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라〕miraculum · 〔영〕mir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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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로 바위를 깨어 물을 내게 한 기적을 행하는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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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로 바위를 깨어 물을 내게 한 기적을 행하는 모세.


인간의 힘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신기한 일, 또는 자연법과 반대되는 초자연적 현상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서 시대의 사람들은 기적을 이와 같이 보지 않 았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 만물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 되었고 그분에 의해서 다스려지기 때문에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분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따라서 성서 저자들에게 있어서 기적은 하느님 이 당신의 뜻과 의지를 드러내거나 실현시키기 위해 도 구로 이용하는 사건이다. 이 사건 안에서 하느님은 특이 하게 활동하지만 사건 자체가 성서 안에서 결코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파괴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는 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적 사건의 외모가 아니라, 이 사건 안에서 표현되고 이 사건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느 님의 뜻과 의지이다. I . 구약성서에서의 기적 구약성서에서 기적을 가리키는 낱말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옷(אות)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이나 이방인 통치자들에게 어떤 메시 지를 보낼 때 이용하는 표징 또는 표지를 말한다. 하느님 의 '표징' 은 그분께서 마련한 우주 질서의 표지들 - 이 를테면 해 · 달 · 별 등의 천체, 계절의 변화, 낮과 밤 등 -을 뜻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당신께서 스스로 선택 한 계약의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직접적 인 행위와 관련된 사건들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예로 이 스라엘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 내기 위해 파라오 앞 에서 모세를 통하여 보여 준 열 가지 재앙을 들 수 있다 (출애 4, 8-30). 둘째, 모펫(מופת)은 당신 백성을 위한 하 느님 위엄의 경이로운 특성을 강조하는 낱말이다. 파라 오 앞에서 아론이 지팡이를 던졌을 때 그것이 갑자기 뱀 으로 변하는 놀라운 일(출애 7, 9-10)이 바로 이 모펫에 속하는 사건이다. 셋째, 펠레(פלא)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위해 큰일 을 할 때 보여 주는 그분의 주권적 위엄을 가리킨다. 주 님이 파라오 군대를 홍해 바다에서 치는 광경을 목격하 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지어 부른 노래 가운 데 "주님, 신들 중에 당신 같은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거룩하며 영광스럽겠습니까? 당신께서 해내신 놀라운 일에 모두들 두려워 떨며 찬양을 드립니 다(출애 15, 11)라는 대목은 바로 하느님의 이 주권적 위엄에 대한 찬양이다. 이 펠레는 다니엘서의 아람어 부 분에서 아람어 낱말 테마흐(תמה)로 바뀌는데 당신 백성 을 원수들의 말살 계획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개입하는 하느님의 중재 활동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불가마 의 세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구해 낸 사건(다니 4, 2-3 ; 6, 27)은 이방인 통치자로 하여금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우주의 주권자임을 인식하도록 해주었다. 이 밖에도 '하느님의 사람' 이 행하는 큰일을 지칭하는 게둘롯(גְּדוּלוֹת),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가리키는 니플라웃(נִפְלָאוֹת), 기적의 전조 또는 예표를 뜻하는 네스(נֵס) 등이 기적을 의미하는 단어들이다. 〔출애굽 사건〕 구약성서 저자들은 가장 크고 놀라운 기적으로 언제나 출애굽 사건을 떠올린다. 이 사건을 전 후해서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나는데 성서 저자들은 이 모든 기적들을 묘사하기 위해 앞에서 살펴본 기적 관련 의 용어들을 모두 이용한다.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 이집 트의 파라오 왕 앞에 나가 여러 가지 기적들을 행해 보인 다. 그중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거나 물을 피로 만드는 기 적은 파라오 궁전 내의 마술사들도 흉내를 낼 수 있었지 만, 파라오와 이집트 전역에 내린 10가지 재앙 대부분은 이집트 마술사들이 흉내내기에는 너무 큰 기적들이었다 (출애 7-12장). 모세의 기적이 파라오로 하여금 주 이스 라엘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요청했건만 파라오의 마음은 오히려 더욱더 완고해질 뿐이었다. 하느님은 모 세를 시켜 고센 지방의 히브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 시키기로 작정하고 음력 3월 보름을 기해 이집트 군대를 따돌리고 홍해를 마른 발로 건너가게 하였다(출애 14장). 구약성서에서 가장 큰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기억 속에 자리잡은 홍해 바다를 건넌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 가? 이 사건은 기원전 950년경 솔로몬 궁전의 서기관들 이 작성한 야휘스트 문헌에 기록되기까지 그 역사적 현 장으로부터 적어도 400여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에 이 사건의 내용은 구전으로 수많은 세대를 거쳐 후세에 전해졌다. 구전 과정에서 히브리인들 특유의 과 장법에 따라 이야기의 세부 묘사가 확대되고 변질되었음 은 두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후대에 기록된 출애굽기를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역사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 제 사건들을 재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출애굽 사건에서 성서 저자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내용은 모세의 영도를 받는 한 노예 집단이 어떻게 강력한 기마와 병거를 갖춘 이집트 군사를 따돌렸는지, 과연 홍해 바다가 양편으로 갈라져 물벽을 이루고 바다 바닥을 마른 발로 건너갈 수 있었는지, 이집트 군사가 몇 명이나 홍해 바다에 빠져 죽 었는지 등의 세부 사항들이 아니다. 성서 저자들이 후대 의 시편 문학이나 지혜 문학 안에서, 그리고 일부 예언 문학 안에서 두고두고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애써 강조 하려고 고심했던 내용은 출애굽 사건의 종교적 또는 신 앙적 의미이다. 이스라엘 건국사의 기초가 되는 출애굽 사건에서 보이 듯이,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야말로 세상의 어떤 강력 한 왕이나 민족도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위대한 분이다. 그분은 바람과 바다의 물결도 당신의 의향에 따라 조종 할 수 있는 어른인데, 이분이 이집트 북부 고센 지방에서 비참하게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의 조상 히브리인들 을 구출하기로 작정하였다. 그것은 이미 이스라엘의 원 조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은 계약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때가 되자 모세라는 훌륭 한 지도자를 보내어 이 보잘것없는 노예 집단을 이집트 로부터 탈출시키고 시나이 사막의 험난한 시련을 거쳐 강력한 신앙 공동체로 성장시켰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처럼 야훼 하느님의 선민이 된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보 다 힘 있고 잘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약하고 고통받는 집 단이었기 때문이다(출애 6, 5-6). 출애굽 사건의 이 같은 종교적 또는 신앙적 의미를 이 야기 안에 담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당연히 여 러 가지 표상과 상징과 자연 현상들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조상인 한 무리의 히브리 노예 집 단이 이집트를 빠져 나온 후, 왜 막다른 골목인 홍해로 도망갈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과연 성서의 증언대로 홍 해를 두 쪽으로 가르고 그 바닥을 밟는 일이 가능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오늘날 비 판적 성서학자들은 히브리 조상들이 시나이로 건너간 경 로는 홍해가 아니라 수에즈 부근의 시르보니게스 호수 근처의 늪 지대라고 추정한다. 이는 홍해의 다른 표현인 '갈대 바다' 에서 암시를 받은 것이다. 홍해에는 갈대가 자라지 않지만 이 나일강 하류인 늪 지대는 갈대가 무성 하게 자라고 있다. 모세는 영리한 지도자였기에 이집트 군사에 쫓기는 히브리인들을 강력한 이집트 수비대가 국 경을 지키는 최북단 행로나 홍해가 버티고 있는 남쪽 행 로를 버리고 나일강 하류의 늪 지대를 택하여 탈출을 시 도했을 것이다. 이 늪 지대는 가벼운 행장 차림의 히브리 인들에게는 손쉽게 건널 수 있었지만 무거운 병거로 중 무장한 이집트 군인들에게는 건너기 어려운 길이었을 것 이다. 이런 추정은 물론 이성과 논리를 앞세우는 현대인 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 출애굽 사건의 외양적 모 습보다는 그 심오한 종교적 의미에 역점을 두는 성서 저 자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구전으로 전달 된 출애굽 사건이 현대인들의 눈에 매우 허황되고 과장 되어 보이는 이야기들은 하느님의 위대한 능력과 이스라 엘 민족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웅변적으로 증언해 주는, 그리하여 그들이 자자손손 만대에 걸쳐 기려야 할 민족 의 귀중한 건국사요 구원사이다. 〔신명기적 역사〕 신명기적 역사는 신명기에서 여호수 아기, 판관기, 사무엘 상 · 하를 거쳐 열왕기에 이르기까 지 이스라엘 초기의 종교적 역사를 말한다. 이 시대에도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신명기적 역사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명기의 정신대로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면 그 분으로부터 복을 얻게 되고 그분을 배반하면 벌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따라서 신명기적 역사 안에 서 일어난 기적들은 대부분 하느님의 상급과 징벌에 관 련되었다. 이 시대에 기적의 형태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진 상급과 징벌은 이 백성이 하느님이 주는 시련을 극복했는가, 하지 못했는가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이 가 나안에 정착한 후 약 200년 동안은 판관들이 나라를 다 스리던 시대였다. 이 판관 시대에도 수많은 기적들이 일 어났다. 하느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에 빠지거나 그분 의 계명을 어기게 되면 그분으로부터 가차없이 벌이 내 려오고 이민족의 손에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회개 하면 다시 하느님이 영도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이민족의 지배에서 구해 준다. 왕정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여기저기서 이 제도의 병폐 가 일어났다. 이스라엘 초기 왕정 시대를 풍미하던 예언 자들 가운데 남쪽에서는 사무엘이 가장 걸출한 인물이었 고 북쪽에서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러한 인물들이었다. 특히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는 복음서에도 인용 된다(1열왕 17, 17-24 ; 2열왕 5, 8 ; 루가 4, 25-27). 엘리 야는 가르멜 산에서바알의 제단을 불사르고(1열왕 18 장), 아하지야 왕의 사신 100명을 각각 50명씩 두 번에 걸쳐 불에 태워 죽인다(2열왕 1, 10-12). 이 시대의 지도 자들, 곧 판관들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실제로 기적을 주 도하는 분은 하느님이다. 그분은 예언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일어날 사건 안에서 예언자가 어떤 역 할을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신명기적 역사에서 일어난 기적들은 이집트에서 탈출 한 한 무리의 히브리인들이 하느님 백성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필요한 진통 과정과 연결된다. 출애굽 사건과 신명 기적 역사 이후에 이스라엘 안에는 기적이 뜸하다. 집회 서 저자는 이를 탄식조의 청원 기도로 표현한다. "만물 의 주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모든 민족 위에 당신께 대한 두려움을 펼치소서. 이민족을 거슬러 당신 의 손을 들어올리시고 그들이 당신의 권능을 보게 하소 서. 새로운 징표를 보여 주시고 또 다른 놀라운 일을 행 하여 주소서"(집회 36, 1-3. 6 ; 필자 역). 집회서 저자는 이민족의 통치를 받는 유배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 옛날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을 압도 하던 시절을 그리며 기적과 표징을 갈망하고 있다. 유배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이 오랜 갈망은 예수의 공생활 안 에서 실현된다. II . 신약성서에서의 기적 신약성서에서 기적과 관련된 용어들은 여러 가지이다. ‘경이’를 뜻하는 타우마(θαῦμα, 묵시 17, 6), ‘권능’으로 번역 가능한 뒤나미스(δύναμις, 마르 6, 5), ‘놀라운 일’을 가리키는 테라타(τέρατα, 사도 2, 22), ‘표징’을 뜻하는 세메이온(σημεῖον, 주로 요한 복음에서 많이 사용), ‘이상한 일’을 뜻하는 파라독손(παράδοξον) 등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들 용어 상호간에 의미상의 엄격한 구별 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세메이온과 뒤나미스는 단순히 놀라움과 경이만을 일으키는,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실현시킬 목적으로 행하는 예외적 행적을 가리키는 그리스도교적 용어라고 주장하는 반면, 테라스 (τέρας) 또는 복수 테라타는 이방 세계에서 기적을 가리 키는 일반적 용어라고 한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 저 자들, 70인 역자들, 1세기 유대교 저자들은 테라타를 하 느님의 놀라운 행적과 곧잘 연결시켰고 세메이온과 구별 하지 않고 사용하였다. 예수의 기적 : 예수의 공생활을 전해 주는 공관 복음 서 저자들은 그분이 행한 기적을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언제나 연결시켰다. 곧 예수의 기적은 하느님 나라의 실 체를 가리키는 표징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 님 나라는 인간 역사 안에 개입해 들어오는 하느님의 무 한한 사랑과 자비를 가리킨다. 후기 유대주의의 메시아 사상과 연결시켜 정의한다면 하느님 나라는 그분이 임금 으로서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선정(善政)을 말한다. 루가 복음 저자에 따르면 예수의 선교 활동은 한 마디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이라고 밝혔 다(4, 18-19). '소경을 보게 하고 절름발이를 제대로 걷 게 하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해주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 려주는' (마태 11, 5 ; 루가 7, 22) 예수의 모습 안에서 하 느님 나라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예 수가 행한 놀라운 행위들 안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 랑과 자비를 느끼게 되고 동시에 선한 임금님으로서의 그분의 주권도 인정하게 되었다. 예수의 기적은 그분의 신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분은 하느님을 대신하여 그분의 나라를 이 세상에 보 여 주기 위해 왔다. 예수의 출현으로 약속의 시대(구약) 는 가고 완성의 시대(종말)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이 런 까닭에 예수의 기적들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 는 표징이라 일컫는다. 표징의 신학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복음은 요한 복음이다. 요한 복음 안에는 도대체 기적이라는 낱말이 나오지 않고 그 대신 기적이라고 부 를 수 있는 사건들을 표징이라 일컫는다. 요한 복음 저자 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이상한 현상 들로서의 기적은 별 의미가 없다. 기적은 반드시 실체를 겨냥하고 실체를 계시할 때만 본래의 가치를 지닌다. 이 때문에 요한 복음 저자는 기적 대신 표징이라는 낱말을 굳이 사용하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가 행한 표징들이 수 없이 많다고 하면서도(요한 20, 30) 그 가운데 7가지만 골라 소개한다. 이 7가지 표징들이 가리키는 실체는 예 수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의 삶 전체가 하느님 나라를 증언하는 것이라면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이 증언의 정 점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인류의 구원과 하느님의 영광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술로 변화 시키고(요한 2장), 갈릴래아 호수가에 서 굶주린 백성 오천 명을 보리 빵 다 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며(요한 6장), 심지어 죽은 라자로 를 소생시키는 일(요한 11장)들이 조금 도 믿기에 어렵지 않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의 기적 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구체 적인 표징이다. 그런데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 라 기적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 있 다. 구약성서의 하느님은 이 세상과 그 곳에서 사는 백성들을 창조하고 관리 하는 전능한 주님이다. 그분은 당신 백 성을 선택하고 구원하고 그들과 계약 을 맺으면서 그들 위에 최고의 권위로 군림하는 어른이다. 하느님 나라가 그분의 왕권 또는 주 권을 의미한다면, 구약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그 나라는 당연히 전능한 하느님의 권위와 능력이 완전하게 드러난 상황을 가리킨다. 세례자 요한은 옥바라지를 하는 제자 들을 시켜 예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하게 점검하게 하였다. 그가 기대했던 하느님 나라의 선포자는 구약성 서에 계시된 전능한 하느님의 사자(使者)였다. 요한은 자신의 뒤에 오실 분에 대하여 "날카로운 정의의 도끼로 악인들을 쓰러뜨리고 불과 영으로 세상을 정화시킬 분··· 체로 까불어 쭉정이는 날려 보내고 알맹이만을 거두어 들이실 강한 분"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러나 정작 하느님 의 사자로 등장한 분은 권능과는 거리가 먼 유약한 모습 의 인물인 듯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제자들을 시켜 예수께 "당신이 오실 분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예수의 대 답은 당신이 행한 기적들의 나열이다. "여러분이 보고 들은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리시오. 소경들이 보고 절름 발이들이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머거리들 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일으켜지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 을 듣습니다"(마태 11, 4-5 ; 루가 7, 22).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와 그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보이는 하느님의 주권이다. 그 분이 이룬 기적들은 단순히 하느님의 전능함만을 드러내 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 과 자비를 구체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과 구원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었다. 그분의 기적 안 에서 하느님의 전능은 사랑을 마음껏 전달하기 위한 능 력으로 드러난다. 한마디로 예수의 기적은 "전능한 사 랑의 표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기 적적 활동을 열거한 끝에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태 11, 6 ; 루가 7, 23)라고 하였다. 믿 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적은 회개를 불러일으킨다. 말하 자면 기적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하느님 편에서의 초대 요, 회개는 이 초대에 대한 인간 편에서의 응답이다. 그 러나 불신자들에게는 기적이 오히려 회개를 가로막는 걸 림돌이 된다. 그들은 예수가 행하는 기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보려 하지 않고 악의 세력인 베엘제불의 능력을 확인하려 든다(마르 3, 20-27). 예수는 기적과 표 징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실체와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 주기를 거절한다(마 르 8, 11-12). 그들에게 보여 줄 기적은 예수의 죽음과 부 활을 상징하는 요나의 기적밖에 없다(마태 16, 4). 〔교회의 기적〕 예수의 부활은 이스라엘 백성을 태동시 킨 출애급처럼 교회를 태동시킨 원동력이다. 초대 교회 는 예수 부활을 구약의 모든 역사와 놀라운 표징들을 압 도하는 새로운 출애급의 정점으로 이해하였다(요한 13, 1). 예수의 부활은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고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의 충만함을 보장해 준다(1고린 15, 20-28 ; 묵시 4, 25). 교회의 사명은 예수의 가르침과 부활한 예수 의 구원적 능력을 세상에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사도들은 예수가 걸어간 길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하고 사람들 앞에서 스승 예수처럼 기적을 행한다. 사 도들의 기적은 그들이 예수의 참된 말씀의 선포자임을 증언해 줌으로써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믿음과 구 원으로 인도한다.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펼치는 기적은 예수의 구원적 능력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 이외에 다 른 것이 아니다(사도 3, 6. 12. 16 ; 묵시 1, 4). 여기서 말 씀과 기적의 긴밀한 연결을 볼 수 있다. 곧 기적은 부활 한 예수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이 참되다는 사실을 입증 해 주고 사도들을 거짓 예언자들로부터 분리시켜 하느님 의 진정한 사자들로 확인시킨다(사도 8, 9-24 ; 13, 4-12). 그런데 사도들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이처럼 당 당하게 전파하고 이를 갖가지 표징과 기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 이다(1데살 1, 5 ; 1고린 2, 4 ; 묵시 15, 19). 성령은 교회 역사의 시작에서부터 믿음에 충실한 사람 들에게 '은사' 라는 이름의 갖가지 기적들을 베풀 능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성령의 놀라운 은사들은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명과 특별히 그리스도인 삶의 최상 기적인 사 랑의 실천보다는 한 급수 아래이다(1고린 12, 28 이하 ; 13, 2-13). 이 같은 원리는 현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 다. 말씀의 봉사에 철저히 헌신하고 영웅적인 애덕 실천 에 앞장선 유명 · 무명의 성인들의 윤리적 기적은 어둠 속에서 헤매는 수많은 사람들을 믿음과 구원의 길로 인 도한다. 윤리적 기적과 더불어 성서 시대에 일어났던 물 리적 기적도 우리 시대에 계속되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 을 현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이런 물리적 기적 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개와 쇄신을 불러일으키고 육화 된 말씀과 하느님 나라의 실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Ⅲ . 기적과 신앙 〔기적과 개인의 믿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치유나 구 마와 같은 기적을 행하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믿음 이 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성서를 보면 자연 기적 들은 야훼 신앙을 갖지 않은 마술사들도 행하였다(출애 7, 11). 치유 기적의 경우에는 다양한 문화권 안에서, 모 든 시대와 장소에서 때로는 전혀 비종교적인 분위기에서 도 일어난다. 오랫동안 대중 종교 집회 안에서 치유의 기 적을 보여 왔던 현대의 많은 기적적 치유자들이 놀랍게 도 만년에 자신들의 치유 행위가 전혀 신앙과 무관한 것 이라고 고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의 고백에 따르 면 자신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았던 이유는 그들과 환자 들이 그들 안에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 이라고 한다. 바오로 사도는 치유나 방언과 같은 은사들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할 성령의 은혜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이 모든 기적적 현상들보다 믿음과 희망과 사 랑이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사랑의 실천이 최고의 가치라 고 선언한다(1고린 12-14장). 따라서 믿는 이들은 사적인 계시를 통하여 비범한 통찰력과 치유와 구마의 능력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위와 세력을 과시하려는 사이비 기적쟁이들에 게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교회 공동체 에 분열을 가져오고, 다른 사람들을 불안과 두려움으로 이끄는 이런 자들의 소행은 공동체의 선익과 애덕의 실 천을 강조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다. 〔기적의 이성화〕 앞에서 지적한 대로 성서 저자들이 구약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룰 때 사건의 깊은 의미를 부 각시키기 위해 그들 특유의 과장된 표현을 동원하는 경 우가 허다하지만 때로는 저자에 따라 동일한 사건들을 단순하게 보고하기도 한다. 이를 '기적의 이성화' 라 한 다. 건전한 상식과 이성을 강조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이 런 보고들이 오히려 받아들이기가 쉽다. 몇 가지 예를 들 면 출애굽기 16장 13절에서 "저녁때가 되자 난데없는 메추라기가 날아 와 그들이 진을 친 곳을 뒤덮었다" 고 되어 있으나 민수기 11장 31절에서는 메추라기 떼가 날 아 온 이유를 주님이 일으킨 바람 때문이었다고 밝힌다. 가나안 정탐 이야기도 민수기 13장 23-24절에서는 포 도 한 송이를 꺾어서 막대기에 꿰어 둘러메고 왔다고 과 장된 서술을 하고 있으나, 신명기 1장 24-25절에서는 "그들이 산악 지대로 올라가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기까 지 그 땅을 몰래 답사하였고 그 땅에서 난 열매를 따가지 고 내려왔다" 고 단순하게 보고하고 있다. 때로는 기적적 요소가 서로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두 인물을 묘사하는 가운데 슬며시 사라지거나 약화되는 수도 있다. 여호수아서 18장 8절에 보면 하느님이 여호 수아에게 아이라는 성을 그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약속하 면서 "네 손에 든 창을 아이 쪽으로 내뻗어라"라고 명령 한다. 여기서 여호수아가 창 든 손을 뻗는 행동은 매복 병사들에게 공격하라는 신호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 손을 뻗는 동작은 모세가 아말렉인들과 싸우는 장면(출 애 17, 8-16)을 연상시킨다. 모세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 아가 아말렉인들과 한창 전투를 하는 도중에 언덕 위에 서 모세가 지팡이를 든 팔을 펼쳐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 고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긴다. 여기서 팔을 뻗친 동작 은 더 이상 공격 신호가 되지 않고 승리의 기적을 예약해 주는 표징이다. 그가 손에 든 물건도 무기가 아니라 기적 을 일으키는 "하느님의 지팡이"(출애 17, 9)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서 8장 26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아이 주민을 다 죽일 때까지 창을 든 팔을 거두지 않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부분은 칠십인역에는 빠져 있는데 아마도 아이 함락 이야기에 기적적인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 후대의 편집자가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예는 열왕기 후서 3장 22절의 기록이다. 이스 라엘과 유대와 에돔의 동맹군이 모압을 치러 나갔는데 모압군이 "아침 일찍 일어나, 햇살이 물 위에 퍼져 있어 물이 피처럼 붉게 물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피바다' 를 보며 동맹군 내부에 내분이 일어나서 서로 쳐 죽인 것으로 오해해 동맹군을 향하여 진격했다가 이 스라엘군의 반격을 당해 패배하였다. 여기 나오는 피와 물의 표상은 출애굽기 4장 9절과 7장 17절 이하에서 모 세가 파라오에게 행한 기적 이야기에 이미 등장한다. 열 왕기 저자가 전통적인 기적의 표상을 평범한 자연 현상 으로 풀어 해설한 것이다. 이처럼 성서 저자들도 기적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설 명하려는 노력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적의 의미까 지 평가 절하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이 성 서에 소개된 기적들의 외형적인 모습을 이성적으로 이해 하고 설명하려는 태도는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보다 진지하게 믿으려는 데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 다. 다만 기적의 심오한 의미와 메시지를 이성의 힘으로 완전히 밝히려 드는 것은 잘못이다. 하느님의 계시는 결 코 건전한 상식과 이성에 위배되지 않으나 이성의 한계 를 훨씬 뛰어넘는다. 〔기적의 목적〕 위에서 우리는 기적을, 우주 만물과 그 안에 사는 모든 피조물의 주재자인 하느님의 권능을 드 러내고 자비와 사랑의 주님인 그분의 주권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면 이 같은 기적의 목적은 무 엇인가? 첫째, 기적은 하느님이 인간을 시험하는 도구이고 인 간도 하느님의 권능을 그 안에서 시험해 보는 상황이다. 마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모세가 하느님에게 호소하자 "주님께서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다.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단 물이 되었다. 주님께서는 바로 여기에서 그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주시고 그들을 시험해 보셨다"(출애 15, 25). 이 기적의 목적은 이스라엘인들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것 이 아니라,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기적을 목격한 백성들 이 앞으로 구원자 하느님께 충실할 수 있을 것인가를 시 험하는 첫 관문이었다. 이 기적 바로 다음에 덧붙인 하느 님의 설교는 이 기적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 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모든 명령과 규칙을 잘 지키라는 당부로 이루어졌다. 마라의 기적에 이어 등장하는 만나 의 기적은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었 다(출애 16, 4). 여섯째 날에는 만나가 두 배로 내려왔고 하루를 묵혀도 썩지 않았다. 이 시험에 실패한 자들이 안 식일에 만나를 거두려고 이른 아침에 나와 보았지만 허 사였다(출애 16, 27). 시험을 목적으로 하는 기적은 모세 오경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드온의 경우에는 하느님에게 표징을 요구함으로써 그분을 시험했다(판관 6, 36-39). 히즈키야는 자신의 병이 치유되리라는 약속을 확인받기 위해 그림자의 기적을 주님에게 요청했고(2열왕 20, 9), 아하즈는 이사야 예언자로부터 주님을 시험할 표징을 요 구하라는 분부를 듣는다(이사 7. 11). 이런 기적들은 모두 하느님의 구원하는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방법이다. 둘째, 기적은 상과 벌을 내릴 목적으로 행해진다. 구약 에서 기적을 통하여 단체가 보상을 받는 예는 전혀 없고 개인이 보상받는 예는 가끔 있다. 에녹의 깊은 신심에 대 한 그의 승천(창세 5, 23-24), 아브라함의 친절한 나그네 대접에 대한 사라의 임신(창세 18장), 과부의 환대와 엘리 야의 풍성한 음식 제공(1열왕 17, 8-16), 다니엘의 하느님 께 대한 충성과 사자 굴에서의 구조(다니 6장) 등이 그 좋 은 예들이다. 구약에서 기적적인 징벌의 예는 개인이건 단 체이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때로는 개인의 죄 때문 에 단체가 벌을 받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아내를 빼앗은 죄로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모태들이 닫힌 이야기(창세 20 장), 파라오의 죄 때문에 이집트인들 전체가 고통당한 이 야기(출애 7-12장)가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에 신약성서에 서는 기적이 상벌의 도구로 이용되는 예가 극히 드물다. 셋째, 기적은 은총을 전달하기 위해 이용된다. 엘리사 가 베푼 여러 기적들이 여기에 속한다(2열왕 2, 19-22 ; 4, 38-44 ; 6, 1-7). 하느님이 불임녀 한나의 태를 열어 준 것도 은총의 기적이다(1사무 1장). 세례자 요한의 어 머니 엘리사벳의 잉태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잉태도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낸 기적이었다. 은총을 전달하기 위한 기적들은 성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 적 유형이다. 그리고 이 기적 유형은 하느님의 약속과 직 결된다. 자손을 많게 하고 축복의 땅을 주겠다는 하느님 의 약속은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처음 주어진 이래 이사악과 야곱과 열두 지파에게 이어졌고 마침내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기적들을 통하여 충실하 게 이행되었다. 그 뒤 자손과 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은 다윗과 솔로몬의 왕정을 거치면서 평화와 정의의 왕 메 시아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졌고 예수의 탄생으로 이 약 속은 완결된다. 하느님은 당신 약속의 완성인 예수의 생 애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곧 그분의 탄생에서부터 죽 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은총의 기적으로 온통 감쌌다. 마지막으로, 기적의 목적은 하느님께 대한믿음과 그 분이 보낸 사자(使者)들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키기 위 한 것이다. 가르멜 산 위에서 바알의 예언자들과 대결하 는 엘리야는 하느님에게 간청을 한다. "응답해 주십시 오. 주님, 저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백성으 로 하여금 주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깨닫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한 분이 당신이심을 알게 해주십시오"(1열왕 18, 37). 그러자 바알의 예언자들과 백성이 지켜 보는 가 운데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제단과 제단 주변의 모든 것 을 삼켜 버린다. 기적은 하느님 자신뿐 아니라 그분이 보 내는 사자들을 증언해 주기도 한다. 모세가 파라오 앞에 서 펼쳐 보일 기적들은 이스라엘 선조들의 하느님 곧 아 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인 주 님이 모세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다 (출애 4, 5). 예수가 행한 기적들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믿게 하였 다. 예수의 구마와 치유 기적들을 목격한 청중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예수의 기적들은 그분 자신의 신 분과 사명을 증언해 주기도 한다. 죽은 라자로를 부활시 키기 전에 예수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아버지께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께서 언제 나 제청을 들어주시는 줄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 나 (여기) 둘러서 있는 군중 때문에 제가 말씀드렸사오 니, 이는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음을 그들로 하여금 믿 게 하려는 것이옵니다"(요한 11, 42)라고 말한 후 라자로 에게 무덤에서 걸어 나오라고 명령하였다. 이처럼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기적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지만 기적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 목적을 반드시 이루어 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기적을 보고 사 람들의 마음이 더욱 완고해지고 불신의 늪으로 빠져 드 는 수도 있다. 모세의 기적들을 보면서도 파라오는 계속 고집을 부렸고(출애 7-10장), 예수의 기적을 목격한 유대 인들 가운데서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았다(마르 3, 20-33 ; 요한 6, 41-65). Ⅳ. 기적의 의미 성 아우구스티노는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들이면서 하 느님의 사랑과 권능을 신앙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빵을 많게 한 기적 안에서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보 는 것과 꼭같다고 하였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가을 추수는 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빵을 많게 한 기적은 놀라운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 기적 의 세부 묘사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 저주받은 무화과 나무의 이야기가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 약간 다 르게 서술되어 있는데 이 나무가 즉시 말라 죽든지(마태 21, 19) 조금 지난 뒤에 죽든지(마르 11, 20) 무슨 상관인 가! 중요한 것은 이 상징적 행위 뒤에 숨어 있는 회개를 촉구하는 구세사적 의미이다. 성서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기적들을 대하면서 우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기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그런데 이런 갈등은 성서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젯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소멸, 나아가 역사 의 진행 과정이 모두 하느님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진다 고 보았다. 따라서 아무리 커다란 기적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한, 그 기적을 자연 법칙에서 벗 어난 초자연적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전능한 하느님의 능력이,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어떻게 인간 세상 에 드러나는가였다. 그들은 이 비밀스런 사건들을 통하 여 하느님이 무엇을 계시하고자 하며 무엇을 가르쳐 주 고자 하는지를 깨닫는 일에 열중하였다.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는 기적은 그것이 아무리 놀랍고 거창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마술사들이나 거짓 신들의 장난에 불과하였다. 우리는 앞에서 구약의 기적들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요 인간 생명의 주재자인 하느님의 전능한 권능에 강조점을 두는 반면, 예수의 기적들은 인자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 비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밝혔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기 적들이 전능하고 공의로운 하느님의 상급과 징벌을 전달 하는 도구로 곧잘 이용되었다. 그러나 예수가 행한 기적 들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하는 능력과 은총이 인간 역사 안에 극적으로 표출된 사건으로 드러난다. 예수의 공적인 삶을 통하여 하느님은 만민의 임금으로서 고통받 고 소외당한 가난한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따라서 예수의 기적들은 모두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직결되어 있다. 또는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는 당신의 기적 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 다. 사도 시대의 교회는 구약의 모든 기적들을 능가하는 가장 큰 기적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는 데 전력 투신하였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 안에서 드러난 무한한 사랑의 기적과 예수의 부활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적 권능의 기적은 사도 시대 이후 오늘까지 그리스도 교회 안에 지속된다. 수많은 성도들의 영웅적 애덕 실천(윤리 적 기적)과, 성령의 역사함으로 현실 안에서 일어나는 갖 가지 놀라운 사건들(물리적 기적)이 바로 그 두 기적과 맥 을 같이한다. 아직 순례의 여정을 계속해야 하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하늘만 쳐다보며 위로부터 사람들을 압도할 기적 이 떨어지기만을 고대할 것이 아니라, 스승 예수의 모범 을 따라 구원의 기적을 이루는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하 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세상이라는 삶의 현장에 힘차 게 전함으로써 스스로 사랑의 기적을 이루어 내는 것이 다. 올리브 산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스승의 모습을 넋을 잃고 지켜 보던 제자들에게 던진 천사의 말 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올 라가신 저 예수는, 그분이 하늘로 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사도 1, 11). (⇦ 그리스도의 기적 ; → 치유 ; 치유 사화) ※ 참고문헌  X. Léon-Dufour ed., Vocabulaire de théologie biblique, Les Editions du Cerf ; Paris, 1968, ET ;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Seaburry ; New York, 1977(rev.), pp. 360~365/ R. Latourelle, Miracles de Jésus et Téolegie du miracle, Les Éditions Bellarmin Mortreal, ET ; The Miracles of Jesus and the Theology of Miracles, Paulist Press ; Mahwah, N.Y., 1988/ R.J. Coggins . J.L. Houlden eds., A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SCM ; London, 1990, pp. 461~4671 D.J. Freedman ed., 《ABD》 4, Pp. 845~869/ I.J. Richards, Miracle of Jesus ; What Really Happened?, Mowbray & Co. Ltd. ; London, Oxford, 1983(정승현 역, 《예 수의 기적,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분도출판사, 1993). 〔丁太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