달사의 배경이 다 를 뿐 아니라 명칭 역시 기독교 민주당, 기독교 민주 연 합, 기독교 사회 연합, 가톨릭 정당 등 다양하다. 종교적 정당 활동은 초기에는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출발하였으 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프로테스탄트에서도 정당 활동이 전개되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종파를 초월하 여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는 계시된 진리와 자연법적 정의를 바탕으로 각 국가가 안고 있는 역사적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한 정치 활동으로서 기독교 민주당이 출발하였 다. 그 결과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오늘날 정치 운영의 기본 방향을 잡아가는 데 있어서 기독교 민주당과 기독 교 민주당 국제 연합의 비중은 대단히 크다. 이데올로기 적 냉전 시대에는 인간의 인격적 주체성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있어서 기독 교 민주당은 서방 세계가 나아가야 할 기본 방향과 원칙 을 제시하고 지켜 왔다. 냉전 체제가 막을 내리고 각국의 자국 중심주의적이며 소민족주의적인 경제적 무한 경쟁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20세기 종반 및 21세기에 있어서 인류 공동체는 공동 번영이냐 혹은 인류 공멸이냐 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나라들이 이른바 무한 경쟁의 파괴적 구조를 극복하고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하여야 하는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를 완수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독 교 민주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되고 있 다고 하겠다. 기독교 민주당 역시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각국의 헌법 질서에 따라 정치 구도를 구성하고 또 그것을 유지 하는 정치 집단이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적 관심을 바 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타의 정당, 예컨대 사회주 의적 정당이나 자유주의적 정당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 다. 기독교 민주당의 역사도 물론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19세기 초기에 들어서면서 산업화의 결 과로 나타난 여러 가지 사회적 병리 현상을 극복하기 위 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국가 권력의 급격한 비대화 경향 은 국가 권력이 인간의 공적 생활 영역만이 아니라 개인 적이며 인격적인 내면의 문화 및 윤리 생활의 영역마저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서 국가 권력으로부터 인간의 내면적 자유를 지키기 위 한 노력이 기독교 민주당으로 나타났다. 〔발달 과정〕 최초의 그리스도교 정당은 19세기 초 프 랑스에서 창당되었다. 나폴레옹 치하에서 비오 7세 교황 이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 로 교황의 권위와 국민의 주권을 결합하여 교황을 정점 으로 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수도 원 원장이었던 라므네(Lamennais)가 나폴레옹 체제에 반 기를 들고 그리스도교 정당을 창당하였다. 그는 당시 유 럽의 사상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생시몽의 사회 진 화론에 영향을 받아 사회는 탈신화의 시대를 지나 탈종 교의 시대를 거쳐 합리적 시대로 진화할 것이라고 믿었 으며 따라서 탈종교의 시대에 있어서 민중적 지지를 받 는 합리적 교황의 권위와 정치 · 사회의 민주적 구조를 결합해 보려 하였다. 그러나 7월 대혁명은 그의 사상을 급진적 혁명의 기치 로 몰아갔으며 그 결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32년 <미라리 보스>(Mirari Vos)라는 회칙을 통하여 그를 파문 하고 말았다. 그러나 라므네의 사상은 그 후에 계속하여 유럽 각국으로 번져 나갔으며 각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의 그리스도교 정당으로 발전하였 다. 예컨대 아일랜드와 벨기에에서는 각기 영국과 폴란 드에 대항하는 조국 해방 운동을 위한 정당으로 발전했 으며, 그리스도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본격적인 기독 교 민주당은 이탈리아에서 발달하였다. 1891년 교황 레 오 13세가 <노동 헌장>을 반포함으로써 당시까지만 하더 라도 산업화의 부정적 측면과 국민 주권을 근간으로 하 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대하여 명백한 입 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던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즉 사유 재산 제도를 기초로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정당성을 공식적이며 유권적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자본 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부정적 측면, 즉 노동자의 인간으 로서 본질적 위상이 파괴되는 이른바 본질 이탈적 소외 현상과 재화의 집중 현상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 원칙은 정치 분야 에서만이 아니라 경제 구조에 있어서도 반드시 실현되어 야 한다는 점도 천명하였다. 교황청의 이와 같은 태도 표명이 있고 난 뒤에 이에 고 무되어 이탈리아에서는 기독교 민주당 창당 운동이 활발 히 전개되었다. 피사 출신의 토니올로 교수를 비롯하여 로몰로 무리 같은 학자 출신의 정치인들이 기독교 민주 당 창당 운동의 주역을 맡았다. 이러한 일련의 운동은 1918년 11월 17일 밀라노에서 시칠리아 출신의 시골 신부 루이지 스투르조의 주도 아래 '이탈리아 국민당' (Partito Populare Italiano)이 정식으로 창당되었다. 이 이탈 리아 국민당은 당시 중앙 집권적 동원 체제를 추구하면 서 급격히 성장하였던 파시스트 정당에 대응하는 국민 주권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동시에 연방제를 주장하였 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국민당은 1941년에서 1943년 사이 '기독교 민주당' (Democrazia Cristiana)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 연방 국가 건설에 주력하였다. 1948년 4 월 18일 총선거에서 이탈리아 기독교 민주당이 사회당 과 공산당을 누르고 의회의 다수당이 됨으로써 이탈리아 정치의 민주화가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극단주의 적인 평신도주의가 강하였다.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1894년 '기독교 민주당' (Démocratie Chrétienne)이 결성되 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서 공화제의 국민 운동으로 발전하였 다. 초기에는 이 국민 운동은 드골 장군을 후원하였으나 드골의 비민주적 성향이 노출되면서 그리스도교 민주주 의자들은 드골에 대하여 등을 돌렸다. 전후 기독교 민주 당은 로베르 슈망이나 비돌과 같은 정치 지도자를 중심 으로 꾸준히 의석을 늘려 왔으나 현재로서는 의석수가 상당히 줄어들어 정치적 영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의 경우 기독교 민주당은 남부 독일과 북부 독일 에서 각기 별도로 출발하였다. 즉 바이에른 지방을 중심 으로 하는 남부 독일에서는 1869년 '바이에른 애국당' (Bayerische Patriotische Partei)이 성립되고 1870년에는 북 부 독일과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거대 정당이었던 '중앙 당' (Zentrumspartei)이 창당되었다. 중앙당은 프로테스탄 트 신자들을 배척하지는 않았으나 다만 개인적 차원에서 입당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있었던 이른바 문화 투쟁 기간 중 가톨릭 정치가들 은 기독교 노동 조합 연합을 결성하여 사회주의 운동과 맞섰으며 이 무렵 베네딕도 15세와 비오 11세 교황이 정치 분야에 있어서는 프로테스탄트 신자들과의 협조적 연합 전선을 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범(汎)그 리스도교적 정치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 다. 1878년에는 '기독교 사회 노동당' (Christlich-Soziale Arbeiterpartei)이 창당되기도 하였다. 위에서 말한 중앙당 을 위시하여 독일 각 지방에서 창당되었던 군소 그리스 도교 정당들은 하나같이 케틀러 주교의 가톨릭 사회 이 론을 기초로 하였으며, 그것은 그 뒤 교황청의 여러 가지 공식 문헌에 의하여 교황의 사회 교리에 반영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기독교 민주당은 19세기의 사 회주의 혁명 운동에 대한 하나의 대응으로 발전하였다. 기독교 민주당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종언을 고하고 히틀 러 정권이 수립되면서 극심한 박해의 대상이 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출신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치에 의 한 그리스도교 박해는 가톨릭 신자들과 프로테스탄트 신 자들이 정치적 연합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어 '기독교 민 주 연합' (Christlich-Demokratische Union : 흔히 '기독교 민주 당' 이라고 번역되고 있음)을 창당하였으며 남부 독일의 바 이에른 지방에서는 '기독교 사회 연합' (CDU : ChristhichSoziale Union : 흔히 기독교 사회당으로 번역되고 있음)이 창 당되었다. 이 두 그리스도교 정당은 협동적 자매 정당으 로서 관할 지역을 구분하여 상호 보완하고 있으며 의회 에서는 하나의 단일한 교섭 단체를 형성하고 있다. 독일에 있어서 이와 같은 기독교 민주당의 의미는 가 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정치 · 사회 분야에 있어서 광범위한 협동이 가능하며 그것이 그리스도교적 교리를 기반으로 민주주의의 원칙을 정치 · 경제 분야에 실현할 수 있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하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 하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히틀러 정권이 무너지고 연합군의 점령 아래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시 민들에게 민주주의 정치 교육을 실시하고 또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민주주의적 의회를 구성하여 독일의 민주적 재 건이 가능하였던 것은 기독교 민주당의 오랜 정치적 경 험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겠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는 기독교 민주당이나 기독교적 사회 이론을 실천한다는 점에서는 독특한 실험적 의미를 가진다. 가톨릭 교회는 중세기 때부터 이른바 신분 국가 (Standestaat)라는 독특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즉 사회 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분야에 종사하는 구성원은 그 나름 대로의 기능에 따라 일정한 신분적 역할을 가지며, 이 신 분적 역할의 통합적 실천에 의하여 국가의 전체 사회를 위한 공적 기능 수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 념을 기초로 빈에서 '기독교 사회당' (Christich-Soziaie Partei)이 결성되었으며 이 정당은 언론의 대대적 지원을 받아 전국적으로 번져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 국가 이론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가톨릭 정치인들 중에서도 상당히 좌경된 사람들도 많았으며 그 들 중 상당수의 정치인들은 마르크스주의적 극단론자들 과도 협동적인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1945년 새로 창당된 '오스트리아 국민당' (Ostereische Volkspartei)은 기독교 사회당과는 별개의 정당으로 산업 근로자, 사무직 근로자, 농민 연합, 경제인 연합 및 오스 트리아 부인회 등으로 구성된 일종의 연합체적 정당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이 각국에서 각기 다른 경위와 배경을 가지고 발전해 온 기독교 민주당은 1950년대에 들어와 우선 유 럽을 중심으로 국제적 유대를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프 랑스,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 트리아 등의 기독교 민주당이 모여 1948년 이른바 신국 제 팀을 형성하였으며 오늘날의 NEI(Nouvelles Equipes Internationales)는 1956년 11월 9일 파리에서 창립 대회 를 열고 탄생되었다. 현재 그 본부는 파리에 있으며 매년 한 번의 총회가 개최되고 각 회원국의 당에서 2명의 임 원이 파견되어 중앙 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 고 총재 1명과 부총재 4명이 있으며 총서기장 1명을 두 고 있다. '기독교 노동 조합 인터내셔널' 도 여기에 가입 되어 있다. 그리고 동구권이 민주화되기 전에는 체코, 헝 가리, 루마니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의 망명 기독교 민주당들은 별도의 국제 연맹을 구성하여 그 본부를 뉴 욕에 둔 일이 있었다. 기독교 민주당의 국제 연합인 NEI 가 내걸고 있는 정치적 기조는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인간의 인격적 가치의 사회적 실현은 정치 적 민주주의와 개인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통해서 가능 하며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국가의 경제 정책은 이 기조 위에서 수립 집행되어야 한다." 〔창당 동기와 성격〕 기독교 민주당이라고 분류하기 위 하여 정당의 공식 명칭에 반드시 '기독교' 라는 말이 들 어갈 필요는 없다. 그리고 기독교 민주당 구성원의 종교 적 신앙 역시 가톨릭이거나 아니면 프로테스탄트로 통일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민주당 의 국제적 연합 조직인 NEI에 가입되어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 있어서 같은 종파에 속하는 그리스도교인들끼리 정당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벨기에, 이 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국가에서는 가톨릭 신 자들만으로 기독교 민주당을 구성하고 있으며 스위스나 폴란드의 경우는 각 종파의 대표자들이 일정한 비율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기독교 민주당 은 전혀 종파와는 상관없이 구성되어 있으며 또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기독교 민주당의 기본적 이념은 물론 그리스도교 신앙 의 실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민주당이 창 당된 역사적 동기는 대개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 다. 우선 19세기 초부터 사회 전반이 산업화되고 현대화 됨에 따라 국가의 권력이 엄청나게 비대해졌다. 그 결과 국가 권력의 이른바 레비아탄적 팽창은 교육과 종교 및 윤리 분야에까지 그 통제 영역을 넓혀 갔다. 특히 국가에 의한 교육 독점으로부터 시민과 교회가 가지는 교육 주 권을 확보하는 것이 기독교 민주당의 원천적 창당 동기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초기에 있어서 자본주 의 경제 체제의 방만한 자유주의적 발전은 소수 산업 자 본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들은 경제적으로는 적빈 화되고 사회적으로 무권(無權) 계층으로 전락되어 인간 으로서의 인간적 탈본질화(脫本質化)되는 부작용을 가 져왔으며 이에 대한 역사적 반작용으로서 19세기 말부 터 서구 사회는 혁명의 열기가 거의 신화화되었다. 이와 같은 자유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사이의 극한적 대치 속에서, 인류 공동체는 끝없는 혼란에 빨려 들어갈 수 있 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양 극단 론적 추세의 옳고 그름을 밝혀 건전한 인류 공동체를 발 전시킬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을 찾는 것이 기독교 민주당 의 두번째 동기였다. 그리고 끝으로 중세기부터 교회 안 에 굳게 자리잡고 있던 왕권 신수설이 계몽주의 이후 국 민 주권 사상으로 대치되면서 교회 역시 민주적 국민 주 권 사상을 수용한 것이 기독교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정 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동기 내지는 계기를 제공하였 다. 이와 같은 역사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 민주당 은 본질적으로 구원사라는 인류 해방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일정한 수 준에 있어서 '세계관적 정당' 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독교 민주당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표방하듯이 특정 한 세계관이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그러한 세계관적 이념 정당은 아니다. 즉 경쟁적 이념 정 당은 아니다. 기독교 민주당의 현실적 정책 기조는 역사 적 상황에 따라 상당히 유동적이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의 경계선에서 매우 탄력적이다. 그러나 현대 입헌 민주 주의 정치 체제를 구비한 국가에 있어서 기독교 민주당 은 진보적이거나 혹은 보수적인 정당과 함께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견지하는 중요한 헌법적 수호 기능을 수행 하고 있다. 기독교 민주당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정치적 권익을 옹 호하거나 신장하기 위한 정당은 아니다. 그 봉사의 대상 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신자와 비신자나 기타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는다. 기독 교 민주당은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격적 주체 로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와 같은 절대적 자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국민 주권이란 그것의 정치적 표현이라 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민주당은 국민 주권의 구체적 실체화 혹은 구체적 실현을 정치적 목적으로 삼 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양심이나 사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교육과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공권력의 지배 적 통제를 합리적 수준에서 억제하고 교회와 시민의 교 육 주권을 확보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히 다 른 정당과 구별되는 특색이기도 하다. 그리고 특히 정치 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를 정치 권력의 윤리성에서 찾으며 성과주의적 실적에 앞서 정책의 윤리적 기조에 정권의 정당성을 두고 있다. 인간의 인격적 주체성을 정치 권력 이 봉사하여야 할 최고의 목적 가치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의 실현을 사적(私的) 영역의 과업으로만 보 지 않고 정치의 공적 과업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충성의 기준을 인간의 윤리적 인격성의 실현에 두고 있 다. 그리고 기독교 민주당은 국가나 정치 권력을 국민의 윤리적 자아 실현을 위한 보조적 장치로 인식하기 때문 에, 어떤 형태의 것이든 국가주의적 정치 제도나 정치 운 영을 거부한다. 따라서 국가나 사회나 가문과 같은 집단 적 단위의 정치적 가치를 개인의 인격적 가치 위에 설정 하고 있는 윤리 체계를 정치 질서에서도 실천하기를 요 구하는 유교적 정치 윤리는 기독교 민주당으로서는 수용 할 수 없는 일종의 정치악으로까지 인식된다. 끝으로 그리스도교 문화가 토착화되지 않았거나 그리 스도교 신앙이 내포하고 있는 인격적 주체로서 개인이 향유하는 인간의 목적 가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 회에서 그리스도교 정당은 마치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부분 사회의 이익 집단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지 않 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리스도교 정당을 무리하게 창 설할 경우 자칫 그것은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에게까지 종파 이기주의적 정치 운동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따 라서 정당의 통합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기독 교 민주당을 비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추진하기 위해서 는 무엇보다 먼저 기독교 민주당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정치적 권익 신장을 추구하는 종파 이기주의적인 정당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윤리적 · 문화적 · 정치적 자아 실 현을 위한 정치적 제도를 확립하고 그 기능의 원활한 수 행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적 국민 정당이라는 사실과 아 울러 당원의 자격은 종교적 신앙과는 무관하게 모든 국 민들에게 열려 있다는 점이 명백히 인식되어야 할 것이 다. (⇦가톨릭 정당) ※ 참고문헌 G. Toniolo, La Democrazia Christiana, Roma, 1900/ M. Sangnier, Discours 1891~1913, vol. 4, Paris, 1921/ W. Kolfhaus, Dr. Abraham Kuyper 1837~19201 F.J. Schöningh, Christliche Politik?, Hochland, 1949/ K. Buchheim, Der Ursprumg der deuschen Weltanschauungsparteien, Hochland, 1951/-, Christentum und Parteipolitik, in Politsoziale Korrespondenz, 《Nr》 8, 1955/ -, Geschichte der christhiehen Parteien in Deuschland, Miinchen, 1953/ L. Schwering, Die Entstehung der CDU, Köln, 1946/ W. Mommsen, Deutsche Parteiprgramme, Miinchen, 1951. [金鐘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