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룡 (1906~1947)

金季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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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경북 영천군 화산 면 용평동(永川郡 花山面 龍坪洞)에서 태어났다. 성 유 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32년 5월 21일 드망즈 (Demange, 安世華) 주교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고 진주 본당(현 진주 옥봉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이후 12년 동 안 진주 지역의 복음 전파에 주력하였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지만 열심한 전교 노력으로 1937년 918명의 신자수를 기록했고, 신자수 증가로 성전 신축 문제가 거론되자 3,000원을 성전 건 축 기금으로 내놓았다. 여기에 고향을 방문 중이던 박재 선(朴在善, 베드로) · 재홍(在洪, 바오로) 형제의 헌금 3,500원, 그리고 본당 교우들이 힘을 합하여 13,000원 의 공사비를 마련하여 1938년 6월 초순 공사를 시작, 119평의 부지에 50평 규모의 붉은 벽돌 성당을 완공하 였다. 1943년 2월 26일 상주(尙州) 본당으로 전임되어 공 석 중인 퇴강리(退江里) 본당과 목가 · 하송 · 신흥 · 병 암 등지의 공소도 책임 맡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전교하였다. 그런데 상주 본당에 부임한 시기는 일제의 야욕과 수탈이 어느 때보다도 극심해 어려운 생활을 꾸 려 나가야만 했다. 주일이면 성당 뒷자리에 일본 경찰이 지키고 앉아 감시하는 가운데 미사를 봉헌해야 했고, 신 자들과 신부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드나드는 일본 경찰과 자주 대면해야 했다. 1947년 5월 22일 하 양(河陽) 본당의 주임으로 임명되어 새 임지를 향해 출 발 준비를 하던 중 6월 2일 급성 맹장염으로 선종하였 다. (→ 옥봉 본당 ; 상주 본당)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233호(1994. 10) .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