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우 (1916~1978)
金慶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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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우 신부.
부산교구 신부. 세례 명은 알렉시오. 경남 밀 양군 삼랑진읍 미전리 慶南 密陽郡 三浪津邑 美田里)에서 태어났다.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 學校)를 거쳐 성 유스 티노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42년 5월 3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해 6월 1일 대구 계산 동(桂山洞) 본당의 보 좌로 사제 생활을 시작 하였고, 1945년 12월 진영(進永) 본당의 제5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1946년 4월 10일 신설 진해 본당(鎮海本堂, 현 진해 중앙동 본당) 의 주임을 겸하다가 1947년부터는 진해 본당만을 전담 하였다. 그 해 1월 '경남 가톨릭 청년회' 를 조직하고, 1948년 6월 사제관과 수녀원을 마련하였으며, 지역 사회 개발을 위하여 성심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또한 샬트 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을 초빙하여 신자들의 신앙 생활과 전교에 많은 도움이 되게 하였다. 1950년 4월 15일 포항 본당(현 포항 죽도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임명 되었고, 11월 30일 경주(慶州) 본당의 제6대 주임 겸 근화여고(董花女高)의 제2대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본당 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교와 함께 본당의 공간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겨 어려운 가운데에도 본당 부근의 많은 집과 토지를 매입하였다. 한편 1951년 10월 5일 샬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회 수녀들의 협력으로 근화여고 에 1년제의 '근화여자고등기술학교' 를 병설하였다. 가 사과와 양재과 2개 반 60명을 모집하였는데, 소녀들은 물론 부인들도 큰 호응을 보였다. 1955년 1월 5일 부산 초량(草梁) 본당으로 전임되어 성당 신축을 시작, 251평의 대지 위에 건평 421평으로 1962년 8월 30일 축성하였다. 한편 1956년 11월 2일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꾸리아( '임마 꿀라따' 꾸리아)를 창 단하고, 1961년 3월 3일 성우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였 으며, 1964년 11월 15일에는 본당 주보 <겨자씨>를 부 산교구에서는 가장 먼저 발간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본당 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였다. 초량 본당에서의 11년 동안 5,144명의 영세자와 1,008명의 견진자를 탄생시 켰고, 부산교구 발전 계획위원회 가톨릭 운동 분과위 원 · 천주교 부산교구 유지 재단 법인 이사 · 부산교구 평 의원 · 부산교구 성음악 분과 위원 등으로 교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65년 12월 27일 부산진 본당(현 범일동 본당)의 주 임으로 임명되어 1966년 4월 10일 본당 주보 <부활>을 발간하고, 1966년 9월 18일자로 본당 명칭을 '부산진 본당 에서 '범일동 본당' 으로 변경하였으며, 그 해 12월 8일 범일동 성당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효과적인 전교 활동으로 부임 1년 만에 지식인의 집단 입교와 함께 630명의 영세자를 탄생시켰고, 주일학교의 교리 교사와 학급수를 확대하였다. 1968년 1월 25일 온천(溫泉) 본 당의 제3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데레사 유치원' 을 정식 인가받고 본당 주보를 발간하였으며, 구역장 · 통장 제도 를 신설하여 신자 상호간의 친목을 꾀하였다. 이어 1969년 4월 13일 서면(西面) 본당의 제3대 주임으로 전임되었고, 1971년 10월 12일 장승포(長承浦) 본당의 제6대 주임으로 임명되었으나 건강의 악화로 휴양하였 다. 1972년 11월 25일 김해(金海) 본당의 제7대 주임 으로 임명되었고, 1973년 11월 19일 거제(巨濟) 본당 의 초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이듬해 8월 26일 사제관을 완공하고, 9월 15일 성당을 준공 · 축성하였으며, 1975 년 3월에는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를 초빙하고 파티마 성모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이듬해 8월 본당 일 선에서 은퇴하여 부산 성 요셉 가르멜 수도원에서 수도 자들의 영성을 돌보다가 1978년 10월 19일 숙환으로 선종하였다. (→ 초량 본당 ; 포항 본당)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235호(1994. 12)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