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교회 공동체
基礎敎會共同體
〔영〕Basic Ecclesial(Christian)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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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광야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버리지 않았다(구스타브 도레 작)
현대에 교회의 본질과 복음을 실현하기 위해 채택된 새로운 교회 형태. 영미권과 아프리카권에서는 Basic Christian Community (BCC),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권에 서는 Basic EcclesialCommunity (BEC)라고 한다. 특히 그 리스도인들이 적은 아시아권에서는 다원적인 종교 상황 을 반영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과 연대하 여 건설하는 공동체를 '기초 교회 공동체' 와 구별하여 '기초 인간 공동체' (Basic Human Community, BHC)라고 부른다. '기초 인간 공동체' 라 불리는 기초 공동체는 다 원 종교 사회에서 종교성을 앞세우지 않고 사회에 봉사 하는 형태로서 제3 세계에 속하는 이들 사회의 소외된 이들의 복지적 요구에 부응하는 교회적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교회 2장)으로 정 의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채택된 복음화 의 수단을 말한다. 즉, 교회의 본질은 공동체이다. 공동 체란 그 구성원이 서로 인격적인 사귐과 나눔을 실행하 며 생활 전반에 걸쳐 긴밀한 유대 관계 속에 사는 것을 말한다. 기초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본질을 드러 낼 수 있는 교회적 실체로서, 성령의 이끄심으로 현대 가 톨릭 교회에 주어진 선물이며,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존 에 대한 깨달음과 체험으로 이루어지고 퍼져 가는 새로 운 교회 형태이다. 기초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의 세포로서 인격적인 사귐과 나눔을 통하여 교회를 복 음화시키고 사회 전체를 복음화시키는 누룩과도 같은 것 이어야 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 58항에서, "기초 공동체는 교회적이고 인간적인 유대를 더 강화하고자 하는 데에서 발생한 새로운 교회 형태"라 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기초 공동체들 이 오로지 자기들 나름대로 하느님 공경과 믿음에 관한 깊은 연구, 형제적 사랑의 실천, 기도 생활, 사목자들과 의 일치 등 종교적 · 영성적 문제에 관하여 적은 사회 단 체나 마을 같은 단위에 확대해 나갈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과 성사 배령, 사랑의 일치를 위하여 연령, 교양, 직분 혹은 사회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인 부부, 청소년, 직장 인의 단체를 집합시키려고 한다. 또한 정의를 위하여 가 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인간 발전을 위해서 뭉쳐진 사람 들을 결속시킬 뿐만 아니라 사제가 부족하여 정상적인 본당 생활 운영이 잘 안되는 경우 신자들을 결합시키기 도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교회가 인준한 공동체 안에서 더욱 특수한 교회나 본당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다··· 교회적 공동체는 복음 선교의 못자리가 되고, 보다 큰 공동체, 특히 지역 교회의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 교회의 희망이 될 것이다." 이는 제2차 라틴 아 메리카 주교 총회가 발표한 메데인 문헌이 처음으로 기 초 공동체에 관해 인정한 이래 교황청에서 나온 최초의 공식적인 가르침이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51 항에서 "젊은 교회들 안에서 신속히 번창하고 있고 주교 들과 주교 회의들이 사목 활동의 우선적 과제로 추진하 고 있는 것이 교회의 기초 공동체" 라고 지적하면서, 이 기초 공동체가 "그리스도교 교육과 선교 추진의 좋은 중 심처로 인정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지역 현실에 뿌리깊이 육화된 사도직을 통하여 이러한 복음화에 기여 해야 할 소명을 받고 있는 기초 공동체는 부활한 그리스 도의 현존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복음화의 수단 으로서, 복음을 들어야 할 모든 이들과 더불어 복음을 선 포하려는 교회에게는 역사적으로 계시된 복음화의 은총 인 것이다. I . 성서적 의미 구약성서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적으로 당하는 소외 현 상에 초점을 맞추고 그 경제적 · 정치적 원인을 분명하게 간파하고 있다. 억압당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성서의 언급은 12지파의 공동체 연합 체제에서 왕정 체제로 넘 어간 후에야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성서 저자들은 사회 불의와 사회 악을 고발하고 단죄하고 있다. 성서는 가난 한 이들을 억압하는 자들을, 하느님을 외면하는 불경한 자들로 본다.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수호하는 분으로 나타나 있다. 시편에서는 불쌍한 사람들, 궁핍한 사람들, 병든 사람 들, 천대와 학대를 당하는 사람들, 추방당한 사람들의 부 르짖음을 귀여겨 듣는 하느님을 묘사하고 있다. 예언자 들 역시 하느님의 사절과 대변자로서 그들의 하느님 체 험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그 지도자들에게 계약의 본질적인 요청을 상기시켰다. 예언자들은 그야말로 그 사회 비리에 비타협적인 사람들로서 하느님께 대한 굳센 믿음으로 사랑과 정의를 외쳤다. 기원전 8세기 중엽에는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같은 사회 ·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에 아모스 예언자는 탐욕, 상거래에 서의 부정, 부당한 재판, 부자들의 사치와 방탕 등의 범 죄를 고발하였다. 그와 동시대 사람인 미가 예언자 역시 고통을 겪고 있는 백성들 앞에서 부정 부패를 일삼는 부 자, 권력자들에 대항하여 외롭게 투쟁을 감행하였다. 미 가는 그들을 '선을 미워하고 악을 따르는 자들' , '백성들 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며 백성들의 살을 뜯는 자들' 이라고 혹평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다. 기원 전 7세기 예언자 예레미야는 임박한 유대 왕국의 멸망 앞에서 왕과 사제, 거짓 예언자들과 맞서서 고독하게 투 쟁하다가 박해를 받고, 감옥에 갇힌 후 이집트로 망명하 여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구약성서의 기본 메시지 들, 특히 예언자들의 예언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가난 한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 결론은, 하느님이 언젠가는 당신의 뜻을 이룩할 이상적인 왕 즉 메시아를 보내어 당 신의 나라를 몸소 세우리라는 희망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약성서의 예언에 따라 이 세상에 온 나자렛 예수는 존재 자체로 모든 사람, 특히 억압받는 가난한 이 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었다. 루가 복음서는 예수가 가난 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기름 부음을 받고 성 령을 받아 세상에 파견되었다고 증언한다. 또한 행복 선 언에서는 가난한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 우는 사람들, 사람의 아들 때문에 미움을 사서 내쫓기고 욕을 먹고 누 명을 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선언한다. 마태오 복음 서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고 말한다. 이 표현은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마음으로만 가난한 사람 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물질적으로도 역시 부유하지 못하고 힘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지 만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재물과 능력을 사랑으로 함께 나누어 모든 사람이 하느 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하느 님의 가난한 사람들' 을 가리킨다. 예수는 또한,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당신의 신 비를 감추고 철부지 어린아이들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 들,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당신 신비를 보여 줌을 감사드 린다. 나아가서 예수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 곧 당신 자신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당신 을 동일시한 대목은 매우 독특한 것이며 신약성서 전체 에서 유일한 것이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다고 믿으며 소아시아 각 지 방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한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은 "세례를 베풀라고 주님이 보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 라고 주님이 보냈다" 고 술회한다. 그가 말하는 '복음을 전하는 일' 은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었다. 그가 세운 공동체들은 소아시아 도처에 흩어져 있어서 이 공동체들 을 지도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오늘날 전해지는 편지들이 필요하였다. 그는 특별히 그 당시 번창했던 고린토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공동체를 세웠으며 이들을 복 음화시키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편지 중 고린토 인들에게 보낸 매우 긴 두 통의 편지를 보아도 알 수 있 다. 공동체를 이룬 가난한 이들에게 사도 바오로가 선포 하는 복음은 가난한 사람들이 지고 가는 그리스도의 십 자가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권능과 지혜로부터 나오는 복 음이다. II . 신학적 의미 1968년 콜롬비아의 메데인에서 열렸던 라틴 아메리 카 주교 총회는 라틴 아메리카 교회를 가난하고 억압받 는 이들의 편에 확고하게 서도록 한 역사적인 교회 회의 였다. 이 회의에서 주교들은 기초 공동체를 '교회의 핵' 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보다 큰 규모의 교회 공동체와 인간 공동체의 중심에 있는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뜻한 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관을 전제하는 이 말은 그 중 심에 있는 지역 단위인 기초 공동체로부터 동심원적인 파문이 점점 커져 가는 일련의 공동체들을 뜻한다. 지역 의 사정에 따라 다양한 이 공동체들은 세상과 따로 떨어 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단계마다 세상 속에 속해 있는 것 이다. 공동체적 교회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삶을 나누 는 삶을 반드시 포함한다. 이는 함께 전례를 봉헌함으로 써 영성적으로, 함께 나누는 우정을 통해서 정서적으로, 서로의 생각들을 교환함으로써 지성적으로, 그리고 재물 에 대하여 관대하게 됨으로써 물질적으로 서로 나누는 삶을 의미한다.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는 기초 공동체가 교회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기초 공동체가 충분히 발전되었을 때에는 가톨릭 교회의 본질적인 특징들을 반 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모이며, 복음을 중심으로 하고, 이웃에 대한 봉사를 통하여 선교하면서 교계 제도와 일치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초 공동체의 특 징들이 나타난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전세계적으로 같은 신앙을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 공동체는 단지 사 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전인적이고 인류 보편적으로"(민 족들의 발전 14항) 구원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 의 모임이다. 따라서 사랑은 모든 면에서 가장 근본적인 교회의 특징이다. 기초 공동체는 공동체에 모인 형제 자 매들끼리 나누는 사랑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섬 긴다. 또한 전례는 가톨릭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 것은 또한 기초 공동체에서도 발견된다. 만일 기도와 하 느님 말씀, 그리고 성체성사에 소홀한 공동체가 있다면 그 공동체는 결코 공동체로서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교 회의 특징은 선교여야 한다. 이 말은 특히 소외받고 가난 한 사람들에게까지 교회의 힘이 미쳐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교회의 특징은 예언자여야 한다. 교회가 정의의 편 에 서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는 봉사하는 존재이다. 기초 공동체의 활동은 지역 사회의 이웃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모든 신자들의 모임에서 사목자들과 일치하 는 일 또한 본질적인 요소이다. 기초 공동체들이 그들의 사목자들과 일치하려고 애를 쓰고, 사목자들은 그들을 도와 주려고 노력한다면 분파주의에 대한 강력한 보호 장치가 될 것이다. 끝으로 교회가 정체되지 않으려면 교회는 끊임없이 쇄 신되어야 한다. 끊임없는 쇄신은 기초 공동체에 있어서 도 역시 필수적이다. 이는 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기 초 공동체는 영적 · 정서적 · 지적, 그리고 경제적인 모든 면을 자주 평가해야 한다. 쇄신은 피정, 평가 회합, 회 의, 연수 그리고 사회 참여에 의해서 촉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회의 특징들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기 초 공동체에서도 본질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빵을 이 루는 성분들이 조그만 빵 조각 안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것처럼 가톨릭 교회의 모든 특징들이 기초 공동체 안에 서 발견될 수 있어야 한다. 기초 공동체는, 특별한 카리 스마로 교회를 풍부하게 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 여타의 종교 단체나 신 심 운동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종교 단체와 신심 운동은 완전한 해방과 구원에 이르기까지 역사 과정에서 일어났 다가 사라지는 다양한 종교적 움직임이다. 그러나 기초 공동체는 그러한 움직임들을 담을 수 있는 교회의 핵이 기 때문에 분명히 구별된다. Ⅲ . 중남미의 기초 공동체 브라질에서 기초 공동체의 출현은 리오데자네이루 구 역 바라도 피라이에서 공동체적 복음화 운동과 평신도, 교리 교사들의 노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56년 아그 넬로 로씨 주교는 사목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브라질 지 역에서 평신도 교육자들을 통하여 복음화 운동을 시작하 였다. 사제가 없는 지역에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신 자들을 모아 종교 교육을 시키고 특히 주일과 축일에는 일반 신자들끼리라도 기도와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 게 하였다. 그들은 각 가정을 돌거나 회관에 모여 기도와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으며, 이외에도 성서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입각한 공동 관심사와 정치 · 경제 문제까지를 논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공동으로 대처하고 실천하 였다. 그리고 하느님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라는 것, 모든 인간은 한 형제 · 자매로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신 자는 예수처럼 반드시 죽음을 거친 다음 부활한다는 것, 인간과 인류 전체를 개인 및 집단 이기심으로부터 해방 시켜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그리스도 신자의 본질적인 사명감을 고취시켰다. 1975년 7월 브라질 비토리아에서 열린 제1차 기초 공 동체 모임에서는 6명의 주교와 몇 명의 기초 공동체 자 문 위원, 그리고 상당수의 사목자와 기초 공동체에 소속 된 몇몇 평신도가 이미 활기를 띠고 있는 '바닥 사람들' (기층 민중)의 교회 현상에 관한 경험과 성찰을 서로 교환 하였다. 바로 이 모임에서 '에클레시오제시스 (ecclesiogenesis, 교회 탄생)라는 신학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기초 공동체를 가리키는 '하느님의 성령을 통하여 민중 으로부터 탄생하는 교회' 가 그 모임의 표어가 되었다. 다음해 7월 제2차 기초 공동체 모임이 다시 한번 비토리 아에서 열렸는데, 이 모임에서는 등록자의 면모가 바뀌 었다. 참석자 100명 중 절반이 기초 공동체 출신이었고 나머지 절반만이 주교와 사목자와 자문 위원으로 이루어 졌다. 이 모임에서 기초 공동체에서 올라온 100여 건의 보고서를 검토, 성찰하였다. 1978년 7월에는 후앙 페소 아에서 제3차 기초 공동체 모임이 개최되었다. 이 모임 에는 200여 명이 참석했는데 그중 3분의 2가 기초 공동 체 회원이었다. 이 모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기초 공동 체 대표들이 주도권을 잡고서 문건 초안과 최종 문서 작 성 등 모든 일을 조직하였다. 주교, 사제, 전문가가 바닥 사람들의 입에서 그들이 처한 경제적 · 정치적 · 문화적 상황에 대한 외침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981년 제 4차 기초 공동체 모임에서는 19개 지역 71개 교구에서 주교, 사제, 자문 위원, 기초 공동체 대표 300여 명이 모 였다. 이 모임에서도 역시 기초 공동체 대표들이 모든 일 을 조직하고 주도하였다. 이렇게 몇십 명 단위로 시작된 기초 공동체는 오늘날 브라질에서만도 8만 개 이상에 구 성원이 400만 명에 이르며, 중남미 전역에서는 30만 개 이상에 구성원이 1,500만 명에 육박한다. 바야흐로 거 대한 '교회 기초 공동체들의 조직망' 으로서 새로운 교회 형태가 탄생한 것이다. 〔교회와의 관계 및 교회의 입장〕 기초 공동체는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어 교회의 사목 발전에 초석이 되고 있다. 1976년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 <현 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를 통하여 기초 공동 체의 건전한 발전을 장려한 바 있다. 또 볼로냐의 레르카 로(Lercaro)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그 리스도의 신비를 외면하고서는 그리스도의 성사인 교회 의 신비를 밝혀낼 수 없다"고 역설한 바와 같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하여 교회는 특별히 가난한 사 람들에 대한 복음화, 가난한 사람들 자신의 복음화 능력 에 관한 성찰을 진지하고 깊이 있게 검토하여 왔다. 교황 요한 23세의 언급처럼 교회가 특별히 모든 가난한 이들 을 위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교회 의 교회 자신에 대한 지극히 정당한 당위적 요청이다. 따라서 기초 공동체는 기존의 제도 교회의 대안이나 대체물일 수 없는 고유한 의미를 그 스스로 지닌다. 제도 교회와 기초 공동체는 동일하고 유일한 하나의 교회이 다. 기초 공동체를 출발시킨 주체가 교회의 주교, 사제, 수도자라는 사실은 제도 교회와 기초 공동체의 긴밀한 유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제도 교회와 기 초 공동체는 서로 대립 관계에 있지 않다. 그 양자가 어 느 한쪽을 흡수하거나 척결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항상 서로 보완해 주고 서로에게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 다. 교회 안에서는 제도적인 요소가 공동체적인 요소를 압도하려 해서는 곤란하다. 공동체적 요소 역시 제도적 인 요소에 대하여 언제나 소금과 누룩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제도 교회는 기초 공동체들을 설립, 지원하 고 육성할 책임이 있다. 기초 공동체도 스스로의 연속성 을 유지하고 보편적 교회로서의 본 모습을 확보하기 위 하여 제도 교회와 일치할 의무가 있다. 〔평 가〕 제도 교회와 함께 기초 공동체는 교회 공동체 의 진정한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있다. 특 히, 기초 공동체는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 난한 사람들의 삶 자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기초 공 동체가 중남미를 비롯한 제3 세계의 전형적인 창작물이 며 사회적으로 착취당하고 주변화된 농촌 지역과 대도시 변두리 지역에서 번성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 이다.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 공동체적인 생활과 선택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시간과 장소가 바로 기초 공 동체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교회의 관계는 바로 기초 공 동체 안에서 바로 구체적인 모습과 고유한 의미를 재확 인하게 된다. 기초 공동체는 항상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사랑으로 연대해 온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 및 전통과 새롭게 합치하는 것이다. 즉 과거에 망각된 차원 혹은 충 분하게 발현시키지 못한 차원을 회복시 키는 새로움이다. 기초 공동체는 제도 교회에 본래의 공동체적 성격을 되살려 주고, 신앙을 역사 속에 뿌리내리게 하며, 예수 그리 스도의 구원의 신비 안에서 보다 인간 적인 생활 조건을 희구하는 민중의 열 망을 구체화시켜 교회로 하여금 그 스 스로 '항상 쇄신되어야 할 교회' (Eccle- sia semper refomanda)임을 깨닫게 하여 언제나 거듭 새로운 교회로 다시 태어 나게 할 것이다. 교회는 완성되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여정에 있다(교회 2항). 세상 끝날까지 쇄신과 완성으로의 노력이 요청되는 신비체이 다. 교회는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는 하 느님의 원의에 응답해야 할 막중한 의 무를 여기서 재확인하게 된다. 제도로 서의 교회(가시적 교회)는 필연적으로 많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성숙한 기초 공동체의 출현 및 발전은 끊임 없이 교회 공동체로 하여금 자기 자신들이 취해야 할 본 연의 자세와 의무를 상기시킬 것이다. ※ 참고문헌 Jorge Pixley, 김수복 역, 《角解攻의 實踐과 戰略》, 분도 출판사, 1991/ Julio Lois, 김수복 역, 《해방 신학의 구조와 논리》, 한 국신학연구소, 1988/ Ⅲ Conferencia General Del Episcopado Latinoamericano, 성찬성 역, 《푸에블라 문헌》, 분도출판사, 1991/ Leonardo Boff, 김쾌상 역, 《교회 : 카리스마와 권력》, 일월서각, 1986/ Leonardo Boff, 김쾌상 역, 《새롭게 태어나는 교회》, 성 요셉 출판사, 1987/ Joachim George Piepke C.V.D., 강원돈 역, 《브라질 바닥 공동체》, 한 국신학연구소, 1990/ Clodovis Boff, 김 수복 역, <바닥 공동체와 해방 의 실천>, 《神學思想》, 1986 가을/ James O'Halloian, 이기우 역, 《살아 있는 교회 세포》, 성바오로 출판사, 1993. 〔金壽福〕 IV . 한국 가톨릭의 기초 공동체 〔기초 공동체의 뿌리- 박해 시대 교우촌〕 한국 교회 의 역사에서 기초 공동체의 뿌리가 된 것은 박해 시대 교 우촌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의 전반기 백년을 흩어보면 극히 이례적인 복음화 현상이 발견된다. 외국 선교사들 의 직접적인 노력 없이 스스로 복음을 수용하여 교회를 평신도들의 노력으로 창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자 유를 얻기까지 백여 년 동안 가해진 조직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신앙 공동체들이 세워질 수 있었던 현상이 그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가난한 이들 이 복음을 들을 수 있었던”(루가 7, 22) 초기 한국 교회사 의 '교우촌' 으로 불렸던 이 신앙 공동체야말로 한국 천 주교회 전통의 맥이라 할 수 있다. 이 신앙 공동체에서, 순교를 감행하면서까지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신앙의 모태가 형성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는 한국 교회 의 활력이 생명의 불씨처럼 보전될 수 있었다. 조선 시대 천주교 교우촌이 형성된 기원은 신유년 대 박해 후에 산곡으로 피신하였던 교우들로 인하여 이루어 졌으며 그 외에도 유랑하였던 교우들과 몰락하였던 남인 양반의 처자들과 고향을 버리고 이주한 교우들로 인해 생긴 신자 마을이었다. 이들은 오로지 신앙 생활을 좀더 자유롭게 영위하기 위하여 외인들의 눈을 피해 굶어 죽 을 위험한 지경에까지 놓이고,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까 지 신앙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자연 스럽게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 교우촌들은 본래부터 교세를 유지했던 경기도 · 충청도 · 전라도 지 방에서 점차로 박해가 뜸했던 타지방으로 흩어짐에 따라 오히려 지역적으로 교세를 저변에서 확대하는 결과를 초 래하게 되었다. 끔찍한 박해 속에서 곳곳에 세워진 교우촌에서는 어떠 한 공식 교회의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조직도 대변자도 없었고 심지어 정상적인 신앙 활동까지가 불가능한 처지 였다. 그토록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가능했던 사도적 활 력의 비밀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다른 어 느 삶의 조건보다 우선 순위에 놓은 것이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진 체험' 을 보전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이 수락 체험의 보전 노력이 교우촌을 형 성하게 한 근본 원인이다. 이 교우촌의 교우들은 당시의 신분 체계상으로 반드시 천민이었던 처지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신유박해로 몰락한 양반 교우의 가족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신분에 관계 없이 서로를 교 우라고 부르면서 '공소 회장' 이라고 부르는 공동체 지도 자를 선출하여 유대감이 깊고 특별한 형제애로 맺어진 교우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교우촌의 교우들은 노동을 천시하던 당시의 사회 풍조와는 대조적으로 옹기의 생산 과 판매 등을 공동으로 하면서 이익도 공동 분배하는 생 활을 하였으며 박해에서 오는 궁핍을 덕행 실천의 기회 로 삼는 한편, 감옥에 가서도 짚신을 삼는 등 공동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본당 사목 구조의 발전〕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안에 서 신앙 공동체의 전통적 맥을 형성했던 교우촌은 종교 의 자유를 얻고 나서 지하 교회의 모습을 벗고 대중에게 선교하기 시작함으로써 대부분 본당의 공소가 되었고, 그중 중심이 되는 큰 공소는 성직자가 파견되어 상주하 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회 는 본당 위주의 사목 구조로 운영되어 왔는데, 신자들이 늘어나고 성직자도 늘어남에 따라 한국 가톨릭 교회는 15개 교구에, 947개 본당 그리고 신자수 3,209,494명 (1993년 말 현재)에 이르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특 히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1970~ 1980년 대에 교세의 증가는 두드러졌다. 여기서는 교우촌과는 매우 다른 실천이 전개되었다.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한 전례가 거행되며 예비자들과 신자들의 교육 활동은 물 론, 신자들의 신심 활동과 선교 활동이 이루어진 반면, 교우촌과는 달리 생활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전례 생활을 목표로 하여 성직자 중심으로 운영 되는 종교 기관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본당 위주의 사목 구조에서는 박해가 끝난 이후 지금까지 신자들의 양적 증가가 두드러지게 이루어진 반면, 공동체성이 후퇴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지리적으로도 교우촌이 가난한 이들 이 모여 이룬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던 데 비해, 본당들 은 도시의 번화가에 자리를 잡았다. 이는 본당에서 이루 어지는 사목 활동의 수혜 계층이 가난한 이들보다는 경 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로 바뀌게 된 현상을 설명해 준 다. 이는 한국 사회가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성장한 중간 이상의 계층이 입교자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한편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입교자가 줄어든 결과를 낳았다. 〔가난한 이들과 기초 공동체〕 한국 사회에서는 가톨릭 농민회와 천주교 도시 빈민회 등을 중심으로 농민, 도시 빈민 등 소외 계층의 고통에 동참하고 이들의 인간 발전 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기초 공동체 운동이 시 작되었다. 이는 가톨릭 농촌 청년회로 출범한 가톨릭 농 민회의 경우 1987년 이후 생명 공동체 운동으로 나타났 고, 빈민들의 강제 철거와 비인간적 재개발에 대한 사목 적 개입을 계기로 1985년에 창설된 천주교 도시 빈민회 의 경우 역시 1987년 이후 빈민 지역에 활동 센터들을 세우는 지역 공동체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공통적 인 목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의 정신을 소외 계층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신앙을 증거하는 데 있 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도시빈민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를 지속적으로 기울이기 위하여 서울대교구에 설립된 도 시 빈민 사목위원회가 빈민 지역에 세워진 기초 인간 공 동체(탁아소, 공부방, 주민 회관, 생산 공동체 등)들과 연대하 고 교구와 본당 등 교회 일반과 연대하기 위한 기초 교회 공동체들을 건설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기초 공동체 운 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을 '도시 공소' 라고 부른다. 빈민 지역에 세워진 도시 공소에서는 기초 인간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교구에서 파견된 성직 자가 정기적으로 모여 미사를 봉헌하는 한편, '복음 나 누기' 를 통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활동이 복음의 나눔 으로 교회 일반에 확산되도록 연대하는 역할이 수행된 다. 또한 이 도시 공소에서 벌이는 주요 활동은 기존의 기초 인간 공동체들이 벌여 온 복지적 활동을 더욱 촉진 시키며 도시 빈민들의 주거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주거권을 입법화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한편 불 안정한 고용을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건축, 봉제 등 도시 빈민들이 종사하는 노동 구조를 복음화시킬 수 있는 생 산 공동체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일이다. 특히 협동 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 '생산 공동체' 운동은 본당의 소 공동체 운동' 에 참여하기 어려운 가난한 이들에게 적합 한 기초 공동체 운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공동체 운동' 과 2000년대 복음화〕 1989년 세계 성체 대회가 끝난 후 1991년부터 서울대교구에서는 복 음화' 라는 사목 목표를 설정하고 '소공동체의 활성화' 라 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후 1992년부터 2000년까지의 9개 년 동안 '2000년대 복음화' 라는 장기적인 사목 목 표 아래 각 본당을 비롯한 각 사목 분야에서 '소공동체 들' 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서 아프리카 룸코 (Lumko)에서 개발된 복음 나누기 프로그램을 공식적으 로 파급시켰다. 여기서는 교회의 본질을 공동체로 규정 하는 한편 교회의 공동체적 본질이 드러날 수 있는 단위 로서 '소공동체' 를 육성함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본 당을 '소공동체들의 공동체' 로 변화시키자는 데 그 목표 가 있다. 이는 본당의 비대화와 공동화(空洞(七)를 막는 한편 사회의 복음화 역량이 감소하는 추세에 대응하여 먼저 교회의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사목적 시도이다. 이 는 박해 시대, 교우촌에 뿌리를 두고 소외된 이들 사이에 서 다시 시작된 기초 공동체 운동이 처음으로 공식 교회 로부터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며 교구의 공식적 지원 아래 각 본당에서도 반모임을 중심으로 실시됨으로써 교회적 완결 구조를 갖추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이는 2000년 이후의 가톨릭 교회가 보여 줄 모습은 기초 공 동체의 교회상임을 예측하게 하는 것이다. 〔전 망〕 기초 공동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 쇄신의 산물이다.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서 처음 시 작된 이 기초 공동체는 그 후 전세계 교회로 퍼져 교황청 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복음화의 유 효한 수단으로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소외된 이들 안에서 기초 공동체 운동이 시작된 이래 공식적으 로 서울대교구가 1992년부터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활성화 운동' 을 시작함으로써 본격화되었고 이 에 따라 다른 교구들에서도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하여 시도하는 중이다. 앞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는 기초 공동체의 교회로 한국 사회 안에 자리잡을 전망이다. 그런데 기초 공동체를 통한 교회와 사회의 복음화를 전망하자면 지금까지 드러난 세 가지 한계를 극복해야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① 본당 위주의 사목 구조에서 나 타난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소극적 대안으로서만 기 초 공동체 운동이 전개된다면 그 장래를 낙관하기가 어 려울 것이며, 공의회가 천명한 교회 쇄신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만 기초 공동체 운동은 복음화의 적절한 수 단으로서 교회 안에 자리잡을 것이다. 기초 공동체는 공 의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② 현재까지의 기초 공동체 운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생활을 주축으로 하는 '사 는 공동체' 에 국한되어 있다. 즉, 현대 사회의 인간 활동 동향이 주로 직업을 통해서 주요한 부분이 이루어짐을 감안할 때 직업 활동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남성 신자들 과 그리고 점차 늘어나고 있는 일하는 여성 신자들은 아 직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하는 공동체' 로 서 노동과 직업의 복음화로까지 나아갈 때 기초 공동체 운동은 사회의 복음화를 위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 을 것임을 전망할 수 있다. ③ 한국 가톨릭 교회의 맥을 이루었던 교우촌에서나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기초 공동체 운동이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에 공헌하였던 데 비해 중산층화된 한국 본당 사목 구조에서 이루어 온 지 금까지의 '소공동체 운동' 은 그렇지 못한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본당의 '소공동체 운동' 은 빈민 지역에서 전개되어 온 기초 공동체 운동과 상호 연대할 때에만 가 난한 이들의 복음화에도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김옥희, 《최양업 신부와 교우촌》 , 천주교 청주교구, 1983/ 서울대교구 《사목 교서》, 1991~1994/ Alvaro Barreiro, Basic Ecclesial Commmuities : The Evangelization of the Poor, New York, 1982(이기우 역,《기초 교회 공동체》 , 성바오로출판사, 1990)/ James O' Halloran, Living Cells : Developing Small Christian Commumity, New York, 1984(이기우 역, 《살아 있는 교회 大學 세포》, 성바오로출판사, 1993)/ 서울대교구 도시 빈민 사목위원회,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 공동체 : 도시 빈민 사목 백서>, 1994/ 서울대교구 도시 빈민 사 목위원회, <도시 빈민 사목 주보>(1993. 1~1994. 4. 3)/ 천주교 도시 빈민회,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삶 : 천도빈 백서>, 1993. 〔李起雨〕 V . 한국의 사례 한국의 기초 공동체는 활동의 대상, 인적 구성, 분야를 기준으로 하여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농민, 도시 빈민, 노동의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와 본당의 반 모임이다. 〔농민 분야〕 대표 사례 : 경북 의성군 신평면 쌍호리 의성 쌍호 공소. 이 공동체는 1978년 4월에 우영식 회 장이 5명의 분회 회원으로 출범시켰다. 이들은 공통적으 로 '신자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해 야 한다. 이땅의 농민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천대와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농민 운동은 농민으로서 마땅히 해 야 할 일' 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이들은 1979년 오원춘 사건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 게 하고 회원들끼리 더욱 긴밀히 결속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이 사건으로 주민들이 가톨릭 농민회에 가입하였 고, 그 결과 2개 분회로 확장되었다. 이 공동체는 1979 년부터 공동 모내기를 시작하였고, 버려진 땅 가꾸기, 남 의 땅 공동으로 농사지어 주기를 시작하는 등 공동 일을 하였다. 공동으로 하는 사업에는 공동 구판장, 도시 직거 래 운동이 있고, 공동 놀이로는 설날에 공동 세배, 겨울 농한기에 척사 대회를 갖고, 여름에는 분회 야유회, 교육 활동은 공동으로 수행하고, 공동의 터로 농민 회관을 건 립하였다. 더불어 사는 지역에도 관심이 많아 지역 사회 를 개선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도로 부역을 폐지하는 운동을 벌였고, 농촌에서 는 보기 힘든 벽서, 현수막 작업을 통해 농민들의 주장을 펴나가는 활동을 하였으며, 부당 농지세 시정 운동 및 추 곡 수매 운동을 통하여 농민의 이익과 지역 사회의 민주 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연대 운동으로는 1982년 말 소 몰이 시위와 양담배 수입 저지 싸움이 있었다. 남성과 여 성 모두 함께 모여 회의를 하고,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하 고 있다. 모이는 집에서는 간단한 음식을 준비한다. 남녀 모두 발언권을 갖고 있으며, 부부가 참여하는 경우에는 남편들에 대한 비판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모임은 월 례회를 원칙으로 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임시 회의를 자 주 갖는 형태를 취한다. 회원수는 최대 50명에까지 이르 렀던 적이 있었다. 회원들간에는 역할이 고르게 분담되 어 있고, 관계도 매우 평등하다. 전례는 공소 예절 중에 말씀 나누기를 실천한다. 교회와의 관계는 본당의 공소 로 있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동체도 젊은이들이 적어 충원이 어려운 일반 농촌의 문제를 겪고 있다. 기타 농민 공동체 : ① 전남 진도군 군내면 신동리 공 소 : 신자촌이고, 교구에서 주최하는 지도자 교육을 받 고 시작되었다. 1989년에 작목반 중심으로 유기 농법을 실천하는 생명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재배한 농산물은 도시 소비자(목포)와 직거래를 하고 있다. ②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내공근리 공동체 : 한살림 생산자 공동체로 현재 회원 13명이며, 월 1회 모임을 갖 고 있으며 유기 농산물 경작을 함께하고 있다. ③ 충남 당진군 우강면 신촌리 신촌 공소와 분회 : 1979년 신촌 공소 가톨릭 농민회 분회로 출발하였다. 공동 경작, 농기계 공동 사용, 공동 놀이, 공동 구매를 실천하고 있다. ④ 경북 상주군 사벌면 퇴강리 물미 공동체 : 1990년 3월 안동교구 공소 봉사자 학교 수료자들이 출범시켰다. 구성원은 5가구. 남의 땅을 빌려 공동 경작, 공동 분배를 실천한다. 농산물 가공 공장도 설립하였다. 절기마다 공 동 놀이도 함께 즐긴다. 도시 지역과 직거래를 하기 위해 농산물을 생산한다. ⑤ 경기 안성군 고삼면 가유리 공동체 :1989년 부락 청년 5명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산 공동체로, 농민 병원 을 설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⑥ 충남 당진군 매산리 공소 : 1980년 2월 농민회 교 육을 통해 매산 분회로 출발하였다. : 공동 모내기, 공동 노동, 마을 공동 사업을 하고 있다. 〔도시 빈민 분야〕 대표 사례 : 서울 도봉구 미아동 솔 샘 공동체. 이 공동체는 솔샘 공동체(빈민 사목위원회 북부 공소)를 중심으로, 솔샘 애기방, 삼양 건축, 솔샘 일터로 이루어져 있다. ① 솔샘 애기방 : 1986년 김동선이 빈민 지역에서 가 난한 맞벌이 가정에 도움을 주고, 부모들의 주관심인 자 녀들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하여 시작하였다. 정금자(골롬 바)가 김동선에 이어 1988년 9월 1일부터 상주하게 되 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30개월~7살까지의 유 아 18명을 돌보고 있다. 1989년 3월에는 애기방 옆에 공부방을 개설하였다. 현재 국민학생 36명, 중학생 9명, 고등학생 9명을 가르치고 있다. 교사 모임 곧 자원 봉사 자 20명(후원 회원이면서 봉사자 포함)은 1989년부터 지금 까지 한 가족처럼 공동체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 1회 토요일에 친교 모임을 갖고, 월 1회 애기방 운영을 논의하고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생활 나눔도 한 다. '공동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교육도 한다. 구정 때나 추석 때에 연 2회 3박 4일 간 피정을 하는데, 참석 율은 100%이다. 교사 모임 때마다 묵주 기도를 바친다. 구 교사팀 모임도 있는데 4~5년 전부터 월 15만 원씩 후원하고 있다. 구 교사팀은 현재 교사들과 식사 모임을 통하여 친교는 물론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다. 애기방 자 모 모임은 월 1회 모임을 갖고 자녀 문제에 대하여 논의 하고, 공동체 교육을 통하여 이웃 사랑을 나누고 실천한 다. ② 삼양 건축 : 1992년 9월 1일 천주교 도시 빈민회 (이하 천도빈)의 북부 센터인 '삼양 한걸음 일자리방' (1990. 6. 18 개설)이 1991년에 폐쇄되면서 천도빈의 지 역 센터 지원금으로 탄생된 일용 노동자들의 생산 공동 체이다. 현재 3~4명이 함께하고 있고, 일이 있을 때마 다 함께 모임을 갖고 있다. ③ 솔샘 공동체 : 1991년 9월 서울대교구 빈민 사목 전담 이기우 신부는 가난한 이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구 체적이고 현실적인 복음을 전하고자, 미아1동에 입주하 였다. 1992년 솔샘 공동체 개원 1주년을 맞아 미사와 기도 모임을 시작하여 매주 목요일 미사와 주일 기도 모 임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고 있다. 1993년부터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7~8명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복음 묵상 나눔과 미사를 봉헌하고, 주일에는 예비자 교리와 복음 나누기를 솔샘 공동체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과 함 께한다. ④ 솔샘 일터 : 솔샘 공동체에서 약 2년 동안 복음 묵 상 나눔과 미사, 기도 모임을 통하여 공동체 의식을 다져 오다가 생산 공동체를 실현할 목적으로 1993년 10월 설 립하였다. 이기우 신부, 정옥순(아나다시아), 장영오(글 라라), 김정생(안나) 등 네 사람이 출자하여 봉제 협동 조합 '솔샘 일터' 를 세웠다. 이들은 작업 시작 전후에 성 무 일도를 바치며, 매월 둘째 주 일요일 하오 8시에 솔샘 공동체에서 회합을 갖고 봉제 협동 조합의 여러 가지 문 제를 논의한다. 생산 공동체를 지원하기 위하여 빈민 사 목위원회에서 설립한 '명례방 협동 조합' 의 지도를 받고 있다. ⑤ 올바른 재개발을 위한 주민 모임 : 1993년부터 영 세 가옥주와 가난한 세입자들이 재개발로 정든 곳(삶의 자리)를 떠나야 하는 아픔을 치유하고, 생존권 보장과 올 바른 재개발을 위한 주민 모임을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에 갖고 있다. 기타 도시 빈민 공동체 : ① 만석동 공동체(인천시 동구 만석동 6번지) : 1986년 지역 본당 청년들이 시작하여 이 젊은이들 가운데 3명의 여성이 송림동에 방을 얻고 생활 을 시작하였다. 중학생을 위한 '기차길 옆 공부방' 을 운 영하고 있다. 푸른솔 주민 도서실도 설치 · 운영하고 있 다. '기차길 옆 공부방' 재정 문제 해결과 재생산되는 활 동가들의 지속적인 활동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 마 당' 을 설립 운영 중이다. 실무자 3명은 모두 기차길 옆 공부방의 자원 교사로 출발하여 현재 천도빈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농산물 직거래를 하고 있다. 현재 인천의 가좌동 성당과 생활 협동 조합을 추진 중이다. 활동으로 는 어머니 교실, 기차길 졸업생 모임, 지역 연대 모임, 복음 나누기 등이 있다. ② 꽃망울 글방(서울 관악구 봉천3동 산 89-14번지, 전· 진 · 상 공동체) : 1989년 5월 2일 이곳에 처음 이사를 하 고 집 수리를 마친 다음 6월 14일 중학생(5명) 영어 공 부를 시작으로 글방을 개설하였다. 1990년 8월 22일 현 재의 글방 자리로 확장, 이전하면서 학생수는 국민학생 과 중학생이 5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 후 계속 학생수 는 증가되어 1994년 8월 현재 국민학교 2학년 어린이부 터 중학교 3학년생까지 80명에 이르고, 1994년 3월에 는 새로 마련한 집에 유아원(5~6세 : 15명)을 개설하였 다. 자원 교사는 현재 25명이며 월 2회 정례 모임을 갖 는다. 유아원 자모 모임을 운영하고 있으며, 씩씩이 놀이 방(지탁연 소속), 봉천6동 친구교회(민중교회) 내 친구네 공부방 활동가 중심으로 봉천3 · 6동 주민회 준비 모임 을 월 2회 갖고 있다. ③ 우리누리 공부방(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6-776번지) : 최수연(도미니카)이 1988년 11월 27일 현재의 이곳에 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랫 동네에 7평짜리 방을 얻고 공부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1990년 6월 공부방을 현재 의 이곳으로 이전하여 증축하였다. 우리누리 공부방의 실무자는 4명이고 학생은 50명이다. 책누리 도서실을 개설, 현재 함께 쓰고 있고 회원은 70명이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가누리 탁아소를 개설하였 고, 실무자 1명이 3~6세 어린이 7명을 돌보아 주고 있 다. 우암동에 밝은누리 공부방을 개설하여 실무자 2명, 학생(국민학생~중학생) 30명이 있다. ④ 꿈터 공부방(광주시 서구 월산3동 323-31번지) : 이영 례(수산나)에 의해 1991년 10월 25일 현재의 위치에서 떨어진 학동에서 꿈터 공부방이 개설되었다. 주 1회 봉 사자들은 학생 교육 문제, 지역 행사나 공부방 행사를 논 의 · 결정하는 데 주로 합의제로 운영한다. 자모회 모임 도 월 1회 갖는데 참석율은 60~70%이고 생활 나눔과 노래 부르기, 공부방 행사를 논의 결정한다. ⑤ 금호동 푸른하늘 공부방 :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 고, 합동 재개발을 추진 중인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여 활 발한 지역 연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노동 분야〕 대표 사례 : 마산 노동 상담소(경남 마산시 석전동 224-7번지 가톨릭 여성 회관 내). 이는 1985년에 처 음 문을 열었는데 이때의 주업무는 노동 상담이었다. 공 동체 교육을 통하여 활동들을 평가하고 사례 중심 이야 기를 듣고 생활 나눔을 하며 농촌 방문도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드높이고 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경남 함안군 여항면 에 밭 400평을 임대하여 총각무, 열무, 시금치를 공동 경작하기도 한다. 녹색 공동체(생산 공동체)는 환경 문제 를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과 동시에 폐자원 활용으 로 재정 자립을 달성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현재는 월 15,000장 무공해 비누를 생산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생 산 규모를 배로 증가할 계획이다. 활동으로는 교육, 노동 자 후속 모임, 녹색 공동체 공동 경작을 한다. 주 1회 운 영 전반과 노동 사목 전반에 관하여 논의한다. 상주자는 협조자 한 사람을 포함하여 6명이다. 5명은 회원 상호간 의 관계 점검 및 회원 관리 업무를 한다. 나눔과 섬김,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면서 분기별로 1회 가족 모임을 갖 고 있는데, 식사와 함께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1985년 이후 분기별로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 교실(17강좌), 근 로 기준법 무료 강좌 등 연 3차례 교육을 실시하였다. 노 동자 대학 프로그램은 30강좌를 개최하고 50명 한정으 로 수강 신청을 받는다. 지역 운동과 활발히 연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교회와의 관계는 성직자들에게 노동의 현 실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고 젊은 신부들과 정기 적인 회의도 갖고 있다(3년 간 지속함). 정기적으로 주교 님과 총대리 신부님을 면담하여 노동 현실을 보고하기도 한다. 앞으로 부부 모임을 정례화할 예정인데 성서 묵상 나눔을 하고, 가톨릭 노동 장년회 교재를 가지고 공부할 것이다. 신학생 현장 체험도 계획하고 있다. 당면 문제로 는 '과거에 비하여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이 개선됨에 따 라 점차 개인 이기주의, 현실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고 활 동가들의 파벌적 입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이다. 기타 노동자 공동체 : ① 성남 만남의 집(경기도 성남시 상대원1동 1901번지) : 1988년까지 30~40개 노조 결성 을 지원하였고, 노조가 결성된 회사에서 노동 조합 교육 을 실시하였다. 1989년 12월 노조 간부들(25명 정도)을 대상으로 3개월 과정의 노동자 학교를 개설하였다. 강사 훈련 교육(1989~1991)인 '새 날 노동 교실' 을 운영하였 다. 이 과정은 1992년부터 실시한 노동 조합을 소재로 한 6주 과정 교육이다. '생활 공동체 건설' 을 목적으로 노동자 가족 교실도 운영한다. 1994년 6월 4일부터 7월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에 7강좌를 실시하였다. 유 치원도 운영하는데 원아는 70명이고 자모 조직이 잘되 어 있다. 부대 사업으로 무의탁 집, 빈민 임대 주택, 기 타 주말 진료를 실시한다. ② 광주 성 요셉 근로자의 집(광주시 서구 광천동 636-6 번지) : 1986년 호반 브렌단 신부(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도움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사회(이사 6명), 운영위원 회(위원 12명)가 있고, 분과 조직으로 산악회(산행 모임 월 1회), 기우회(바둑 모임 월 1회), 노동 교실(교육 위원 연 3 회 교육)이 조직되어 있다. ③ 내일을 위한 집(인천시 남구 주안5동 8-60번지) : 이 공동체는 1985년 3월에 생활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하면 서, 노동 상담 교육실, 골목 어린이 집, 일꾼 나눔터, 밝 음 공동체(생산 공동체)로 엮어진 공동체이다. 실무자 3 명, 봉사자 4~5명으로 골목 어린이 집을 운영한다. 1993년 10월, 노동자 9명(5명은 자기 직업이 따로 있고 월 1일 노동 봉사한다)의 결의로 한 사람이 100~150만 원을 출자하여 총자산 1,100만 원으로 협동 조합 형태로 밝 음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노동 상담 교육실도 운영하며, 일꾼 나눔터를 운영하고 있다. ④ 철산동 만남의 집(경기 광명시 철산4동 509-267번지 성화빌딩 203호) : 1986년 4월 노은혜 수녀(메리놀회)가 협조자 한 사람과 함께 미혼 노동자들을 위하여 일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공동체 운영은 운영위원회(실무 자 4명과 한울타리 회장과 노 수녀로 구성)에서 한다. 월 1회 모임을 갖고 각 단위 조직의 실천 보고, 평가 및 공동체 운영에 관한 것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노동자 교양 교실 을 운영하였고, 풍물반 · 비디오 교실 · 시사 상식 교실 · 자아 발견 교육을 하였으며, 푸른 공부방도 운영한다. 1993년 1월 16일에 개소하여, 실무자 2명, 자원 봉사자 5~6명을 두고 있다. 〔본당의 반 모임〕 대표 사례 : 서울대교구 구로본동 본 당. ① 잘 양성된 빈천시오 회원들은 가난한 사람을 사랑 으로 따뜻하게 맞이한다. 재정적 도움은 물론이고 정기 적인 방문과 대화, 신앙적인 상담을 하여 가난한 사람들 의 사도로서 평신도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한다. ②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 회원들은 노동 사목을 하는 보좌 신부의 배려로 노동계의 사도로 성장하고 있 다. 가톨릭 노동 장년회는 3팀이 있는데, 두 팀은 기존 팀이고 한 팀은 가톨릭 노동 청년회 출신들이 1993년 5 월에 스스로 조직하였다. ③ 녹원 생활 협동 조합 : 농산물 직거래나 유기 농업 농장의 보호와 도시 소비자의 건강한 먹거리 운동에 큰 역할을 하고 꾸준히 환경 교육을 하여 주택가 공해 배출 업소에 대하여 진정을 하는 등 깨끗한 환경과 자연 보호 활동에 참여한다. ④ 자케오 집 : 쓰레기 재활용과 가난한 사람에게 생 활에 필요한 물건을 싸게 구입하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 들이 쓰던 옷이나 살림 도구를 받아서 수선하거나 정리 하여 값싸게 판매한다. ⑤ 소공동체(반 모임) 활성화 : 반장 월례 모임 때 구 역 · 반 상황을 보고하고, 복음 나누기를 그대로 실시한 다. 반장 교육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하는 교회상을 공부하고, 본당이 소공동체로 엮어진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깨우치며 소공동체 필요성과 그 지도자들을 교육하면서 반 모임이 평신도 지도자 양성의 장이 되도록 노력한다. 여성 반 모임은 복음 묵상 나누기 를 통해서 나눔과 섬김과 사귐의 공동체로 발전하여 집 세를 안 올리는 사람도 있고 혼자 사는 할머니들의 벗이 되거나, 할머니의 빨래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은 삶 의 환경을 바꾸기 위한 연대 모임은 안되지만 그곳을 향 하여 발전하고 있다. 구역 단위로 가난한 공동체를 방문 하면서 세상에 열린 공동체로 서서히 변화되고 있다. 1 년 반 동안의 꾸준한 노력으로 남성 반 모임의 참여자가 2배 정도 늘었다. 1991년 말에 50여 명(분가된 구로1동 지역은 제외)이 참석했는데 지금은 100여 명이 매달 한 번 모여 복음 나누기를 하면서 복음을 자주 접하고 주님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고 복음을 생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타 사례 : 옥수동 본당은 1989년 2월에 기존의 구 역과 반을 가까운 이웃집끼리 묶고, 10~15세대를 한 반으로 하고 3~6반을 한 구역으로 하여 반 모임 자체가 기초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한 끝에 반 모임이 활성화되 었다. ※ 참고문헌 박준영, 《한국 천주교회 공동체 운동의 역사》, 기 독교 학술 연대 모임 추계 심포지엄 자료집, 1993/ 두레시대, 《두 레 사상》 창간호, 1994/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인성회, 《세상, 사 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1990/ 천주교 기층 단체 연대 모임, 《천주교 현장 공동체 조사 자료집》, 1994. 〔朴文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