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1902~1950?)
金慶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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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김경민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루도비코. 본관은 경주. 1868년 경상남도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한 김종륜(金宗 倫, 루가)의 증손자. 1902년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오산 리 사기막골에서 김홍연(요한)과 콘스탄시아(성명 미상) 의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용산 예수성심신학 교를 졸업하고 1931년 5월 3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 후 수원 본당(현 수원 북수동 본당) 보좌 신부를 시작으로 강원도 춘천과 홍천 본당에서 활동하였고, 건강 악화로 서울 주교관에서 요양하였다. 1936년 경기도 양평 마룡 리(馬龍里) 본당(현 용 문 본당)에 부임하였고, 1937년 8월 하우현(下 牛峴) 본당, 1943년 1 월 황해도 재령(載寧) 본당을 거쳐, 1946년 5월 안악(安岳) 본당으 로 전임되었다. 그러나 나날이 더해 가는 북한 공산 정권의 교회 탄압 에 신부들이 행방 불명 되자 교구장에게 보낼 유서를 작성하고 신변을 정리해 나가던 중 1950년 6월 24일 오전 11시경, 종교인 회의를 구실로 찾아온 안악 정치 보위부 원에게 임의 동행 형식으로 연행되어 간 후 행방 불명되 었다. (→ 안악 본당) ※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教會史刊行事業業會 《黃海道天主教會 史》, 1984.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