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가톨릭 교회라고 불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간단히 로마 교회라고도 불리며, 로마 주교(교황)를 으뜸으로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로마 교회라는 말은 별로 사용되지 않고 가톨릭, 천주교(天主敎), 성당(聖堂)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구교(舊敎)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리스도교의 내용을 그 본질로 하고 있으며, 전세계에 약 10억의 신자가 있고,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큰 교회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로마라는 형용사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였다. 처음 로마 교회는 로마 주교의 관할 아래 있는 지역 교회의 의미를 가졌었다. 그러나 후에 동방 교회에 대립되는 서방 교회, 많은 이단들에 대한 정통 교회, 그리고 종교 개혁 이후로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보편적(가톨릭) 교회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는 자신들을 로마인으로 보지 않는 가톨릭 신도들도 있고, 자신들을 가톨릭 신도로 여기지만 교황의 권위는 받아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영국 성공회, 정교회, 동방 교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의 일부). 이들 후자들은 로마 가톨릭이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아직 교회로서 시작되지 않았다고도 한다. 이들에게 로마 가톨릭은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의 한 종파일 뿐이다. 예컨대 장로교나 감리교 등과 다를 바가 없다. 어원상으로 가톨릭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반대말은 프로테스탄트가 아니라 종파주의(sectarianismus)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구원되지 못한 죄의 세계에 대하여 자기 교회만을 참 신앙인의 공동체로 여기며 세계에 대하여 심판을 선포하고 이를 회개시키려 하고, 대화를 거부하고 일반 사회의 관심사나 정치적 종교적 관심에 협력하지 않는 종파심을 부정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전세계의 모든 지역 가톨릭 교회의 친교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과 역사〕 베드로와 베드로 봉사직 : 로마 교회는 교황의 관할 아래 있는 지엽적 교회라는 한정된 의미를 갖지만 그 원천은 베드로 위에 설립된 교회로서 한정된 의미를 벗어나 있다. 교회 초기에는 로마 교구나 교황청 도 존재하지 않았고 로마 수위권도 없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가 제자들을 불러모으고 부활 후에 베드로에게 사목권을 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교회의 공동체 안에 있는 독특한 정체를 가톨릭 교회에 주는 것 은 로마 수위권이 아니라 베드로의 수위권이다. 베드로는 열두 제자의 첫 자리를 차지하며(마르 3, 16-19 ; 마태 10, 1. 4 ; 루가 6, 12-16), 그들의 대변자이고(마르 8, 29 ; 마태 18, 21 ; 루가 12, 41 ; 요한 6, 67-69), 부활한 주님의 첫 사도적 목격자이다(1고린 15, 5 ; 루가 24, 34).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그는 로마 교회의 주교로 봉사하였고, 주님으로부터 천국 문의 열쇠, 즉 맺고 푸는 권한을 받았다(마태 16, 13-19). 또한 다른 사도들과 협의하여 일을 결정하고 그들에 의해 보내지고 또 요한과 함께 거의 한 팀을 이루어 행동하기도 하였다(사도 3, 1-11 ; 4, 1-22 : 8, 14).
사도 시대 이후 : 2세기 후반부터 교회는 그리스-로마 세계의 문화를 접하면서 선교와 관리를 위해 로마 제국의 조직을 취하였다. 이 시기에 베드로가 로마에 교회를 세우고 순교했다는 전통이 형성되었다. 첫 5세기 동안 로마 교회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 탁월하였다. 멀리 떨어진 교회들의 삶을 중재하였고, 신학적 논쟁을 조절하였으며, 교리나 윤리적 문제에서 다른 종교들과 상의하였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공의회에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로마 교회는 세계에 주어진 모든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중심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베드로와 로마 교회의 주교들 간의 협력 관계는 교황 레오 1세(440~461) 때에 본격화되는데, 그는 베드로가 로마의 주교를 통해 온 교회에 계속 말하고 있다고 선언하였다. 로마 교회는 수많은 이단에서 교리 논쟁을 벌이면서 정통 교회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고, 동서 로마 제국의 분열로 그리스도교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로 분열되자 동방 교회에 대립된 교회로서의 의미도 갖게 되었다.
종교 개혁과 트리엔트 공의회 : 16세기 루터 등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갈라 지고, 프로테스탄트 일각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이를 로마 교황 중심의 작은 교파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들은 로마 교회를 로마교(Romanism), 가톨릭 신자들을 로마교도(Romanisits), 혹은 교황 추종자(Papists)로 경시하기도 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종교개혁으로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현재 모양의 가톨릭 교회의 기초를 닦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본성(인간적 삶)과 은총에 관한 가톨릭 교리를 분명히 하고, 구원론과 관련하여 인간적 노력을 강조한 펠라지우스주의(Pelagianismus)와 하느님의 주도권을 강조한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us) 사이에서 중간 노선을 취하였다. 일곱 가지 성사를 정하고, 사제 교육과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는 성인 공경, 마리아 신심, 성체 신심, 대사(大赦), 교계 제도의 권위, 교회의 성사 생활에서의 사제의 본질적 역할 등 프로테스탄트로부터 신랄하게 공격받던 교리, 봉헌, 제도를 강조하였다. 반면 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 중심, 영성, 성체성사의 공동체적 본성, 교회의 생활과 선교에 있어서 평신도의 책임 등과 같은 다른 중요한 요인들은 덜 강조되었다. 가톨릭 교회는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선교사에 의해, 그리고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예수회에 의해 대서양을 건너 인도와 중국, 일본, 아프리카, 아메리카에까지 전파되었다. 또한 포교성성(Congreation for the Propagation of the Fiath)이 새 선교 사업을 위해 1622년에 설립되었다. 17세기 초 가톨릭은 교회 내부로부터 인간 본성을 완전히 부패한 것으로 보고 예정론을 전개하며, 엄격하고 금욕적인 삶을 강조한 얀세니즘(Jansenism)의 도전을 받았다. 로마 교회가 얀세니즘에 반대하자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이 이를 프랑스 교회 독립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 갈리아주의(Gallicanism)가 신학 운동보다는 민족 운동으로 일어났고, 교황이 아니라 세계 공의회가 교회 안에서 최상의 권위라는 공의회 우의설(公議會優位說)이 대두되었다. 갈리아주의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에서 단죄받았다. 이 공의회는 교황의 무류적 가르침을 선언하였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정치 · 경제 · 사회 발전과 학문의 발전은 가톨릭 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근대주의는 교의나 신학에 관한 논쟁에서 진보적 입장을 취하였다. 비오 10세는 근대주의를 단죄하며, 성직자에게 반근대주의 서약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근대주의자들은 비난받았던 입장들 중 일부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반영하였으니, 성서의 역사적 진실성의 발견과 교의의 발전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전에도 진보적인 운동은 있었다. 전례 운동이 활발해지며면서 제단과 신자들의 간격이 좁혀졌고, 성서 운동은 교황청을 자극시킴이 없이 비판적 해석 작업을 하였다. 평신도 사도직이 활발하여 비오 11세와 12세가 교황으로 재위하는 동안 많은 평신도들이 교회의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특별히 사목에 관심을 두었으며, 교회의 문을 세계를 향하여 열고, 교회를 하느님 백성과 성사로서 강조하였다. 또한 성직자(ιεραρχία)를 하느님 백성의 일부로, 권위를 지배가 아니라 봉사를 위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주교는 단순히 교황의 사절이 아니며, 평신도는 그들 주교의 도구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하였다(교회 헌장 참조). 다음과 같은 내용들도 강조되었다.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읽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해야 하며, 교회의 선교는 인류 역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데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사목 헌장). 교회는 스스로 쇄신을 필요로 하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측은 종교 개혁으로 인한 교회 분리를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을 서로에게 열어야 한다(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특 징〕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로마' 와 '가톨릭' 은 교회를 한정하는 형용사가 아니라 교회와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게 해주는 형용사이다. '로마' 와 '가톨릭' 의 관계는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의 변증법적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가톨리시즘은 보편적이다( '틀' 이 없다)라는 말로써, 가톨릭 교회가 '가톨릭적' 인 것은 그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여 있고, 그리스도로부터 온 인류의 구원의 도구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가톨리시즘은 교황이나 칠성사 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단체적인 신념이기 이전에 인간 실존에 대한 이해이며 확신이다. 교회가 '가톨릭적' 이라는 것은 교회의 모든 인간과 온 인류를 위한 구원과 신앙을 선포한다는 의미이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의 구원과 신앙을 가톨릭 교회 안에서 본다. 따라서 이 말을 가톨릭이라는 좁은 범위로 한정시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가 교회의 네 가지 특징을 이해하는 데서 분명해진다. 이 특징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 따라 오직 하나의 교회만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유일한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교회 8항)고 가르친다. 여기서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 in)는 표현은- 'subsist in' 의 내용으로 봐서-참되고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가톨릭 교회' 라는 모습으로 구체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교회가 단순히 역사적 형태인 가톨릭 교회와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공의회가 가톨릭 교회 조직 밖에서도 성화와 진의 요소가 많이 발견됨을 인정한 것으로 알 수 있다(교회 8항). 교회의 네 가지 특징은 가톨릭 교회의 특징만이 아니라 교회의 특징으로 이해된다. 가톨릭 교회 안에는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적인 형태가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가톨릭의 조직 신학, 교의와 전례 생활, 특히 성체성사, 가지각색의 영성, 수도원, 사도직, 정의와 평화 및 인권에 대한 공식 가르침, 그리고 주교단과 베드로의 직무 등에 표현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성사, 중재, 친교의 원리를 실천하는 데에서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들과 차이를 보인다. 가톨릭과 비가톨릭의 차이는 이 세 가지 원칙에 따라 가능될 때 그 접근이 더욱 분명해진다. ① 성사(sacramentum) : 성사는 전형적인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표지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성사를 "하느님의 감추어진 현존에 스며든 실재"로 정의 내렸다. 하느님은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신적 실재는 인간적인 것과, 초월성은 내재성과, 영원성은 역사성과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견해에 반해서, 성사적 전망은 인간 안에서 신적인 것을, 유한한 것에서 초월적인 것을, 역사적인 것 안에서 영원한 것을 '보는' 것이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한정되고, 역사적인 모든 것은 하느님의 현존을 적극적으로 알게 해주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물질적 실재를 통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하느님과 만나고 하느님이 우리와 만나는 가장 큰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교회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만나고 그리스도가 우리와 만나는 주요 성사이다. 여러 성사들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회적 만남이 표현되고 거행되는 표지이며 도구들이고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효험이 있다. 이런 식으로 가톨릭은 은총(신적 현존)이 본성(인간적 삶) 안에 적극적으로 들어오고 이를 변형시킨다고 주장한다. 인간적 실존은 이미 은총받은 실존이다. 본성적 역사적 조건 안에 있는 인간의 실존이 근원적으로 하느님을 향하여 있고, 세상의 역사가 동시에 구원의 역사인 것이다. 그리하여 가톨릭 신도들에게는 진정한 인간 발전과 정의와 평화와 자유와 인권을 위한 투쟁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운동의 일부분이 된다(사목 39항). 이런 성사론에 근거하여 가톨릭은 하느님이 인간의 삶과 역사 안에 진정으로 현존하신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세계는 비록 타락했지만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에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으로 구원된 것으로 본다.
② 중재(mediation) : 성사성의 원리의 결과가 중재의 원리이다. 성사는 표징일 뿐 아니라 표징하는 원인이다. 성사가 은총을 표지하는 한 은총의 원인이기도 하다. 교회는 하느님의 확실한 표징과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존이고, 또 성령의 궁전이기에, 자기의 선교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가톨릭 신도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성사 행위 안에 현존할 뿐만 아니라, 성사적 행위를 통해 그리고 성사적 행위 안에서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달성하신다. 그리하여 창조된 실재는 하느님의 현존을 담고 반영하고 구체화할 뿐 아니라, 이 현존을 초래한다. 하느님은 양심의 내부나 의식의 내면적 깊은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중재된 체험이고, 역사적인 것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사업을 하신다는 것이 중재에 대한 가톨릭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가톨릭은 볼 수 없는 영적인 하느님이 볼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 현존하시고, 이 볼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은 거룩하고 신적인 현존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이해한다. 중재 원리에 대한 가톨릭의 언표(言表)는 예컨대 서품과 사제 직무를 강조한 데서 분명해진다.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는 임의로 또는 우연히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에 현존하시고 모든 것을 위해 일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현존이 특별히 초점 맞추어진 순간들과 행동들이 있다. 중재자로서의 사제의 기능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만남을 제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과 궁극적으로 전 공동체의 구원을 위해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중재의 원리는 가톨릭이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의 위치를 강조한 데서도 설명된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받아들인 그런 이유로 구원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수용한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는 기꺼이 마리아를 공경(흠승이 아님)한다. 이는 가톨릭이 마리아를 신적인 존재나 초피조물이나 주님의 경쟁자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상징이나 형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③ 친교(communio) : 가톨릭 교회는 친교의 원리를 확신한다. 하느님께 이르는 인간의 길과 인류에 이르는 하느님의 길은 중재될 뿐 아니라 친교의 길이다. 신과 인간의 만남이 대개 인격적이고 개인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만남은 여전히 친교적이며, 신앙 공동체의 중재에 의해 가능하다. 가톨릭 교회는 성사들, 직무 그리고 다른 제도적 요인들과 형태를 통하여 구원을 중재하고, 그리스도의 성사로서 그리고 성인들과 하느님 백성의 친교로서의 교회의 자리를 강조하였다.
〔신학과 교리〕 성사와 중재, 친교의 원리는 중요한 모든 신학적 질문에 대한 가톨릭 사상과 가르침의 골격을 이룬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교회 모두가 한 하느님, 한 주님, 한 교회, 한 신앙을 찾고 있기에 여기서는 이에 대한 중복된 설명을 피하고 교회 일치 차원에서 가톨릭 교리를 몇 가지 정리한다(삼위일체, 하느님, 그리스도 등은 해당 항목 참조)
계시와 신앙 : 가톨릭 교회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사도들과 복음 저자들 및 인간 본성과 인간의 사업들을 통해 인류에게 자신을 전달하신 하느님을 신앙한다. 가톨릭 신앙은 자신의 인격과 사건 안에서 하느님을 완전히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주님과 구세주로,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의 하느님 현존의 위대한 성사로서 받아들인다. 가톨릭 교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라 신앙은 이성과 조화된다고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신앙주의(fideism)를, 다른 한편으로는 합리주의를 배척한다.
창조와 원죄 : 가톨릭 교회는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한 분 하느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신념을 고수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선하심을 나누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인류를 구원하고자 태초에 무(無)로부터 세상을 자유롭게 창조하셨다. 천지 창조 때부터 하느님의 일에 동참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전 인류의 머리일 뿐 아니라 온 창조의 정점이다. 이런 창조관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태초에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아 창조된 인간이 죄를 지어 영육간에 고통을 당한다는 교리도 갖고 있다. 원죄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능력에 반하는 죄 중에 태어났음을 말해 준다.
본성과 은총 :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역사적으로 갈라놓는 주요 논쟁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인간이 정의 롭게 되고, 또 구원될 수 있는가? 가톨릭은 인간 혼자의 힘으로 구원된다는 펠라지우스(Pelagius)의 입장에 반대한다. 그러나 하느님에 의해서만 구원된다는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피조물이기에 자신의 구원에 대해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는 견해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훼손시키며 그리스도교 삶에 수동적으로 접근하게 한다. 인간은 신앙이나 공로만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새 창조(갈라 6, 15)에 걸맞는 일에 넘쳐흐르는 살아 있는 신앙에 의해 구원된다. 은총의 상태에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현존에로 마음을 여는 것이다.
예수와 구원 : 가톨릭 교회는 다른 그리스도교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나자렛 예수가 역사의 주님이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만물의 주님이시고, 교회를 통해 교회 안에서 역사에 현존하신다고 고백한다. 예수는 한 위격으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지니시고, 죄 외에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은 완전한 인간이시고(히브 4, 15),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인 신적 존재이다. 그는 "인류 역사 전체의 열쇠와 중심과 목적"(사목 10항)이다. 예수가 신이며 인간이라는 신앙 고백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신심에는 그리스도의 인간성보다는 신성이 종종 더 강조되었다. 그렇지만 공식적인 가톨릭 교회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조화를 주장한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과 우주의 구원에 그리스도의 절대 필요성을 믿는다. 그렇지만 인간이 구원되기 위해 반드시 예수의 주권에 고백하는 명시적 그리스도인(expilicit Christian)이어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모범적 삶을 사는 선한 사람들도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처럼 천상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는 이를 "열망의 세례" [火洗]로 이해한다. 그러기에 가톨릭 교회는 주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신도들도 저주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누구든지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것입니다"(마태 7, 21). 가톨릭 신도들에게 구원은 파스카 신비를 통해 성취된다. 파스카 신비란 그리스도가 봉사의 삶을 통해 아버지에게 건너가고, 십자가에 순종하여 죽고, 그리고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하느님의 오른편에 들어 높임 받으셨음을 말한다. 구원의 행위는 십자가 처형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다.
마리아 :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고 어머니의 존재는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인간성에 근거한다는 데에 있다. 마리아의 이름은 이미 초기 그리스도론 논쟁에 말려들었었다. 에페소 공의회(431)는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theotokos)으로 선언하였다. 이는 예수가 참 하느님이며 참 인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리아를 둘러싼 논쟁은 지속되었고, 1854년에는 무염 시태 교의가, 1950년에는 성모 승천 교의가 반포되었다. 또한 마리아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 구원의 협조자(Co-redemptrix), 교회의 어머니로 불리워졌다. 동정 잉태에 관한 것도 새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마리아 신심에는 가톨릭 신학과 실천의 세 가지 기본적 원리가 적용, 설명되고 있다. ① 성사의 원리 : 볼 수 없고 영적인 하느님은 보이는 것과 물질적인 것을 통해 현존한다. 그리고 보이는 것과 물질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현존에 의해 거룩하게 생겨난다. 하느님은 마리아 안에서 특별하게 현존하신다. ② 중재의 원리 : 은총은 먼저 그리스도를 통해, 그 다음 교회와 마리아를 포함한 다른 인간적 도구를 통해 중재되는 실재이다. ③ 친교의 원리 : 하느님과의 구원적 만남은 인격적이고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단체적이고 교회적으로 일어난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이런 성인들의 공동체의 탁월한 일원이다. 마리아와의 일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우리의 일치에 대한 표현이다.
교회, 하느님 나라, 성사들 : 교회는 말씀과 성사와 증거와 봉사로,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성자 예수께 고백하고, 하느님 나라 때문에 예수의 역사적 사명에 협조하고자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불리운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사명으로, 하느님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교회를 하느님의 작품으로 본다. 그 안에 하느님이 일하시고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교회를 하느님의 현존과 도구로 이야기하는 것은 교회를 성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성사인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이다. 역사 과정에서 가톨릭 교회는 세례, 견진, 성체, 고해, 신품, 혼인, 병자의 칠 성사를 정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사들을 마술적 행위로 보는 것과 내면적 실재와 효험을 부정하는 두 극단적인 견해를 배척하였다.
사말 : 죽음 후의 삶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신앙은 개인과 교회와 전인류에 적용된다. 모든 사람과 모든 물건은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운명지어졌다. 그러나 보편적 구원에 대한 보장은 없다. 양과 염소의 구분(마태 25장)은 공심판과 사심판 때에 일어난다. 어떤 이는 천국에서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하고, 어떤 이는 영원히 하느님과 멀어져 지옥에 떨어지고, 어떤 이는 림보에, 또 어떤 이는 연옥에서 단련받는다. 각 개인은 영생과 육체의 부활을 향하여 운명지어졌다. 가톨릭 교회는, 죽은 이나 산이나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하나의 성인들의 공동체로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본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가 연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처럼 천상 성인들의 기도는 천국을 향하여 있는 지상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통치 : 가톨릭 교회는 그 공적 가르침에 따르면 군주주의도 과두(寡頭) 정치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가톨릭 교회의 통치는 한 종류로 되어 있으니, 교회는 한 본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보편 교회는 지역 교회들의 합의체(college)이다. 보편 교회의 최상의 재치권은 교황과, 그가 의장이며 그 일원인 세계 공의회에 한때 속해 있었다. 보편 교회는 교황(과거에는 교황과 황제)이 소집한 일종의 세계 공의회이다. 교황은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ius Christi), 더 정확히 말해서 베드로의 대리자이며, 이 세상 보편 교회의 목자이다(교회법 331조). 그렇지만 가톨릭 교회의 합법적인 전통에 따르면 교회는 절대 군주제에 더 가깝게 보인다. 보편 교회가 지역 교회의 국제 합의체(collegium)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의 보편성은 주교들의 합의체(collegial rela-tionship)로 표현된다. 교황은 이 합의체의 단장이고 중심이다. 가톨릭 교회의 교회법에 의하면 교회는 군주주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교황을 포함한 주교단이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의 주체로 존재" (336조)하기 때문이다. 주교는 주교 대의원 회의(syinodus episcoporum)를 통해 교회의 통치에 참여한다. 주교 대의원 회의는 교회에 대한 일반 관심사와 사목적 관심사를 논하기 위해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선출된 주교 회의이다. 주교단 내에는 특수 주교단인 추기원(樞機院, consistorium)도 있다. 추기원의 책임은 교황을 선출하고 교황이 보편 교회를 통치하는 데 협력하는 일이다. 지금 형태의 추기원은 20세기에 주어진 것이다. 교황청은 교황이 보편 교회의 업무와 교회의 선익과 봉사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도록 협조하는 곳이다. 교황청은 국무원, 9개의 성(省, congrega-tio), 3개의 법원, 12개의 평의회(pontificium consilium) 및 그 밖의 부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법에 따르면 "교황은 자기의 사람들을 임명하며, 여러 국가들이나 지방들의 개별 교회들 또는 국가들과 공공 당국들에 파견하고, 또한 각 국가에 주재하는 사람들의 파견과 소환에 관한 국제법의 규범을 준수하면서 이들을 선임하거나 소환할 천부적 독립된 권리를 갖고 있다" (362조)고 되어 있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동방 교회의 전통과 관계가 보존되기를 바란다(동방 교회 교령 참조). 교구에는 주교,보좌 주교, 총대리, 사무처장, 법원, 사목국 등이 있고 본당에는 본당 신부, 보좌 신부, 사목 회장, 본당 협의회 등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하느님 백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특히 평신도들이 교회의 통치에 참여하도록 고무하였다. 교회 일치는 가톨릭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의 과제이다. (→ 로마 가톨릭 ; → 교회 일치 운동 ; 교회 )
※ 참고문헌 K. Adam, Das Wesen des Katholizismus, Tübingen, 1924/ L.S. Cunningham, The Catholic Heritage, New York, 1983/ J. Delaney, ed., Why Catholic?, Garden City, New York, 1979/ L. Gilkey, Catholicism Confronts Modermity : A Protestant View, New York, 1975/ S. Happel · D. Tracy, A Catholic Vision, Philadelphia, 1984/ R. Haughton, The Catholic Thing, Springfield, 1979/ M.K. Hellwig, Understanding Catholicism, New York, 1981/ H. de Lubac, Catholicisme, Paris, 1938/ R.P. McBrien, Roman Catholicism, 《ER》 12/ K. Rahner · J. Ratzinger, Episkopat und Primat, Freiburg im Bresgau, 1962. 〔李濟民〕
가톨릭 교회 -
敎會
〔라〕Ecclesia Catholica · 〔영〕Catholic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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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는 예수 .
