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 본당

吉音洞本堂

글자 크기
2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성북구 길음1동 537-28 소재. 1944년 11월 3일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칠고. 관할 구역은 돈암1동,정릉1동, 길음1~3동. 〔교 세〕 1944년 280명, 1967년 8,333명, 1981년 5,649명, 1993년 5,914명. 〔역대 신 부〕 초대 신인식(申仁植) 바오로(1945), 2대 이복영(李 福永) 요셉(1946), 3대 최상준(崔尙俊) 시몬(1946~1947. 9), 4대 오연희(吳然喜) 마티아(1947.9~1950. 10), 5대 박 일규(朴一圭) 안드레아(1950. 11~1956. 12), 6대 임세빈 (林世彬) 요셉(1956. 12~1967.8), 7대 박귀훈(朴貴勳) 요 한(1967. 8~1968. 10), 8대 이창숙(李昌淑) 그레고리오 (1968. 10~1969. 3), 9대 이용선(李容善) 베드로(1969. 3~1972. 12), 10대 나상조(羅相朝) 아우구스티노(1972. 12~1976. 6) , 11대 이삼복(李三馥) 요한(1976. 6~1977. 1) , 12대 장흥선(張弘善) 요셉(1977. 1~1980. 3), 13대 양홍 (楊弘) 에우세비오(1980. 5~1983. 9), 14대 김충수(金忠 洙) 보니파시오(1983. 9~1989. 10), 15대 한희동(韓熙東) 그레고리오(1989. 10~1994. 9), 16대 남국현(南國鉉) 요한 (1994. 9~현재). 〔설립 및 발전〕 1942년 2월 혜화동 본당 관할의 미아 리 공소가 정금성 회장 집인 길음동 537번지에 설립되었다가 1944년 11월에 분리되어 미아동 본당으로 승격 하였다. 본당 설립 당시에는 창동, 우이동, 수유동 일대 를 관할 구역으로 하고, 공소 설립 때에 매입했던 공소강당을 그대로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나 몇 년 후 길음동 536의 8번지로, 1950년 5월에는 다시 미아동 557번지 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6 · 25 동란으로 사목 활동이 사 실상 중단되었다가 1953년 7월에는 성당 서쪽에 있던 집 한 채를 매입하여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약 2~3년 간 신자수가 급증하여 성당 신축이 불가피해졌다. 1957년 6월, 이전에 매입해 둔 부지에 성당 신축 공 사를 시작하여, 1958년 성탄절을 앞두고 노기남 대주교 집전으로 연건평 176평의 석조 성당과 30평의 사제관 봉헌식을 가졌다. 1962년에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 대리에 약 4만 평 정도의 본당 묘지도 마련하였다. 한편 1956년 미아리 공소 시절부터 성가 소비녀회 수녀들이 이곳에 파견되어 활동해 왔으나 1966년 1월에야 정식으 로 분원이 설치되어 상주하게 되었다. 1967년 4월 수유 동 본당 분할에도 불구하고 그 해 연말의 신자수는 8,333명에 이르렀으므로 1968년 7월부터 10월 사이에, 월곡동(月谷洞) 본당, 정릉동(貞陵洞) 본당, 삼양동(三陽 洞, 현 미아3동) 본당 등을 차례로 분리시켰다(교구에서 본 당 설립을 인준한 것은 세 본당 모두 9월 23일). 그 동안 본당 의 숙원 사업이었던 주일학교 교실을 마련하기 위하여 1975년 주일학교 신축 기성회를 발족하고, 바자회 등 각 종 모금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그 결과 1978년 3월 주일학교와 수녀원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979년에 완공할 수 있었다. 1982년 9월 미아동 본당에서 길음동 본 당으로 그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1985년 2월에 지하 1 층, 지상 3층, 연 건평 481.42㎡의 건물을 신축하여 현 재까지 사제관과 수녀원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또한 1987년 기존의 성당을 허물고 새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4월 지하 1층, 지상 2층, 연 건평 2,834.98㎡의 새 성당을 완공하고 여기에 성당과 함께 교육관, 사무실 등을 마련했다. (→ 서울대교구 ; 혜화동 본당)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