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흉 화복
吉凶禍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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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혼례를 묘사한 민화 <평생도>
동양 전통의 신앙이나 사상, 인간의 운세, 행위와 점복 (占 卜) 등에서 사용되는 용어의 하나. 길(吉)은 '선하 다. '좋다' , '옳다' 는 의미로, 선비의 말을 따르면 좋은 결과가 온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서 선비는 통상 글을 읽는 사람이라기보다 점괘를 읽어내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나중에는 의리에 밝은 사람, 지식인을 지청하기도 하였다. 흉(凶)은 웅덩이에 사람이 얽혀 빠져 있는 모습 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극악한 상황을 초래하는 것을 뜻 하며, 화(禍)는 '해로움' 또는 '신이 복을 내리지 않음' 을 뜻한다. 여기에는 재난, 재앙, 근심, 죄의 뜻도 있다. 복(福)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 즉 장수, 부귀, 공명을 다 갖추고 있음을 가리킨다. 흔히 말하는 만사 형통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기》(禮記) <제 통〉(祭統) 편에 "복은 다 갖추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갖추어진다' 는 것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된다는 말이다. 길흉과 화복은 상호 친근 개념으로 길은 복에, 화는 흉에 가깝다. 〔길흉 화복과 운명〕 전통적으로 길흉 화복은 명(命)과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민간 신앙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른바 사주 팔자를 본다든가 또는 관상, 수상을 보는 등의 행위를 포괄적으로 산명(算命) 즉 '명을 셈한다' 거나 추명(推命) 즉 '명을 미루어 본다' 라고 하는데, 이는 타고난 명에 얼마만큼의 길흉과 화복이 들어 있는지를 알아내려는 행위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명은길흉의 주인" (王充의 《錀衡》 偶會 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명이 한 인간의 삶을 주재한다는 관념의 표현이다. 한대 의 사상가 왕충의 견해에 의하면, 명예는 정명(正命) , 수 명(隨命), 조명(遭命)이 있다. 정명이란 타고날 때부터 길한 것으로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복과 길을 구하지 않 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수명이란 힘써 몸가 짐을 바르게 하면 길복이 이르고, 정욕을 함부로 하면 흉 화를 초래하는 경우이다. 끝으로 조명이란 선을 행하여 도 악을 얻으며, 바라는 바를 얻지 못하고 흉화를 입는 경우이다. 사람이 얼마나 사는지를 뜻하는 명이 이렇게 세 종류로 나뉘는 것은 명에 인간의 합리적 사유로는 이 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요, 따라서 이 를 미리 알고자 하는 뜻에서 명을 계산(算命)하는 방식 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른바 운명의 관념은 매우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있 었다. 《논어》에서 "올바른 정치(도)가 행하여짐도 명이 요, 올바른 정치(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도 명이다" 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명은 국가 · 사회의 명이다. "명을 알 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라는 구절도 있는데 이는 한 개인의 명이다. 정자의 풀이에 따르면 이 구절은 명이 있음을 알고 이를 믿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명은 운 명, 즉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하여 볼 도리가 없는 한계를 뜻한다. 인간이 하는 일에 되지 않는 일도 있음을 알아서 스스로 적절한 한계를 설정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논어》의 교훈이다. 이러한 유가의 운명관에 대하여 묵가(墨家)는 이를 비판한 바 있다. 이른바 빈부 와 수요는 하늘에 달려 있어서 인간이 이를 늘리거나 줄 일 수 없다는 유가의 주장에 대해 묵가에서는 유가 학자 들이 후천적 개변의 성격을 지니는 학문을 강조하는 것 과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고, 역사적 사건을 들어 운명론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묵 가에 의하면 중국의 역사에서 하(夏)의 마지막 왕인 걸 (桀)왕과 은의 마지막 왕인 주(紂)왕 때에는 천하가 혼 란하였고 탕(湯)과 무(武) 때에는 천하가 안정되었는데, 이로 본다면 치란과 안위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요, 국가 나 개인의 명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명이 있음을 믿는 것은 상당한 해악을 초래한다고 하였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명만 의지하고 아무 일도 의욕적으로 하지 않는 폐단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묵가의 이러한 견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불합리한 일들에 대하여서는 별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길흉 화복과 귀신〕 길흉 화복의 관념은 본디 귀신 관념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주역》(周易)의 건괘(乾卦) 문언에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 또는 점치는 일을 맡은 사람을 뜻하는 대인이 "귀 신과 더불어 길흉을 주재한다" 고 하였다. 이는 귀신에 의하여 길흉이 좌우된다는 당시 사람들의 신념을 보여 주는 것인 동시에 역학(易學)의 최고 목적이 길흉을 주 재하는 데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대인은 귀신과 같은 주재력을 지닌 존재라는 뜻도 있고, 훌륭한 인간이 바로 귀신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길흉 화복이 인간의 최고 관심사요, 그것이 귀신에 의 하여 주재되므로 인간은 일찍부터 귀신 섬기는 일에 깊 은 관심을 가져왔다. 귀신을 잘 섬기면 길복(吉福)이 오 고 잘못 섬기면 흉화(凶禍)가 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런데 귀신 관념도 다른 관념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 라 바뀌어 왔다. 상고대의 귀신은 다분히 인격적인 존재 였다. 그리고 귀와 신의 개념이 분화되어 있었다. 신은 통상 천신이라고 하여 하늘의 영명한 주재력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귀는 사람 특히 죽은 조상을 가리키는 것이었 다. 즉 천신 · 인귀(天神 · 人鬼)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천신은 최고의 주재자이고, 인귀는 지상의 자기 후손들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후손들의 사정을 천신에 게 아뢰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조상신으로서의 인귀이다. 후손들이 이 죽은 조상을 잘 돌보지 않으면 인 귀는 천신에게 지상의 사정을 아뢸 때 그 후손을 적극적 으로 돕지 않게 된다. 따라서 후손들에게 조상을 잘 섬기 는 일은 길복을 얻고 화흉을 피하는 첩경이 되었다. 제사 를 잘 지내는 일이 복을 받는 길이라는 관념은 이렇게 형 성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찍부터 귀신론에 대하여 끊임없이 개념적 수정을 도모해 왔다. 즉 전국 시대 이래 로 음양론이 발달하면서 이것이 귀신론에도 적용되었는 데, 여기서는 귀와 신을 각각 음과 양의 두 측면으로 이 해함으로써 본디 자연 세계를 설명하던 한 쌍의 철학적 범주 개념이 그대로 귀신에 적용되어 음은 귀, 양은 신이 되었다. 그러다가 송대에 이르러 이학(理學)이 발달하면 서 더욱 정치(精緻)한 논리적 발달을 보여 귀신은 '음과 양, 두 기운이 저절로 이루는 작용' 〔良能〕 또는 '조화의 자취' 라고 설명되었으며, 인격성 외부에 존재하는 주재 자로서의 성격이 점차 약화되어 갔다. 〔길흉 화복과 점〕 중국 고대 경전에서 길흉을 가장 중 요한 개념으로 다루는 것은 《주역》이다. 《주역》이 나온 이유 자체가 바로 길흉을 판단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 다. 주역은 본디 점을 치는 책이었다. 점을 친다고 하는 것은 곧 하늘의 명령을 들으려고 하는 것, 또는 하늘에 판단을 의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점을 치는 것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 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난 뒤에 모 든 것을 하늘의 판단에 맡기는 일종의 절대자 신앙의 행 위라고 할 수 있다. 점을 치는 목적은 미래에 대한 불안 을 해소하는 것, 그 길흉 화복에 대한 의심 불안을 떨쳐 버리는 데 있다. 통상 우리는 심각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먼저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 전문가들에게 물어 본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경우에 마침내 절대자에게 기도를 하거나 점을 친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너에게 큰 근심이 있거든 마음으로 도모 해 보고, 주위 지성인들에게 물어 보고, 백성에게 묻고, 그리고 복서( 卜筮)로써 물어 보아라." 홍범은 왕이 정치 를 함에 있어 규범으로 삼아야 할 아홉 가지의 큰 범주를 가리키니 여기서 주인공 '너' 는 물론 통치자이고, '큰 근 심' 은 국가적 대사에 관한 것, 주로 전쟁, 기근, 질병, 제 사에 해당한다. 물론 점의 결과는 크게 길흉 화복의 범주 로 분류된다. 그러나 후일 점치는 방법은 다양하게 발달 하였으며, 어느 하나의 방법만이 절대적 효험을 갖는 것 은 아니다. 길흉을 판단한다는 것은 <주역》의 <경>과 <십익>(+ 翼)의 곳곳에 나타나 있으며, 64괘 가운데 62패가 그 행 위의 길흉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주역》에서 는 정당한 위치에서 하는 일, 그리고 중용을 취하는 행위 에 대하여는 대체로 좋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고, 아무리 좋은 범주에 속하는 일일지라도 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또 좋은 일일지라 도 극단에 이르면 오히려 화를 부른다는 것을 밝히고 있 다. 그러므로 비록 점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 내용에 서는 화복을 초래하는 행위의 양식을 합리적으로 알아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주역》에서는 점치 는 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한다. 점의 결과가 어떻게 나 오든지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을 때는 의미가 있지만, 자신의 의욕이 앞선 경우에는 오히려 점치는 자 에게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편 역학이 일반화되 면서, 그리고 이것이 철학적 · 윤리적 관점으로 이해되면 서 점을 치지 않고서도 점을 친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 경지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는데, 이는 인간의 인지가 점 차 깨이면서 그리고 유가적 덕성론이 발달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이러한 경향이 심화됨은 기존의 길흉 화복 관이 점차 인간의 윤리적 차원의 문제로 바뀜을 뜻한다. 즉 점을 치는 목적이 단순히 길흉을 알고자 함이 아니라 자신이 윤리적으로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 고자 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길흉 화복과 행위의 선악〕 길흉 화복이 귀신에 의하 여 주재된다거나 또는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입장을 떠나서 그것이 인간의 행위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상은 중국의 경우 춘추 시대 이후 나타나기 시작하였 다. 이는 '화와 복은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 '화복 은 문(門)이 없다' 는 말로 표현된다. 《서경》의 <탕고> 편 에 “천도(天道)는 선한 행위에 복을 내리고 음탕한 행위 에 화를 내린다" 고 하였고 《국어》(國語) <진어> 편에서 는 "오직 후덕한 사람이 능히 많은 복을 받고, 덕이 없는 데 복종하는 자가 많으면 반드시 스스로 상하게 한다" 고 하였다. 이처럼 덕과 복의 관계를 강조하는 사상은 이후 한대의 동중서(董仲舒)에게서 천인 상응설(天人相應說) 로 체계화된다. 동중서는 자연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재 이(災異) 현상은 모두가 인간 행위에 대한 하늘의 판단 결과라고 주장한다. 국가가 실도 패덕(失道悖德)하면 하 늘은 재해를 내어 경고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변을 내어 두려움에 떨게 하고, 그래도 돌이킬 줄 모르면 마침 내 패망에 이르게 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 후 송대의 장 재(張載)는 그의 《정몽》(正蒙) <지당> 편에서 "지극히 옳은 것을 덕(德)이라고 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을 복(福)이라고 한다. 덕은 복의 기초요, 복은 덕이 불러오 는 것이니 덕은 어느 경우에나 순조롭게 하지 않음이 없 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도를 얻기를 좋아한다" 고 하였 다. 여기서 덕은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라고 풀이되는데, 반드시 윤리적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 본적으로 성선설(性善說)의 전통을 갖고 있는 유가에서 는 덕을 윤리적으로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힘으로 이해 하려고 한다. 한편 후한대의 비판적 지식인 왕충은 본성과 운명을 구별하였다. 그는 선악은 본성과 관계하고 길흉은 명과 관계하는 것으로 규정하여 본성이 선하지만 명이 흉한 경우도 있고, 본성이 악하지만 명이 길한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선을 행하지만 화를 입는 경우는 본성이 선하나 명이 흉한 경우이고, 악을 행하지만 길한 경우는 본성은 악하지만 명은 길한 경우이다. 이처럼 그는 도덕적 선악 과 길흉 화복을 분리하여 양자 사이에 어떤 필연적 관계 가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이는 당시 사회에 널리 퍼 져 있던 천인 상응설을 근간으로 하는 복선 화음(福善禍 淫) 사상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인간 세상에서는 선한 행위에 복이, 음탕한 행위 에 화가 반드시 미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선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화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합리 적 이성의 요구, 도덕적 이성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실 제로 그렇지 않은 일이 너무 많기에 우리는 명을 알고자 하고, 또 점을 쳐보는 것이다. 〔합리적 화복관〕 일반적으로 세속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은 복을 받으려 하고 화를 피하고자 한다. 인간은 거 의 모든 노력과 행위의 동기가 이에 집중되어 있다. 점을 친다든가 또는 그 밖에 푸닥거리 등 음사를 하는 것은 모 두 복을 빌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데 그 뜻이 있다. 유가의 경우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곤(呂坤)의 《신음어》(呻吟) <수신> 편에서는 "복은 일상적인 것을 편안히 여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화는 풍성하고 꽉 찬 것보다 더 위태로운 것이 없다. 우 주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은 왕성하고 꽉 찬 다음 쇠퇴하지 않는 것이 없다. 왕성하고 꽉 찬 것에는 각기 분량이 있 으니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그것을 알 수 있다" 라고 하 였다. 또한 같은 곳에서 이르기를 "화복은 기운(氣運)이 요, 선악은 인사(人事)이다. 이치는 항상 상응하나 같은 종류 역시 서로를 찾는다. 만약 선한 행위에 복을, 악한 행위에 화를 준다는 말에 집착하여 상쾌하지 않는다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쇠하여질 것이다. 큰 기운은 역시 우연이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여 복을 받는 것이 절 반이요, 악을 행하여 화를 받는 것이 역시 절반이다. 음 탕하면서도 복을 받는 것이 절반이요, 선하면서도 화를 당하는 것이 역시 절반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면 서 복을 받는 경우 또한 절반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일은 우연이 아닌 당연(當然)이 지배하여야 한다. 선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복을 받기 위하여 선을 쌓는 것이 아니다. 악한 사람이 화를 받지만 화를 받으려 고 음탕함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선한 사람이 화를 당하 고 음탕한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니 나는 차라리 선하면 서 화를 받겠고, 음탕하면서 복을 요구하지 않겠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천도를 논함에 화복을 논하지 않고, 인사 를 논함에 이롭고 해로움을 말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이는 유가가 지니고 있는 화복관을 잘 나타낸 것이다. 유가에서는 주로 '길흉에는 그 들어오는 문이 따로 없 다' 〔吉凶無門〕 또는 '화복은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禍福由己)라고 하여 길흉 화복이 결국 인간이 초래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데 반하여, 도가 철학에서는 길복은 좋 고 흉화는 반드시 나쁘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 한다. '화복은 상생한다' , '화는 복이 기대고 있는 것이 며 복은 화가 잠복하고 있는 것이다' , '안전함과 위태로 움이 서로 바뀌고 화와 복은 서로를 낳는다. 화와 복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 〔禍福相倚〕 '화와 복은 서로 꿰어 있다' 〔禍福相貫〕, '화와 복은 서로를 낳는다' 〔禍福相 生〕, '화와 복은 그 들어오는 문이 같다' 〔禍福同門〕는 표 현을 주로 쓰고 있다. 이는 복을 좋은 것으로 화를 나쁜 것으로 분별하여 보려는 인식의 상대성을 지적하는 것인 동시에 좋고 나쁨의 상대적 안목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 는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유가와는 그 화복관을 달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고대 사회에서 주로 물질적 차원으로 이해되던 길흉 화복관은 자연 세계에 대한 지식의 확장 등 인간의 지혜 가 열림에 따라 합리적 · 존재론적, 그리고 윤리적 차원 으로 바뀌어 왔다.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탁월한 사 람〔君子〕은 이를 따름으로써 길하고, 일반인(小人)은 이 에 거슬림으로써 흉하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군자가 따 르려 하고 소인이 거슬리는 것은 바로 역의 이치, 천지의 이치인 의리이다. 길흉과 화복은 그의 인격, 그 행동의 원리에 따라오는 자연스런 귀결이며, 이롭고 해롭다는 것은 이미 물질적 개념이 아니다. 〔한국인의 길흉 화복관의 변천〕 화복은 자연의 재이 현상과 무관하게 인간 자신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하는 인문주의적 사고가 이미 삼국 시대에 나타나고 있다. 예 를 들면 고구려 태종 대왕(53~146)때 왕의 아우 백고(伯 高)와 우보(右輔) 고복장(高福章)이 "화복이란 따로 문 이 없고 오직 사람이 이를 부르는 것입니다. 마땅히 충의 로써 마음에 두고 예양으로 극기하며, 위로 왕덕을 쌓고 아래로 민심을 얻으면 부귀가 몸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 니다"라고 한 것이나 "착하지 않은 일을 하면 길한 것도 흉이 되고 착한 일을 하면 재앙도 복이 된다" 고 한 말은 길흉 화복이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덕의 유무에 관계되 는 것이니, 모름지기 극기(克己)와 적덕(積德)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백고의 '화복무문 유인소소 (禍福無門 惟人所召)는 <춘추좌전> 양공 23년조에 나오는 표현이 다. 또한 <춘추좌전> 장공 14년조에 "요(妖)는 사람의 허물로 인하여 생긴다. 사람에게 허물이 없으면 요가 저 절로 생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도 같은 사상이다. 신라 선덕 여왕 16년(647) 비담의 반란 때, 큰 별이 월 성에 떨어지니 비담이 이는 왕성이 망할 징조라고 하여 반란군의 사기를 진작시켰고, 반대로 여왕의 진영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들끓게 되었다. 이때 김유신이 '길흉무상 유인소소 吉凶凶無常 惟人所召)라 하면서 불덩이를 만들 어 역공세를 취한 기록(《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조)은 백고 및 <춘추좌전> 양공 23년조에 나오는 '화복무문 유인소 소' 를 인용한 것으로, 화복에 대한 당시의 의식을 잘 설 명해 준다. 의상(義湘) 또한 합리적인 화복관을 제공하 여 왕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토목 공사를 일으켜 백성을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문무왕 8년(681)에 지진과 거듭된 천체 이변 즉 성변(星變)에 불안을 느낀 왕은 왕성을 일신하고자 하여 의상의 의견을 물은 일이 있다. 이때 의상은 "비록 초야 모옥(茅屋)에 있더라도 정 치를 정도(正道)로 하면 곧 복업(福業)은 영원할 것이니 구태여 그렇게 할 것이 아니다. 더구나 백성들을 괴롭게 하여 성을 만드는 일 또한 유익할 것이 못된다"고 하였 다. 이같이 일부 지식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합리적 화복 관은 점차 일반인들에게로 확대되어 나갔다. 여말 선초에 다시 주목할 만한 화복관의 변화가 일어 났다. 유 · 불 교체기라 할 수 있는 이 시기에는 고려 초 부터 이어져 온 기복적 불교 신앙이 신유학의 전래 수용 과 함께 합리적 화복관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양상의 대표적인 경우를 정도전(鄭道傳)에게서 볼 수 있다. 정 도전은 그의 <심문천답>(心問天答)에서 선악 응보의 원 리를 성리학적 시각에서 설명하였다. 즉 인간은 항시 선 만 행하여야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그러하지 못하며, 또 한 선행에는 복이, 악행에는 화의 응보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러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재앙과 상서가 일정한 원칙대로 나타나지 않음은 이치의 문제가 아니라 기(氣)의 문제라고 설명하였다. 또 기에는 소장의 변화가 있는데 강성한 기세는 일시적 으로 이치를 가리는 일이 있지만, 이치는 불변하는 것이 므로,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보면 역시 선한 행위에는 복 이 이르고 악한 행위에는 화가 미치는 원칙이 지켜지는 법이라고 하였다. 정도전은 다시 그의 《불씨잡변》(佛氏 雜辨)에서 불교적 화복관을 비판하여 "하늘은 선한 자에 게 복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화를 내리는데, 사람은 선한 일에 상을 주고 악한 일에 벌을 내린다. 무릇 사람의 마 음가짐에 바르고 바르지 못함이 있고 몸가짐에 옳고 그 름이 있다. 화와 복은 각각 그 종류에 따라 반응한다. 《시경》에 복을 구하여도 반응이 없다고 하였고,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하였다. 무릇 군자는 화복의 문제에 있어서 자기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할 뿐이 다. 그러면 복은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르고 화는 피하 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진다. 저 불교에서는 사람의 옳고 그름, 바르고 바르지 않음을 논하지는 아니하고 그저 불 타에 귀의하면 화를 피하고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이 는 비록 십악을 범하는 큰 죄인이라도 부처에 귀의하면 화를 면한다는 것이요, 비록 도를 지닌 선비라도 부처에 귀의하지 않으면 면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설령 그 말이 헛되지 않다 하여도 모두 사사로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 요 공심(公心)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 조선 중기의 율곡 이이(李珥)는 이러한 수요(壽夭) · 부귀 등의 화복 현상을 이 · 기 · 수(理氣數)의 세 가지 원리를 내세워 풀이하였다. 그는 "이는 기에 붙어 있고, 기는 이에서 나오며, 수는 기에 인연한 것이니, 이른바 기라는 것은 이의 기요, 수라는 것은 기의 수이다"라고 하여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관성이 있고 그 작용은 서로 통하는 것이어서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장수와 요절을 수에 의하여 설명할 수가 있고, 기를 위주로 설명할 수도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가장 이치에 맞는 것은 이를 중심으로 하는 설명 으로 이는 선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화를 당하 는 것이다. 따라서 율곡은 음양, 복서, 점상 등은 도(道) 에 대한 해석과 기술로 나타난 것들인데, 이들은 도리에 어긋나고 인간에게 해로움을 주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 다. 정도전과 이이 등의 성리학적 화복관은 서학이 전래된 후 유학자들이 서학의 화복관을 비판할 때 기본 틀로 활 용되었다. 즉 화서 이항로(李恒老)나 신후담(愼後聃) 등 으로 대표되는 서학 비판자들은 서학 신봉자들이 화를 피하고 복을 받기 위하여 신앙 행위를 하지만, 그들의 경 건은 성심(誠心)의 경건이 아니고 그들의 두려워함도 성 심의 두려워함이 아니며 단지 이익을 탐하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였다. 천당 지옥설도 단지 그 동기가 복을 추구하고 화를 피하는 데 있을 뿐 의리를 추구하는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아무런 실제적 근거도 없고, 불교의 여설(餘說)과 혼합되어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유 인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그들 은 서학의 기본 입장이 통화(通貨)와 통색(通色) 즉 재 화를 유통하여 물욕을 충족시키고 색을 나누어 가져 정 욕을 충족시키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조선 시대에는 초 기부터 유학 입국을 표방한 만큼 유교적 합리주의의 기 치 아래 온갖 음사를 배격 퇴치하는 데 힘썼다. 그리하여 지도 계층에서는 유교적 합리주의적 화복관이 정착되었 으나, 일반 민중이나 부녀자 계층에서는 여전히 물질적 의미의 화복관, 그리고 길흉이 어떤 신비한 주재자에 의 하여 좌우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 복) ※ 참고문헌 곽신환, 《周易의 이해》, 서광사, 1990/ 方豪, 《東西方 對於 褔 的看法》, 中華文化復興月刊, 85期. 〔郭信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