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라〕gaudium · 〔영〕joy

글자 크기
2
동정 성 마리아의 환희에 찬 방문(야코포 틴토레토 작).

동정 성 마리아의 환희에 찬 방문(야코포 틴토레토 작).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타인을 만나고 친교를 나눌 때 기쁨을 느끼게 된다. 특히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은 기쁨을 충족시키는 최상의 상태이며, 더 나아 가 종교적 신앙의 특징적 요소이기도 하다. 성서 안에 나 타난 '기쁨' 은 단순한 감정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성격, 또는 현상들을 표현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기쁨은 심하(שִׂמְחָה, simha)와 길(גִּיל, gil) 등의 여러 동의어를 사용하여, 예배에서 넘치는 존경심이나 종종 환호와 춤으로도 표현되었다. 한편, 신약성서에서는 아갈리아시스(ἀγαλλίασις), 에위프로슈네(εὐφροσύνη), 카라(χαρά) 등의 명사를 사용한다. 구약에서 기쁨이 이스라엘 민족 과 종교 생활 전체에 관련되어 있듯이 신약에서 기쁨도 그리스도인적 삶의 특징으로 드러나며(1베드 1, 6-9) 특 히 구원에 대한 기쁨뿐만 아니라 고통에 대한 기쁨도 강 조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의 기쁨〕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한 분이 요, 복된 세상의 근원이기에, 피조물 또한 기뻐해야 한 다. 이 피조물이 인간을 위해 있다면, 인간은 기쁨으로 불렸다. 인간에게 있어 기쁨은 사물에 대한 기쁨, 인간에 대한 기쁨, 하느님께 대한 기쁨이 있다. 인간은 가치 있 는 사물에서 기쁨을 누리지만, 세속적이고 덧없는 것에 서 느끼는 기쁨은 궁극적 충족을 제공하지 못하고(전도 2, 1 이하. 10 이하) 단지 부분적 기쁨만 줄 뿐이다. 즉, 인 간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자신과 관계되어 있기에, 그분 에게서 지고(至高)의 기쁨을 누리고, 하느님과의 친교에 서 빚어진 기쁨만이 인간 기쁨의 절정이 된다. 하느님은 기쁨의 근원이며 대상이다(시편 35, 9-10 ; 43, 4 하바 3, 18 ; 욥기 22, 26). 왜냐하면 종교적 기쁨의 완성은 구원 체험에 있기 때문이다. 구약의 경건한 자들이 누리는 기 쁨은 백성의 역사 안에서 증명되는 하느님의 능력에 근 거한다. 하느님의 구원 행위, 특히 이집트로부터 백성을 구해 준 구원 행위는 이스라엘의 예배를 통해서 기념된 다. 성전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는 주님 안에서 누리 는 기쁨을 성대하게 표현한다(시편 84, 1 ; 122, 1). 이스 라엘은 하느님의 선택과 인도, 그리고 그분이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시작한 영광과 권능 때문에 기뻐할 이유를 지닌다. 이 기쁨은 예언적 성격을 띤 옛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 를 통해서 더욱 확대되어 전달되었으며, 이스라엘 선민 이 하느님께 저지른 불충이나, 혹은 하느님께로부터 멀 어지게 획책하는 박해로 인해 쉴 새 없이 위협을 당해도 기쁨은 줄기차게 되살아난다. 또한 모세 때의 출애굽 사 건은 장차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 상에서 새롭고 영원 한 계약을 맺음으로써, 다가올 종말의 해방을 예표하고 있으며, 새 예루살렘에 약속된 영화롭고 초자연적인 기 쁨도 내포하고 있다. 즉, 그분의 은총과 기묘한 권능으로 이룩된 해방과 재건, 그리고 계약의 약속들을 상기하는 일은 항상 기쁨이 되었으며, 그때마다 하느님은 늘 그들 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신약성서에서의 기쁨〕 구세주의 내림은 기쁨의 분위 기를 이룬다. 특히 루가는 다른 복음 사가들보다 이 기쁨 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준다. 성탄날 밤에 천사가 예보한 '큰 기쁨' 은 실로 만민을 위한 기쁨이었고(루가 2, 10), '마리아의 노래' 는 비천한 모든 사람들이 부르는 환희의 찬미가였다(루가 1, 46-55). 예수는 씨 뿌리는 사람과 거두어들이는 사람의 기쁨 (루가 8, 4-15), 묻혀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기쁨(마태 13, 44), 잃어버린 양을 되찾은 목자의 기쁨(루가 15, 6), 잃은 은전을 찾아낸 여인의 기쁨(루가 15, 8-10),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기쁨(루가 22, 28-30), 혼례식의 기쁨 (마태 22, 1-14), 방탕 생활을 끝내고 귀가한 아들을 끌어 안은 아버지의 기쁨(루가 15, 11-32), 아이를 갓 낳은 여 인의 기쁨(요한 16, 21)들을 당신의 가르침에 기꺼이 인 용하였다. 예수가 이러한 인간적 기쁨들을 진정한 기쁨 으로 여겼던 것은 이러한 기쁨들이 하느님 나라의 영적 기쁨의 표지가 되며, 그 나라를 찾는 사람들, 그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기쁨이자 아버지 하느님의 기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는 자신을 '기쁨의 때' 를 가져다 주는 분으 로 이해하며, 종말론적인 기쁨(이사 35, 61)이 자신 안에 서 '지금' 실현되었다고 선포한다(마태 11, 5 ; 루가 7, 22). 더욱이 당신 자신을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인 것 을 기뻐하며(루가 10, 21-22) 당신 사랑에서 넘치는 환희 를 벗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침(요한 15, 9-15) 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수난이 부활에 이르는 여정임 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수난을 목격하고 희망을 잃 었으며(루가 24, 21),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면서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루가 24, 41). 그러나 부활한 분이 그 들에게 성서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지적해 주고(루가 24, 44), 성령의 힘을 약속하며(루가 24, 49 ; 사도 1, 8) 하늘에 올라갈 때에야, 비로소 제자들은 기쁨에 넘쳤다 (루가 24, 52-53). 성령의 강림은 이 기쁨을 확고 부동하 게 하였고,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하였다 (사도 2, 4. 11). 제자들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는 바로 이 기쁨을 함께 나누라는 부름을 받고 있으며, 이는 곧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의미한다(필립 3, 1 ; 4, 4. 10).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불렸기 때문이 며, 예수는 당신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란다(요한 17, 13). 이 기쁨은 "하느님이 기쁨 자체"임을 전제하며, 성령의 열매이고(로마 14, 17 ; 갈라 5, 22 ; 1데살 1, 6) 하 느님 나라의 특징 중 하나이다(로마 14, 17). 믿는 자들을 진리와 일치시켜 주는 사랑은(1고린 13, 6) 항구한 기쁨 을 마음에 간직하게 하고, 끊임없는 기도와 감사로써 이 러한 기쁨이 커 나간다(1데살 5, 16 ; 필립 3, 1 ; 4, 4-6). 그러나 영적 기쁨은 신앙의 시련을 겪은 자에게만 주 어진다. 실로 "믿음의 기쁨"(필립 1, 25 ; 로마 15, 13)이 지만 근심, 걱정, 곤경과 함께 선사되기 때문에 어떠한 처지에서도(고통 필립 2, 18 ; 3, 1 ; 4, 4 ; 2고린 13, 11 ; 1데살 5, 16 1 수난 ; 2고린 6, 10 ; 7. 4 ; 로마 5, 3 ; 골로 1, 24) 기쁨은 유지되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 타날 때 기뻐 용약하겠지만, 제자는 그분의 수난에 참여 한 정도에 따라서 그 기쁨이 주어질 것이다(1베드 4, 13). 자기 스승과 같이 현세에서 기쁨보다 십자가를 택하고 (히브 12, 2) 재산을 다 빼앗겨도 기쁘게 받아들이고(히브 10, 34)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제자 는 이들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생각해야 한다(야고 1, 2). 하지만 시련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어린 양' 의 혼인 잔 치가 베풀어질 것이며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환희 중 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묵시 19, 7-9). 〔종 합〕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영광을 받 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는 신적이고 동시에 인 간적인 기쁨을 영신적으로 함께 나누는 데에 있다. 그리 스도인들에게 기쁨이란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 기쁨의 근거와 내용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다. 하느님 은, 잃었던 아들을 자비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하 였듯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며 생명을 빼앗는 온갖 위험 (걱정, 이기심, 죽음 등)으로부터 구원해 준다. 용서는 이 론이 아니라 인격과 인격과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요소 이며, 특히 하느님의 용서를 통하여 더할 수 없는 큰 기 쁨이 선사된다. 또한 구약의 예배 공동체 안에서 공동 기쁨이 표현되 듯이, 신약의 공동체도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구원의 기쁨이 표현된다. 잔칫상에 모여 와 음식을 나누 는 자체가 기쁨이듯이 초기 공동체가 함께 빵을 나눔은 기쁨의 표현이다. 하느님 나라의 기쁨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는 삶의 기쁨이며, 이것은 현세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 의 삶에도 항상 기쁨과 슬픔, 고통이 교차하고 있듯이 하 느님 나라의 기쁨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이 모 두 포함된 기쁨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 설이며, 모든 인간 삶의 역설에도 하나의 빛을 던져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시련과 고난과 슬픔에 서 결코 제외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고통이 그리스도 의 구속 사업에 참여하는 길이고, '그날' 의 영광에 동참 하는 길이라는 확신 속에서 현세의 고난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구원의 기쁨은 다양한 형태로 위협과 공격을 당하는 역경과 위 기 속에서도 믿음으로 극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쁜 소식은 인간의 고통과 슬픔까지도 변화시키는 기쁨 이 된다. 바오로는 인간이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믿어야 하는 '기쁨' 을 자주 말한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고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기쁨이 며, 현재 안에서 미리 맛보는 종말론적 기쁨이다 ; "눈으 로 본 적도 없고 귀로 들은 적도 없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떠오른 적도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 두셨도다" (1고린 2, 9) . ※ 참고문헌  Rudolf Bultmann, ἀγαλλίασθαι, 《ThWNT》 1, 1933, pp. 1820 / εὐφραίνω, 《ThWNT》 2, 1935, pp. 770773 / Hans Conzelmann, χαίρω, 《ThWNT》 9, 1973, pp. 350362 / Elis Gideon Gulin, Die Freude im NT 1/2, 1932, 1936 / E. Schick · A. Auer, Freude, 《LThK》 4, 1960, p. 362 / Wilhelm Nauck, Freude im Leiden, 《ZNW》 46, 1955, pp. 6880 / Julius Schniewind, Die Freude im NT, 1952, pp. 7280 / E. Beyreuther, Freude, 《TBLNT》 1, 1971, pp. 379388 / K. Barth, Erklärung des Philipperbriefes, 1943, p. 119 / 김영한 외 역,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1984 /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그리스찬의 기쁨》 (Gaudate in Domino). [金學圭] (Gaudate in Domino). 〔金學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