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記憶
〔라〕commemoratio · 〔영〕remembrance
글자 크기
2권

1 / 2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기억하여 롯과 그의 가족을 구하는 야훼.
'기억' , '기억하다' 라는 단어는 "어떤 일을 마음에 간 직하여 잊지 아니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미 경 험된 자극 상태를 부분적인 반복으로 감흥시키는 과정이 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에서 특히 성서와 예식 안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로서의 '기억' , '기억하다' 는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가톨릭 교 회에서 전문 용어로 사용되는 이 단어는 어떤 과거지사 를 돌이켜 생각해 보는 일반적 의미뿐 아니라, 과거에 일 어났던 사건을 현재 '기억함' 으로써 과거의 사건으로 인 한 결과가 현재화 내지 구체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 미는 구약성서에 활용된 히브리어에 근거하고 있다. 이 러한 특수한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는 현대의 어느 용어 로도 그와 같은 내용과 뜻을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용어의 올바른 의미는 구약성서에 표현된 '기억' , '기억 하다' 라는 히브리어인 '자카르' (זָכַר, zkr)에서 찾아야 한 다. 〔구약성서에서의 기억〕 '기억' , '기억하다' 라는 용어 는 구약성서에 활용된 동사 '자카르' 의 번역으로, 가톨 릭 교회에서는 '기념' , '생각', '회상(-하다)' 이라는 말 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자카르' 는 구약성서에 287번 활용되고 주로 동사로 사용(230번)되고 있다. 가 장 많이 활용된 곳은 시편이고 그 다음 신명기, 예레미야 예언서, 다른 예언서들 순이다. '기억' 하는 행동의 주체 는 하느님(40%)만이 아니라, 인간(60%)도 해당된다. '기억하다' (זָכַר)라는 동사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이 자 신을 표현하는 자아 계시의 행위이다. 하느님은 '기억 함' 으로써 당신 모상의 기본 윤곽을 드러낸다. 이는 하 느님의 신적이며 내적인 본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계시의 목적은 바로 우리 인간 을 향한 것이다(Deus quoad nos). 따라서 하느님의 기억하 는 행위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이 '기억함' 으로써 외부로 노출되고 자극되며 유발되는 이 행위는 구체적인 경우에 당신의 구원 계획에 합치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구원과 멸망을 초래한다. 이 '기억 의 행위' 는 구원과 축복 혹은 분노와 죽음의 결과를 초 래할 수 있다. 야훼 하느님은 살아 계시며 '기억' 을 통하 여 현실적으로 역사에 개입하여 목적을 향해 노력하는 식으로 당신 계획을 추구한다. '구원이 역사 안에 실재 하는 것은 하느님 기억의 덕분이다' 라고 오스카 쿨만은 말한다. '기억' 의 행위는 주로 인격체를 지향하고 있으며 대화 의 시발이며 동작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 전체이거나 또 는 역사의 결정적 시점에서 중요성을 지닌 각 인격체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기억하다' 라는 이 동사가 이방 민족에 관계되는 경우에는 이스라엘 민족과의 연계성 안 에서 활용된다. 하느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은 순전히 자신을 내적 으로 회상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실제적 자태를 뜻하며 이러한 하느님의 자태는 인간의 역사와 운명에 새로운 개입을 초래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억' 이 축복 이나 저주의 결과를 초래할 때 이는 정신적이며 이성적 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고 실질적이며 효력 있는 능 력인 것이다. 야훼께서 노아를 기억하고 실제로 홍수를 멎게 한다(창세 8, 1). 야훼께서 "기억하심"으로 실제적 효과가 초래되는 예는 구약성서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 다(창세 19, 29 ; 30, 22-23 ; 판관 16, 28-30 ; 이사 38, 3 ; 예레 15, 15 ; 느헤 5, 19 ; 1사무 1, 11 ; 시편 132, 1). 야훼의 "기억하심"은 복을 내려 준다(시편 115, 12). 이 강복(降福)은 생명의 성장과 강화를 뜻하며 그와는 반대 로 저주는 생명의 감소와 약화를 의미한다. '기억하다'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구약성서의 대부분의 대목들 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 간에 맺어진 계약과 관계되고 있 다.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 키는 동기를 유발시킨다(출애 2, 24-25 ; 창세 9, 15 ; 시편 105, 8-10). 이와는 반대로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 악을 "기억하심" 으로써 하느님의 은혜로운 선물이 저해 되고 책벌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의식하고 있 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죄악을 기억하지 말 고 용서하여 주기를 간청한다(예레 14, 10 ; 31, 34 ; 이사 43, 25 ; 에제 18, 22 ; 호세 7, 2 ; 시편 9, 12-13). 하느님 이 죄악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는 당신의 자비와 호의를 기억한다는 것이다(신명 9, 27 ; 시편 25, 6 ; 111, 4). 하느님의 기억함은 지속적 계시의 연계적 역할을 한 다.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 계획을 새로이 결정하고 설계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확실한 구원 계획을 갖고 목 적 달성을 위하여 연속적으로 구약의 여러 단계를 통하 여 실현한다. 그의 모든 행위는 신정 일치(神政一致)와 메시아의 구원 시기를 향한 하나의 선상에서 이루어지고 표출된다. 하느님은 당신의 원초적 구원 계획(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며 또 새로운 행동을 할 때에도 당신이 예전에 역사에 개입한 계약에 근거하여 동일한 구원 계획을 다시 기억한다. 이는 하느님이 당신 의 구원 계획과 구원 업적 전체를 개관하고 계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한다' 는 것은 기념적이고 새로운 창조적 내용을 지닐 뿐 아니라 종말적 성격을 갖고 있다. '기억하다' , '기념하다' , '회상하다' , '생각하다' 라는 전문 용어는 다만 하느님의 지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행위만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실제적 결과를 표출하는 개념이다. 비록 성서에서 하느님의 행위를 특수화하기 위하여 새로 운 용어의 동사가 활용된다 할지라도 그 표출되는 행위 는 '기억하다' 라는 동사 안에 내재적으로 포함된다. '기억' 이라는 용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 요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의미를 지닌 역사를 이루게 한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행위는 일직선 상에서 이루 어지므로 그 역사는 목적 달성을 지향하는 역사이다. 이 러한 선상에서 하느님은 지금까지 당신 행위를 계속한 다. 하느님뿐 아니라 인간 역시 기억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는 것은 인간이 인격적 생명체라는 데 이유가 있다. 성서 에서 말하는 인간은 영과 육으로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 라 전체성을 지닌 단일체이다(창세 2, 7). 성서에서 '육 신, 정신, 영혼' 등의 용어로 인간에 대하여 말할 때 부 분으로써 전체적 인간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기억도 순수 지성만의 작용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있다 (창세 40, 14 ; 41, 9 ; 42, 9). 옛 시대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실증을 기억한다는 것은 순전히 회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화된다(2열왕 9, 25 ; 에스 2,1). 기억의 한계선은 죽음이요 따라서 죽은 자들에게는 기억이 없다(욥기 4,19-20 ; 시편 6, 5). '기억함' 은 실제적 결과를 초래한다.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고 실제로 그 약속을 이행하도록, 회개하라고 외친다. 인간이 기억하는 목적과 방향선은 하느님이다. 즉 창조와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하느님의 업적, 계약과 계약 이행의 의무 등이다. 이러한 것들이 기억을 통하여 종교적 예배 행위 안에서 실행된다. 인간은 하느님을 극히 보편적으로 기억하지만, 언제나 계약을 체결하고 율법을 주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은연 중에 견지하고 있다. 이 율법과 계약은 인 간이 기억하는 주된 대상이다(판관 8, 34 ; 시편 103, 18 ; 예레 20, 9). '기억' 은 예언자와 예배 행위의 근본적 요소이다. 인 간은 하느님의 율법과 계약을 기억하고 실천함으로써 하 느님의 구원 역사가 지속되게 해야 한다. '기억' 은 바로 현재 인간들을 당대의 이스라엘 민족이 처했던 것과 같 은 상황에 처해지는 식으로 율법과 계약을 새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옛적에 하느님과 맺 은 계약과 하느님이 주신 율법을 기억하며 오늘 그것을 새롭게 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는 예배 행위 안에서도 표현되며 이 표현된 것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 고 있다(신명 7, 18 ; 9, 7 ; 9, 27 ; 25, 17). 이와 같이 하느님이 기억해 주는 것은 실제로 역사 안 에 계시되며 따라서 '기억한다' 는 것은 필연적으로 행동 으로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기억함으로 구원의 약속과 계약이 체결되고 인간과 맺은 이 계약을 기억할 때마다 그 약속은 현실화하고 새롭게 된다. 따라서 인간 은 하느님께 이 계약과 약속을 기억해 주기를 간청하며 감사와 찬미의 기도인 예배 행위를 한다. 경신 예배를 드려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기억' 기 념' 을 하라는 표현을 성서의 여러 대목에서 발견할 수 있다. "너희가 종살이하던 나라, 이집트에서 나온 바로 그날을 '기억' 해야 하며, 그 때문에 이날 누룩 든 빵을 먹어서는 안된다"(출애 13, 3) "너희는 안식일(שַׁבָּת)을 '기억' 하여 이날을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 (출애 20, 8) 맏자식과 맏배를 봉헌하라는 요구도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일어났던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출애 11, 4-7 ; 22, 28-29). 이스라엘이 축제일에 번제와 평화제를 드리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 앞에서 기억된다는 것이다(민수 10, 9-10). 야훼 하느님은 당신을 기억하는 모든 곳에 현존 하며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복을 내린다(출애 20, 24). 하 느님은 당신 백성이 당신의 구원 업적을 기념해야 할 특 정된 장소도 선정한다. 이는 자연 종교나 범신론적 이념 과 대치되는 역사로서의 계시에 상응한 소치이다(출애 20, 24 ; 창세 12, 7-8 ; 판관 6, 21 ; 이사 13, 13. 19 ; 21, 4). 하느님이 예배의 장소를 마련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구원 업적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규정에 응답하게 하여 인간과의 관계를 맺는 행위이다(시편 111, 4 ; 105, 5-8). 하느님이 당신이 맺은 계약을 기억하므로 이스라엘도 하느님과 맺은 계약과 이집트에서의 해방 그 리고 여러 구원 행위들을 기념해야 한다(시편 77, 12). 이 와 같은 기억의 행위는 하느님께 결속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적 행위이며 그 행위의 내용은 하느님께 대한 찬미이다. 이렇게 기억은 찬미와 감사를 유발시킨다. 하느님의 구원 업적과 사건을 기억하여 경신적 의미로 기념 축제를 대대로 올려야 한다는 것은 성서의 근본 사 상 중의 하나이며 이로써 그 업적의 결과가 대대로 실현 된다는 것이다(출애 12, 14 ; 13, 9 ; 28, 14 ; 30, 16 ; 민 수 10, 10 ; 31, 54 ; 레위 23, 24 ; 여호 4, 6-7 ; 에제 9, 4-6 ; 신명 6, 8 ; 11, 18). 이스라엘 백성의 경신적 축제 안에서 구체적으로 무엇 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선 백성은 '네, 그렇습니다' 라는 말로써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봉한다는 확신을 고백 한다. 그 다음 백성은 시초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구원 행위들을 기념한다. 이제 하느님은 당신의 기억을 통하 여 백성에게 구원을 개방하고 하사한다. 이와 같이 본래 의 사건을 기억 속에 실재하도록 하는 새로운 현존은 하 느님이 이루는 구원 행위요 이 행위는 초자연적인 하느 님의 고유 행위이다. 구약성서에서는 인간의 구원을 순 수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면에서 기념하지 않는다. 즉 계 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계획 한 구원 설정을 경신적 기념 안에 재현시키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 조상들과 이 계약을 맺으신 것이 아니 라, 오늘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와 맺으셨다" (신명 5, 3). 신명기는 이러한 기념제를 통한 재현을 중심에 놓 고 있다. 이는 광야에서 생활했던 세대보다 400년 내지 600년 후에 산 세대였다. 이와 같이 각 세대는 하느님의 새로운 계약 상대가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 는 것은 구세사적으로는 늘 '오늘' 인 것이다. "너희는 지 난 40년 간 광야에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어떻게 너희 를 인도해 주셨는지 기억해 보아라"(신명 8, 2)라고 한 것 은 상당히 후대에 살고 있던 세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파스카 축제를 큰 축제로 지낸다. 이 축제는 유대인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해방된 것을 '기념' 하는 축제이다. 이 기념제를 지내면서 각자 는 이집트를 탈출하던 당대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오늘 의 유대인들이 하느님이 행한 해방을 체험한다. 그 예식 에 있어서도 출애굽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낭독한 후, 자 기 조상들이 아니라 현재의 자기들이 야훼에 의하여 해 방된다는 자세로 감사한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얼마 나 고마운 일을 하셨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를 위하여 바다의 물을 갈라놓으시지 않았습니까! 주님은 바다의 물을 갈라놓으시고 우리가 마른 땅을 건너도록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당시 저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한 것처럼 지금 그들 안에 서 활동한다. 이와 같이 이집트를 탈출하던 이스라엘 사 람들과 그 탈출을 기념하는 오늘의 유대인들은 야훼에 의해서 구원된 사람들이다. 〔신약성서에서의 기억〕 신약성서는 '기억' , '기념' 에 대한 이러한 구약의 이해를 전제하고 있다. 실제로 신약 성서에 사용된 ‘아남네시스’ (ἀνάμνησις)와 ‘므네스코마이’ (μνήσκομαι)라는 그리스 용어는 구약의 ‘자카르’ 의 의미를 완전히 전달할 수 없다. 기념제는 구원 행위를 기념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지금 여기에 현존시 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 아래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 위하여 이를 행하라"는 예수의 반복 명령을 이해하여야 한다(루가 22, 19 ; 1고린 11, 24-25).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고 우리 와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하여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준 성체와 성혈의 성사를 우리가 기념함으로써 오늘도 성체 와 성혈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현존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수난과 부활 승천을 기념함으로써" (미 사 성제 기념 기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인 구원 행위가 미 사 성제 안에서 재현되고 현존된다. 이 점에 있어 그리스 도교 경신례의 특수성이 있고 중점이 있다. 그리스도교 의 경신례는 일반적 종교의 경신례와는 달리 구세사적으 로 정향되어 있고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경신례의 강 조되는 고유성이다. 하느님은 이러한 생동적 기억을 통 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서 시작된 역동성을 작동시 켜 각 사람에게 구원이 나누어지도록 한다. 우리가 지금 현재 참여하고 있는 구원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이 아 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통하여 우리에게 부 여되는 특수화한 구원이다. 즉 우리에게 기념을 통하여 구체적이며 계속적으로 현존되고 새롭게 현실화되는 구 원이다. 이와 같이 바오로는 성사를, 특히 세례성사의 효 과와 방법을 기술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로마 6, 4-9) 그리스도와의 동형 (同型)으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성장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억' , '기념' 은 그의 내적 필연성에서 행위로 이 어지고 그 행위를 현존시켜 구원을 이루어 준다. ※ 참고문헌 《LThK》 4, pp. 570~5721 H. Lietzmann, Messe und Herrnmahl, Bonn, 1926/ 0. Casel, Das Mysteriengedächtnis der MeBliturgie im Lichte der Tradition, 《JLW》 6, 1926, pp. 113~204/ N.A. Dahl, Anamnesis, Mémoire et commemoration dans le Christianisme primitif, 《StTh》 1, 1948, pp. 69~95/ 0. Culmann, Heil als Geschichte, Tübingen, 1965/ L.L. Honor, The Role ofMemory in Biblical History, New York, 1953, pp. 417~435. 〔崔允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