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통, 장 마리 피에르 (1901~ )
Guitton, Jean Marie Pi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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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철학자. 1901년 8월 18일 프랑스 생 테티엔느(Saint Etienne)에서 출생. 파리의 루이 르그랑 고등학교를 거쳐 1920년 고등 사범 학교에 입학하였다. 1923년 교수 자 격을 획득한 후 여러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고, 1935년에는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몽플리에 (Montpellier)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40년 6월 독 일군의 포로가 되어 여러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하 였다. 1945년 6월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디종 대학 교 수로 재직하면서, 이 도시 출신 철학자인 모리스 블롱델 (M. Blondel)과 잔 다르크에 대하여 일련의 강의를 하였 다. 기통의 문학적 · 철학적 저술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1954년 프랑스 학술원 문학 대상을 수상하였다. 다음해 그는 소르본 대학의 철학 및 철학사 교수로 선임되었고, 1961년 프랑스 학술원 회원이 되었 다. 1963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교황 요한 23세의 초빙으로 가톨릭 평신도로서는 유일하게 참관인 자격으 로 참석하였다. 〔작품 세계〕 그는 1935년 철학 박사 학위 논문 두 편 을 발표하였다. 그중 한 편은 《플로티누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있어서의 시간과 영원성》(Le temps et L’éternité chez Plotin et Saint Augustin)이고, 다른 한 편은 《뉴먼의 철학》(La philosophie de Newman)이었다. 그 후 《파스칼과 라이프니츠》(Pascal et Leibniz)란 저서에서 두 철학자를 비교한 것을 비롯하여 《시간의 정당성》(Justification du Temps), 《유한한 존재》(L’Existence Temporelle), 《현대 사상과 가톨리시즘》(La Pensée Moderne et le Catholicisme), 《인간과 사랑에 관한 수필》(Essai sur l’amour Humain), 《플라톤》(Platon) 등의 철학, 심리학적인 저서를 내었다. 이외에도 풍요 수양 생활의 체험이 담긴 《나의 인생 행적》(Journal de Ma Vie) 및 단편집인 《세자르느》(Césarine)를 출판했으며 성서 해석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아가서》, 《예수》(Jésus), 《예수의 문제》(Le Problème de Jésus) 및 《동정녀 마리아》(La Vierge Marie) 같은 신학적 저서들도 썼다. 이 외 그는 교육자와 전기 작가로서의 재능도 지니고 있다. 《사고(思考)의 새 기술》(Le Nouvel Art de Penser)이라는 저서는 교육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그는 연설가로도 또 저널리스트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의 저작이 지닌 탁월한 점은 심리 분석이며, 특히 진실 을 추구하는 정신 유형의 비교이다. 이러한 경향을 간파 한 메이랑(Mayran)은 기통의 대화적 문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통만큼 긴밀하게 독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작가는 없다." 그의 저서들은 다양하고 방만해 보 이지만 어떤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즉 그의 작품들을 조 화롭게 통합시키는 것은 그의 글에 깊이 내재해 있는 철 학 사상이다. 그리고 그 철학적 사상은 발전에 관한 사상 이다. 특히 '유한한 존재' 에 대한 그의 사고는 그리스도 교에 대해서 계속 사색하게 해주고 풍요롭게 해준다. 그 에게 있어서 '동정녀 마리아' 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또 마리아는 그의 체험을 발전시킨다. 그 스 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그의 저서들은 종교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기통의 저술은 미래 지향적 저술이라 할 수 있 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적 영성과 영감의 사고를 발전 시키고, 새롭게 심화시키는 데 이바지하였기 때문이다. 1936~1960년에 출판된 수많은 종교적 비평들, 특히 《예수의 문제》와 《르낭과 뉴먼》이라는 저술 속에서, 기 통은 이성론자의 절대적 확실성을 더 이상 검증하지 않 는 이성과의 관련을 통해 신앙의 신뢰성에 대해 자문하 면서, 그의 종교적 긍정에 대한 엄격하고 이성적인 비평 을 하였다. 〔사 상〕 장 기통의 철학 기반은 고등 사범 학교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쟈크 슈발리에(J.Chevalier)의 영향을 받 아 형성되었다. 그 시기에 기통은 라이프니츠 철학과 데 카르트 철학에 대조되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공부하 였으며, 종교적 인식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갖기 시작하 였다. <파스칼과 라이프니츠>(Pascal et Leibniz)라는 논문 은 이러한 내면적 갈등의 반향(反響)이었다. 그의 철학 은 프랑스 유심론 철학의 전통 속에 위치한다. 이러한 전 통은 독일 사상가들의 지배적 영향으로 프랑스 철학의 단절된 시간 속에서 나타났다. 그의 철학적인 방향은 선 험적인 철학과는 다른 개념 속에서 데카르트 철학을 발 전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철학에서의 심리주의 적 성격을 강하게 비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서 사고하는 자아는 개체로서의 자아이며, 현상은 존재 를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신은 진실의 토대이며, 그것이 유일한 그리스도교적 설명이다. 기통은 1935년 <플로티누스와 성 아우구스티노에 있 어서의 시간과 영원성>이라는 주제의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이 논문을 기점으로 해서 이후 시간 속에 서 인간의 존재, 시간에서 영원으로의 이행, 이스라엘과 교회의 발전, 인간적 사랑의 미래 등의 관련된 문제들을 계속 심도 있게 연구하였다. 특히 모리스 블롱델과의 대 화 속에서 이러한 시간과 영원성과의 관계는 그의 모든 사고의 중심이 되었다. "영원성은 시간을 포함한다. 그 런데 시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통은 그의 영원성에 관한 문제들의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베르그송 철 학에서부터 라베송(Ravaisson) 뉴먼(Newman)과 쿠르노 (Cournot, 라이프니츠와 파스칼, 그리고 아우구스티노와 플로티누스를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 이르는지적인 여정을 계속하였다. 이에 대하여 페트리에(R.Petrier)는 "기통의 사고 저변에는 헤겔 철학의 일원론보 다는 플라톤 또는 라이프니츠 철학의 단자론에 가까운 본질주의 또는 관념론적 경향이 있다" 고 말하였다. 그러 나 기통은 선학자(先學者)들과는 달리 비일시적 본질과 일시적 존재, 즉 역사적 변전을 서로 조화시키려 노력하 였다. 그의 사고의 원천은 가톨릭 신앙에서도 찾아볼 수 있 다. 푸제 (M. Pouget)와 라그랑즈(P.Lagrange)의 영향을 토 대로 기통은 성서에 관한 비평과 그리스어 및 히브리어 성서의 주석을 통해 종교적 진리의 역사적 토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그리스도교 기원의 역사를 재고하 고, 신앙에 관한 새로운 논리를 기초하였다. 그의 가톨리 시즘은 <뉴먼의 철학>이라는 논문에서 더 정확히 이해될 수 있다. "의식의 자유에서 비롯된 복음주의적 그리스도 교 교리는 도그마(dogma)를 제기하면서 이성론에 귀착 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정신적 삶을 상쇄하였던 도그마 를 유지시키는 방식이 있다. 중도적 방법론의 존재를 전 제하기에 앞서 뉴먼은 먼저 성공회 내에서 그 존재를 찾 으려 하였다. 그러나 뉴먼은 성공회가 지적인 엄밀함이 없는 단순한 정치적 타협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시도 를 포기하였다. 바로 거기로부터 뉴먼은 자유롭게 진실 을 추구하려는 정신 속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또 한 주저함이 없이 도그마의 원칙을 수용하고, 모든 이성, 개인적 인식과 일반적 자유의 발전을 촉구하는 가톨릭 교리를 존속시키려는 그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결국 기 통은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인문주의를 정의하는 데 공헌 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두번째 회 기에 그를 초빙하였고, 그의 연설을 통해 기통은 교황 바 오로 6세와의 내적인 친밀함을 낳게 하였다. 참고 문 D Dictionnaire des Philosophes,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93/ N. Calmels, Rencontres avec Jean Guitton, Paris, Fayard, 1976/ 《cath》. 〔盧氐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