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
記號學
〔영〕Semiotics · 〔프〕Sémiotique · 〔독〕Semiotik, Zeichenleh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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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I . 철학에서의 기호학 넓은 의미로 기호의 기능과 본성, 의미 작용과 표현, 의사 소통과 관련된 다양한 체계를 연구하는 분야. 기호 이론(teory of signs)이라도 한다. 기호를 지배하는 법칙과 기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연구해 왔다. 기호학의 전통은 철 학의 전통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서양 전통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를 비롯해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 토아 철학자들, 그리스도교 신학자들(특히 아우구스티노), 중세 논리학자와 철학자들, 단테와 같은 인문주의자들, 베이컨를 위시하여 라이프니츠, 로크, 버클리 등 근대 철 학자들이 기호와 기호를 지배하는 법칙에 관해 깊은 관 심을 보였다. 중국에서는, 역(易)의 체계가 세계에 대한 기호학적 해석을 시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기호학은 과학적 경험주의 즉 논리 실증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체계화되었으며, 소 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 퍼스(C.S. Peirce, 1839~1914), 모리스(C.W. Morris, 1901~1979) 등의 작업으 로 그 기초가 마련되었다. 본래 철학의 한 분야였고, 문 법과 수사학의 한 분야였던 기호학은 하나의 독립 학문 으로 등장하였고, 언어 기호학, 시각 기호학, 건축 기호 학, 음악 기호학, 연극 기호학, 문학 기호학, 텍스트 기 호학 등 다양한 분야로 발전되고 있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기호학은 기호(sign)에 관한 학 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세미오시스(semiosis) 곧 '기호 작 용' 에 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퍼스에 따르면 "기 호 작용의 본질적인 성질과 근본적인 다양성을 다루는 이론"이 기호학이다. 모리스도 기호학을 '기호 작용에 관한 학' 혹은 줄여서 '기호 작용 연구 로 이해한다. 에 코(U. Eco)도 기호 작용을 기호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기호 자체보다, 기호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기호를 소통시키는 기호 작용이 기호학의 대상 이라는 뜻이다. 〔기호 작용〕 기호 작용은 기호를 가지고 사물을 지칭 하고 의미를 생산하고 해석하는 행위, 즉 의미 작용(signification)과 기호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 받는 행위, 곧 커 뮤니케이션(oommunication)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점 에 대해서는 고전적 기호 학자뿐만 아니라 에코와 세비 억(T.A. Sebeok)을 위시한 대부분의 현대 기호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붉은 벽돌 한 장은 집이라는 건축물을 축 조하고 거주하는 인간의 삶과 관련해서 의미를 가지듯이 기호도 기호 작용, 즉 의미 작용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의미 작용과 커뮤니케이션 : 소쉬르에 따르면, 기호는 기표(記表, signifiant)와 기의(記意, signifié), 그리고 기호 자체로 구성된다. 기표는 음성 이미지나 시각 이미지를 사용하고 항상 물질적 형태를 취한다. 기의는 일종의 정 신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장미꽃' 이라는 단어 를 들을 때 우리는 장미꽃이라는 물질적 대상을 머리 속 에 떠올릴 수 있다. 이때 머리 속에 떠올린 장미꽃이 장 미꽃 이라는 기표에 대한 기의이다. 기의를 통해 기표가 지칭하는 구체적인 사물이 인지된다. 만일 사랑하는 사 람에게 장미꽃을 건넨다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정 신적 표상)이 기의이고 꽃집에 가서 산 장미꽃은 나의 생 각(기의)을 전달하는 수단 곧 기표가 된다. 내가 그를 사 랑한다는 생각(기의)은 장미꽃(기표)과 결합하여 사랑을 표현하는 기호를 생산해 낸다. 장미꽃(기표)을 받아든 사 람은 그것을 건네준 사람의 의도를 해석한다. 이때 발생 하는 현상을 일컬어 '의미 작용' 이라고 부른다. 기표(꽃) 를 가지고 기의(사랑하는 마음)를 표현하는 쪽뿐만 아니라 기표를 대할 때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쪽에서도 의 미 작용이 일어난다. 이쪽의 의미 작용과 저쪽의 의미 작 용이 동일하게 일어날 경우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발 생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공중 변소에 각각 남자와 여자 그림을 그려 두고 신사용과 숙녀용을 구별하는 것이나 그림의 뜻을 이해하고 알아보는 것도 의미 작용이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이해(또는 오해)한 결과 일어나는 사건이 커뮤니케이션이다. 남자는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고 여자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간다면 성 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와 같이 기호(=기표+기의)를 통해서 의미를 생산하고 해석하며(의미 작용) 그것을 통해 의미를 서로 공유하는 행위(커뮤니케이션)가 기호 작용(세미오시스)이다. 그리고 기호학은 커뮤니케이션과 관계해서 일정한 의미를 부여 한 기의와 기표가 엮어진 과정과 그것을 푸는 과정을 분 류하고 연구한다. 의미 작용과 커뮤니케이션 작용은 이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구별되는 현상이다. 특히 에코는 커뮤니케이션보다 의미 작용을 더 고차원적 작용으로 본다. 커뮤니케이션 은 기계와 기계 사이, 기계와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 이, 사람과 동물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의미 작용 은 항상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다. 이것은 의미 작 용이란 근본적으로 정신적 과정임을 함축한다. 의미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가 곧 사람이고, 사람은 의미 작 용을 통해 비로소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그 런데 커뮤니케이션이란 송신점과 수신점에서 일어나는 의미 작용을 매개로 일어난다. 송신자가 목표한 의미 작 용이 만일 수신자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커 뮤니케이션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커뮤니케이 션에도 의미 작용은 역시 일어난다. 이것은 기호란 단일 의미만을 갖지 않고 다의성을 띨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 이기도 하다. 도로 표지판과 같은 기호에는 단 하나의 의 미만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표지판이 다의적 일 때 교통 사고가 유발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 른 기호는 본질적으로 다의적이다. 그러므로 다의적인 기호를 수단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실패할 가 능성을 안고 있다. 현대 기호학은 기호의 다의성을 인정 한다. 〔기호 작용의 질서〕 기호 작용은 하나의 질서를 갖는 다. 이는 자연 질서와 구별되는 인간 특유의 현상이다. 인간의 삶 전체를 만일 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문화야 말로 기호 작용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일 어나는 현상(물리적 현상)은, 퍼스에 따르면 2항 관계로 질서 지워지기에 충분하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고 하자. 바람과 깃발 사이에는 어떤 다른 매개체가 존재하 지 않는다. '보일러와 안방에 장치된 온도 조절기' 도 물 리적으로는 2항 관계를 이루고 있다. 보일러와 조절기 사이에는 의미 작용이나 이해 과정이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온도 조절기를 작동시키는 제3의 주체가 개입하 면 상황이 바뀐다.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개 입되기 때문이다. 기호 작용은 2항 관계의 자연 현상과 는 달리 3항 관계(triparite relationship)로 이루어진다. 퍼스 는 기호와 대상, 그리고 해석체, 이 세 요소가 기호 작용 에 존재한다고 본다. 대상은 '기호를 발생시키는 사물' 로 정의된다. 해석체는 기호를 설명하고 번역하고 해석 하는 '심적 표상' 또는 기호와 대상을 연결하는 '매개적 표상' 을 뜻한다. 해석체를 '해석자' , '기호의 수신자' 로 보아서는 안된다. 기호 작용은 기호와 대상, 그리고 이 둘을 매개하는 심적 표상인 해석체를 통해 일어나는 현 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기호와 대상 세계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기호의 유형 : 퍼스에 따르면 기호에는 도상(icon) , 지 표(index), 상징(symbol), 이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나타 내고자 하는 대상과 유사한 모양을 띠고 있는 기호를 도 상이라고 한다. 사진, 의성어, 도로의 커브 표지판, 설계 도, 십자가, 상형 문자 등이 도상 기호들이다. 대상과 일 정한 영향 관계나 연결이 존재하는 기호를 지표라고 한 다. 연기는 불의 지표이고, 지문은 사람의 손이 닿았다는 지표이다. '여기' , '저기' , '이것' , '저것' 도 지표에 포 함된다. 방안에 있는 보일러 온도 조절기도 하나의 지표 이다. 상징은 임의로 만든 기호를 말한다. 기호와 대상체 사이에 유사성, 인접성 또는 인과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 고 단지 약속이나 사회적 계약에 의해 생산된 기호는 모 두 상징에 속한다. 도상과 지표를 제외한 대부분의 커뮤 니케이션 수단은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학, 화학, 생물학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에서 다루는 것들이 대부분 상징과 관련이 있고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 징은 임의적이고 규약에 의해 생산된 기호이지만 어떤 기호보다 인간의 삶을 강하게 지배한다. 기호와 대상 : 기호와 대상의 관계는 기호의 유형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인물 사진(도상)은 사진 속에 담긴 인 물을 지칭하고, 연기(지표)는 불을 지칭하고, 숫자(상징) 는 그 숫자로 표상되는 개체들의 수를 지칭한다. 도표와 도표로 지칭되는 대상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도 표는 대상의 외형을 재현한다. 지표의 경우 지표와 대상 사이에는 자연적 연결이 있다. 연기 -불, 구름-비, 지 문-사람의 손길 사이에는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의성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 어 기호(상징)는 그와 같은 자연적 관계를 갖고 있지 않 다. 상징과 상징으로 표시되는 대상은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상징 기호의 임의성 또는 자의성은 사 물을 그대로 나타내는가 하는 것, 즉 표상성과 관련해서 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 약점 자체가 곧 언어 기 호를 위시한 모든 상징 기호의 강점이기도 하다. 다시 말 해서 도상과 지표 기호는 한정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인물 사진은 사진 속에 담긴 인물을 벗어날 수 없고, 지 문은 해당된 사람의 지문만을 나타낸다. 그러나 상징 기 호는 개별적인 사물을 벗어나 한 집합을 지칭하거나 아 니면 전혀 다른 대상을 지칭할 수도 있다. 예컨대 '장미' 는 뜰 앞에 피어 있는 장미꽃을 지칭할 수 있고 좀더 상 징적인 의미로도 쓸 수 있다. '십자의 장미' , 벌레 먹 은 장미' , '장미 같은 입술' , '태초의 장미' 라고 할 때 '장미' 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좀 더 풍부한 현실을 창조해 낼 수 있다. 〔평가 및 의의〕 기호가 가진 힘과 기호가 인간의 삶에 차지한 몫뿐만 아니라 기호의 과잉에 따른 위험을 현대 기호학은 지적하고 있다. 기호학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이 기호임을 강조한다. 벤베니스트(E. Benveniste)는 "인간 자신이 하나의 기호" 라고 말한다. 기호는 무엇인 가를 가리킨다.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을 통해 기호는 의미 를 얻는다. 하지만 이 '무엇' 은 기호를 벗어나 저 밖에 따로 있는 기호 외적인 현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고 기호학자들은 주장한다. 기호가 지칭하는 '무엇' 조차도 기호의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인간은 기호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기호 안에 태어나 기호 안에 살다가 기호 안에서 죽는다. 텔레비전이 만들어 낸 조작된 현실이 현실보다 더 현 실적(hyperreality)이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공된 화면이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현실(virtual reality)로 보이 는 시대에, 오히려 기호학자의 임무 중 하나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기호 현상의 거짓을 폭로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의 대표적 기호학자인 에코의 말은 의미 심장하다. "기호학은 기호로 쓸 수 있는 모든 것과 관련해 있다. 어떤 것을 의미 있게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라면 무엇이든 기호가 될 수 있다. 그 어떤 것은 기호가 그것을 표상하고 있는 시간에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없고 실제로 다른 곳에 있어도 된다. 그래서 기호학은 원칙상 거짓을 말하기 위해 쓰이는 모든 것을 그 연구의 범주 안 에 다루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거짓에 관한 이 론' 의 정의를 일반 기호학의 포괄적 프로그램으로 채택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참고문헌 김경용,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4/1 Eco, A Theory of Semiotics, Bloomington : Indiana Uiversity, 1976/ Ferdinand de Saussure, Algiridas Julien Greimas, Sémiotique-Dictionnaire Raisonné de la Théorie du Langue, Paris Hachette, 1979/ P. Guiraud, La Sémiologie, Paris : Presses Universitaires France, 1973/ T.A. Sebeok(ed.), Encyclopedic Dictionary of Semiotics, vol. 3, Berlin-New York Amsterdam Mouton de Gruyter, 1986. 〔姜榮安〕 II . 성서학에서의 기호학 기호학은 문자화된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 무엇이 발생 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들을 종합함 으로써, 그 이론을 분석 작업의 실기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실용적인 체계를 구축하였다. 기호학의 연구 결 과들은 성서학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였 다. 결국 성서도 기호로 쓰여진, 곧 문자화된 하나의 텍 스트이기 때문이다. 1970년 초에 프랑스 성서학자들 중 의 한 그룹이 기호학의 이론을 터득하였고, 그 이론을 성 서 텍스트의 분석에 적용시키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 이 후부터 이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관심은 프랑스의 국경 을 넘어 세계 도처로 번져 나갔다. 기호학에도 여러 갈래의 학파들이 있는데, 성서학에서 방법론으로서 소개하고자 하는 기호학의 방법론은 프랑 스의 기호학자 그레마스(A.J. Greimas)가 구축한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방법론은 체계적이고 다른 학파 들에 비해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 의 이론은 이미 상당수에 달하는 문학 텍스트들의 분석 작업에 적용되고 있다. 그레마스의 기호학 이론은 텍스 트의 독서와 분석에 관심을 둔 많은 성서학자들에게 시 기적으로 제일 먼저 영감을 주었으며, 역사-비평적 방법 론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성서 텍스트를 읽고 분석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여기서 소개되는 것은 그레마 스적 방법론 중에서 본질적인 요소들로서 성서의 한 텍 스트를 분석하고 해석하기 위한 하나의 길잡이이다. 〔기본 원칙〕 각 개인의 언술(言術, discours)은 그 나라 말의 문법을 존중하고 그 문법의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언술이란 한 문장보다는 좀더 긴 문학적 단위이 다. 각 텍스트는 상당수의 구조들 혹은 법칙들로 인해 통 일성과 결속성이 있는 하나의 총체로 구성된다. 이 법칙 들은 텍스트로 하여금 작용들(opérations)과 관계들(relations)의 그물망을 편성하도록 한다. 각 요소는 텍스트라 는 총체 안에서 각기 고유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모든 것 을 조화스럽게 유지,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필수적 이다. 하나의 문장이 문법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광범위 한 문학적 단위로서의 언술이나 텍스트도 자기에게 고유 한 문법을 준수해야 한다. 문법 규칙은 보편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구조 에도 상응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춘향은 이 도령을 사랑한다"라는 문장에서, 춘향은 주어이고 이 도령은 보 어이며 사랑한다는 동사는 술어라는 분석만으로는 부족 하다. 여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춘향과 이 도령 은 각자 하나의 주제적 가치(une valeur thematique)를 가지 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령은 춘향의 남편 혹은 그녀의 아들, 혹은 이웃 사촌, 그녀의 사랑하는 애완 동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주제적 역할은 문장의 의미 작용 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문장에는 세 가지의 수준 들이 있다. 예컨대 외견상의 수준에서, 춘향은 독자들이 문장의 처음에 발견하는 이름이다. 통사론의 수준에서, 춘향은 문장의 주어에 해당한다. 주제적 수준에서, 춘향 은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는 부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텍스트의 외견상의 수준에서, 독자들은 텍스트에 사용 된 구체적인 단어들을 보고 읽는다. 이미 이 수준에서 문 장의 구조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데, 이를 표면 구조들 (les structures de surface)이라 한다. 이런 구조에 대한 연구 는 수사학이나 문학 구성의 분석(analyse structurelle)에서 오래 전부터 해왔다. 하지만 이 구조들은 아직 기호학의 대상은 아니다. 기호학은 표면 구조보다는 더 깊이 들어 가 감추어져 있는 수준들을 탐색한다. 기호학은 먼저 텍 스트에서 사건을 발생시키는 작용들(opérations: ···한 다' 라는 동사로 대표되는 행위를 지적함), 곧 설화성(說話性, narrativite)을 일차적으로 분석한다. 문장이 통사론의 규 칙들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언술도 설화성을 지배하는 상당수의 규칙들을 준수하고 있다. 이야기의 이 같은 구 조들을 설화 구조들(les structures narratives)이라 한다. 그 다음에 독자들은 텍스트의 주체적 가치들을 분석할 수가 있다. 이 수준에도 텍스트의 의미론적 혹은 주제적 가치 들 사이의 관계들을 결정하는 규칙들이 있다. 우리는 이 수준을 언술 구조들(les structures discursives)이라 한다. 설 화 구조와 언술 구조만이 기호학의 탐구 영역에 속한다. 이 두 수준의 분석 작업을 보충하기 위해 소위 기호 사각 형(le carré sémiotique)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텍스트의 작 용들과 의미론적 가치들의 관계들을 검증해 볼 수 있는 것으로서 텍스트의 논리적-의미론적 수준을 탐색하는 것 이다. 그런데 문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언술에도 세 가지 층위 (層位)가 있다. 언술의 외견상 수준으로서의 표면 구조 와 설화 구조, 언술 구조가 그것이다. 여기서 설화 구조 와 언술 구조만이 기호학의 연구 대상인데, 기호학은 분 석가들에게 이 구조들을 발견하도록 하며, 또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적용하던 그 구조들의 규칙을 의식하도록 도와준다. 이 규칙에 대한 의식화는 텍스트를 분석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제 독자는 텍스트에 접근하는 길을 알게 되며 또 텍스트 자체가 허락하는 의미 작용과 허락하지 않는 의미 작용에 대한 식별을 할 수 있게, 된 다. 〔방법적 적용〕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해서 텍스트 해 석은 엄격한 절차를 밟아 이루어진다. 그 단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텍스트의 발췌 : 하나의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기 위 해서는 먼저 텍스트 시작 부분과 끝나는 부분을 알아두 고 문학적 단위의 한계를 정해야 한다. 이 원칙은 대단위 텍스트(macro-texte, 창세기라는 책 전체의 텍스트)를 분석할 때나 소단위 텍스트(micro-texte, 창세기 11장 1-9절의 바벨 탑의 이야기)를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리 고 성서의 장절의 구분은 아주 후대에 도입되었고 또 오 늘날의 현대 역본이 절분하는 단락의 구분과 그것에 붙 이는 제목들도 매우 자의적이기 때문에, 기호학자는 분 석하려는 성서 텍스트의 한계를 정하기 위해 텍스트 자 체에 의존해야 한다. 그는 텍스트의 표면상에 나타나는 시간, 공간, 그리고 행위자(acteurs)의 변화라는 지표들을 출발점으로 한다. 이것은 연극의 장면 전환에 비교될 수 가 있다. 한 장면이 바뀔 때마다 다른 배우들이 등장하고 또 시간과 공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기에다 열쇠가 되는 단어들, 혹은 후렴 등의 문체적 요 인들을 참조하여 텍스트의 발췌 작업을 할 수가 있다. 설화 분석(l'analyse narrative) : 먼저 텍스트 안에서 한 등장 인물(행위자)에게 일어나는 변형을 찾는 작업이다. 그 다음에 정해진 해석 방법에 따라 이 변형은 텍스트 안 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또 어떻게 평가되는가를 세심하게 알아본다. 언술 분석(l'analyse discursive) : 이 단계에서는 텍스트 의 의미론적 가치들을 관찰한다. 텍스트의 의미론적 구 조들과 가치들 사이에 있는 관계들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탐구한다. 그 과정은 동일한 의미론적 장에 연관되어 있 는 모든 요소들을 집결시킴으로써 텍스트에 있는 여러 요소들을 주제(행위자, 시간, 공간)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다. 이렇게 함으로써 텍스트의 결속성을 부여하는 하나 혹은 둘의 기본적인 대립으로 압축시켜 관찰한 의미론적 가치들이 지시하는 핵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호 사각형 : 기호학적 분석에 있어서 총체적인 관점 을 제시하기 위해 전(全)과정에서 얻은 결과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위의 설화 분석과 언술 분석 사이의 관계는 기 호 사각형이란 메커니즘을 통해 이원적 논리로 검증될 수가 있다. 인간 정신은 이원적 논리로 사고하며, 어느 한 사항은 반드시 다른 또 하나의 사항에 호소한다. 그리 고 어느 한 사항은 다른 또 하나의 사항에 모순적이거나 혹은 대립적일 수가 있다. 이 기본적인 대립이 텍스트의 총체를 통일시키고 그것에 결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 런데 근래에는 이 기호 사각형의 구축은 기호학적 접근 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향 이 있다. 〔특 징〕 기호학은 보통 독자들이 텍스트에 습관적으로 던지는 질문들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질문들을 제기한 다. "텍스트는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기호학은 텍스트를 쓴 저자의 의도를 탐구하지 않고 심리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 이유로 이 학 문은 독자가 텍스트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는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기호학은 엄격하게 텍스트에만 국한시켜 그 의미를 탐구하고 따라서 텍스트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법칙은 텍 스트 안에 그 무엇이 있어서 텍스트를 일관성 있는 하나 의 총체로 결속시켜 주고 있으며, 또 그 무엇이 텍스트를 읽혀질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실체로 만들고 있다는 관 점을 전제하고 있다. 바로 이런 관점을 통해 기호학은 텍 스트를 분석하고 있다. "텍스트 안에서 무엇이, 또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가? 어떻게 텍스트는 짜임새 있는 부분들을 일관성 있는 하나의 총체로 유지하는가?" 독자들은 이런 기호학의 탐 구를 통해 얻은 연구 결과에 의해 성서 분석에 있어서 지 식을 획득하는 데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 가운데 하느님의 활동을 실감하게 되고 그 성서 이야기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객체-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분 석 작업은 텍스트의 의미를 즉각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다. 텍스트의 구조에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독자 이다. 그렇지만 그 분석 작업은 우선 텍스트의 조직망을 파악할 수 있게 하여 텍스트가 어떤 의미는 허락하고 어 떤 의미는 배제하는가를 발견하도록 해준다. 텍스트의 구조는 독자들로 하여금 아무것이나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으며, 또 독자의 주관을 주장하도록 하는 것을 배제시 켜 준다. 〔평가와 한계〕 기호학적 해석 방법론은 여러 사람들이 행동하고 고민하는 것을 드러내는 텍스트의 실재 세계를 주의 깊게 읽고 분석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단순한 어떤 사상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의 인간의 체험 또는 텍스트 를 통한 하느님과의 실존적 만남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론이다. 또한 기호학은 보통 독자들이 성서 학자라는 전문인이 아니더라도 성서 본문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이며, 어떤 텍스트이건 상관없이 적용될 수 있는 개방성을 지닌다. 기호학은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 지만 또한 한계점도 지닌다. 기호학은 성서 주석 방법의 전부가 아니다. 이 새로운 학문은 여러 주석 방법론들 중 에서 하나일 뿐이다. 특히 역사-비평적인 방법론과 견주 어 볼 때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라고는 하나, 방법 자체가 너무 전문적이라는 점과 함께 텍스트 자체 안에 갇힐 수 있는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해석 방법론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모든 감정이나 지 식, 고정 관념 및 선입견을 뒤로 하고 아주 객관적으로 텍스트에 주의력을 총집결하여 읽는 훈련, 언어에 대한 감각, 인내심이 요청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 다. 이러한 조건들을 존중하는 한에서 기호학적 방법론 은 역사-비평적인 방법론 및 다른 여러 해석 방법론들과 보완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론은 특히 모 든 학문 분야의 지식인들 사이에 일반화된 분석 방법인 만큼 오늘날의 성서 해석 방법에 있어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성서 해석 방법론) ※ 참고문헌 A.J. Greimas, Sémantique structurale, Paris, Larousse, 1966/ A.J. Greimas, Maupassant, La sémiotique du texte : exercices pratiques, Paris, Seuil, 1976/ M.C. Escalle · J. Escande J.C. Giroud, Une initiation à I'analyse structurale, Cahiers Evangile n. 16, Paris, 1978/ J.C. Giroud · L. Panier, Sémiotique. Une pratique de lecture et d'analyse des textes bibliques, Cahiers Evangile n. 59, Paris, 1987/ W. Vogels · M. Glazier, Reading and Preaching the bible : A new Semiotic Approach, Wilmington, 1986/ 서인석, 《성서와 언어 과학-구조 분석의 이론 과 실천》, 성바오로출판사, 1984/ 서인석, 《기호학 교육론-복음 서의 이야기》, 성바오로출판사, 1989/ D. 팟테 저, 이승식 역, 《구 조주의적 해석이란 무엇인가?》, 한국신학연구소, 1987. 〔徐仁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