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이 (1755?~1815)

金綱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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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세례명은 시몬. 충청도 서산(瑞山)의 부유한 중인 집안 출신으로, 주문모(周文謨) 신부 입국 전에 입 교하였다. 입교 후 얼마 안되어 동생 김창귀(金昌貴, 타 대오)와 함께 재산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고산(高山)으 로 이주하여 살았는데, 여기에서 박해를 피해 지방 교우 촌을 순방하던 주문모 신부를 만나면서 더욱 믿음이 강 해져 고산 지역에서는 유명한 교회 지도자가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 포졸들이 제일 먼 저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이를 피해 부상(負商)으로 생 활하면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신앙 생활을 위해 몇몇 신입 교우들과 함께 경상도 '머 루산' (현 英陽郡 石浦面 葡山洞)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형성 하였고, 훗날 다시 울진(蔚珍)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하인으로 있던 자의 밀고로 1815년(을해년) 4월 동생과 함께 체포되어 안동 진영에 수감되었다가 5월에 원주 감 영으로 이송되었다. 여기에서 동생은 혹독한 형벌을 이 겨내지 못하고 배교함으로써 전라도 보성(寶城)으로 유 배되었다. 반면에 그는 오히려 동생의 배교를 통한으로 여기며 더욱 신앙심을 굳히고, 형벌에 굴하지 않음으로 써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을 집행하기도 전에 형벌로 인한 상처가 심해진 데다가 이질까지 겹쳐 1815 년 11월 5일에 옥사하였다. (→ 을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日省錄》.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